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의료와 과잉진단 과잉치료
21세기 현대 의학은 “과잉진단과 과잉 치료”가 만든 “의료천국”의 시대입니다.
흔히 지난 20세기 후반에 현대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의학 자체의 발전이라고 보기보다는 의학이 과학의 발달 특히 컴퓨터 과학의 발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20연 년 간 급속한 컴퓨터 관련 산업의 발달은 의학 중에서도 영상 의학 장비, 특히 초음파, CT, MRI, PET-CT 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불과 10년 전에는 일반적으로 1cm 이내의 크기의 종양은 발견하지 어렵다는 것이 통설이었지만, 최근에는 불과 1mm 크기의 암도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발달로 인하여 현대의학에서 사용하는 최첨단의 의학 장비를 충분히 이용한다면, 21세기 의료에서는 원만큼 건강한 사람이라도, 1-2mm 정도 크기의 암은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더불어 모든 질환에서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강조되면서 고혈압의 기준, 신장 질환, 호흡기 질환, 정신질환, 관절 진환 등 거의 모든 질병의 진단 기준이 점차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만 먹는다면, 건강한 사람에게도 암을 비롯하여 심장, 신장, 관절, 내장 기관, 정신질환 중에서 몇 가지 심각한 진단명을 얼마든지 붙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현대 의료에서는 이미 질병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찾기 나름”이거나, “붙이기 나름”이 되었습니다. 지난 10년간 급속히 증가 암, 관절염, 신장 질환 등, 모든 질병 통계에서 대부분의 질병 발생이 의학적인 상식을 뛰어 넘을 정도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암과 심장병, 대사질환, 정신 질환 등 모든 병의 발생률이 엄청나게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평균적인 건강상태와 평균 수명은 증가하는 모순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난 수 십 년간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 특별히 발전한 것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물론 매년 새로운 치료법이 수 없이 많이 쏟아지고는 있지만, 각종 세계 의학계에서 보고된 대부분의 임상연구 결과를 보면 질병의 치료율은 높아졌지만, 치료 대상이 조기 질환이거나, 경미한 질환을 대상을 치료함으로써 발생하는 일종의 착시 효과일 뿐이고, 치료받은 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는 거의 미미하거나 아예 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지난 10년간 세계 의학계에서는 소위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3차 예방, 특히 “조기 진단, 조기치료”가 과연 인간의 건강을 지키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가에 대하여 격렬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정상적인 건강상태로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검진을 통하여 발생 가능한 질병을 찾아내어 미리 치료를 시작하여, 조기 암, 조기 고혈압, 조기 당뇨 등의 질병을 붙이고 치료를 하는 소위 “Medicalization”이 과연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거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인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2010년 미국 암연구 협회지에 Dr. Gilbert Welch 교수의 “Overdiagnosis in Cancer” 논문이 실린 이래로 세계 의학계는 “과잉진단과 과잉치료”에 대하여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의학 학술지인 British Medical Journal, Annals of Internal Medicine,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등의 의학 단체에서는 더 적은 치료(”Less is More“), 혹은 과도한 치료에 대한 반성(“Too Much Medicine”, “Choosing Wisely” )등의 캠페인을 통하여 더 많은 검사와 더 많은 치료보다는 의학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의학의 진정한 발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2013년 Dartmouth 대학의 연구자와 유럽의 전문가를 주축으로 최초의 과잉진단예방학회 “Preventing Overdiagnosis” 가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더불어 미국 질병예방위원회(USTSPF)의 주도로 국가적으로 PSA 전립선암 검진을 폐지하였고, 유방 촬영술(Mammography)를 이용한 유방암 검진은 제한적으로 축소하였습니다.
유럽에서는 영국 의학협회지 (BMJ) 여성 편집장인 Fiona Godlee와 의사협회회장(College of GP) 인 Iona Heath는 자신이 여성임에도 국가의 유방암 검진을 공개적으로 거부한다는 의견을 발표하였고, 스위스에서는 국가적으로 유방암 검진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Iona Heath는 혈압 100/150 이하의 약한 고혈압(Mild Hypertension) 은 고혈압 치료제를 처방하는 것이 오히려 해롭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고, 이는 권위 있는 코크란 리뷰 (Cochran Review)의 메타 분석을 통해서도 입증되었습니다.
