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98
김수경 지음 / 책세상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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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른 여름휴가를 받아 어머니 홀로 계신 시골에 내려 왔다. 굳이 휴가기간에 쉬면서까지 부담스럽고, 무거운 책을 읽느니 가볍고 편하게 읽어보자 가져왔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책세상문고에서 나온 이 소책자는 작고, 날씬한 몸피와 달리 의외로 얘깃거리를 많이 담고 있다.(그동안 들어왔던 수많은 대중가요와 가수, 노랫말들이 불러오는 당시의 기억 또는 추억들...)

 

주로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대중가요의 노랫말, 쿵짜작~ 쿵짝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음율. 때론 신파적이면서 상투적이지만 대중가요는 한편으로는 위대한 철학자의 묵직한 잠언이나 유명한 시인의 아름다운 시보다 우리 생활가까이에서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목에 힘주고, 고고한 척하는 학자들의 고담준론을 읽고 들으면서 그들의 허위와 가식에 식상해 질 무렵, B급 문화의 첨병이랄 수 있는 대중가요를 듣다보면 차라리 거기에 인생과 사랑, 그리고 철학이 녹아 있음을 알게 된다.(내겐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그리고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또는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등과 같은 노랫말들이 그렇다. 저자는 무의식적으로 내 몸 안에 그냥 흘러들어와 나도 모르게 젖어든 것이라 표현한다.)

 

이 책 노랫말의 힘, 추억과 상투성의 변주는 어느 음악 평론가나 문화 평론가가 쓴 글이 아니라 <고려처용가의 전승과정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수경이라는 국문학자가 대중가요에 대해 분석하고, 연구한 글들을 모아 나온 것인데 그렇다고 여느 학술서처럼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발라드의 개념과 역사, 한국적 토착화 과정을 톺아보고, 서태지 이전 발라드의 전성기라 할수 있는 1980년대 중·후반의 발라드를 중심으로 박건호와 양인자, 박주연과 이영훈 등 발라드의 대표적 작사가들의 노랫말을 분석하면서 노랫말이 가지고 있는 힘에 주목한다.(아마도 그 이란 삶의 고단함에 대한 위안과 카타르시스 일 것이다.)

 

일단 발라드라는 말은 춤추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ballare'에서 파생되어 느린 템포의 아름다운 사랑노래를 가리키며 여러 장르와 섞여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갔는데 우리나라에는 한국 전쟁후 미군의 팝문화가 뿌리내리면서 6,70년대 라디오, 80년대 TV, FM방송을 통해 전성기를 맞게 된다.(21~29쪽 발췌)

 

저자의 노랫말 분석에 따르면, 작사가중 박건호와 양인자의 경우 노랫말과 시는 다르다는 전제 속에서 청각적인 요소 내지는 맛에 중점을 두어 '소리로 들었을 때 그 묘미가 살아나는 구체성'을 특징으로 하며, 발라드 전문 작사가 제1세대인 박주연과 이영훈의 노랫말 특징은 '사랑에 대한 담론의 본격화와 구어체적 표현을 통한 현실의 재현'이라고 평가하는데 꽤나 그럴 듯 하다.

특히 저자는 조용필의 노래와 양인자의 노랫말을 사랑하는데 이러한 취향이 나와 같아 반갑기도 하거니와 재작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미국 포크가수 밥 딜런의 내한 공연 소식도 있던 터라 대중가요라고 해서, 또는 B급 문화라고 해서 무시당했던 시절에 모든 폄하받는 것들에 대해 나름의 미덕을 찾는작업을 꿋꿋이 하고 있는 저자같은 사람들의 공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자면 팝송과 발라드를 흥얼거리던 20대를 거쳐 이후 30대를 지나면서 부터는 서서히 뽕짝(‘스탠더드 뽕이라고도 불리우는 슬로우 고고 양식 포함)이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가끔 유투브를 통해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비내리는 고모령과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다던 임방울의 쑥대머리까지도 듣게 된다. 그래서 대중가요는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대중의 감성과 보편적 정서를 쉽게 느낄 수 있는 바로미터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인지 시간을 뒤로 돌려 옛 가요를 들어보면 확실히 우리민족 특유의 슬픔과 체념다시 말해 한의 정서가 가슴에 와 닿는다.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이 책에 나오지 않는 옛날 노래지만 어머니가 좋아하는 봄날은 간다’(1954년 손노원 작사, 박시춘 작곡, 백설희 노래)의 가사 전문이다. 단순한 대구의 묘미와 시적인 내용이 마음에 드는데, 가사를 음미하며 이 곡을 다시 부른 장사익, 최백호나 린의 노래와 같이 들어보니 참 좋다.(다소 청승맞기도 하지만 가슴을 후벼파는 울림이 있다!)

 

이녁은 거기서 편안하시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져가나 보다. 아침에 아버지의 사진액자를 어루만지고 닦으시며, 중얼거리는 어머니. 어머니도 이제는 이 세상 소풍을 끝내실 준비를 하시고 계신지 모르겠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짓무른 눈두덩이...어머니에게도 봄날은 있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꿈 많던 문학 소녀...꽃가마 타고 시집 오던 날, 연분홍 치마 곱게 차려 입었던 새색시 시절이였을까?

 

날 더운디, 술 좀 엔간히 묵고 다녀라!”

언젠가는 이런 잔소리도 그리워 질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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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5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7-05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노래‘는 잘 모릅니다. 가끔 복면가왕이라는 프로는 재밌게 보고 있지만요...
어제 서울올라와서 ‘변산‘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랩 가사가 괜찮더군요. 노랫말이 ‘일상성‘으로 확장된다는 말이 실감이 되더군요. ‘내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게 노을밖에 없다‘는 영화속 시구절도 좋구요.

cyrus 2018-07-05 0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요 트렌드가 변할 때마다 재능 있는 작곡가들이 꾸준히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작사가는 잘 모르겠어요.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작사가는 김이나인데, 향후 몇 년 안에 김이나만큼의 실력을 가진 작사가가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요. 앞으로는 멜로디는 좋은데 노랫말은 좋지 않은 가요 곡이 많이 나올 거예요.

NamGiKim 2018-07-07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인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재 소리 듣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