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푸른 눈
토니 모리슨 지음, 신진범 옮김 / 들녘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93년 미국 흑인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첫 번째 소설이다. 250페이지도 안되는 소설이지만 읽어내기가 만만치는 않다. 화자인 이웃집 소녀 클라우디아의 시점과 작가의 시점이 혼합되거나 교차되고, 일상대화와 묘사, 서술이 지적인 문체로 혼재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이 소설은 책 뒤쪽의 작가후기에 밝혔듯이, 작가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한 아이가 푸른 눈을 갖고 싶다고 한 말 때문에 쓴 작품인데 왜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는지, 또한 왜 그렇게 불가능한일을 바라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초등학교 갓 입학한 그 어린나이에 그 말을 기억하고 창작동기로 삼았다고 하니 위대한 작가의 감수성과 능력은 타고난 것인가 보다)

 

소설은 가을, 겨울, , 여름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을과 겨울의 쇠락과 침잠(아버지의 폭력으로 클라우디아 집에 오게 된 피콜라와 그녀의 가족이 사는 집에 대한 묘사 등)을 거쳐 봄, 여름으로 넘어오면서 이야기의 서사 구조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작가는 1960년대의 인종차별 철폐(또는 블랙파워) 운동이라는 정치적 조류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나, 단순히 백인의 악행이나 인종차별에 대한 고발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소설은 거의 흑인가정 또는 사회의 폭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렇게 비정상적인 폭력성이 어디에서 연유하게 되었는지 등장인물의 성장배경 및 특이한 차별, 폭력경험(또는 그 경험의 체화)에 대한 서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 인종 전체를 귀신들리게하는 무엇인가가 사회의 가장 여린 구성원인 어린이, 그 가운데서도 가장 상처받기 쉬운 소녀에게 어떻게 뿌리내리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작가 후기 피콜라에게 경의를.....’ 245)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은 거의가 다 태어나서부터 결핍의 경험을 겪었고, 폭력이 일상화 된 인물들이다. 어린 친딸 피콜라를 성폭행하여 임신하게 까지 한 아버지 촐리를 보자. 그는 태어나고 나흘이 지났을 때 그의 엄마는 그를 두 장의 담요와 신문지에 싸서 철로변에 있는 쓰레기 더미에 내다버렸다. 그리고 자라서는 소년시절 풀밭에서 첫 경험을 할 때 총을 들고 손전등을 비추면서 비웃고 멸시하는 백인들(이들이 '사냥꾼'이라는 설정은 상당히 상징적이다!)에게 한마디 저항도 못하고, 오히려 상대 소녀에게 분노와 증오를 나타낸다.

짜증이 나고 초조해진 그는 달린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갔다. 한번도 자신의 분노를 그 사냥꾼들에게 돌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일 사냥꾼들에게 분노의 감정을 가졌다면 그는 파멸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른이었고 백인이었으며 무기까지 있었다. 반면에 그는 어린 흑인이었고 무력한 존재였다.(179)

 

이런 무기력하고, 무능했던 경험은 문신처럼 그의 무의식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는데, 소설 후반부 술 취해 그의 딸 피콜라를 강간할 때도 그가 느낀 감정의 순서는 혐오, 죄의식, 연민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의 혐오는 어리고 무기력 하고 희망없는 딸의 모습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는 딸의 목을 부드럽게 부러뜨리고 싶었다. 죄의식과 무능함에 대한 인식이 불협화음을 내며 삐걱거렸다. 도대체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191)라는 서술을 통해 드러난다.

 

한편, 피콜라의 엄마 폴린. 그녀는 열한 명의 아이들 중 아홉 번째였고, 두 살때 녹슨 못을 밟아 비틀리고 평평한 발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 그녀는 늘 발 탓을 했다(134) 결혼하고 나서는 게으른데다, 주정뱅이인 남편 촐리와 하루가 멀다하고 싸운다. 그것도 매우 폭력적으로.

