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사정 - 조경란 연작소설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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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이후 4년만에 신작 소설집을 내신 조경란작가님의 「가정 사정」을 읽어보았습니다.
단편집만 벌써 8번째이신 데 이번에는 ‘연작소설‘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어서 읽어보니 제가 생각했던 여러 단편 속에서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거나 내용이 단편 사이 사이에 이어지는 ‘연작‘과는 조금은 달라 초록창에 검색을 해보니, 서로 다른 인물과 내용이어도 동일한 주제를 가지는 것 또한 ‘연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더군요. 그래서 3년전에 출간되었던 장강명작가님의 연작소설집 「산 자들」도 생각이 났었어요.
표제작이자 가장 앞에 실린 지면 발표작 (가정 사정)을 포함한 8편의 단편들 속의 공통분모로 등장하는 익숙하지만 그러므로 더 알 수 없는 ‘가족‘이라는 주제가 읽으면서 제게도 그냥 스쳐지나가지는 않더군요
아버지가 다치자 ‘가정 사정으로 쉽니다‘라고 쓴 종이를 붙이며 가게 문을 닫은 정미씨(가정 사정), ‘내부 수리중‘이라고 적힌 종이를 붙이고 가게 문을 닫고 태선생을 뵐 겸 오랜만에 단 둘이 여행을 떠난 연호씨와 기태씨(내부 수리중), 어두운 과거를 지녔지만 안정이라는 게 필요하며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 속을 양파 한 알씩 던지며 깨끗하게 털어버리는 기중구씨(양파 던지기), 보지 말아야 할 선생님의 깊게 파여진 틈새를 봐버렸고 끝내 할 수 없었던 선생님의 두 번째 숙제와 유니콘과 새형이 함께하던 모임에서 도망쳐버린 오숙씨(분명한 한 사람), 언니 홍미씨를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떠나보내야 했으며 사윤씨의 매트리스에다 붙일 폐기물 스티커를 대신 붙이기로 하였지만 사윤씨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줄 생각이 없었고 타이밍이 맞지 않아 미루게 된 동미씨(이만큼의 거리), 일하고 있는 동안 엄마를 보살피던 부경이의 유기견 입양 보호자가 되기로 한 상희씨(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은제 이모가 사는 아파트의 12층에 일주일간 베란다에 물을 주었으면 한다는 부탁을 적은 편지와 함께 화분을 갖다놓을 미석씨(한 방향 걷기), 확진자발생으로 3일간 강제휴가를 얻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가를 더 사용하며 오빠가 부탁한 규이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을 하는 인주씨(개인 사정)까지......
이 8편의 단편 속에 등장하는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어쩌면 제가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이며 또 어쩌면 그들 또한 가게밖에서, 일터에서 아니면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저를 보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슬프고 이해할 수 없으며 밉지만 결코 지워지거나 잊혀지지 않을 이야기들을 쓰시는 조경란작가님의 글들을 계속 읽어가려고 합니다.
조경란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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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오피스 오늘의 젊은 작가 34
최유안 지음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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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혹평이 조금 있어서 읽기 전에 걱정을 했지만 첫 소설집이었던 「보통 맛」의 (본게마인샤프트)라는 단편을 읽었던 터라 제가 직접 읽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읽기 시작한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의 34번째이자 최유안작가님의 첫 장편소설 「백 오피스」를 끝까지 읽어보니 앞서 읽으셨던 분들이 어떤 점에서 아쉬워했는지 알겠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잘 읽혀졌고 안전하고 익숙한 길을 두고 무모해보이지만 새로운 선택을 하여 그에 따른 결과를 납득하기는 여전히 어렵겠지만 받아들이는 여성들의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육아휴직으로 동기였던 선 차장보다 진급이 늦은 것만으로도 조급한데 남편 정호준에게 이혼을 요구받은 퀸스턴 호텔 백 오피스 15년차 지배인 강혜원, 업계의 최고인 인터스보다 한참 모자르지만 열정과 패기로 가득한 아티스틱의 임강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인 태형그룹에서 정직원으로 일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조차 어렵기만 한 실세 오균성보다 한참 아래인 대리 홍지영.