세계 의학계는 암, 고혈압, 당뇨 등 주요 만성 질환을 비롯한 모든 의학의 영역에서 “과잉진단과 과잉치료”에 대하여 전에 없던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많은 의학자들은 과거 50여년 간 의학계를 지배하던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의 패러다임은 수명을 다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21세기에서 발생한 “과잉진단과 과잉치료”의 상황은 의사나, 환자, 누구 하나의 잘못은 아닙니다. 첨단 진단 장치의 발달, 더 많은 검사와 치료를 하지 않으면 의료기관의 생존이 불가능한 행위 별 수가(Fee for service) 에 기초한 의료 수가 제도, 누구나 먼저 전문의의 진찰만을 고집하며 다다익선을 부추기는 의료 제도, 건강과 장수에 대한 과도한 욕구와 이를 이용하여 의료 과신을 부추기는 신문과 방송, 장기적인 국가 의료 정책의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합작하여 만들어낸 끔찍한 “의료 천국”의 실상입니다.
이제 80세 고령의 어르신까지도 매일 종류를 알 수 없는 십 수 알의 약을 복용하고, 한 달에도 여러 차례 X-ray, CT를 비롯한 각종 피검사를 반복하여 받거나, 여러 과의 전문의를 매번 방문하여 반복하여 처방을 받고, 암을 비롯한 모든 질병의 발생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세계에서도 유래 없는 “과잉진단의 과잉 치료”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수년 내에 거의 모든 국민은 암, 고혈압, 대사질환, 정신질환 등의 환자가 되어 각종 검사와 치료를 반복적으로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될 것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21세기의 의료는 “과잉진단과 과잉치료”을 빼놓고 논의할 수 없습니다. 과잉진단과 과잉치료를 고려하지 않은 질병 발생률 통계는 의미 없는 숫자놀음일 뿐이고, 질병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 나름인 상황에서 기존의 수가 체계를 고수한다면 의료 재정의 파탄은 불 보듯 명확할 뿐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실로 끝을 알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의료비를 사회가 감당하여야 함은 물론, “환자를 위한 의료”에서 “의료를 위한 환자”의 시대로 바뀔 것입니다. 의료기관은 환자의 전체적인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가능한 더 많은 검사를 실시하고, 더 많은 약을 처방하고, 더 많은 수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환자와 의사 간호사의 관계는 냉장고나 티브이를 파는 판매원과 소비자의 관계와 완전히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환자 개개인의 희망과 감정, 가치관, 인간 생명의 유한성, 환자를 인격체로 보는 인간 존중은 철저히 무시되고, 오로지 검사 소견과 증상에 따라서, 검사와 치료를 기계적으로 할 뿐 인 대량 생산의 기계적 의료만 남을 것입니다. 의료기관은 이제 병을 검사하고 치료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대량 의료 생산 공장”으로 급속히 변화할 것입니다. 이러한 대량 생산의 기계적 의료를 거부하는 의료기관이나 의사는 급속히 도태되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또 다른 의미의 “의료 천국”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공장식 기계적 의료”로 이루어진 “의료천국”의 가장 큰 희생자는 환자입니다. 환자는 자신이 크고 화려한 의료기관에서 최첨단 치료기계로 전문가의 치료를 받는다는 안도감을 갖게 되겠지만, 사실은 “의료를 위한 환자”임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료를 위하여” 검사와 약과 수술을 받고, 그로 인한 부작용으로 또 다른 검사를 받고 약과 수술을 받아야 하는 “의료 컨베이어 벨트”위에 자신의 몸이 송두리째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의료인은 환자의 고통을 충분히 시간을 갖고 들어주고, 위로하고, 최선의 치료를 하거나, 아니면 굳이 필요 없는 치료를 하지 않도록 환자를 보호하기보다는, 컨베이어에 위의 로봇 팔처럼 무관심하게 처방을 쓰고, 검사를 하고, 수술하는 비인간적인 업무를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이러한 “의료 천국”은 어느 정도는 이미 현실화 되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First