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ㅣ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평점 :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아니 에르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행되는 노화의 끝이 치매라는 건 인간사의 아이러니입니다. 그전까지 앞을 향해 무섭게 달리던 인간의 시간이 역행하며 뒤로 달리게 되니까요. 아이에서 청년이 되어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는 시간의 끝에 다시 노인이 아이로 돌아가니까요. 그래서 치매를 보고, 함께하는 가족들은 그 역행 속에서 타들어가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이 아이가 되어 통제도 안 되고, 무력함 속에서 가족들의 도움만으로도 부족한 부분이 존재하니까요.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의 아니 에르노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왕성한 생명력과 활력, 근면성실함으로 저자인 아니 에르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주도했던 어머니가 치매를 겪고, 그 과정을 바라본 걸 일기 형식으로 써내려간 이 책에는 저자의 고통과 무기력함, 죄책감이 가득합니다. 치매를 겪고 아이처럼 변한 어머니, 기억을 잃어가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이 사라져가는 어머니,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보고 똥을 누고 처리하지도 못하는 어머니, 근력이 약해져 걷지 못하게 되다 제대로 먹기도 힘겨워하는 어머니, 여성으로서의 모든 삶의 생활습관이 사라져서 아무때나 노출을 행하는 어머니, 그 모든 치매걸린 어머니의 모습 앞에서, 저자는 어머니의 병을 회복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과 병원에 어머니를 맡겨두고 가끔씩 찾아갈 수밖에 없는 죄책감, 고통을 느낍니다.
저자를 찾아오는 무력감, 죄책감, 고통은 저자가 자신을 어머니와 동일시하기에 더욱 더 커져만 갑니다. 치매라는 병의 습격으로 약화된 어머니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의 노화된 모습을 보는 저자는 여성으로서, 또다른 자식들의 어머니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과 어머니를 동일시하며 언젠가는 자신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게 됩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죽음과의 마주침으로 이어집니다. 치매 때문에 약화되어 세상을 떠난 어머니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는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으로서 자기에게 닥칠 죽음을 추체험하고, 삶의 필연적 결말로서의 죽음을 자기의 삶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저자는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고통 때문에 자신이 쓴 글을 책으로 출간할 수 없다던 저자가 결국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승화하여 책을 내었으니까요. 그것은 현실에서는 세상의 흙으로 돌아간 어머니를 글 속 존재로서 불멸화시킨 것과 이어집니다. 이 문학적인 불멸화는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또다른 독서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로 자신을 격려하던 어머니처럼, 저자도 어머니의 치매와 함께한 어두운 밤의 경험을 떠나지 않은 채, 저자만의 특수한 경험이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의 가능성으로 책을 읽는 독자에게 새로운 삶의 경험을 열어주는 식으로. 그렇게 책을 읽는 독자인 저는, 아니 우리는, 저마다 자신만의 '밤을 떠나지 않는' 이가 되어 아니 에르노와 치매와의 만남을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망각의 삶에서 '치매'라는 경험을 '문학적 기억'의 형태로 품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