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 시인선 375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을이 깊어져서 그러나?...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즈음 부쩍 신파가 땡긴다. 뽕짝의 촌스럽고 단순한 리듬이 좋아지고, 노래가사의 사랑얘기도 절절해 진다.

어머니가 즐겨 보는 '가요무대'까지는 아니어도 배철수가 진행하는 '콘서트 7080'도 챙겨보게 되고  일요일 점심무렵에는 '출발,비디오여행'을 봤었는데 요즘은 가끔 송해 형의 '전국노래자랑'도 보게 된다. 그러다  손에 쥔 시집, 감성폭발 류근 시인의 '상처적 체질'이다. 이 시집제목, 참 신파적이다.  "상처적 체질"이라...알레르기 체질이니, '체질적이니~', '체질적으로~ '하는 말은 들어봤어도 상처적 체질?...아마 마음에 상처를 잘, 그리고 많이 받는 체질이란 뜻이겠지..이런 유리같고 비눗방울 같은 감성이야 어찌 이 시인을 뛰어넘을 수 있을 쏘냐.. 통속적인 감상은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다.
 

류근 시인이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작사했다는 사실은 즐겨보던 '역사저널 그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알게 되었는데,. 이 노래가사를 지은 류근 시인에게는 정말 아픈 사연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터넷을 통해 알수 있었다.

류근 시인은 군 복무시절 사귀던 여자를 선배에게 빼앗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전방GOP근무를 하면서 아침이면 매일 ‘오늘은 죽어야지’ 결심했다가 저녁노을이 밀려오면 ‘하루만 더 살아보자’ 마음 고쳐먹기를 몇 달이나 거듭할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한다 이래서 나온 가사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신춘문예 등단이후 18년만에 나온 첫시집..'상처적 체질'

 

상처를 잘,그리고 많이 받는 체질의 이런 사람은 술을 좋아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참 술을 좋아한다. 나 처럼 혼자서도 술을 잘 마신다. 시 '독작'은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아마도 혼자 술 마시면서 쓴 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원망하고 저주하며 운다.

 

獨酌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사람은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 아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사람은
진실로 작별과 작별한 사람이 아니다

진실로 사랑한 사람과  작별할 때에는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이승과 내생을 다 깨워서
불러도 돌아보지  않을 사랑을 살아가라고
눈 감고 독하게 버림받는 것이다
단숨에 결별을 이룩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아
다시는 내 목숨 안에  돌아오지 말아라
혼자 피는 꽃이
온 나무를 다 불지르고 운다

 

그리고,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이제 내 슬픔은 삼류다.~ 모든 슬픔은 함부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삼류가 된다.'[28쪽,어떤 흐린 가을비] 이러한 깨달음은 쉽게 상처받는 자신의 체질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데,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48쪽, 상처적 체질] 그리하여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낮술 마시는 여자와 독하게 눈 맞아서 저물도록 몸 버려야지 돌아오지 말아야지'[114쪽, 반가사유]이렇게 독한사랑에 취해 살고 싶어 하다 서서히 '태초에 구멍이 있어 세상에 없는 힘.'[132쪽,구멍經]에 이르러 도인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드디어 이제는 모든 사랑을 받아들이는 여유와 관조. 그리고 달관.. 살아갈 힘이 생기는 것이다.

 

너무 아픈 사랑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

다만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사랑에 어찌 앞뒤로 집을 지을 세간이 있겠느냐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결별의 은유로 유행가 가사나 단속 스티커처럼 붙여오면서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왠지, "주~운"하면서 도끼빗으로 앞머리 가르마를 탈 것같은 느끼함과 통속미가 느껴지지 않는가? 비록 제비짓?을 하며 모텔에서 하룻밤을 봉사하고, 뼈다귀 해장국에 소주잔을 털어넣으며, 그녀의 구구절절한 옛사랑 얘기를 들어주고는 택시비를 받아오는 삶..그런 삶을 산다고해서 그에게는 사랑이 없겠는가. 그가 사랑을 모르겠는가. 죽을 것 같은 사랑을 홀로 견뎌 이렇게나마 살아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이제는 '너무 아픈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는 너무 아픈사랑도, 너무 아름다운 사랑도, 너무 추한 사랑도, 너무 더러운 사랑도 없다. 그냥 사랑만 있을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우리 모두의 삶을 견디는 힘인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11-02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람들이 느끼는 사랑은 ‘돈‘ 때문에 아파요. 돈 없어서 사랑을 사치로 여기는 사람이 있고, 돈이 부족해서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람도 있어요. 돈이 중요하긴 한데, 돈 눈치 보면서 사랑을 느껴야하는 상황이 안타까워요.

