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가 의사 혹은 병원을 이용하는 법에 대하여 상당한 오해가 있다.

 

사람들이 암 치료는 의사의 권유를 따르는 게 좋다.” 라든가..

혹은 의사가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치료해 주겠지.. ”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그런대로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아니 엄청나게 바뀌었다.

 

전화 걸려고 공중전화를 찾는기 힘들어지고,

모두들 핸드폰을 사용하는 시대가 된 것처럼..

 

시대 자체가 변해버린 것이다.

없어진 공중전화를 찾아 시내를 돌아 다녀도 헛수고 일 뿐이다.

 

겨울에는 외투와 장갑을 써야 춥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한 반팔차림으로 나서야 고생이 덜하듯이 ..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의사 사용법을 알아두어 야 한다.

 

과거에는 의사가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이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최선의 치료를 해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온정주의 (Paternalism) 환자와 의사 관계라고 말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가족을 대하듯이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하여 환자의 동의를 얻어서 치료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던 그야말로 그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30 년 전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아직도 이러한 의사를 기대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쉽게도 이제는 그런 의사는 멸종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하면..

의료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변화를 꼽아본다면..

 

첫째 : 치료법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 졌다.

 

같은 암이라고 해도 사용하는 항암제가 종류가 많기도 하거니와, 투여하는 방법도 차이가 있다. 수술법이라고 해도 로봇 수술이니, 내시경 수술 이니, 가지각색이다. 물론 방사선 치료의 종류와 선택 가지 수 도 많다. 치료 전략도 다르고, 의사의 경험과 선호하는 치료법도 다르다. 그래도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상 여러 가지 치료법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특별히 좋은 치료법 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치료법 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어서 치료법의 우월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 더 이상 환자가 치료비를 지불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치료비는 정부에서 나온다. 물론 국민이 의료 보험료를 지불한 것이니, 국민이 내는 것은 사실이나, 의료비를 지불하는 곳은 정부가 훨씬 크다. (현재 암 치료비의 95%가 국민 보험 부담이다.) 따라서 의사, 혹은 의료 기관은 당연히 환자보다도 의료보험공단, 즉 돈을 실제로 지불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이러한 의료 보험 정책을 만든 사람은 의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국민도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하민국 정부이고, 가장 유리한 쪽도 당연하게도 정부이다. 이제 싫든 좋든 의사이든 환자이든, 정부의 정책과 방침과 규제에 따라야 한다. 이는 곧, 의사와 환자들이 자기 생각대로 치료하거나 치료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국가 전체로는 이득일 수 있으나, 환자 개인에게는 달리 생각해야할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셋째,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가 변했다.

 

과거에는 환자는 당연히 집 근처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집근처는 아니더라도 같은 시내의 병원, 혹은 같은 도내의 병원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제주도에서 출발하는 새벽 비행기에는 언제나 환자들로 만원이다. 과거에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동일한 도시의 거주자로써 동질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비행기와 기차, 승용차를 이용하여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필수적으로 환자의 다양성, 즉 기대치, 치료 목적, 거주지 역, 의사에 대한 신뢰도 등에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다양성을 내포한다. 이제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같은 사투리를 쓰고,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서, 얼굴도 가끔 볼 수 있는 , 혹은 두세 다리 건너면 알만한 그런 사이가 아니다. 이젠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생전 처음 보는, 이질적이고, 대부분은 법적인 관계가 되었다.

 

이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게 힘든 상황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새로 바뀐 환경에서 적용되는 규칙은 공유 의사 결정 원칙” (Shared Decision Making) 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의사와 환자가 정보를 사이좋게 공유하고 (shared), 말하자면 의사가 알기쉽게 설명하여 환자가 이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 이를 토대로 서로 상의하여 치료방침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물론 뜻도 좋고, 방향도 그럴싸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환자가 의사의 말을 대부분 오해하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즉 의사는 새로운 개념, 공유의사 결정 원칙 (Shared decision making) 에 따라서, 의료 정보를 제공했을 뿐인데, 환자는 과거의 규칙 즉 온정주의 원칙에 따라서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권유했다고 착각 내지 오해하는 것이다.