 

이런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비참한 가난, 학교에서의 놀림 등은 피콜라에게 백인 인형, 셜리 템플컵, 메리 제인 사탕, 백인배우 출연영화 등 백인지배문화가 설정한 미의 기준에 따른 문화상품들을 선망하게하고, 급기야 눈을 푸르게 해주세요라며 미쳐가는 것이다.(작가는 의도적으로 각 장의 첫 부분에 띄어쓰지 않는 불완전한 문장을 삽입하여 기형적이고 부조리한 흑인의 삶을 블루스 곡으로 연주하는 듯 하다)  

 

여전히 와스프( White Anglo-Saxon Protestant,WASP)가 주류 지배계급으로 득세를 하고 있는 미국사회.눈에 보이지 않은 차별과 무의식적인 우월감과 편견. 이 슬픈 소설은 그들에게 날리는 말벌의 따끔한 침이 되었을()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nsun09 2018-03-2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읽었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셔서 잘읽었어요. 제겐 토니 모리슨 책은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사실은 가슴으로는 잘 와닿지 않았던 기억이 나는 씁쓸한 독서였던 거 같아요^^ 따뜻한 주말 입니다~~

sprenown 2018-03-25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고맙습니다. 즐겁고 편안한 휴일되시길...

레삭매냐 2018-03-26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토니 모리슨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술라>를 읽었고, 지금은 신간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를 읽고 있습니다.

여전히 흑인들에게 주류사회 진입은 요원
한 문제가 아닐까요...

재출간되고 있는데 <가장 푸른 눈>도 새로
번역이 돼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대산세계문학총서 7
조라 닐 허스턴 지음, 이시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미국 흑인여성 문학의 어머니라 불리는 조라 닐 허스턴의 대표작이라 한다.

책 뒤편 작가 연보를 보니 허스턴의 출생연도가 불명확하여 1891년에서 1901년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는데 아무래도 생전에 별로 주목받지 못한 흑인 여성작가라는 점이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그래도 미국 최초의 흑인 자치도시인 플로리다 이튼빌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시장직을 역임하였다고 하니 꽤 유복한 환경에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어머니 사후에 유랑극단을 따라 고향을 등지고, 갖은 허드렛일을 하며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고달픈 삶을 살았겠지만, 어릴 때의 흑인 공동체문화는 긍정적이고,자립적인 삶의 자세,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자전적인 요소가 섞여 있어 그녀의 이러한 성향이 드러나 있는데, 그녀가 그리고 있는 인간적이고 낙천적인 흑인상(특히 세번째 남편 티 케이크)에 대해 당시 흑인 남성 비평가들은 백인들의 구미에 영합하였다하여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모양이다.

 

흑인여성 3대의 고난에 찬 삶을 묘사한 이 작품에서도 인종 및 계급갈등, 사회변혁을 위한 선명성과 투쟁성 등이 다소 약하기는 하지만 할머니를 통해 노예신분 흑인 여성(3중 약자)으로서의 고통스런 삶 그리고 주인공이 느끼고, 깨닫는 주체적 자아로서의 각성을 묘사하는 부분은 특히 아름답고 인상적인 문장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아가, 이 할미가 알고 있는 한에는 백인이 이 세상의 지배자다. 백인은 자기 짐을 팽개치며 흑인에게 그걸 주워들라고 한다. 다른 수가 없는 흑인은 그걸 주워들지. 하지만 자기가 그걸 져 나르진 않아. 자기 여자한테 넘겨버리지. 내가 아는 한 흑인여자는 이 세상의 노새다.”(26)

 

무엇 때문에 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갑자기 그녀는 자신이 새로 태어난 듯 변신을 한 듯한 느낌에 전율했다. 그녀는 당장 대문을 걸어나와 남쪽을 향해 갔다. 설사 거기 조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 하더라고, 이것은 그녀에게 더 나은 변화일 수 밖에 없었다.(46,47)

 

고향 아프리카에서 포획되어 끌려오든지, 싼값에 팔려오든지 노예의 삶을 살다 차별철폐투쟁을 거쳐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법적인 평등을 보장받기까지 얼마나 가열차고, 고통스런 희생이 있었겠는가 마는 이 인종차별문제가 계급문제와 뒤섞이면 복잡해진다. 같은 흑인끼리도 갈등과 반목이 있기 마련이다.(우리나라 일제 강점기때의 친일, 부역세력이나 노동자 계급끼리의 다툼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소설에서 흑인혼혈 터너부인의 허영심...마치 미국에 이민가서 백인, 흑인 밑에서 괄시와 차별을 받으면서도 동포들을 무시하며 잘난 척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는 것 같다.)

 

터너 부인 자신의 눈에 그녀의 체형과 이목구비는 완벽했다. 그녀의 콧날은 살짝 날이 서있었고 그럼으로 해서 그녀는 자부심을 가졌다 얄따란 입술은 언제 보나 매혹적이었고, 얕은 돋을 새김 양식의 밋밋한 엉덩이조차 그녀에게는 긍지의 원천이 되었다. 그녀의 생각으로는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검둥이들로 구분시켜주는 증표들이었다.