sprenown 2017-11-02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돈이 웬수죠...자본주의에서의 사랑과 공산주의에서의 사랑.. 사랑의 본질이 달라질까요? 저는 차라리 무정부주의자의 사랑을 꿈꿔요.ㅎㅎ

munsun09 2017-11-02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광석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네요~~

sprenown 2017-11-02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그래서 저도 김광석 노래를 들어봤는데.. 눈물이 글썽..‘너무 아픈 사랑~‘을 젊은 가수 김필, 에일리가 부르는 것을 들어보세요... 저는 정말 뛰어난 가창력과 호소력에 가슴이 먹먹 했습니다..

나무처럼 2017-11-03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나마 시를 읽습니다.
좋습니다.

sprenown 2017-11-03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가을엔 시가 좀 땡기네요..감성적인 노래와 함께.^^
 
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 세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그 연애는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귀족주의 채식주의니 하는 모든 '주의'에 연연하지 않는다.

조선 국적을 지닌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알고 보니 조선 국적을 지닌 재일 조선인이었고,철이 들 무렵부터 히와이를 타락한 자본주의 상징이라고 배웠고, 표지에 마르크스니 레닌이니 트로츠키니 체 게바라 라는 이름들이 적혀 있는 책에 에워싸여 자랐고, 또 알고 보니 학교는 조총련에서 운영하는 민족학교, 즉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거기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절대적인 적국이란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다고 내가 뭐 공산주의 사상에 푹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조선도 마르크스주의도 조총련도 조선학교도 미국도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경에 순응하며 그저 살아왔을 뿐이었다.(15쪽)

 

윗글이 이 소설의 주제다!  한마디로 이주한 나라에서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문제이다.

주인공은 재일교포 3세.. 아버지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일제 징용에 끌려 왔다가 남의 나라인 일본에 정착 했다. 조총련의 활동요원이며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파칭코 경품교환소 운영,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으나 독학으로 마르크스와 니체를 읽어냈음)는 하와이로 여행가기 위해 민단간부와 접촉해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다.(사실은 하와이로 가기위해서가 아니라 주인공인 아들을 위해서 족쇄를 하나라도 풀어주려 한 것이다.)

 

나오키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재기발랄하고 경쾌한 문체를 구사해서 재미있으면서, 한편으론 무지 슬프다.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의 자전적 성장소설로서 밑바탕에 흐르는 핵심단어는 "차별"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났지만 여전히 외국인등록증을 갖고 다니면서..사쿠라이와의 믿었던 사랑을.. 먼저 놔버릴수 밖에 없다. 재일조선인(한국인)의 삶은 이토록 많은 차별과 이지메로 피해의식을 갖고 살수 밖에 없는 것인가?  못난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 자의에 의하지 않고, 남의 나라에 끌려와 먹고, 살기위해 발버둥을 치며 사는 삶...  

강해지기위해, 주인공 스기하라는 젊었을때 날리던 권투선수였던 아버지에게 권투를 배운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의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 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65쪽)

 

 아버지의 영향으로 조선학교에 다니면서 주인공은 항상 약한모습을 보여서는 안되고,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식을 주입받는다. 농구부 코치는 아주 냉정한 말투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우는 놈이 어디있냐. 너희들은 항상 적에 둘려싸여 살아가고 있단 말이다. 적에게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연민을 구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너희들이 패배를 인정한다는 것은 조선인  전체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서 우는 습관을 붙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울고 싶거든 방에 틀어박혀서 혼자 울어라"(183쪽)

 

그리고 그도 역시 한국국적을 취득한다.그렇다고 주인공이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삶의 방편을 택했을 뿐이다.(한국에 첫방문한 날..바가지를 씌우는 택시기사.."한국같은 나라 망해버려라"..라고 생각한다.)일본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김일성 원수의 혁명 역사' 시간에 전날  밤 너무 열심히 공부한 탓에 졸고 만다. 선생이 허벅지를  세번 걷어찼다.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로 아팠다.

 

"넌  민족의 반역자!"라면서 명치를 걷어찼다.

"너 같은 놈은 뭘 해도 안돼"

"넌 매국노야" 라면서 또 따귀를 때렸다.

 

나는 '매국노'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물론 글자의 뜻은 안다.