 

의사가 이렇게 치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면 과거에는 그 의미는 이것이 최선이니 다른 생각 마세요!” 라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의미가 다르다.

 

이제는 이렇게 치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의 의미는 의사가 내 생각은 이렇다.” 는 뜻으로 말했을 뿐, 어떤 치료가 환자에게 더 적절한지는 이제 당사자인 환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상의해야할 상황을 의미한다.

 

즉 이제 당신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라는 뜻이다. 물론 정부의 눈치도 보고 시간도 바쁜 의사로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환자가 이해하여야 한다.

 

실제로는  환자는 자신의 상황에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의사가 권유하는 것으로 착각 혹은 오해하고 최선을 다해주세요, 잘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협상의 시작인데, 협상이 끝났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랜 동안 암 치료 과정에서 벌어지는 오해와 착각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는 환자에게 자세하고 내밀한 속마음, 치료에 대한 의지와 열망, 경제적인 상황, 가족 구성원과 관계를 포함하여, 기타 의사에게 하고 싶거나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모든 내용을 듣어야만, 적절한 치료법을 내놓고 상의할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는, 의사는 자신이 선호하는 치료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다른 치료법에 대하여 상세한 정보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환자가 외과의사에게 수술을 권유 받고, 내과의사에게 가면 약물 치료를 권유 받는 다면, 환자는 황당하다고 할 수 있으나, 마치 북한 핵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대응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실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이미 새로운 환경에 적응 했다.

그러니, 이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이다.

환자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어 불리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야 한다.

 

이제 와서,  아니 의사가 좋은 치료법을 정해주어야지.. 환자가 그걸 어떻게 알야?” 라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

 

첫째 : 병원을 잘 선택해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선택의 기준은 남에 의한 평이나 유명세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어야 한다. 만일 유명한 병원에 대한 집착이 큰 사람이면, 가장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병원에 가는 것이 맘이 편할 듯하다. 그러나 암 치료가 수개월 - 수년간 지속 된다는 점을 고려하고, 간병을 하는 가족의 수고도 고려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병원 시설과 전문가의 유무도 판단할 필요가 있다. 병원에 전환도 걸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판단의 기준은 자신이 원하는 병원이 되어야지, 남들이 추천하는 병원이 아니다. 다른 조건이 없다면,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급의 종합 병원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 될 듯하다.

 

둘째, 담당 의사, 대학 병원이라면 주치의 교수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택 기준은 역시 자신이 가장 기준이다. 유명한 의사에 대한 집착이 있다면 역시 말할 필요도 없다. 친절한 의사를 원한단면, 역시 만나보고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충분한 의견 교호나이 가능해야 한다. 유명한 의사보다는 자신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상담해 줄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

 

셋째, 의사와 충분한 인간적인 교감을 갖고, 자신의 능력 한도에서라도 나름대로 치료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의사와 관계를 좋게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몫이겠지만, 의사에게 자신의 말을 충분히 들려주는 것은 역시 환자의 몫이다. 의사나 환자나 예의는 물론 이거니와 인간적인 교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인간적인 교감이 없는 치료는 진정한 의미의 치료라고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의료진을 찾기 위해서는 귀찮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의사를 찾아서 의견을 들어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사회가 발달하고 의료가 발달 하면 모든 게 편해질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가 더 흔하다. 암 치료는 발달하고 있다지만, 암으로 죽는 사람의 수는 점차로 늘고 있다. 암 치료법은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도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아쉽게도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에 바탕을 둔 온정주의적의료 행위는 이제 계약과 설명을 중시하는 공유 의사 결정 원칙으로 대치되었다.

 

과거에 환자가 치료되지 못하면, 의사는 죄송하다고 사죄하고 환자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였다. 아쉽게도 이젠 우리는 그러한 신뢰를 더 이상 같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환자와 의사가 신뢰 없이도 치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사회는 신뢰를 잃어버렸지만, 각 개인 의사와 환자는 인간적인 교감을 통하여 서로가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암 치료는 서로에게 쓰라린 상처로 남을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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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 앎 을 보고 느낀


죽음에 대한 공포는 본능적인 것이다라든가

혹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 고 일반적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오랫동안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보아왔지만..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야 할 듯하다.

