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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평점 :
이 책이 좋았던 이유,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인물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이다.
이 책에서 반가웠던 인물 중 하나 릴리트!
내가 좋아하는 여신이다. 아담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했으며, 차라리 벌을 받겠다고 에덴동산을 뛰쳐나간 여신.
구약성서의 창세기 1장엔 남자와 여자를 같이 만드니..
구약성서의 창세기 2장엔, 남자의 갈비뼈를 꺼내 여자를 만드니 그 이름이 이브라..
그러면 아담은 중혼죄일까요?
이브 이전의 그녀는 누구일까. 바로 릴리트다. 아담과 똑같이 흙으로 빚어진 여인.
아담에게 순종하는 대신, 신과 아담을 버린 여자. 그녀는 아담보다 뱀을 총애했고, 아담에 복종하지 않았다. <미드라시>에선 뱀과 간통하여 악마의 아이들을 낳았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가장 현대적인 여인이다.
그 후 릴리트는 밤의 여인으로 폄하되었다. 부엉이가 트레이드 마크이며 복수이자 재앙의 여신이 된다. 남성에게 평등을 부르짖는 다는 건, 그 시대엔 재앙이자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고대인들은 아이가 죽어도, 그 외의 나쁜 재앙에도 모든 원인을 릴리트 탓으로 돌린다. 그런 릴리트의 이미지는 지금도 팜파탈 속에 남아있다. 평등과 성적 해방을 외치다가 결국 동방정교 등의 타 종교에서 주술과 마법, 흑마술 등이 쓰여진 책에서나 등장하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밤의 여인이자 재앙의 근원이라는 릴리트, 그럼에도 정감이 가는 건, 릴리트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겠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가 그린 릴리트>
또 한 명의 인물, 빨간모자.
어떤 책에선 빨간 모자를 샛길족이라 한다.
새로운 길은 위험하다. 무모하다. 그렇지만 그런 남들이 가지 않은 길들을 누군가는 용기내서 감으로써 진화가 시작된다. 그런 위험한 샛길을 걸어가는 빨간 모자, 결국 위험에 처하지만, 이제 그 샛길은 위험한 샛길이 아니라 큰 길이 된다. 꽃향기 가득하고 아름다웠지만 늑대로 인해 위험했던 샛길이, 용기내서 걸은 빨간 모자에 의해 큰 길이 된 것이다. 위험 없이 많은 이들이 이제 그 길의 꽃향기와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큰 길도 예전엔 샛길이었고, 누군가 용기내서 걸었기에 큰 길이 된 것. 빨간 모자는 무모함이자 용기의 표상이 아닐까.
이 책에서도 작가는 빨간 모자를 유혹당하면서도 유혹하고, 세속적이면서도 무구한 그녀는 부정직한 늑대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는 인물로 이야기하고 있다.
햄릿을 거트루트의 시선에서 본 관점도 좋았다. 그러고 보면 거트루트에겐 아무도 묻지 않는다. 심경이 어떤지, 햄릿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고 어떤 생각과 어떤 계획이 있는지. 그녀는 햄릿을 낳고 싶었을까? 아들인 햄릿이 마음에 들었을까 하는 의문들을 읽으면서 어쩌면 나는 햄릿을 1/3도 읽지 못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셰익스피어의 남성들은 우중충하고 죽상에, 정절과 순결에 남의 목숨을 건다.(물론 아닌 인물들도 많다) 끝이 좋아도 개운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 건, 거트루드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 외에도 홀든이 아닌 피비의 시선과 하이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등,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들에 대한 해석 등에 배울 점이 많았다.
사탄이 쿠퀘그가 릴리트가 피비가 롱 존 실버 등이 제목으로 등장해서 더 좋았다.
보물섬을 읽으며 롱 존 실버를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했던 이가 나말고도 많다는 것을, 그리고 작가의 오랜 친구 월리엄 어니스트 헨리에서 떠올렸다는 것이 어쩌면 실버가 다양하고 복잡하면서 매력적인 성격을 갖게 된 이유가 아닐까.
책 속엔 다양한 인물들이며 괴물들이 등장한다. 그런 괴물들과 싸우는 영웅들도 나오며 흑화되어 버리는 나약한 인물들도 나온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괴물도 어쩌면 나일 수도, 그런 괴물들을 처단하는 영웅도 나일지도 모른다.
괴물도 나이며, 괴물에게 잡힌 인질도 나이며, 결국 나는 나와 싸워 나를 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속엔 고약한 괴물도 있고, 괴물에게 물려 피 흘리는 나도 있다. 그리고 방패와 칼로 무장하고 싸우는 나도 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건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선 괴물이었다가 저 소설에선 영웅이었다가, 그러면서 내가 되어 가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