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부터 페미니즘 관련서를 읽고, 공부 좀 해보자는 생각은 있었으나 늦었다. 천성이 게으른 탓이다. 이 책 <행복한 페미니즘><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의 구판이다. 이참에 맘먹고 동네도서관으로 빌리러 갔더니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이미 대출중이고, 이 책만 덩그라니 남아있었다.(나도 좀 데려가줘~ 꿈벅 꿈벅) 문학동네라는 대형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낸 책이 얼마나 새롭고 충실한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어 <가장 푸른 눈>,<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와 함께 무등 태워왔다.

 

구판이라는 핸디캡 때문인지 번역이 종종 매끄럽지 못한 듯하고, 해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인터넷을 통해 금인숙 교수의 <성의 사회학>이라는 강의도 틈틈이 들었다. 나이 50넘어 내가 이런 열정을 갖고 공부하다니 놀라운 변화다.

 

이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내내 페미니즘은 특히 나 같은 남성에게는 피하고 싶은, 예민한 주제이자 불편한 진실이었다. 또 한편으로 나 역시 가부장제의 희생자였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가장 큰 성과일 터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 사내자식이 왜 그래(또는 왜 울어)?”라거나 남자가 그것도 못해!” 라는 말은 장남이라는 위치와 함께 항상 책임감과 의무감에 짓눌린 삶을 살게 하고 학교와 군대, 직장으로 이어지는 삶의 경로 역시 내면화된 성차별적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가 확대 재생산된 터전이었음을 깨달았다.

 

 

벨 훅스는 과거 페미니즘 운동(공민권 쟁취 및 여성해방투쟁)의 과오를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페미니즘이 단순히 반남성적 여성평등, 해방운동이 아니라 제국주의, 패권주의, 신식민주의 등을 포함한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19쪽)으로 규정하면서 성차별주의의 뿌리에 가부장제가 맞닿아 있음을 역설한다.(벨 훅스는 급진적 페미니스즘 또는 맑스주의 페미니즘 역시 비판한다. 전체적인 기조는 역시 요즘 대세인 에코 페미니즘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운동내부에서 헤게모니 다툼, 인종,계급문제와 관련하여 같은 여성끼리 많은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남녀평등에만 관심을 두고 계급상승 또는 권력추구형 개혁주의 또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 (이몽룡을 사이에 둔 춘향이와 향단이? "춘향이 걔 아무것도 아니야" 거나 "이도령처럼 나도 과거 보러갈테니 방자는 말을 준비하고, 몸종 향단이는 시중을 들거라" 하는 식이다.)에 대한 통렬한 비판.

미국 남부 흑인여성으로서 가부장적인 기독교문화에서 자라온 벨 훅스,그녀의 삶이 순탄치 않았을 것임은 아래의 고백이 없다고 하더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십대에 페미니즘 사상을 받아들인 데에는 우리가족 전부에게 군림하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크게 작용했다. 군대식 사고가 몸에 밴 남자, 운동선수, 교회의 집사, 부양자, 오입쟁이였던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규범을 그대로 체화한 사람이었다. 나는 내 어머니의 고통을 목도했고 반항했다. 엄마는 아빠가 그만큼 엄마를 무시하고 천대하고 폭력을 써대는데도 결코 젠더 불평등의 관점에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지 못했다.”(220)

 

어쩜 우리네 어머니의 삶과 이렇게 닮았을까? 우리 역시 유교적 위계질서의 가부장제하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당했는지는 역사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또 눈을 돌려 현재 동남아 등에서 온 이주 여성들의 고통스런 삶과 피해사례를 보라!) 위에서 가부장제에서의 남성 피해운운하며 엄살을 떨기는 했지만, 솔직히 남성(남근)중심주의속에서 대부분의 남성은 혜택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남성을 페미니즘의 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금인숙 교수의 강의에서도 우리나라 남성학의 대두와 가부장제하 남성의 고통과 피해(‘남자 등쳐먹는 꽃뱀여성 수 세계1라는 부분에서는 빵터졌다.우리나라 남자들 스트레스때문에 일찍죽는다것은 알지만 남성의 고통과 피해에 대해 설명하면서 내민 이런 통계자료는 너무 심하다.)를 적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성과 남성 모두 가부장제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무의식적인 성차별주의와 그에 맞닿아 있는 가부장제. 지배와 복종의 구조인 이 억압과 질곡에서 벗어나 상호이해와 배려, 상호부조의 평화로운 삶을 꿈꾸는 것이 페미니즘운동의 최종목표일 것이다.

 

현실적인 실천방안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페미니즘 실천운동을 통해 정책적인 뒷받침을 이끌어 내고 제도화하는 것일 것이다. 인권감수성 교육처럼 성차별적 인식자각교육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고, 일과 가정의 양립, 근로시간의 탄력적 조정,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임금제도의 개선방안 등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더욱 더 진척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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