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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사랑한 밤 - 명화에 담긴 101가지 밤 이야기
정우철 지음 / 오후의서재 / 2024년 9월
평점 :
파란 하늘도 좋아하지만,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의 은은함도 좋아한다. 도시의 밤은 밝아서 온전한 달빛을 느끼기에는 모자람이 있지만, 보름달이라도 떠서 달빛이 환한 밤이면 집안에 불을 모두 끄고 거실 바닥에 누워 달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즐길 수 있다. 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있지만, 모든 것을 재생시킬 수 있는 힘이 발휘되는 시간인듯도 하다.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읽고싶었던 책이었는데,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정우철 작가의 글을 좋아하기에 이 책도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전작 <화가가 사랑한 바다>도 나쁘지 않았고. 그 이전에 나온 책들은 상당히 알찬 구성이라 야무지게 그를 만났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고 말해야할 것같다. 작가는 독자들이 잘 알고 있는 화가들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잘 아는 화가이기때문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식상한 느낌이 드는 단점도 있었다. 화집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그다지 나쁘다고 말할 수 없을 수도 있다. 101가지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원했던 나는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는 여백을 많이 남김으로써 '밤'의 정취를 독자들이 더 많이 느끼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화가의 마음도 들여다보고, 내 맘을 건드리는 무엇에 집중해보기를 원하는 배려와 함께.
고흐, 모네, 뭉크같은 유명 화가들의 작품도 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작품들도 많았다. 유명화가들의 작품은 많이 익숙하고, 그들의 이야기도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서 새로운 화가들에 시선이 가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작품에 눈길이 갔다. 존 엣킨슨 그림쇼를 좋아하다보니 반가웠다. 지금까지 봐왔던 한적한 골목길의 달빛 풍경이 아닌 템즈강변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고요함이 느껴졌다. 레세르 우리의 그림을 여러 점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하랄 솔베르그와 장 피에르 카시뇰의 <여름밤>에서는 청량감이 느껴졌다. 같은 제목이라서 비교해보게 되었는데, 분위기가 비슷했다. 처음 만난 앤 매길의 작품에서는 밤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담겨있었다. 1962년생 북아일랜드 출신인 앤 매길은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화가의 여정을 따라가보고싶은 맘도 생겼다.
존 엣킨슨 그림쇼, <웨스트민스터 템즈강에 관한 고찰>, 1880
앤 매길,<늦은 저녁>, 2002
깊이도 있으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밤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만남으로써 화가들이 밤을 어떤 모습으로, 어떤 감성으로 표현했는지 조금이나마 접해볼 수 있었다는 것은 좋았다.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본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미술책을 사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