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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을 잡아라
솔벨로(1976년 노벨상 수상자)
오늘을 잡아라 란 제목을 듣자 생각난 것은 “죽은 시인의 사회”다. 카르페 디엠과 함께 나왔던 문구다. 현재를 즐기며 오늘을 잡아라. 그렇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몇 이나 될까.
44살 백수에 이혼남이며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까지 된 토미 윌헬름에게 오늘은 있기나 한걸까.
이 책은 토미 윌헬름에게 일어나는 하룻동안의 일을 담은 소설이다.
꽤 반반한 얼굴의 토미는 매번 중요한 시기에 잘못된 선택을 한다. 본인 또한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여러 가지 뻔한 이유나 말도 안되는 낙관적인 희망을 품으며 선택을 하고, 좌절을 한다. 그런 선택들 사이에서 결국 결론은 뻔한다. 아내와의 이혼 후 두 아들의 양육비를 보내는 것도 버겁고 되돌아갈 회사도 없다. 글로리아 호텔에서 머물곤 있지만, 호텔비조차 밀리는 상황이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아버지는 그런 토미의 상황에 대해 도와줄 마음이 없다. 그저 자신을 빛내줄 아들이 못되기에 화가 날 뿐이다. 한심하고 또 한심한 토미를 보며 아버지는 냉정할 뿐이다. 돈만이 아니다. 토미에겐 모든 것이 인색했다. 따뜻한 말과 격려도, 아들에 대한 사랑도 인색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그에겐 자신말고는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
자비와 친절한 말 따윈 가지고 태어나지도 않은 것 같은 아버지는 글로리아호텔에서 과거 빛났던 자신의 의사로서의 명성을 지키며 그렇게 허영 속에 살아간다. 그런 토미가 사기꾼 템킨에게 끌린 것도 어쩌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것인줄도 모른다. 뻔히 사기꾼이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는 걸 알면서도, 허황되고 자극적인 거짓말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그 거짓말 속에 몇 안되는 따스함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의 선물제안(주식)에 홀린 듯 사인을 하곤 그나마 갖고 있던 얼마 안 되는 전 재산도 날리게 된 것.
오늘을 잡지 못하고 그렇다고 내일을 대비하지도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굼뜨고 눈치없고 한심하다고 취급받는 토미, 그런 그에게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사회다.
알지도 못하는 이의 장례식에서 익사할 듯 눈물을 흘리는 토미, 어리숙하지만 따뜻하고 연약한 토미에게 세상은 등을 돌린다. 눈물을 닦고 토미는 등을 돌린 세상앞으로 다시 나아가지 않을까. (바람을 피우고 우유부단에 답답한 그를 보면서, 그럼에도 그의 아버지처럼 셈하며 살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처음부터 둥지는 가시 투성이로 연약한 그의 등을 찔러댔고, 쫓기듯 젖은 날개로 떠나왔다. 미숙하고 덩치만 큰 덜 자란 새는 어미새도 잃고 아비새의 부리를 쪼지만 되돌려받는 건 잔인한 말들이다. )
"라일락꽃도 이제 끝물이에요." 윌헬름이 말했다. "라일락꽃이 지면 여름이 시작되죠.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요. 매년 이맘때면 사탕 가게는 유리문을 떼어 내고 보도에서음료수를 팔기 시작하죠. 그렇지만 아버지, 제가 이곳에서자랐다 해도 저는 더 이상 도시 생활을 지탱하기가 힘들어요. 시골이 그립습니다. 도시 생활은 저를 너무 몰아붙여요. 그래서 전 너무 고달파요. 게다가 저는 아주 힘들게사는 편이죠. 사실 저는 은퇴하신 아버지가 왜 좀 더 조용한 곳에서 지내시지 않는지 의아스럽습니다." 애들러 박사는 작은 손을 테이블 위로 펼쳐 보였다. 월헬름은 익히 보아 온 아버지 특유의 이 손짓을 보자 아버지가 자기 삶의 밑바닥을 어루만져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도시에서 자랐다는 점을 꼭 기억해 두거라." 아버지가 설명했다. "하지만 네가 도시 생활을 그렇게 힘들어한 " 다면 떠나야겠지." "그렇게 할 거예요." 윌헬름이 말했다. "적당한 자리가나오는 대로요. 그동안에는……."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너한테 한 푼도 줄 수 없어. 돈을 주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거야. 너와 네 누이는 내가가진 돈 마지막 한 푼까지 가져갈 거야. 그러나 나는 아직죽지 않고 살아 있어.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있단 말이다. 생명이 아직 붙어 있어. 나도 너나 다른 사람처럼 살아 있어. 그리고 나는 누구도 내 등에 짊어지고 싶지 않단다. 다들 내 등에서 내려가! 그리고 윌키야, 너에게도 똑같은 충고를 해 주마. 누구도 네 등에 태우지 말아라." "그저 아버지는 돈이나 움켜쥐고 사세요." 윌헬름이 비참하게 말했다. "돈이나 움켜쥐고 마음껏 즐기세요. 꼭 그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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