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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그림들 - 기묘하고 아름다운 명화 속 이야기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4년 7월
평점 :
저자의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래서 망설임없이 선택한 책이다. 하지만,<무서운 그림들>이란 제목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쓸데없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니까. '기묘하고 아름다운 명화 속 이야기'라는 부제가 딱 좋은 것같다. 그림이 좋아서 관련책을 많이 읽었지만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만난다. 처음 만나는 화가도 있었고, 익숙한 화가들의 새로운 이야기도 들었다. 흥미로운 글들과 작품이 많았지만, 특히 관심가는 내용들을 정리해두고 싶었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이 그림을 볼 때면 순백색의 하얀 옷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티없이 맑은 연백색만큼 잘 어울리는 색은 없다고 생각해서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모습으로 그렸다는데, 그 댓가로 얻었던 것이 납 중독이었다니. 연백색 안료의 원료가 납이었고, 만드는 과정도 만만치가 않았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았지만 배신을 당했고, 건강까지 잃었다. 그런 모든 과정을 알고 그림을 보니 지금까지 아름답게만 보아왔던 그림의 어두운 면이 도드라져 보였다.
클림트의 그림은 때론 비슷하게 보이기도 했는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은 확실하게 각인이 되었다. 이 그림에 이런 사연이 숨어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나치에 강탈당한 그림이 오스트리아 정부에 귀속되었다. 그림을 돌려받기 위해 조카는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그림 반환을 요청하는 소송을 했고, 끝내 돌려받았다. 영화 <우먼 인 골드>가 이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니 한 번 봐야겠다. 유대인 이름이 쓰였다는 이유로 나치는 그림 제목을 <우먼 인 골드>로 바꿨다는데 영화 제목은 거기서 착안했나보다.
<유령>을 비롯해 성경 속 인물인 살로메를 주인공으로 하는 귀스타브 모로의 그림을 볼 때마다 살로메는 왜 저런 모습으로 등장하는 걸까 궁금했다.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모로는 성경 속 어머니 헤로디아의 명령에 따르는 연약한 여인의 살로메를 재해석하여 욕망에 충실한 마성의 여인으로 표현했다. 19세기 말 유행한 상징주의자의 시선과 세기 말의 긴장과 불안에 가득찼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부추긴 창작욕의 결과물로 보고 있었다. 화가의 시대를 읽어내는 시선, 고정 관념에 머무르지 않는 창작욕구에 따라 전혀 새로운 주제, 화풍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단테의 <신곡>이 읽어보고싶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들어간 신곡이. 뒤를 돌아보는 단테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한 것이 너무나 사실적이다. 수록된 다른 삽화들도 보니,어렵다고 생각했던 <신곡>을 아주 재미있게 읽는데 도움이 될 것같다. 제대로 회화를 배우지 않았기에 더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다는 도레. 그런 도레에게 문학 작품의 삽화는 아주 적합한 분야였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그림으로써 본인의 아픈 삶을 극복하려 했던 화가들.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사회의 변화를 꾀했던 화가들. 그런 이들의 작품을 보면서 공감하고, 위로받는 시간이 되었다. 그림을 본다는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만나는 과정인것같다. 저자는 "미술은 인생의 해상도를 높인다"는 말을 믿으며 독자들에게 미술로 인해 풍부해지는 일상을 선물하기위해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그런 믿음으로 앞으로도 좋은 글을 많이 만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