 

검둥이들이 그렇게 많지만 않았으면 인종 문제도 없었을 거야. 그랬더라면 백인들도 우릴 자기들 가운데 끼워줬을 테고. 그런데 그 검둥이들이 그걸 가로막고 있단 말이지.~ 가난이 문제가 아니고, 피부 색깔과 생김새가 문제인 거야. 세상에 어떤 사람이 유모차에 깜둥이 아길 태우고 싶겠어.~ 날 좀 보라구! 내 코가 어디 납작하고 내 입술이 어디 검붉고 두터운가. 난 제대로 모양이 잡힌 여자라구. 내 눈 코 입은 백인의 것 그대로야. 그런데도 난 다른 모든 검둥이들과 똑같이 취급을 당한단 말이야.”(180,181)

 

이 소설은 단순히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의 틀을 뛰어넘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서양소설을 읽으면서, 사랑(부부애)을 이렇게 아름다운 대화문장으로 묘사한 경우를 보지 못했다.(허리케인이 덮치기 직전, 주인공 부부의 대화장면)

 

고마워, 여보. 하지만 당신이 죽게 된다고 해봐. 지금. 그래도 당신 내가 당신을 이리 끌고 온 데 대해 화나지 않겠어?”

 

아니, 당신과 2년을 함께 살았잖아. 사람이 아침 해가 돋는 걸 볼 수 있다면, 저녁이 돼서 죽는 것도 상관없을 거야. 세상엔 아침 해를 구경도 못 해본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어둠 속을 더듬어 헤매고 있었지. 그런데 신이 내 앞에 문을 열어주셨어.”(203)

 

어떠한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그러하다. 뜬금없고 견강부회한 느낌이 없진 않지만 <논어>에 나오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구절이 떠오른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공자의 이 말은 남녀평등페미니즘, 미투운동을 뛰어넘는 보편성- 진리(또는 )에의 추구-을 뜻하는 것이다.(개인적으로 우리 소설 '토지'의 최고 장면으로 꼽는 용이 품에 죽어가는 월선. " 임자, 여한이 없제?" "여한 없습니더."도 생각나는 대목이다)

 

허스턴의 소설이 인종 및 계급에 대한 투쟁성이 부족하고, 사회개혁의 수단으로서 미흡하다는 비판은 당시의 운동성과를 담보하기 위한 절박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부관계를 포함해서 공동체 생활을 통한 보편적 사랑, 자연과 인간 존중, 생명에의 연민등 그녀의 신념과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부터 페미니즘 관련서를 읽고, 공부 좀 해보자는 생각은 있었으나 늦었다. 천성이 게으른 탓이다. 이 책 <행복한 페미니즘><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구판이다. 이참에 맘먹고 동네도서관으로 빌리러 갔더니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이미 대출중이고, 이 책만 덩그라니 남아있었다.(나도 좀 데려가줘~ 꿈벅 꿈벅) 문학동네라는 대형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낸 책이 얼마나 새롭고 충실한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어 <가장 푸른 눈>,<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와 함께 무등 태워왔다.

 

구판이라는 핸디캡 때문인지 번역이 종종 매끄럽지 못한 듯하고, 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인터넷을 통해 금인숙 교수의 <성의 사회학>이라는 강의도 틈틈이 들었다. 나이 50넘어 내가 이런 열정을 갖고 공부하다니 놀라운 변화다.

 

이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내내 페미니즘은 특히 나 같은 남성에게는 피하고 싶은, 예민한 주제이자 불편한 진실이었다. 또 한편으로 나 역시 가부장제의 희생자였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가장 큰 성과일 터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 사내자식이 왜 그래(또는 왜 울어)?”라거나 남자가 그것도 못해!” 라는 말은 장남이라는 위치와 함께 항상 책임감과 의무감에 짓눌린 삶을 살게 하고 학교와 군대, 직장으로 이어지는 삶의 경로 역시 내면화된 성차별적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가 확대 재생산된 터전이었음을 깨달았다.