하지만 내가 매국노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감각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어째서 매국노가 아닌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때 나 대신 내 기분을 표현해 준 녀석이 있었다.

교실 뒤쪽에서 누군가 악을 썼다.

 

"우리들은 나라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 정일의 죽음..그는 소설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혼자서 묵묵히 소설을 읽는 인간은 집회에 모인 백 명의 인간에 필적하는 힘을 갖고 있어."

재미와 감동...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그래도 역시 씁쓸하면서도 슬픈 소설이다. 울컥..하면서 나는 중얼거린다. "아~아, 나의 사랑 한반도여!"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11-01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 시위‘라는 것도 있어요. 군중이 한자리에 모여서 저항의 의미로 책을 읽어요. 한 마디로 말하면 평화적인 무언의 시위입니다. ^^

sprenown 2017-11-0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그런게 있군요..굉장히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시위네요..^^ 저는 묵묵히 소설을 읽겠습니다.ㅎㅎ
 
살고 싶다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이동원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같은 독서초보자는 일단은 무식과 무지의 베일을 벗고, 상식을 찾아야 할 필요성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책의 좋고 나쁨을 따질 안목도 없어, 고전이라고 들어왔던 책이나 책에 대한 안목을 갖춘 권위자의 추천(책 뒷표지의 광고와 추천평에는 속은 적이 많음),또는 각종 문학상 수상작품을 읽게 된다.

 

이 책은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이 상의 권위가 어느 정도 인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군대 갔다온 남자라면 입가에 침버캐가 일도록 과장된 무용담을 씨부리는 군대얘기다. 친근감은 있으나 다소 식상할 듯...그래도 막상 읽어보니 그럭저럭 재밌다. 군병원에서 자살한 친구가 왜 자살할 수 밖에 없었는지 주인공(물론 사병인 환자)이 추적해 가는 내용인데, 그래서 댱연히 추리소설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혹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설정이나 상황묘사, 대화장면 등 몇군데가 어색해 눈에 거슬리긴 하나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고,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이 작가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나 삶에 대한 치열성 등이 느껴졌다.

 

작가소개를 보니 이동원은 1979년 서울태생인데, 웃긴 것은 "군에 입대, 첫날밤에 불침번을 서며 작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루키는 야구장 갔다가 2루타치는 것을 보고 소설가가 되기를 결심했다 하고, 김연수는 하얀 빨래 널어놓는 것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니,요즘 우리작가들은 모두 하루키 따라쟁이가 된 것인지 작가가 된 계기까지도 하루키 따라하기에 바쁜 모양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어떤 계기도 없이 단지 소설이 좋아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면 안되나?

 

책 내용에 대한 얘기는 추리기법인 이 책을 혹시 읽을 사람이 있을 수 있어 생략 하기로 한다. 다만, 작가의 언어적 감각과 재능이 드러나고, 세계관을 나타내는 내용일 듯 싶어 인상깊게 읽은 부분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맛보기로 소개한다.

 

"사람들은 폭력성이 높은 작품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지만 중요한 건 폭력의 강도보다 폭력을 다루는 방식이다. 폭력을 제대로 묘사하면 아무도 그것을 따라 하지 않는다. 맞는 자의 아픔뿐 아니라 때리는자의 아픔까지도 표현되기 때문이다. 반면 폭력이 멋지게 혹은 우스꽝스럽게 그려질 경우 상처와 고통이 있어야 할 자리를 허세와 웃음이 대신한다."(87쪽)

 

"네가 없으면 죽겠다는 사람과는 만나지 마라. 사람은 사람을 채워줄수 없다. 날 채워줄 수 없는 사람에게 나를 채워주길 기대하고 요구하니까 결국은 바닥을 드러내고 메말라 갈라져 버린다.자신이 없으면 살수 없도록 만드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사랑은 상대를 세워 주는 것이다.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생명을 낳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도 사랑은 가슴에 남아 그 남은 생을 살아가게 한다."(110쪽)

 

"'안녕하세요'라...그래,제대한 지 얼마나 됐지?"

 "일주일 지났습니다."

 "얼마 안 됐구만."

 "천지를 창조할 수도 있는 시간인데요."

그가 버릇없는 개를 보듯 나를 노려봤다.그의 옆엔 얌전한 자세로 앉아 있는 그레이하운드가 보였다.그는 내가 그 개 같은 태도를 취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없었다.(288쪽)

 

(우여곡절끝에 군에서 제대한 주인공은 알바하기위해 사극 드라마 촬영현장에 엑스트라로 출연하다가 부당하고, 꼴불견인 상황에서 그 짓을 그만둔다.)

