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미술관 - 아름답고 서늘한 명화 속 미스터리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림이 커서 좋다.

 

일요일의 화가로 유명한 루소의 정글시리즈 <뱀을 부르는 주술사>, 루소는 정규교육을 받진 않았지만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내 성공한 화가다. 특히 정글시리즈는 파리수목원과 동물박제 전시관을 통해 그려낸 것, 그래서인지 더 몽환적이고 더 정글같은 느낌이다. 앞으로는 그리고 만드는 재주는 부족해도, 창의력으로 승부하는 예술가들이 득세할 거라고 한다. 데미언 허스트같은 대가도 주로 아이디어를 내면 만드는 것은 화실사람들의 몫이다. 3D 프린트가 보급되면서, 가구 디자인도 조각도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가능해진 세상이며, AI가 그림도 그리는 세상이다. 그러고 보면 예술품들도 이제 특허권 싸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되면 루소처럼 일요일의 화가들이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예술의 평등이 진정 이루어지는 걸까. 아니면 수십 년을 갈고 닦은 실력으로 자신의 꿈들을 펼쳐내는 장인 예술가들의 사라짐에 안타까워해야 하는 걸까.

 

귀족과 교회에서 부의 흐름이 부르조아, 부유상인들에게 흘러가면서 나온 벽걸이형 그림들, 그리고 그런 그림의 대가였던 한스 볼롬기에르의 꽃그림에 담긴 인생.

꽃은 불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산화공덕, 삶의 허무. 서양에서도 그랬나 보다. 결국 비싼 꽃이든 들꽃이든 시들게 마련이고 말라 먼지처럼 사라진다. 그렇지만 서양에선 이런 꽃들옆에 원죄를 짊어짐을 의미하는 달팽이와 탐욕을 의미하는 애벌레 등을 넣어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교휸도 잊지 않았다.

 

히틀러가 너무나 좋아해서 거의 뺏다시피 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

그림 속 월계관이 의미하는 영광과 트럼펫이 의미하는 명성을 갖고 싶었지만, 역사의 여신 클리오는 히틀러를 다르게 기록할 것이다.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 사회에서 외면받는 계층의 세탁부들, 그들의 얼굴이 모호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이 주인공일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탁부>의 그림에서 아이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바로보는 아이의 얼굴에서 따스함과 정감을 찾는다. 돈과 권력이 줄 수 없는 연대와 사랑.

   

 

부자들, 귀족들이 마치 애완견처럼 과시하듯 데리고 다닌 다모증환자의 초상화는 벨라스케의 <시녀들> 속 난쟁이들, 인간 동물원까지 떠올리게 한다. 불운을 담는 그릇으로 필요했던, 혹은 우스개와 농담을 위해 필요했던, 혹은 특이함으로 과시하려 했던 귀족과 왕족들의 도구가 된 이들의 모습,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게 있을까.

 

만테냐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은 지금의 시대에 어울린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총애를 받았지만, 그리스도교를 믿다가 돌기둥에 묶여 온 몸에 화살을 맞고도 죽지 않아 결국 돌 또는 몽둥이로 맞아 순교한 성인이다. 옛날 사람들은 질병 또한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 등에 맞아 감염된다고 생각했고, 그런 화살들을 맞고도 죽지 않은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자신들을 흑사병에서 구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세바스티아누스의 얼굴엔 고통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돌기둥이 아니라 고대 로마의 개선문 기둥 장식에 묶은 것, 만테냐는 고대 조각과 고대의 인체 비례 규범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그림의 또 다른 재미는 구름이다. 마치 말을 모는 노인같은 형상의 구름.

다빈치는 담벼락의 얼룩이나 구름을 보면서 연상하고 연상된 형상을 그려보라는 조언을 통해, 자연을 그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표현하라고 한 것이다. 만테냐는 이 조언을 그림을 통해 충실히 따랐음을 보여준다. 구름 속에 담긴 형상, 말을 모는 기사 혹은 노인 같기도 한 모습이다.

