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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ㅣ 블루 컬렉션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1994년 출간된 책이었다. 고전의 영역에 넣을 수는 없는 애매한 시기의 소설을 읽는 일은 드물다. 고전 아니면 신간을 따라 읽어가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이 책은 내가 20대 때 출간된 책인데, 당시에 읽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완전한 독립은 이루지 못해 아버지의 지원을 간간히 받으며 잡지등에 기고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25살의 콩스탕스. 로맹가리를 좋아해서 그의 작품 31권을 아껴가며 읽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른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기로 결심하고 찾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도서관 책에 밑줄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가끔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밑줄이 그어진 부분이나 메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당시도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었던 것같은데 , 이 금기를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살포시 무너뜨렸다. 주인공은 한 술 더 떠 밑줄이 누군가 자신에게 보내는 메세지라 생각하고 밑줄 대 밑줄로 대화를 시도해나가는 대담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어느새 그가 실존하는 인물인듯 자신의 생활 속으로 상상속의 남자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상상력으로 인해 생활에 활기를 띠는 등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이니 빨리 깨어나는 것이 좋겠지. 다행히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밑줄을 그은 남자라며 나타난 한 남자로 인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른 작가를 찾겠다는 도서관 여정이 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되어버린듯하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지.
밑줄로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 누군지도 모르면서 사랑하게 되고, 그를 찾아가는 여정 등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이런 동화적인 요소를 맘에 들어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책에서 감동을 받는 부분,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나이에 따라서, 경험치에 따라 다를테니까. 지금의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최근에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면서 집중적으로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도스토옙스키 작품들이 대거 등장하고, 최애 작가 츠바이크가 언급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상황과 맞아떨어지면, 평범한 책이라도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