 

오랫동안 폐암을 않아오던 60세 여성은 암이 여러 군데로 전이되었고, 특히 대퇴골 (허벅지 뼈)이 전이로 인하여 골절되었다. 당연히 수술을 해야 했지만, 어차피 남은 날이 몆 일이 안되었음을 고려하여 수술하지 않고 통증만 조절하기로 하고 입원하였다.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알아차린 그녀는 회진을 온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한테는 굳이 안 오셔도 되니까, 가서 다른 환자를 돌보아 주세요!”

 

역시 오랫동안 폐암을 앓아오던 75세 남성은 뇌에 전이가 발견되자, 의료진이 뇌의 방사선 치료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상만을 약으로 조절하며 지냈으나 점차로 병세가 악화 되어 갔다. “왜 이렇게 쉽게 안 죽는 것이지?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평생을 건강하게 지내시던 89세 여성은 전신에 퍼진 폐암 진단을 받았고, 의료진은 환자의 나이를 고려하여 부작용이 적은 소위 타겟 항암제 치료를 권하였다. 환자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난 후에 마치 남의 말을 하듯 말씀하셨다. “그냥 가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대부분의 환자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죽음 자체보다도..

삶이 끝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혹은 안타까움 정도이고....

두려움은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에 이른 과정에서 느끼게 될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

물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가장이라면, 자신이 돌봐주어야 할 가족을 남기고 죽어야 하는 것에 대한 미련과 걱정도 상당할 것이다.

 

가족의 입장에서도 죽음 자체는 그다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환자가 격어야 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물론 가장의 죽음으로 인하여 남은 가족이 견디어야할 고통, 경제적이든 감정적이든 , 사회적인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히 있다. 그러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할 것이나.. 만일 그것이 없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다. 대부분의 공포는 죽음 자체가 아니라.. 살아야할 삶의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실상은 완전한 허구이다.

즉 원래는 있던 것이 아니며..더구나 본능적이거나, 근원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말하자면 학습된 것이다.

 

즉 말하자면, “사회로부터 배운 것이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적을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적다. 젊은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결코 철이 없거나, 무지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적인 학습의 결과로 죽음을 점점 두려워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하게 된다. 건강검진, 운동 , 각종 건강식품과 약에 의지하게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는 정작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즉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드리게 되며,.. 사실상 죽음 자체에서 느끼는 두려움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 단계이론은 대단한 상상력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사실상 우리가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대부분의 두려움은.... 죽음에 이른 과정에서 느끼는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생이 끝나난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과 남겨진 가족에 대한 경제적 걱정 때문이다.

 

따라서.. 고령의 환자나, 자신의 가족에 대한 경제적인 책임이 없는 경우에 죽음은 훨씬 편안하며.. 사실상 특별한 진통제도 필요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죽음은 불필요한 두려움이 제거되면.. 질병에 의한 경우라도, 암 등의 질병에 의한 것이라고 해도.. 비교적 커다란 고통 없이 맞이할 수 있다.

 

왜 사회는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학습 시키는 것일까?

 

당연한 목적이 있다.

 

먼저, 가장 크고도 광범위한 목적은 상술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무엇이든 팔 수 있다. 엄청나게 비싼 항암제나, 건강검진 패키지는 물론이고, 최고급 외제차나, 자외선을 막아주는 선글라스, 건강식품, 총 대포, 핵무기까지도.. 사실상 거의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상품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기반으로 판매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는 ...정치적인 목적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고분고분하게 만든다. 처음 보는 의사에게 가슴을 풀어 헤치는 여성을 다른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히틀러등 독재자의의 가장 중요한 전술이자.. 사실상 모든 정치가의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선거운동이다.

 

세 번째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종교적인 목적이다.

학술적으로 이미 연구된 사실이지만... 종교적 신앙이 깊은 사람일수록.. ..역설적이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결국 인간 수명이 더 늘어날수록.. 학습기간이 증가함에 따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져간다. 사회가 발달 할수록..특히 경제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커져만 간다. 정치, 사회, 종교가 복잡해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증대된다.

 

그러나..