"그런 조그만한 권력에 취해 횡포를 부리고, 그 권력에 빌붙어 다른 동료들을 등쳐먹고 살아가는 모습이 서글펐다. 군대를 나오면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세상은 군대보다 더 험악한 곳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계속 군대에 있고 싶지는 않다."(282쪽)

 

오늘밤, 혹시 군대에 재입대(이 나이에!)하는 악몽을 꾸면 어떻게 하지?

난 여기서 이대로 '살고싶다.'


"차리엇! 열쭈~응 쉬어, 엄살부리지 마라."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 


오늘밤은 옆으로 새우처럼 자는게 좋겠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모마일 2017-10-26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대 가혹행위 의문사는 여전히 벌어지고, 갑질문화도 이슈가 되고 있기 때문인지, 책주제에 관심이 가네요. 폭력이란 뭘까 생각하게 하는 책 같아요

sprenown 2017-10-26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작가가 말한 대로 맞는 자뿐만 아니라 때리는자 역시 아픔을 느껴야 좀 줄어들 것 같습니다.. 물리적 폭력이든 심리적 폭력이든, 개인의 폭력이든 조직이나 국가의 폭력이든..

레삭매냐 2017-10-26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침번을 서다가 작가가 될 결심을 하였다.
그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네요 :>

아직 신인작가이다 보니 지적해 주신 부분
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게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군대 내 자살이라는 소재가
좀 그렇습니다만.

sprenown 2017-10-2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히 제가 무슨 지적질을 하겠습니까만.. 제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요...그러고 보니 마치 평론가인 척 까부는 듯한 표현이 있네요..ㅎㅎ

cyrus 2017-10-27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폭력을 우스꽝스럽게 혹은 멋있게 그려진 것이 조폭 영화에요. 이런 영화가 주는 재미에 뿍 빠진 청소년들은 그게 현실이라고 착각하기 쉬워요. 그래서 영화 속 폭력 행위를 흉내낼 수 있어요. 이런 친구들은 맞는 자의 아픔을 몰라요.

캐모마일 2017-10-27 14:27   좋아요 1 | URL
학창시절 조폭시리즈와 야인시대 나올 때 기억나네요. 학교 일진애들이 따라한답시고 조폭놀이하고 그랬죠. 자기네딴엔 그게 멋있엇는지 모르겠지만 제3자 입장에선 생각없는 양아치짓거리였어요. 사최적으로 모방범죄니 폭력써클 문제도 심심찮게 기사화되었고요. 공감이 가는 댓글입니다.

cyrus 2017-10-27 18:33   좋아요 1 | URL
첫 번째 댓글을 쓰고 있을 때, ‘야인시대‘가 먼저 생각났어요. 제 중2 시절을 제대로 관통한 드라마였거든요.. ㅎㅎㅎ

sprenown 2017-10-27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맞습니다. 소설에서도 드라마 ‘야인시대‘의 폭력성에 대해 지적하는 내용이지요.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내와 함께 아침밥 먹으면서 (휴일엔 언제나 그렇듯이!)막걸리 한잔하고 있는데, 휴대폰 알림소리.. 혹시 어제 올린 '페다고지'에 대한 좋아요 북플인가? 광고 스팸문자다. 만지작 거리다 도서관에서 온 문자를 봤다." 안녕? 주정뱅이! 빌렸으면 반납해야 할거 아냐?" 그래,오늘까지 반납해야 하는구나. 다 읽지도 못했는데..겨우 첫 단편소설 '봄밤' 한 편만 읽었는데... 아쉽다. 그래도 기다리는 예약자를 위해 반납해야지. 마침TV에서 메이저 리그 중계하는데 휴스턴의 알투베가 홈런을 쳤다. 밥먹고 같이 방청소 하기로 했는데, 키작은 알투베가 귀엽다며 유독 좋아하는 아내는 그의 홈런에 숨 넘어갈듯 좋아서 정신을 못차린다. "어이쿠 내가 야구를 가르쳐 주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아내가 TV야구 중계에 푹 빠진 틈을 이용해 도서관에 왔다. 온 김에 그냥 반납하기는 아쉽고, 한편이나마 감동깊게 읽은 '봄밤'에 대해 몇줄 남겨놔야 겠다.