이 3명의 여성들을 주축으로 권력과 사회생활, 어둡기만 한 인생 살이가 펼쳐지는 데 무난하게 묻어가거나 순리대로 참고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무료하고 덧없는 일상에 돌멩이를 던졌다는 것, 그 던짐으로 인한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이들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어디에 있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소설을 읽으며 당연하게 알게 되었으므로 저는 오히려 그들에게서 희망과 위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홍지영과 알렉스의 러브라인이 아주 쪼금은 뜬금없긴 하다는 것에 일부 동의하지만서도 홍지영과 알렉스가 만나 사랑을 하는 것또한 인생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최유안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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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의 세계
위수정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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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은 책도 올해 1월에 출간되었으나 미처 읽지 않았던 위수정작가님의 첫 소설집인 「은의 세계」입니다.
표제작인 (은의 세계)와 앞서 출간되었던 각종 문학상 작품집에서 제목만 들었던 (풍경과 사랑), (Take Me Somewhere Nice)등 총 7편의 단편과 등단작인 중편 (무덤이 조금씩) 이 실려있습니다.
(은의 세계)는 지환과 하나가 코로나로 인해 결혼식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하나가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던 명은이 일주일에 한 번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면서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 (안개는 두 명)의 유리와 선주는 같이 살고 있으며 선주가 전시회 ‘안개는 조명‘을 열게 되는 데 과거에 선주가 손절했던 화영을 만나 유리와 셋이서 술을 마시며 (풍경과 사랑)에서는 남편이 출장간 사이에 아들인 민준과 그의 친구이자 잠깐 빛나다 불현듯 사라졌던 연예인 주수진의 아들 연호에게 남모를 감정을 가지는 아내가 (화양)에서는 10살 연상인 남편이 출장을 가자 애인대행으로 부른 짐보를 만나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 여자가 (음악의 도움 없이)에서는 오랫만에 만난 디제이를 하는 상일이 아무런 연락도 없자 어쩔 수 없이 문래동의 폐쇄된 공장
으로 가 쿵쿵 울려대는 음악소리와 질 신지 않던 힐을 신어 발이 아파 신음하는 여자, 결혼하지 않은 사이인 혜영과 우진 그리고 미성년자인 것이 분명하지만 아리송한 느낌을 주는 이름도 아리송했던 민수 이렇게 셋이 차를 타고 가는 (Take Me Somewhere Nice), 딸을 잃고 이혼한 준우와 홍이 여행을 떠난 외딴 섬의 민박집에서 묵는 여정을 담은 (마르케스를 잊어서), 오래 전에 죽은 베티 스미스라는 이름이 새긴 묘비에서 잠들어 있던 인영과 진욱을 찍게 되어 인연을 맺은 헨리와 그의 연인인 조슈아가 함께 식사를 하는 (무덤이 조금씩)까지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무언가에 취해있는 기분을 느꼈다고 해야할까 싶었어요.
실제 소설에서 술에 취한 화영과 선주, 유리(안개는 두 명)나 인영(무덤이 조금씩), 상일이 준 정체모를 약을 먹고 완전히 가버린 여자(음악의 도움 없이), 제가 봐도 취한 것인지 아니면 이상한 것인지 아리송한 민수(Take Me Somewhere Nice)와 (화양)의 그녀, 그리고 준우와 지환에게 좀 섬뜩하고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홍(마르께스를 잊어서)과 명은(은의 세계), 8편의 중,단편들 속에 그나마 멀쩡해보이나(?) 아들의 친구에게 끌려버린 여자(풍경과 사랑)등 이상하거나 미친 게 분명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불쾌함이 불현듯 솟아오르는 느낌이었어요.
고요했던 일상을 깨버리는 여성들의 끝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모습들을 보며 뭐라고 표현하기가 굉장히 어려웠고 읽는 자체에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으나 읽고 보면서 좀 힘들었던 독서가 되어버려 잘 모르겠더군요.