Do Not Harm” 즉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는 격언은 가장 중요한 의학의 원칙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의학교과서에서도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소중한 덕목으로 쓰여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병에 시달리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나이가 먹어서 생기는 주름살과, 가족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까지도 현대의학에서는 질병으로 간주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사가 내리는 최고 경지의 기술은 최신 약이나 로봇 수술이 아니라,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 제도는 가능한 많이 검사하고 많은 약을 처방하고 많은 수술을 해야만 의료인과 의료기관이 생존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불필요한 약을 처방하지 않는 의사, 환자에게 운동하라고 잔소리 하는 의사, 담배와 술을 끊으라고 한 시간 동안 잔소리 하는 의사는 이제 모두 사실상 멸종되었습니다. 그 대신 하루에도 백 여 명의 환자에게 처방을 내릴 수 있고, 한 달에도 수백 건의 수술을 하는 세계 최고(?) 의 로봇을 닮은 기계 같은 의사가 최고의 의사, 명의로 추앙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현대 의학은 달리 말하자면, 시속 300 킬로로 달리는 경주용 자동차가 되었습니다. 엄청난 스피드로 달릴 수 있으나, 불행히도 사고가 나면 많은 사람을 건강과 생명을 해칠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경주용 자동차에게 최고 성능의 안전벨트, 브레이크, 에어백 등 안전장치가 필요하듯, 과잉진단과 과잉치료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행정적, 윤리적 장치가 없는 현대의학은 오히려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현대의학에서 “ 과잉진단과 과잉치료”의 방지를 위하여 아래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1. 의료정책. 수가체계, 의료진 교육과 수련 등 모든 방향에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과잉진단과 과잉치료를 적절하게 제어하여 더 많은 의료보다는 “적정한 최소한의 의료”를 추구하는 정책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2. 검강 검진, 암 검진 등 대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검진 프로그램은 충분한 연구를 통하여 건강증진과 수명연장 효과가 명확히 입증된 것으로 제한하여야 한다.
3. 건강을 지키는 것은 더 많은 약이나 수술이 아니며, 의료의 소비는 다다익선이 아니라. 오히려 최소한의 의료와 건강한 생활 습관임을 의료인과 국민들에게 교육하여야 한다.
과잉진단의 대표적인 사례들로 지목된 질병
유방암 : 유방촬영술에 의한 유방암검진 환자에서 발견된 암의 약 1/3이 과잉진단이다.
전립선 암 : PSA로 진단된 전립선 암의 약 60% 이상이 과잉진단으로 지목됨.
갑상선 암 : 갑상선 초음파의 사용으로 급격히 증가함.
폐암 : 검진으로 밝혀진 25% 이상의 폐암은 과잉진단이다.
기관지 천식 : 캐나다의 연구에 의하면 천식으로 진단된 환자 중 30%는 과잉진단이며, 60%는 약물치료가 필요치 않다.
폐 색전증: 폐 CT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폐 색전증은 치료가 필요치 않음
고혈압 : 메타 분석에서 대부분의 환자에서 과잉진단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됨
고 콜레스테롤 혈증 : 정상이거나 정상에 가까운 콜레스테롤 환자의 80%가 불필요하게 치료를 받고 있음.
만성 신질환 : 특히 고령자에서 불필요하게 과잉진단이 이루어지고 있다.
골다공증: 지나치게 많은 경도의 질환을 치료하여 득보다 해가 크다.
임신 성 당뇨: 5명의 산모 중 1명이 진단되는 정도로 과잉진단이 많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 이상 : 학기의 후반에 태어난 아이들이 진단될 확률이 학기 초반에 생인 학생들보다 30%가 높다. 즉 또래에 비하여 생일이 늦은 남자아이가 진단을 받는다.
(2012년 Moynihan 등이 BMJ에 발표한
“ Preventing overdiagnosis: how to stop harming the healthy”에서 인용함.) |
6월 27일 건강보장 정책 세미나 발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