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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제임스 르 파누 지음, 강병철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서평 :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원래 제목 ( The Rise and Fall of Modern Medicine)은 유명한 “로마제국 쇠망사” (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를 연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번역서의 제목도 매력적이지만, 저자의 의도는
단순히 의학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 을 넘어서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의학이 마냥 발전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있다.
저자, James Le Panu은
이 책에서 현대 의학도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흥망성쇠를 겪고있으며, 1980년대를 기점으로 쇠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대의학의 대부분의
놀라운 성공, 이를 테면, 항생제 발견, 심장 수술, 인공 관절 등은 대부분 1980년 이전에 우연을 발판으로 한 의학자들의 노력으로 얻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성공은 계속되지 못하였고, 1980년 이후에는 사실상 별 특별히 놀라운 의학적인 발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성공과 발전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보니, 사회이론이나 역학
등을 이용하여 조그만 변화를 마치 엄청난 변화인것처럼 미화시키거나, 실제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유전학적 치료 등을 사탕발림으로 포장하여, 혹은 대중매체를 활용한 선전으로, 마치 새로운 신약이
엄청난 효과를 같는 것처럼 믿도록 대중을 세뇌하여, 필요치도 않은 약을 많은 사람에게 투여하거나 ( 예를 들어, 스타틴 등) , 병의
위험성을 과장하고 (고혈압, 심장병 암 등 ) 의학 효과를 부풀리고, 건강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과잉치료, 과잉진단) 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일으키고있다 (the Fall)는 주장이다.
이러한 현대의학의 쇠퇴로 인하여,
4개의 모순된 현상 (Four Paradoxes) 이 나타났는데, 첫째는, 현대의학을 시술하는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의 자긍심이 오히려
낮아졌고, 둘째는,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니 오히려 건강에 대한 염려와 걱정이 과거보다 더욱 높다는 것이다. 셋째는, 현대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비주류 의학 말하자면 동종 치료 등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과 의존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네째로는 결국에는 환자들이 혹은 국가가 지출해야
할 의료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만 가고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현대의학이 정말로 발전하였다면, 의료인은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고, 현대인은 건강에 대한 염려를
버리고, 행복하게 살수 있게 되며, 당연히 비과학적인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야 하며, 병을 쉽게 치료하여 의료 비용도 줄어들어야 하는 데, 현실은 완전히 반대로 가고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의료가 발전하면 당연히 건강 걱정없이 편안하게 잘살아야 하는데, 돈은 돈대로 쓰고,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가는 세상이 온 이유는 무엇인가?
책에서 인용한 의학 역사 이론가인 “로이 포터”의 주장을 보자.
“아이러니컬 한 것은 서구사회가 건강할수록 점점 더 의학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의료인 각종
매체, 제약회사의 강요에 가까운 광고에 의하여...... 치료
가능한 질병의 진단이 확대된다. 공포감이 조성되면 혼란에 빠져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각종 검사에 매달린다…… 의료기관들이 정상적인 상태를 의료 화하고…… 잠재적 위험을 질병으로 전환시키고.. 사소한 문제를 복잡하게 치료하려는
욕구를 느끼게……의학의 미래가 전혀 즐겁지 않은 삶을 약간 연장시키는데 불과하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운명인가!” (493 p)
물론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충분히 반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사들의 문제는 의료가 세분해가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고, 건강염려증은
건강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이고, 대체의학의 관심은 아직 주류 의료에 비하면 약소할 뿐이다. 더불어 앞으로도 사회 이론, 혹은 역학연구 (epidemiology), 유전학에 의하여 획기적인
의학의 발전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을 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가, 즉 고통에 처한 환자를 돕는다는 이젠 과거의 숭고한 사명을 넘어서, 이제는, 돈을 벌어야 하는, 혹은 벌지 않으면 쓰러져서 붕괴할 수밖에 없는, 비지니스로, 의료 산업으로 변해버린 상황은 명확한 사실이다.
