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겠어요? 아니면 죽겠어요?” 급작스럽게 악화된 폐렴으로 생사의 기로에 섰다가, 조금 기운을 회복한 폐암 환자가 그래도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의사에게 묻는다. 엊그제만 해도 “ 이제 자신이 없으니, 집으로 보내 달라, 집에서 죽고 싶다” 고 하셨는데, 이제 조금 기운을 차리고 보니 그래도 조금 더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시는 듯하다. 이미 폐암은 뇌에도 전이되어있으니, 완치는 이미 아니다. 뇌의 방사선 치료를 권하였으나, 받지 않겠다고 거절하셨다.
의사는 암 환자에게 병명이나, 예후, 즉 얼마나 살 것인지를 알려주어야 할 것인가 ? 아니면 적절하게 숨겨야 할 것인가? 소위 “솔직하게 말하기 (Truth telling)”은 의학에서 오래된, 그리고 아직도 치열하게 진행 중인 논란 중의 하나이다.
“저는 이제 죽게 되나요?”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진 20 대 초반의 암 환자가 의사에게 묻는다.
“그렇단다. 오랫동안 치료를 맡아온 의사의 대답이다.
“언제쯤 죽게 되나요?”
“오늘이나 내일이 될 것 같구나”
의사와 환자는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갑작스레 가까이 다가온 이별을 슬퍼하였다. 위 대화는 최근 미국 암학회지에 (Journal of Clinical Oncology) 에 소개된 의사와 환자의 너무나, 충격적으로 솔직한 대화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의사들이 환자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한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의사들도 약 1/3은 병명을 정확히 말하지 않으며, 특히 예후에 대해서는 대부분 말하기를 꺼려한다. 오죽하며 2011년 뉴욕주에서 “의사는 암 환자에게 솔직하게 말하라“는 법률이 만들어 졌는데, 완화의료 정보 공개 법안 (Palliative Care Information Act) 이다. 말기 암환자에게 의사는 “예후 : 즉 얼마나 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옵션 : 호스피스 치료 등, 통증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정보 등을 상세히 설명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법안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의사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왜 의사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일까 ?
1970년도까지 만 해도 모든 의사는 당연히 암이라는 진단을 환자에게 말하지 않았다.
의사는 환자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하며 (Paternalism), 필요하다면 거짓말도 당연히 해야 했다. 물론 누구도 그러한 의사의 태도를 비난하지 않았다. 환자들은 대략적인 상황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가족에게는 더 솔직하게 말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환자의 자기 결정권 (Patient’s Autonomy)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이제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에게 어떠한 거짓말도,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해서는 안 되다고 느끼는 분위기이다. 만약 환자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미국이라면, 당연히 환자가 변호사를 대리고 나타날 것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거짓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도 없다.
다만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이 무었인가 ?” ( What is the truth? )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의사 A : 현재 상황이 매우 좋지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가능한 모든 치료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좋은 항암제도 많으니, 어떻게든 써 보도록 하지요.
의사 B : 현재 상황은 매우 좋지 않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추가로 여러 가지 항암 치료를 해서 고통을 받기 보다는 편안히 가실 준비를 해야 할 듯합니다.
당연하게도, 암 환자의 대부분은 “의사 A”를 선호한다. 누가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겠다는 의사를 마다하겠는가? “의사 B”처럼 말했다가는 성미 급한 환자 보호자로부터 뺨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실제로 난처한 상황에 처하는 의사도 있다.
암에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사 B”처럼 "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암에 걸렸을 때와 암에 걸리 지 않았을 때의 의견을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흔한 말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사소통에 대한 연구 결과는 환자들이 희망적으로 말하는 “의사 A”를 더 인간적이고 좋은 의사로 보고, “의사 B”는 사무적이고 나쁜 의사로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정말로 알고 싶다면,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이 방법이다. 듣기 좋은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 “솔직하게 알고 싶다”고. 의사는 어떤 경우라도 환자의 상황을 감안하여야 한다.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어야 솔직한 대화가 가능해진다.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의사와 환자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