사실상 원래부터 죽음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원래부터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아무런 실체가 없다.

삶의 끝이 있을 뿐, 죽음이란 단어 자체가 허상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궁극적으로 누구나 죽기 때문이다.

 

또 죽음을 늦추거나, 연기하기도 사실상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건강을 잘 관리하면,, 수술을 받으면.. 항암치료를 받으면.. 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의 확률적인 것 뿐 -- 사실상 운동을 열심히 하면 오래 산다는 것이 밝혀진 것도 아니다. 오래 사는 사람이 운동을 많이 하더라는 것 정도 일 뿐- 절대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건강관리로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 등 운동을 하다가.. 별일도 아닌 병으로 수술을 받다가.. 혹은 혈압약이나, 당뇨병 치료제의 합병증으로 심지어는 소화제에 의해서도.. 물론 항암치료를 받다가.... 예기치 않게 죽음을 갑작스레 맞이하는 것은 별로 드문 일 도 아니다.

 

누구나 죽는 것이고, 연기할 수도 없고, 사실상 선택권이 전혀 없는.. 더구나 실체조차도 없는 죽음을 누가 두려워 할 것인가


오랜 기간의 학습이 아니라면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일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 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 확실치는 않다.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좀 더 평화롭고, 좋은 사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미친 듯이 소비하지 않게 되어 경제가 붕괴하고..,..사람들이 겁 없이 날뛰어서 정치적 혼란이 와서 전쟁과 파괴가 더욱 극심해질 것인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평화롭게 덜 고통스럽게 삶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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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1-04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을 때는 죽음을 추상적으로 느끼게 되지만 나이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알아가게 되니 더 두려움이 커지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과연 이러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이 없습니다.

Ralph 2016-01-05 17:04   좋아요 0 | URL
˝충실한 삶을 살면 죽음은 두렵지 않다.˝ The fear of death follows fron the fear of life. A man who lives fully is prepared to die at any time. ˝

마크 트웨인을 말처럼, 오래 살든, 신나게 살든, 어쨋든 충분히 충실하게 산 분들은 삶에 대한 미련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 다 충실치 못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 더크고,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그냥 우리가 부지 불식간에 배운 것이 뿐, 실체는 없다 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살겠어요? 아니면 죽겠어요?” 급작스럽게 악화된 폐렴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조금 기운을 회복한 폐암 환자가 그래도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의사에게 묻는다. 엊그제만 해도 이제 자신이 없으니, 집으로 보내 달라, 집에서 죽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제 조금 기운을 차리고 보니 그래도 조금 더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시는 듯하다. 이미 폐암은 뇌에도 전이되어있으니, 완치는 이미 아니다. 뇌의 방사선 치료를 권하였으나,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셨다.

 

의사는 암 환자에게 병명이나, 예후, 즉 얼마나 살 것인지를 알려주어야 할 것인가 ? 아니면 적절하게 숨겨야 할 것인가? 소위 솔직하게 말하기 (Truth telling)”은 의학에서 오래된, 그리고 아직도 치열하게  진행 중인 논란 중의 하나이다.

 

저는 이제 죽게 되나요?”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진 20 대 초반의 암 환자가 의사에게 묻는다.

그렇단다. 오랫동안 치료를 맡아온 의사의 대답이다.

언제쯤 죽게 되나요?”

오늘이나 내일이 될 것 같구나

의사와 환자는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갑작스레 가까이 다가온 이별을 슬퍼하였다. 위 대화는 최근 미국 암학회지에 (Journal of Clinical Oncology) 에 소개된 의사와 환자의 너무나, 충격적으로 솔직한 대화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의사들이 환자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한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의사들도 약 1/3은 병명을 정확히 말하지 않으며, 특히 예후에 대해서는 대부분 말하기를 꺼려한다. 오죽하며 2011년 뉴욕주에서 의사는 암 환자에게 솔직하게 말하라는 법률이 만들어 졌는데, 완화의료 정보 공개 법안 (Palliative Care Information Act) 이다. 말기 암환자에게 의사는 예후 : 즉 얼마나 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옵션 : 호스피스 치료 등, 통증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정보 등을 상세히 설명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법안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의사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왜 의사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일까 ?

