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가 의사 혹은 병원을 이용하는 법에 대하여 상당한 오해가 있다.

 

사람들이 암 치료는 의사의 권유를 따르는 게 좋다.” 라든가..

혹은 의사가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치료해 주겠지.. ”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그런대로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아니 엄청나게 바뀌었다.

 

전화 걸려고 공중전화를 찾는기 힘들어지고,

모두들 핸드폰을 사용하는 시대가 된 것처럼..

 

시대 자체가 변해버린 것이다.

없어진 공중전화를 찾아 시내를 돌아 다녀도 헛수고 일 뿐이다.

 

겨울에는 외투와 장갑을 써야 춥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한 반팔차림으로 나서야 고생이 덜하듯이 ..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의사 사용법을 알아두어 야 한다.

 

과거에는 의사가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이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최선의 치료를 해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를 온정주의 (Paternalism) 환자와 의사 관계라고 말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가족을 대하듯이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선택하여 환자의 동의를 얻어서 치료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던 그야말로 그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30 년 전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아직도 이러한 의사를 기대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쉽게도 이제는 그런 의사는 멸종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러한 관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하면..

의료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변화를 꼽아본다면..

 

첫째 : 치료법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 졌다.

 

같은 암이라고 해도 사용하는 항암제가 종류가 많기도 하거니와, 투여하는 방법도 차이가 있다. 수술법이라고 해도 로봇 수술이니, 내시경 수술 이니, 가지각색이다. 물론 방사선 치료의 종류와 선택 가지 수 도 많다. 치료 전략도 다르고, 의사의 경험과 선호하는 치료법도 다르다. 그래도 가장 좋은 치료법으로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상 여러 가지 치료법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특별히 좋은 치료법 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치료법 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어서 치료법의 우월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 더 이상 환자가 치료비를 지불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치료비는 정부에서 나온다. 물론 국민이 의료 보험료를 지불한 것이니, 국민이 내는 것은 사실이나, 의료비를 지불하는 곳은 정부가 훨씬 크다. (현재 암 치료비의 95%가 국민 보험 부담이다.) 따라서 의사, 혹은 의료 기관은 당연히 환자보다도 의료보험공단, 즉 돈을 실제로 지불하는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이러한 의료 보험 정책을 만든 사람은 의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국민도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하민국 정부이고, 가장 유리한 쪽도 당연하게도 정부이다. 이제 싫든 좋든 의사이든 환자이든, 정부의 정책과 방침과 규제에 따라야 한다. 이는 곧, 의사와 환자들이 자기 생각대로 치료하거나 치료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국가 전체로는 이득일 수 있으나, 환자 개인에게는 달리 생각해야할 소지가 있을 수도 있다.

 

셋째,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가 변했다.

 

과거에는 환자는 당연히 집 근처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집근처는 아니더라도 같은 시내의 병원, 혹은 같은 도내의 병원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제주도에서 출발하는 새벽 비행기에는 언제나 환자들로 만원이다. 과거에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동일한 도시의 거주자로써 동질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비행기와 기차, 승용차를 이용하여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필수적으로 환자의 다양성, 즉 기대치, 치료 목적, 거주지 역, 의사에 대한 신뢰도 등에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다양성을 내포한다. 이제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같은 사투리를 쓰고, 같은 지역에 살고 있어서, 얼굴도 가끔 볼 수 있는 , 혹은 두세 다리 건너면 알만한 그런 사이가 아니다. 이젠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생전 처음 보는, 이질적이고, 대부분은 법적인 관계가 되었다.

 

이는 의사와 환자가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게 힘든 상황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새로 바뀐 환경에서 적용되는 규칙은 공유 의사 결정 원칙” (Shared Decision Making) 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의사와 환자가 정보를 사이좋게 공유하고 (shared), 말하자면 의사가 알기쉽게 설명하여 환자가 이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 이를 토대로 서로 상의하여 치료방침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물론 뜻도 좋고, 방향도 그럴싸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환자가 의사의 말을 대부분 오해하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즉 의사는 새로운 개념, 공유의사 결정 원칙 (Shared decision making) 에 따라서, 의료 정보를 제공했을 뿐인데, 환자는 과거의 규칙 즉 온정주의 원칙에 따라서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권유했다고 착각 내지 오해하는 것이다.

