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퀴리.. 그녀의 일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이 충혈되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노벨상을 두번이나 수상한 유일한 여성에..
세계의 모든 과학자의 아이콘이고..
자녀까지도 노벨상을 받게한..
죽어서는 판테온에 안장된 현재까지도 유일한 여성이었건만..
도대체 누구도 부럽지않은 영광으로 가득찬 일생일 수도 있겠지만..
아 !! 생각만으로도 괴로운,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었다.
러시아에 점령당한 폴란드에서 태어나.. ( 이것때문인지도 모른다..내가 그녀의 괴로움을 공감한느 것이) , 일생동안 폴란드 조국을 생각해왔던..
동생의 수업료를 벌기위해 멸시를 받으면서 3년동안이나 부잣집 도련임의 가정교사로 자신의 공부를 포기하고 지내야 했으며.. 엄청난 재능과 뛰어난 지성에도 불구하고 지체가 낮다는 이유로 첫사랑에서 실패하였고..
인생의 대부분을 오로지 공부와 연구를 위하여.. 얼음장 같은 숙소와 연구실에서 에서 빵조각 하나로 연명해야 했고..
실험실과 실험 재료을 구하기 위하여.. 남자 과학자의 눈치와 멸시를 감내해야 했으며..
1차 세계 대전에서는이동식 X-ray 트럭을 몰고 전쟁터을 돌아다녔고.
까다로운 방사능 실험기기는 오로지 상상할 수없는 인내력으로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면서 , 오로지 그녀 만이 그 실험기계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한다.
남편 피에르와 공동 수상한 첫번째 노벨상은 피에르가 마리를 포함 시키지 않으면 노밸상을 받지 않겠다고 우겨서야. 간신히 이름을 올릴 수있었으며.. 사실상은 마리 퀴리의 업적이 대부분이 었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밸상을 받고나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은 .. 그많은 멸시와 따돌림을 평생 감내해야 했으며.. 참정권도 없는 시대였으니..오죽 하겠는가..
첫 노벨상을 받았을때 영광은 안중에도 없고 상금으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안도감을 받았을 정도로 평생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고..
거의 평생을 궁핍한 과학자로 3 딸과함께 외롭고 고집스러운 삶을 살다가..
결국은 66세의 나이로.. 너무 많은 방사선 물질에 노출되어 발생한 재생 불량성 빈혈로 사망할때까지..
한번도 행복을 느껴보지 못한 일생 ( 짦게 끊나버린 남편 피에르와의 만남 만을 제외하면)
그래서 어떤한 사진에도 한번도 웃거나 편안한 모습은 없었던..
오로지 고집스럽고.. 그로테스크한 표정의 그녀..
아.. 자신의 삶이 고통스럽다고 불평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마리 퀴리의 삶을 안다면..
여성이라면 누구가 읽어야할..
아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려면....
그녀은 누구를 위하여 그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가?
인생에서 두려워할 것은 없다. 충분히 이해한다면, 두려워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리 퀴리
Nothing in life is to be feared, it is only to be understood. Now is the time to understand more, so that we may fear less. Marie Cur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