의사들의 자긍심이
낮다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현상과 더 관계가 깊을 듯하다. 의사는 허가 받은 도둑놈으로 이미 찍힌 지
오래 일 뿐 아니라, 빈 말로라도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이라 든 지, 혹은
병자를 보살 핀다고 말하는 것 조차도 입에 담기조차 쑥스럽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환자를 위해서 일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더 이상
환자의 생명과 관계되는 의료인, 내과 외과 등의 소위 메이저 과목은 의과대학 학생의 선망 과목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서 바람직한 의사는 땀 흘리고 고뇌하는 의사가 아니라, “유능한
의사”, 말하자면 환자 치료로 고민하지 않고, 편안하고, 유명하고 돈도 잘 버는 의사일 것이다.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라기보다는, 이미 법률적인 관계, 언제라도
소송으로 번질 수 있는 관계, 혹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 혹은, 환자 측에서는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른 유능한 의사나 대체의학을 찾아가야 하는 관계로 변하였다.
이미 알려진
혹은 특허가 만료된 기존의 약품을 조금 변형시켜서, 대규모의 임상시험과 과학적인 통계 기법을 적절히
적용하여, 마치 기적의 약으로 믿게 하여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투여하는 것이 소위 신약 개발의 전형적인
형태가 되었다.
“연구 최고
책임자인 의사가 제약회사의 명을 받들어 1년에 2개월씩 자리를
비우고 미국 아시아로 여행을 마당에 이러한 신약들이 선전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있겠는가? “ (501p)
“기업과의
밀월 관계가 이런 수준이면 연구와 견해의 독립성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봐야 한다 “ (501 p)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현상은 당연히 의사들의 잘못은 전혀 아니다. 원래
의료는 단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 듯, 아픈 사람을 돌보아 주는 행위였을 뿐이다. 그런 의료가 이젠 사회의 변화에 따라, 특히 과학이라는 포장재로
멋지게 포장하여, 세계 경제를 떠받치는 거대한 의료 산업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의사 간호사는 이 과정에서, 생명을 구하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숭고한
위치에서, 거대 산업의 말단 사원이 되었으니, 무슨 자존심이
남아있을 것인가.
현대 의료는
끊 없는 발전과 진보에 대한 환상과 열망, “기적의 치료법” 를
만들어 내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아 무서운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 비유한다면, 안정장치가 부실한
초고속 열차일 수도 있다. 속도는 빨라지고 편안해 졌으나, 따라서
사고의 위험도 커지고, 사고가 났을 때 더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사고가
발생하면 그 사상자는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사회전체에 광범위한 피해를 유발할 수 밖에
없다.
1990년대 열광적인
갈채를 받으며 등장한 유방암의 고단위 항암치료는 수 만명의 슬픈 사연과 사상자를 남기고 사라졌으며, 혁신적인
비만 치료제로 각광 받던 신약은 암 유발한다는 것이 뒤늦게 발견되어 십년 만에 판매가 중단되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소염진통제나, 위장약
등이 기적의 치료제로 미디어의 각광을 받다가 뒤늦게 발견된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상자와 소송 만을 남긴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미국 TV 화면에 전화번호와 함께,
이런저런 약을 먹은 사람들은 연락하면 큰돈을 벌 기회가 생긴다는 의료 소송 변호사의 광고를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 의료로 돌아가자는 저자의 주장은,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을 떠나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윌리엄 오슬러 경이 그토록 설득력 있게 환기시켰던 전통 속으로
의학을 돌려보낼 때가 되었다. 그래야 비로소 의사와 환자 사이의 친밀한 인간적 관계와 판단력과 건전한
상식이라는 영원한 가치가 작금의 천박한 동요 상태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둘 것이다. “(502p)
대단히 감동적인 수사이지만, 그다지
가능한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되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너무 깊숙이 비즈니스의 세계로 진입해버렸다. 이제 이 현대 의학이라는 고속 열차에 올라탄 승객은 신체적, 경제적, 정신적, 안전을
스스로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모든 문제는 이 책에서 지적 한대로 과학이 의학을 소위 “과학적” 이라는 테두리로 가두어 버린 것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인간
개인의 고통을 집단 화하고, 이를 숫자와 변환시켜 통계로 포장하여, 거대한
의료 산업의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현재 의학의
창시자인 “윌리엄 오슬러”는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겼다.
“의사의
주된 임무는 대중이 약을 먹지 않도록 교육 시키는 것이다. (One of the first duties of the
physician is to educate the masses not to take medicine.) “
아쉽게도 그런 의사는, 산업화된
현대의학에서는 이미 멸종되어 버린 듯하다.
새로운 기적적인 치료법에 대한 찬사만이 각광받는 산업 의료의 거대한 정글 속에서, 이
책이 많이 널리 읽혀 지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훌륭한 책을 내어준 출판사와 번역자에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