 

1970년도까지 만 해도 모든 의사는 당연히 암이라는 진단을 환자에게 말하지 않았다.

의사는 환자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며 (Paternalism), 필요하다면 거짓말도 당연히 해야 했다. 물론 누구도 그러한 의사의 태도를 비난하지 않았다. 환자들은 대략적인 상황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가족에게는 더 솔직하게 말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환자의 자기 결정권 (Patient’s Autonomy)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이제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에게 어떠한 거짓말도,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해서는 안 되다고 느끼는 분위기이다. 만약 환자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미국이라면, 당연히 환자가 변호사를 대리고 나타날 것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거짓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도 없다.

 

다만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이 무었인가 ?” ( What is the truth? )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의사 A : 현재 상황이 매우 좋지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가능한 모든 치료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좋은 항암제도 많으니, 어떻게든 써 보도록 하지요.

 

의사 B : 현재 상황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추가로 여러 가지 항암 치료를 해서 고통을 받기 보다는 편안히 가실 준비를 해야 할 듯합니다.

 

당연하게도, 암 환자의 대부분은 의사 A”를 선호한다. 누가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겠다는 의사를 마다하겠는가? “의사 B”처럼 말했다가는 성미 급한 환자 보호자로부터 뺨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실제로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의사도 있다. 

 

암에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사 B”처럼 "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암에 걸렸을 때와 암에 걸리 지 않았을 때의 의견을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흔한 말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사소통에 대한 연구 결과는 환자들이 희망적으로 말하는 의사 A”를 더 인간적이고 좋은 의사로 보고, “의사 B”는 사무적이고 나쁜 의사로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정말로 알고 싶다면,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이 방법이다. 듣기 좋은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솔직하게 알고 싶다. 의사는 어떤 경우라도 환자의 상황을 감안하여야 한다.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어야 솔직한 대화가 가능해진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의사와 환자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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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 듯 하지도 않지만, 암 검진을 받으면 암에 안 걸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매년 암 검진을 받아서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암이라니 황당하다.”

이러는 사람도 있고.

 

암 검진을 매년 받으면 암에 안 걸려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직접적으로 하소연 하는 환자도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며, 미리 미리 암 검진을 받았어야 하는데……. ” 암 검진을 받지 않았다가 암이 진단된 다음에 뒤늦은 후회를 하는 환자도 물론 있다.

 

암은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하자.”는 말을 너무나 매력적이지만, 현실적인 암 퇴치법은 아니다.

 

물론 암 검진을 꼬박꼬박 받으면, “암으로 죽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겠는 가 ?” 하는 기대는 당연한 기대이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대가도 만많치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중 하나는 위양성이 이다. 처음에는 암인 것처럼 보여서, 조직검사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검사를 추가로 받거나, 결국에는 수술까지 했지만, 결국 암이 아닌 것으로 판정이 되는 것이다. 위 양성은 암 검진에서는 비교적 흔하며, 전체 암 검진에서 약 1/3에서 발견된다. 물론 암 검사를 자주 많이 받을수록 위 양성은 많아진다 위양성은 처음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랜기간의 검사와 수술, 혹은 수년이 지나서야 위양성으로 결론이 내려지기도 한다. 그동안 치루어야 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코 감내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암을 발견은 했지만, 그 암이 생명을 위협할 암인지, 아니면, 그대로 두어도 별 문제가 없는 암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그렇다고 해서 발견된 암을 그냥 두고 볼 수도 없으니, 모든 암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치료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암으로 치료받는 환자의 수는 늘었지만, 반대로 암으로 죽는 삶의 수는 변화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치료는 잘되지만, 암을 죽는 사람의 수는 변화가 없다는 야기이다. 전립선, 갑상선, 유방암의 조기 발견되는 암 중의 일부는 치료하지 말고 지켜보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오는 상황이다.

