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하는 삶에 음악이 필요하다 (2)
삶을 긍정하는 방법이 한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음악의 기쁨이 끝이 없다고는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나만의 즐거움이 더해 진다면, 곱절로 배가 되는 긍정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색다른 클래식 신간이 있다. 유승연이 지은 <맛있게 클래식>. (요즘 책 제목을 잘 짓는 것 같다. 엉뚱하지만 궁금하게 만든다. )
유승연은 바이올린을 공부를 마치고 음식연구가로 그리고 클래식 해설하는 일을 한다. 그 일의 일환으로 월간지 <쿠켄>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서 <맛있게 클래식>을 냈다. .
첫 장이 ‘봄’인데 멘델스존의 무언가(모음곡) 중 ‘봄노래’로 시작한다. 봄노래 제목 아래서 마주친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다.
“베토벤은 베토벤이어서,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여서, 멘델스존은 멘델스존이니까 아름답다. 당신은 당신이어서 귀하디귀하고,
나는 그대로 나여서 퍽 다행이다.” (16)
그렇지. 삶을 긍정하려면 이래야 하거늘. 열린 마음으로 나는 그대로 나로서 살겠다. 책 속 문장이 긍정 에너지를 북돋워 주는 것 같다.
서술하는 방식은 상당히 다르지만 삶을 긍정하는 결이 같은 내용이 김호정의 <오늘부터 클래식>에서도 보인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할 차례다. ‘잘’하는 연주를 들으면 좋은가? 완벽한 연주는 몇 번이고 다시 듣게 될까?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의 노래를 들으면 답이 떠오른다. 그의 노래가 좋은 건 목소리가 크고 음이 정확하고 고음을 잘 내서가 아니다. 그런 성악가는 많다. 하지만 어떤 노래가 흘러나와도, 심지어 이 세상 거의 모든 테너가 부른 노래를 들어도 파바로티 목소리는 바로 구별된다. 자기 소리,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이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의 소리는 흠결없이 곱거니 완벽하지는 않다. 오히려 거친 쇳소리가 나기도 하고 지나치게 드리마틱하다. 이 목소리로 마리아는 도니제니, 벨리니의 섬세한 배역에서 베르디, 푸지니는 물론 바그너까지 맡아 전전후로 활동했다. 사람들은 이 소리에 따라 울고 웃었다. 칼라스가 해야 들을 수 있는 노래라며 그에게 최고 소프라노 자리를 넘겨줬다.
‘고유의 소리’가 정답이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Artur Schnabel, 1882~1951) 또한 1930년대에 베토벤 소나타를 녹음하면서 많이 틀리고 실수가 잦았다. 하지만 독일 고전음악의 전통을 꿰뚫는 그의 연주는 일필휘지로 쓴 글씨처럼 굵고 거침없다. 다시 녹음해 붙인 연주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청중의 감정을 휘몰아치다가 등을 토닥이고, 조용히 자기 내면으로 들어간다. 파바로티, 칼라스의 목소리처럼 이 베토벤 연주를 쭉 들으면 탄식하듯 내뱉게 된다. ˝아, 이거 슈나벨이구나, 좋다!˝. (23)
* 이 글은 출판사의 지원 없이 나의 나름대로 주관적으로 썼다. (혹시 오해할까 봐서 밝힌다. ^^; 그나저나 리뷰는 주관대로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주관적인 의견을 배제한 페이퍼를 썼더니 알라딘 서점 담당자가 상품 페이지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차단 조치하였는데 알려주지 않아서 1:1 문의로 답변을 받기 전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 그래도 참을 수 있다! 삶을 긍정하는 마인드로 충만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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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 정리한 신간 중에 클래식 입문서가 꽤 많은데 나는 쇼팽과 관련한 책들에 큰 관심이 생긴다. 음악이 빠진 예술 에세이에도 관심을!
#클래식과_음식의_궁합 #신간 #클래식은_왜_그래 #클래식_바다에서_수영하는_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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