 

 

벨 훅스는 과거 페미니즘 운동(공민권 쟁취 및 여성해방투쟁)의 과오를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페미니즘이 단순히 반남성적 여성평등, 해방운동이 아니라 제국주의, 패권주의, 신식민주의 등을 포함한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19쪽)으로 규정하면서 성차별주의의 뿌리에 가부장제가 맞닿아 있음을 역설한다.(벨 훅스는 급진적 페미니스즘 또는 맑스주의 페미니즘 역시 비판한다. 전체적인 기조는 역시 요즘 대세인 에코 페미니즘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운동내부에서 헤게모니 다툼, 인종,계급문제와 관련하여 같은 여성끼리 많은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남녀평등에만 관심을 두고 계급상승 또는 권력추구형 개혁주의 또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 (이몽룡을 사이에 둔 춘향이와 향단이? "춘향이 걔 아무것도 아니야" 거나 "이도령처럼 나도 과거 보러갈테니 방자는 말을 준비하고, 몸종 향단이는 시중을 들거라" 하는 식이다.)에 대한 통렬한 비판.

미국 남부 흑인여성으로서 가부장적인 기독교문화에서 자라온 벨 훅스,그녀의 삶이 순탄치 않았을 것임은 아래의 고백이 없다고 하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십대에 페미니즘 사상을 받아들인 데에는 우리가족 전부에게 군림하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크게 작용했다. 군대식 사고가 몸에 밴 남자, 운동선수, 교회의 집사, 부양자, 오입쟁이였던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규범을 그대로 체화한 사람이었다. 나는 내 어머니의 고통을 목도했고 반항했다. 엄마는 아빠가 그만큼 엄마를 무시하고 천대하고 폭력을 써대는데도 결코 젠더 불평등의 관점에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지 못했다.”(220)

 

어쩜 우리네 어머니의 삶과 이렇게 닮았을까? 우리 역시 유교적 위계질서의 가부장제하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당했는지는 역사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또 눈을 돌려 현재 동남아 등에서 온 이주 여성들의 고통스런 삶과 피해사례를 보라!) 위에서 가부장제에서의 남성 피해운운하며 엄살을 떨기는 했지만, 솔직히 남성(남근)중심주의속에서 대부분의 남성은 혜택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남성을 페미니즘의 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금인숙 교수의 강의에서도 우리나라 남성학의 대두와 가부장제하 남성의 고통과 피해(‘남자 등쳐먹는 꽃뱀여성 수 세계1라는 부분에서는 빵터졌다.우리나라 남자들 스트레스때문에 일찍죽는다것은 알지만 남성의 고통과 피해에 대해 설명하면서 내민 이런 통계자료는 너무 심하다.)를 적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성과 남성 모두 가부장제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무의식적인 성차별주의와 그에 맞닿아 있는 가부장제. 지배와 복종의 구조인 이 억압과 질곡에서 벗어나 상호이해와 배려, 상호부조의 평화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 페미니즘운동의 최종목표일 것이다.

 

현실적인 실천방안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실천운동을 통해 정책적인 뒷받침을 이끌어 내고 제도화하는 것일 것이다. 인권감수성 교육처럼 성차별적 인식자각교육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고, 일과 가정의 양립, 근로시간의 탄력적 조정,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임금제도의 개선방안 등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더욱 더 진척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봄바람 살랑~살랑. 따스한 바람이 귀밑을 간지른다.  향단아,이런 날에는 저 하늘끝까지 그네를 밀어다오!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편안함.. 모든것을 다 내려놓고, 그네를 타고 싶다. 조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 화~악 날려버리자. 현대병, 강박증.몸에 힘 빼. 이라부의 비타민 주사 뿅뿅.

 

긴장때문에 어깨가 뭉치고, 안면근육이 경직된다면 이 소설을 읽자 .... 우하하하,한바탕 유쾌한 웃음. 이라부가 밀어주는 공중그네에 몸과 마음을 맡겨라. 야호~구름위의 나른한 자유와 순수.

 

[히로스케가 간호사와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콧물을 흘리기에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티슈 한 장을 뽑아 히로스케의 코에 댔다.

"흥, 해."

고헤이가 시키는대로 히로스케가 코를 풀었다. 그 모습을 보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 아이는 자기 아버지를 믿고 모든 걸 맡긴다. 그러니 있는 힘껏 코를 풀 수 있는 것이다.

공중그네 캐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중요한 건 마음을 비우는 일. 가장 좋은 예가 이라부다.](119쪽)

 

다들 자~아  흥,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을 고백하자면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제대로 읽어 보려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찾다가 우연히 읽게 된 소설이다.