 

매년 암 검진을 자주 받으면 당연히 암 진단율은 높아진다. 다른 말로하면, 암 환자가 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 암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이유는 “ Length time bias ” 때문이다. 누군가의 폐나, , 유방에 암이 아주 천천히 자라고 있다면, 이 환자가 다른 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증상이 없어서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암 검진을 받으면, 이 환자는 암으로 진단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환자 입장에서는 그냥 살았으면, 암이 있는지 모르고 수명을 다헸을 암을  암을 조기에 발견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암 검진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암으로 진단 받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진다.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는 말이 있다. 이것을 그대로 받아드린다면, 바늘 도둑을 미리 미리 잡아서 가두거나 교화시키면, 소를 잃어버릴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늘 도둑은 많이 잡아서 벌을 주었지만, 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거의 줄지 않았다면, 바늘 도둑을 소도둑으로 간주하고 벌을 주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최근 NEJM에서 검진 반대론자인  Welch 박사는 결국 "모든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듯 하다.

 

현대 의학에서 하는 암 검진은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가는 궁여지책이다. “암은 조기에 검진하는 것이 최선이다.” 라는 말은 사실상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라는 말처럼 사실이기도 하지만, 공허한 말일 수도 있다. 암 검진은 다다익선이 아니라, 개개인이 충분히 위험과 이득을 고려해야하는 선택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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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암치료중인데, 이렇게 체중이 늘면 안 되는 데 의사의 안타까운 말씀.

암 환자는 잘 먹고 쉬어야 한다고 해서... 그만 계속 먹고 놀았더니 10 kg나 늘었네요. ” 환자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억울한 얼굴이다.

 

아니 비만한 암 환자도 있는가!” 라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요즘 시대에는 오히려 영화나 TV에서 나오는 바짝 마른 암 환자가 오히려 소수이다. 암 치료를 받는 중에 체중이 늘어만 가는 환자도 많을 뿐 아니라, 오히려 비만 자체가 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기도하다. 유방암, 식도암, 대장암, 췌장암, 자궁암, 담낭 암등 이 특히 비만한 사람에서 잘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체 암의 40%가 비만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비만이 암을 일으키는 원인은 혈당, 인슐린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혈당이 높아지고 인슐린이 분비되면 암 세포의 성장을 촉진시킨다.  암 진단에 사용하는 최근에 널리 사용하는 “PET 검사는 암과 당분과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포도당에 방사선 동위원소를 부착시켜서 환자에게 주사하고 한 시간 후에 전신사진을 찍어보면, 주사한 당분이 모두 암세포로 이동한 것을 알 수 있다. 암세포가 당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 비만, 심장병, 대사 장에가 사실은 하나의 질병, 즉 당 대사 장애-임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소견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서 Metformin 이라는 당뇨 약을 암 치료에 이용하기도 한다.

 

비만은 암 치료 후의 재발과도 밀접한 과계가 있다. 특히 유방암 환자는, BMI 높을수록, 즉 비만할수록 재발할 확률이 높아진다.

 

사실상 비만/ 당뇨병/ 심장병/ 암 등이 모두 현대의 문명병, 그야말로 잘 먹어서 생기는 병이다.

 

잘 먹어야 낫는다. 라는 말은 항상 의사의 거짓말 1위에 오르고 있다. 폐렴이나 결핵 등 중한 질환이 있으면 식욕이 저하되어, 식사를 못하다가, 어느 정도 병세가 호전되면 식욕이 생겨서 식사량이 증가하게 된다. 이걸 보고, ”잘 먹으니 병이 나았다.“ 라고 말 하게 된 듯하다. 잘 먹어서 병이 낫는 경우는 이제 거의없다. 오히려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 이 압도적으로 많다. 25세 체중을 표준으로 보고, 그보다 5 kg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요즘 세상에 그 정도로 체중을 관리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으나, 그래도 목표로 잡아서 나쁠 것을 없다.

 

하루 세끼 꼬박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은, 21세기에는, 위험한 격언일 수 있다 자신의 체중이 25세 체중 + 10 kg 이상이라면. 적극적인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암 환자도 단연코 예외는 아니며,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표준 체중을 지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전쟁터에서는 방탄복과 철모를 써야하고, 겨울에는 외투를 입어야 하듯이, 요즘 같은 먹방의 시대에는 다이어트는 누구에게나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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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사 2015-10-2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겠습니다. 명심하고 있어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