책 뒷면에 ‘고요한 세계 안쪽에서부터 새어나오는 낯설고도 선명한 목소리‘라는 게 딱 들어맞는 표현이기는 하나 너무나도 선명한 목소리여서 낯설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위수정작가님, 낯설었지만 분명한 자기만의 세계를 지닌 여성들의 목소리들을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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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마음산책 짧은 소설
조해진 지음, 곽지선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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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에 출간되서 읽어보려고 구매했으나 읽지 않았던 마음산책의 열세 번째 짧은 소설이자 조해진작가님의 짧은 소설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를 6개월이 지난 후에야 읽게 되었는 데요.
그동안 조해진작가님이 다루지 않으셨던 SF장르의 짧은 단편 7편과 등단 초기에 발표하셨으나 소설집 어디에도 실지 않으셨던 (CLOSED)를 만나볼 수 있어서 색달랐고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지만서도 총 8편이 실린 것을 보면 한 권의 소설집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로 나란히 실린 (X-이경)과 (X-현석)은 어떠한 정보가 없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X와 지구가 충돌할 예정인 상황에서 연인관계였던 ‘이경‘과 ‘현석‘의 시점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D-DAY를 맞이하는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새들이 무수히 떨어져 죽어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와중에 의문의 상자를 전달해야 하는 업무를 받은 민영(상자), ‘나는 쓰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귀향), 물물교환을 하며 식량을 구하는 연인들의 (가장 큰 행복), 나이가 많은 엘리와 병에 걸린 사무엘을 두고 홀로 지구로 돌아가는 귀환선을 타는 은정씨(귀환), 피폭되어버린 포항에서 승재라는 아이를 만나는 수호씨(종언), 가장 마지막에 실렸고 아마도 가장 먼저 쓰여서 그런지 익숙했던 철옹성의 인공지능 로봇에게 자그마한 균열이 생기는 (CLOSED)까지 조해진작가님의 작품들에서 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들을 이번에 몸소 느끼게 되어 의미있었습니다.
조해진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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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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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발표했던 두번째 소설집 「소년 7의 고백」에 실렸던 단편 (여진)을 장편화하여 새롭게 신작을 내신 안보윤작가님의 새 장편소설의 제목 또한 「여진」입니다.
1부 ‘기억‘에서도 실려있는 단편 (여진)은 층간소음으로 인해 윗층 노부부를 살해하는 남자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 자체를 부인하는 데, 장편화된「여진」은 이 사건으로 인해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한 시절이 끝나버린 소년과 소년의 누나. 누나는 접근성이 좋은 오피스텔을 구하여 혼자 살고 있고 소년은 소리가 고스란히 건물 전체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허름한 원룸에서 직장을 다니지 않고 일자리를 구하다가도 금방 도망쳐버리며 살았는 데 그런 소년에게 치아가 6개밖에 없는 늙고 주둥이가 긴 개 한마리를 잠시 보살펴달라는 남자의 제안에 찝찝하기도 했지만 비교적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일에 비해 보수가 높아서 승낙하게 되었지만 약속했던 기한이 다가와도 꾸준히 통장에 돈이 입금될 뿐 연락조차 하지 않는 그 남자와 소년이 실은 서로를 처음 본 것 그때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내용인 데 표지가 인상깊어서 계속 읽어보니 2부에서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담배를 피웠다가 꽁초를 화단에서 가져왔을 것이 분명한 흙을 넣고 꼬막 껍데기로 장식한 깡통에다 꽂아놓고 구름이 흘러가고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며 방금 삶아 온 것이 분명한 달걀의 껍질을 까주고 담요를 덮어주었던, 용서를 빌며 용서를 구걸하러 가는 것이 일상이었던 소년에게 ‘넌 너무 어리잖니.‘라며 얘기해주었던 불행했지만 비교적 버틸 수 있었던 한 시절의 모습을 표지에서 발견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실제로도 내 몸 안에 가득한 슬픔을 전부 가져가주는 것이 아니라 옮겨갈 수 있다면 그 대신에 나의 어떠한 것이 마술처럼 사라지는 대가를 치뤄야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대가를 치루고 나의 슬픔을 없애달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보윤작가님, 좋은 글을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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