 

나무 바닥에서 재미있는 무늬를 발견했던 에른스트, 프로타주도 생각난다. 백원 동전 위에 종이 올려놓고 연필로 그어대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은 모두 예술가가 아닐까

작은 얼룩, 구름 , 노을, 세상 모든 것들에서 형체를 찾아내고 상상하며 친구 삼는 것, 예술가들이 꿈꾸는 그 재능을 아이들은 그저 갖고 있으며 즐길 뿐. 나이가 들면 얼룩은 지워야할 짐이고 구름은 흘러가는 것일 뿐 이란 게 서글프다. 그런 것들 잊고 살 만큼 중요한 일을하며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 그의 그림이 달리와 브뢰헬에 영감을 줬다고 한다. 특이한건 스타워즈 속 외계인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고.

그 외에도 다양한 작가들과 그림들에 대한 설명들, 시대배경과 작가님의 감상평등이 담겨 있다. 부담없이 재미있게, 그리고 책 한 면을 차지하는 그림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보이고 싶어 최초로 하트를 그려 준 이는 누구일까.

(사랑은 가슴이 아니라 뇌가 인지하는 거라던데, 그럼 이젠 뇌 그림을 그려야 하나. 호두를 하나 손에 쥐어주는 것이 사랑을 고백하는 거라면 또 어떨까. 다람쥐들이나 좋아할까.)

글로 다 하지 못하는 마음을 색으로 형상으로 표현한 것이 그림일까.

떠나보내는 이가, 떠나는 이의 그림자를 따라 그리며, 그리움으로 시작되었다는 그림.

그래서일까. 그림 속엔 많은 것들이 있다. 한 편의 시를 모두가 다양한 의미로 가슴에 담 듯, 그림 또한 보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보인다. 

그림에는 선동의 힘도 있다. 역사를 담는 그릇도 된다. 그 시대상을 보여주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숨기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림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고 새롭게 느껴진다.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1-10-15 12: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등!! ( ๑´•ω•)۶”

mini74 2021-10-15 12:13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스콧님 *^^*

scott 2021-10-16 11:54   좋아요 2 | URL
히에로니무스 보스
세기를 뛰어넘는
예지 능력을 갖춘 탁월한 예술인


SF장르에도 영감을 준~

oren 2021-10-15 12: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림 속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참 좋네요.^^

mini74 2021-10-15 12:21   좋아요 4 | URL
책 속 그림들이 시원시원해서 더 좋았어요 ~

미미 2021-10-15 12: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조금만 더 늦게 태어날껄 그랬나봐요. 저 아이디어는 엄청 많은데 그리는 재주는 별로ㅋㅋㅋㅋㅋㅋ(농담)예전에도 시대를 잘못만난 사람들이 많았겠죠? 😆 마지막 문장 깊이 공감합니다. 그림과 웃음은 은근 선동적,파급력이 있는것 같아요~^^*♡

mini74 2021-10-15 12:46   좋아요 5 | URL
미미님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3D프린터만 사시면 ㅎㅎㅎㅎ 미미님 글도 반짝반짝 ~ 제가 봐도 아이디어도 반짝반짝 하실것 같아요 ㅎㅎ

scott 2021-10-16 11:52   좋아요 2 | URL
그리는데 재주 전 혀
필요 없습니다
열정만 있다면
별그램 스타가 될 수 있음요 ㅎㅎㅎ

오늘도 맑음 2021-10-15 13: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만테냐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아~ 아름다워요^^
오늘도 역시 놀이를 잊은 우리의 모습을 예쁘게 표현해주심에 또 마음 속 한켠이 찌르르~
문득......
정신과 병동에서 실습 할 때가 생각이 납니다.
환자들과 함께 각자의 그림을 열심히 그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환자 한분이 제 그림을 보더니 ‘이 학생이 입원해야하는 거 아니냐고ㅠㅠ‘(그분은 제가 그린그림인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종이 접기를 했었는데~
제가 색종이를 뒤집어 하얀 나뭇잎을 만들었거든요.
그때도 환자들이 하얀 나뭇잎 입원하자면서ㅠㅠ
끝으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그림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낙타나 짐승들 위로, 참치인가요? 암튼 생선들이 벌거숭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식당으로 가고 있나요?
오늘도 소녀스러움을 장착하신 mini74님,
또 다른 시간에 뵙겠습니다. 러뷰합니다.🥰