 

의사가 이렇게 치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면 과거에는 그 의미는 이것이 최선이니 다른 생각 마세요!” 라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의미가 다르다.

 

이제는 이렇게 치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의 의미는 의사가 내 생각은 이렇다.” 는 뜻으로 말했을 뿐, 어떤 치료가 환자에게 더 적절한지는 이제 당사자인 환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서, 상의해야할 상황을 의미한다.

 

즉 이제 당신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라는 뜻이다. 물론 정부의 눈치도 보고 시간도 바쁜 의사로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환자가 이해하여야 한다.

 

실제로는  환자는 자신의 상황에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의사가 권유하는 것으로 착각 혹은 오해하고 최선을 다해주세요, 잘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협상의 시작인데, 협상이 끝났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랜 동안 암 치료 과정에서 벌어지는 오해와 착각의 시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는 환자에게 자세하고 내밀한 속마음, 치료에 대한 의지와 열망, 경제적인 상황, 가족 구성원과 관계를 포함하여, 기타 의사에게 하고 싶거나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모든 내용을 듣어야만, 적절한 치료법을 내놓고 상의할 수 있게 된다.

 

한편으로는, 의사는 자신이 선호하는 치료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다른 치료법에 대하여 상세한 정보를 갖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환자가 외과의사에게 수술을 권유 받고, 내과의사에게 가면 약물 치료를 권유 받는 다면, 환자는 황당하다고 할 수 있으나, 마치 북한 핵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대응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사실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의사들은 프로페셔널이기 때문에 이미 새로운 환경에 적응 했다.

그러니, 이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환자이다.

환자는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어 불리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야 한다.

 

이제 와서,  아니 의사가 좋은 치료법을 정해주어야지.. 환자가 그걸 어떻게 알야?” 라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

 

첫째 : 병원을 잘 선택해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선택의 기준은 남에 의한 평이나 유명세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어야 한다. 만일 유명한 병원에 대한 집착이 큰 사람이면, 가장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병원에 가는 것이 맘이 편할 듯하다. 그러나 암 치료가 수개월 - 수년간 지속 된다는 점을 고려하고, 간병을 하는 가족의 수고도 고려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병원 시설과 전문가의 유무도 판단할 필요가 있다. 병원에 전환도 걸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판단의 기준은 자신이 원하는 병원이 되어야지, 남들이 추천하는 병원이 아니다. 다른 조건이 없다면,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 급의 종합 병원이 가장 적절한 선택이 될 듯하다.

 

둘째, 담당 의사, 대학 병원이라면 주치의 교수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택 기준은 역시 자신이 가장 기준이다. 유명한 의사에 대한 집착이 있다면 역시 말할 필요도 없다. 친절한 의사를 원한단면, 역시 만나보고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충분한 의견 교호나이 가능해야 한다. 유명한 의사보다는 자신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상담해 줄 수 있는 의사가 필요하다.

 

셋째, 의사와 충분한 인간적인 교감을 갖고, 자신의 능력 한도에서라도 나름대로 치료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의사와 관계를 좋게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몫이겠지만, 의사에게 자신의 말을 충분히 들려주는 것은 역시 환자의 몫이다. 의사나 환자나 예의는 물론 이거니와 인간적인 교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인간적인 교감이 없는 치료는 진정한 의미의 치료라고 할 수 없다. 자신에게 맞는 의료진을 찾기 위해서는 귀찮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의사를 찾아서 의견을 들어보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사회가 발달하고 의료가 발달 하면 모든 게 편해질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가 더 흔하다. 암 치료는 발달하고 있다지만, 암으로 죽는 사람의 수는 점차로 늘고 있다. 암 치료법은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도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아쉽게도 의사와 환자가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에 바탕을 둔 온정주의적의료 행위는 이제 계약과 설명을 중시하는 공유 의사 결정 원칙으로 대치되었다.

 

과거에 환자가 치료되지 못하면, 의사는 죄송하다고 사죄하고 환자는 흔쾌히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였다. 아쉽게도 이젠 우리는 그러한 신뢰를 더 이상 같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환자와 의사가 신뢰 없이도 치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사회는 신뢰를 잃어버렸지만, 각 개인 의사와 환자는 인간적인 교감을 통하여 서로가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암 치료는 서로에게 쓰라린 상처로 남을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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