 

사실 난 봄을 좋아한다. 꽃이 피고, 따뜻하고, 포근하고... 배불리 막걸리 마시고,알딸딸해지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내가 읽은 소설 속 '봄'은 너무도 쓸쓸하고,안타깝고,잔인했다.  임철우의 '봄날'도 그렇고, 권여선의 '봄밤'도 그렇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중년판 '소나기'다. 우리 국민 누구나 다들 잘 아는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

순박하고, 우직한 시골소년과 잔망스럽던 윤초시네 손녀딸의 순수한 사랑은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결국 결혼에 실패한 중년의 안타까운 사랑으로 이어진다. 주정뱅이와 앉은뱅이의 사랑...극단적인 상황설정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권여선 작가는 사랑이라는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확장되는 힘이, 그 사랑을 알아주느냐, 몰라주느냐 또는 알면서도 모르는체 하느냐 등 다양한 반응의 밀당 또는 힘 조절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사실감 있는 대화와 묘사,독특한 구성을 통해 작가는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와의 밀당에도 매우 능숙한 듯하다. 이 소설에서 중년 닭살커플의 안타까운 사랑을 증폭시켜  더 눈물겹게 하는 것은 간병인으로 나오는 종우의 사랑얘기다.

 

 "내가 은경이랑 사귀기로 하고 소연이한테 헤어지자고 얘기했을 때,와, 나 진짜 쫄았거든요. 소연이 걔가 막 울고불고할 줄 알았는데 전혀 울지를 않더라고요. 눈은 막 울 것 같은데 끝까지 울지를 않더라고요. 그냥 알았다고, 헤어지자고 그러는 데 혹시 얘가 그동안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었나 싶어서 겁나기도 하고 또 징징거리지 않아서 잘됐다 싶기도 하고, 암튼 이상했어요.집에 간다길래 택시를 잡아주려고 서있는데 갑자기 얘가 코피를 쏟는 거예요. 난 세상에 그렇게 무섭게 코피를 쏟는 거는 처음 봤어요. 그 밤중에, 아무짓도 안했는데 코피가 그냥...."(38쪽)

 

'가끔 영경의 눈앞엔 조숙한 소년 같기도 하고 쫓기는 짐승 같기도 한, 놀란 듯 하면서도 긴장된 두개의 눈동자가 떠오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종우가 대체 무슨 일이냐고, 왜 그러느냐고 거듭 묻는데도 영경은 오랜시간 울기만 했다.' (끝문장- 39쪽)

 

아픈 사랑얘기다. 감동적이다.오랜만에, 책읽는 도중 인공눈물이 필요없는 소설 한편 읽었다. 나이들수록 사랑이 왜 이리도 절절해 지는가? 황지우 시인의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 가 떠오른다. 지금쯤 아내는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내와의 행복한 중년을 계속 즐기기 위해서는  바로 이 자리에서 이제는 일어나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7-10-22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정현이군요^^: 1989년의.

sprenown 2017-10-24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조정현의 노래제목에서 따온건데, 원래 제목은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군요...저는 ‘할 거야‘고.. 거기서 거기지만...이 아픈사랑를 이렇게 끝내기보다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담아 그대로 두겠습니다.^^ 저 자신의 의지도 반영할 겸..ㅎㅎ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 전 돌아가신 종횡무진 인문학자 남경태 선생이 옮겼다. 이 책은 브라질 빈민가에서 태어나 실천하는 지식인의 전범을 보여준 파울로 프레이리의 혼이 담긴, 전설같은 책이다.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는 농활,공활,위장취업, 노조건설 투쟁,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의 현장에서 의식화 교재로 많이 읽혀졌던 금서였었다.(나는 당시 워낙 겁이 많은 범생이여서 이 책 구경도 못해 보았다.)

 

지금 이시점에서 과연 이 책이 시의성이 있고, 읽을 가치가 있는가? 남경태 선생은 당연히(옮긴이니까!)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할 테고,이 책 말미(219쪽)에 붙어있는'왜 지금 페다고지를 다시 읽어야 하는가'라는 심성보 부산교대 교수의  해제는 지금에도 이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는데 매우 타당하다.  "군사정부 때보다 물리적 억압이 상당히 사라지고 절차적 자유를 다소 누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진정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사회엔 아직도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빈곤이 여전하고, 폭력적 제도와 관행이 우리의 삶을 옥죄고 있다. 또한 억압을 억압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암울한 현실을 체감하지 못하게 조작하는 침묵의 문화... 또한 대화를 가로막는 시장적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 보다 높은 차원의 진보적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222쪽)

 