졸라 문학의 서막, 자연주의 문학의 서설,

해부학자가 시체를 해부하듯 인간영혼의 광기와 공포를 해부한다.“

위와 같이 책 뒷면의 졸라 사진 밑에 소개된 글처럼 졸라가 자연주의 문학의 기본요소인 인간의 추악한 면과 더러운 본능, 그리고 광기를 소름끼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또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 할 정도로 졸라재밌다.(탐정·추리소설 저리가라다. 그래서 혹시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해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기로 한다.)

 

책 뒷면의 작가연보를 보면 이 소설은 졸라가 27살때인 1867년에 발표했는데 그 전해인 1866기성 대가를 비판하고 마네,피사로,모네,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을 지지하는 평론을 발표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전부터 세잔을 만나 이들 인상파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이다. 눈치 챘겠지만,이런 내용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소설속의 인상적인 장면이 마네의 올랭피아(1865년 아카데미 살롱 출품)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첫 관계에서 테레즈는 창부의 기질을 드러냈다. 충족되지 않은 그녀의 육체는 끝간 줄 모르고 쾌락에 빠져 들었다.그녀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했다. 이제 비로소 정열을 가지고 탄생한 셈이었다. 히스테릭한 여성의 온갖 본능이 말할 수 없이 난폭하게 터져 나왔다. 그녀의 어머니의 피, 그녀의 혈관을 태우는 아프리카의 피가 여윈 그녀의 육체, 아직도 거의 숫처녀 같은 그녀의 육체 속에 사납게 흘러 맥박 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는 몸을 펴고 누워서 말할 수 없이 추잡하게 육체를 드러내 놓았다.”(55)

 

마네의올랭피아가 당시 부르주아들의 가식과 속물근성, 허위의식을 조롱하듯 노려보는 맨몸의 매춘부 때문에 비난과 논란이 많았듯이 졸라도 이 작품이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평론가들의 호된 비난과 혹평을 받았던 모양이다. 서문에 이에 대한 졸라의 분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사실 결말을 보면 권선징악이라는 도덕적 가치가 훼손되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무것도 이해하기를 원치 않으면서, 공포에 사로잡힌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펀치를 날리라고 말하기만 하면 언제든 펀치를 날린다. 죄도 짓지 않았는데 두들겨 맞는 것은 화나는 일이다.”

 

강가에서 뱃놀이를 가장한 살인장면은 어릴 때 보았던 추억의 영화 장면들을 떠오르게 하는데,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젊은이의 양지>와 르네 클레망 감독, 알랑 드롱 주연의<태양은 가득히>가 그것이다.

 

이 소설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시간의 흐름과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다.

 

카미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강물로 떨어졌다. 그는 두세 번 물 위로 떠올랐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외침은 잦아들고 있었다. 로랑은 잠시도 주춤하지 않았다. 한팔로 기절한 테레즈를 안고 발로 한번 툭차서 배를 전복시키더니 정부를 껴안은채 그대로 센 강에 몸을 던졌다. 그는 테레즈를 물 위에 쳐들고 처량한 소리로 사람 살리라고 외쳤다. 좀전에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던 보트들이 소리를 듣고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95, ‘좀전에 노래부르며 지나갔던 보트에서 카미유의 고래고래 소리는 듣지 못했다?)

 

정욕과 돈에 눈이 멀어 완전범죄를 꿈꾸는 자들...요즘도 심심치 않게 내연의 애인과 공모해 배우자의 재산과 보험금을 노린 범죄가 보도되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을 통해 졸라는인간이라는 동물에 냉정한 모습으로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그는 확실히 천부적이고 천재적인 문학의 외과 의사. 그리고 사회의 어둠을 형형한 눈빛으로 응시하는 예리한 눈을 가졌다. 마치 고양이처럼, 야~옹.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3-05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3-05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그랬군요. 문학의 힘이 자성에도 있겠지요. 인간이 완전하지 못하니 잘못을 저지를수밖에 없지요. 그나마 반성하며 뉘우친다는것..편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cyrus 2018-03-06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름 끼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면 직접 읽어봐야 합니다.

프레이야 2018-03-1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보고 나서 이 소설을 읽었어요. 반가운 리뷰입니다. 55쪽 인용문에 숯처녀는 숫처녀가 아닌지요^^

sprenown 2018-03-10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러셨군요.박쥐가 이 소설을 모티브로 해서 제작되었다고 하더군요.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좀있다가 고칠게요.즐거운 주말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