mini74 2021-10-15 13:26   좋아요 6 | URL
입원해야 할 학생이 아니라 무지무지 창의적인 학생이신데요 맑음님 *^^*에피소드에 빵 터졌어요 ㅎㅎㅎㅎ 보스 그림은 시대를 앞서가지요.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이 차용해서 재탄생 시키는 그림이라고 하네요. 좋은 댓글 고맙습니다 하얀 나뭇잎님 *^^*

붕붕툐툐 2021-10-16 11:49   좋아요 5 | URL
ㅋㅋㅋㅋㅋ저도 맑음님 에피소드에서 빵 터졌습니다!ㅎㅎㅎㅎ

초딩 2021-10-16 13:26   좋아요 2 | URL
많아 웃고 갑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1-10-15 14: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림에 관해 매번 이렇게나 관심이 많으신 미니님, 정말 대단하세요
저는 한번씩 미술관 전시에는 다니지만 책을 들여다 볼 정도로 그림을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한마디로 최고예요**

mini74 2021-10-15 14:03   좋아요 5 | URL
별말씀을요..여기 고수님들 많으세요 ㅎㅎ 고맙습니다 페넬로페님 ~ 미술관 가고 싶네요 *^^*

새파랑 2021-10-15 15: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혹시 미대누나 인가요? 😆 저번에 말씀하신 <세탁소> 그림이 저거군요~!! <알레고리> 그림은 볼때마다 신비한거 같아요~ 역시 그림 마니아 미니님이군요^^

mini74 2021-10-15 15:22   좋아요 4 | URL
미대누나 아니고 먹고자고대학 밥대 누나입니다 ㅎㅎ 너무 옛날 농담이죠 ㅎㅎㅎ 네~ 그 세탁소 그림 ~ 잡은 손이 보드랍고 따뜻하지요 ~~~

서니데이 2021-10-15 21: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 페이퍼의 그림 중에서 마지막 그림이 어디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표지에 있어서 그랬나봐요, 같은 그림도 조금 다른 이미지 안에 들어가면 느낌이 미묘하게 달라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mini74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mini74 2021-10-15 21:25   좋아요 3 | URL
세 폭 제단화를 한꺼번에 보면 또 다르더라구요 ㅎㅎ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아프지 마시구요*^^*

적막 2021-10-16 0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전자책으로 샀는데 사진 실린 것을 보니 종이책으로도 사고 싶네요 ㅜ.ㅜ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남겨주신 글을 보니 기대가 됩니다!!>.<

mini74 2021-10-16 12:08   좋아요 3 | URL
전자책도 좋을 거 같아요 ~~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

붕붕툐툐 2021-10-16 1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페이퍼 읽으니 이 책도 읽고 싶지만-이미 보관함에 있네요?ㅎㅎ-미술관도 너무 가고 싶어졌어요~ 마지막 문단에서 그림이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졌달까요?
미니님 그림의 조예가 깊으신 거 같아 늘 부럽습니다. 짱 멋지심~👍

mini74 2021-10-16 12:16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ㅎㅎ 그쵸. 미술관 가고 싶습니다 ~~

그레이스 2021-10-16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놓칠뻔했네요
읽고나니 또 도집니다.
미술책 사재기병!

mini74 2021-10-16 12:07   좋아요 3 | URL
ㅎㅎ 저는 만성으로 갖고 있는 병이라서요 ~~ 못 고칠거 같아요 ㅎㅎ

초딩 2021-10-16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책 속 사진과 함께 소개해주시니 이런 책 살펴 볼 땐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디지털화 되는 추세는 씁슬하지만 또 개인이 쉽게 접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