그러고 보니 이 책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도 그린비 출판사에서 2002년 5월 초판 1쇄를 발행한 이후 2016년 3월에 2판 9쇄를 발행하고 있는 걸 보니 꾸준히 찾아 읽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다.그리고 이 책이 고전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지금도 억압의 메카니즘은 정교하게 작동되고 있어 약자는 여전히 억압을 받고 있다는 현실과 함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파울루 프레이리의 생생한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민중들의 이야기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낮은 자세에서 경청하는 그의 교육철학이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페다고지'는 200여쪽의 얇은 책이지만, "제1장의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의 정당성에서부터 제2장 억압의 도구로 이용되는 '은행저금식' 교육개념, 그 전제와 비판과 문제제기식 교육개념을 통한 교사-학생모순의 해소, 제3장 대화:자유를 실천하는 교육의 본질,'생성적 주제'의 탐구를 통한 비판적 의식의 자각, 제4장 반(反)대화와 대화: 억압도구로서의 반대화와 해방 도구로서의 대화, 대화적 행동이론과 그 특징: 협동,단결,조직,문화 통합" 에 이르기까지, 교육학, 철학, 사회학, 해방신학, 역사학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아리스토텔레스,헤겔,루소, 마르크스,알튀세,루카치,파농,모택동,체게바라 등 역대 철학자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결코 쉽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

 

이 책에서의 핵심개념과 인상적인 글에 대해 언급해보면, 억압(oppression)은 폭력을 유발시키는 부당한 질서가 내면화된 결과다. 이는 억압자와 피억압자 양쪽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인간화의 총체이자 '길들이기'다. 이런 비인간화의 길들이기에 순응하지 않고 의식의 눈을 떠 자신을 찾는 것이 바로 '의식화'다. 사람이 억압의 힘에 더 이상 먹이가 되지 않으려면 거기에서 탈출해 그 힘에 항거해야 한다. 그래서 의식화는 '현실을 변혁시키는 힘'이 된다.그러나 투쟁초기에는 억압자의 '허구적 관용'에 속아 피억업자는 해방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억압자'나 '아류 억압자'가 되기위해 노력한다. 즉,소작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소작인들은 지주밑에서 마름의 역할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나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더 낮은 임금으로 도급을 받을수 밖에 없더라도 건설현장의 십장이 되기를 바라거나 이윤극대화를 위해 동료의 노동강도를 감시하고, 고용주의 이익에 부합되는 근로조건을 획책하는 공장의 조장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억압자는 억압자의 본질과 정체를 알고 해방을 위한 조직적인 투쟁에 참여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얻고, 이러한 모순된 노동에서 해방된다. 이 깨달음은 순전히 지적인 것만이 아니라 행동에 참여 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나아가 단순한 행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성찰을 병행해야만 참다운 의미의 '프락시스(praxis)'가 될수 있다. 또한  행동이 순수한 실천으로 간주되려면 그 행동의 결과가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며 그런 뜻에서 '프락시스 '는 피억업자의 새로운 존재근거이다. 여기서 프락시스(praxis)는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실천으로 번역할 수 있는 practice와 동일한 어원을 갖지만, 실천이 이론없는 행위로 협의화하는 것을 막고, 성찰과 이론이 부재한 행위(action)와 차별화 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로 '이론적 실천'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프레이리는 교육의 실천방법으로 학생과의 대화와 토론이 생략된 채, 권위적인 교사의 일방적 설교식 수업에 따라 받아쓰고, 암기하고, 반복하는 '은행저금식 교육'에서, 교사가 항상 학생들을 배려하며 대화하고 자신의 성찰을 재형성하는, 그래서 인간과 세계를 결합시키는 문제인식을 갖도록 하는, 이론적 실천의 교육인 '문제제기식 교육'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강조한다.이러한 변혁을 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비판의식을 가질수 있고, 결국에는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의 열린사회로 갈수 있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수십년간의 군사독재 정부하에서 억압적인 병영식 교육을 받아 왔다. 그래서 반복적 암기와 세뇌교육을 통해 체제순응적인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의 삶에 대해 비판적으로 반성할 수 있었다는 점과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일에 대해서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에서 나름 의의가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문자해독 교육 부분을 읽다가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글을 읽지 못했던 그녀들(할머니 세대)은 아마 우리사회에서 가장 억압받았던 약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봉건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등이 굽었던 할머니... 그 검게 주름진 얼굴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가만히 다가가,너무 고생하셨다고,...미안 하다고... 마디 굵은 손을 잡고 싶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까망돌 2018-04-28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