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는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있는 가?
낭포성 섬유증을 앓고있는 "발렌티나 마우레이"라는 14세 칠레 소녀가 대통령에게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존엄하게 마감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안락사를 요청했다는 내용이 메스컴에 보되고있다. 낭포성 섬유증은 선천성 질환으로 치료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심각한 호흡장애를 일으킨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한창 즐겁기만 해야할 14세 소녀가 자신의 안락사를 청원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까?
그녀가 의사들의 전문적인 도움으로 편안하게죽을 수만 있다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야 하는 그녀뿐 아니라, 이를지켜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고통도 해결되는 것일까 ?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일까? 그녀가 편안히 죽은 것으로 남은 사람들은 다시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복하게 살게되는 것일까 ? 또 고통스러운 삶을 호소하는 사람이 다시 나타나면, 다시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안락사를 시켜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행복하게 살 수있는 것일까?
모든 것이 이토록 간단히 해결된다면,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행, 각 지역의 분쟁이니나, 기아, 갈등도 쉽게 해결 할 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모와 자식간의 간단한 갈등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것이 현실이고, 인생이다. 가끔 찾아오는 두통과 소화불량도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총과 약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잇는 문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Michelle Bachelet, right, poses for a selfie with Valentina Maureira on Saturday. Photograph: uncredit/AP
안락사는 절대로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없다.
굳이 부처나 성인의 말씀을 인용치 않더라도, 인간은 태어나면서 여러가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고통은 이 소녀의 경우처럼 선천적인 질병일 수도 있고, 우울증으로 인한 고통일 수도 있고, 스티븐 호킹 처럼 신체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고통일 수도 있다. 사업에 실패하여 받는 경제적 고통, 친한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인한 고통 , 인간과의 갈등에서오는 감정적인 고통, ..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해아릴 수없다. 어쩌면 누구나 어떤 시기에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든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는 치료가 필요하고, 치료약이 없으며, 고통을 줄여주는 보살핌과 위로가 필요하다. 경제적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는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물이 필요하고,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을 주어야 한다. 감정적인 고통이라면, 음악이나 예술, 친구가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고통을 받고있으면, 그에 따른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돕고 서로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할 수밖에 없다.
발렌티나 마우레이에게 필요한 것은 안락사가 아니다. 당연히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더불어 감정적인 도움이 더욱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때때로는 의학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반 수면 상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것 자체가 이미 치명적인 죽음을 피할 수없는 불치병이고, 고통스러운 존재이다. 불치의 병이고 삶이 고통스럽다고해서 안락사를 시켜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현대 사회에서 안락사가 논의되는 이유는, 이들 고통에 처한 사람을을 돕지 않기 위한 방편이 될뿐이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안락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돈과 시간과 재산을 동원하여 도우려는 의지와 행동이 필요할 뿐이다.
안락사는 이모든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발상일 뿐 어떤 해결책도 될 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