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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을 고백하자면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제대로 읽어 보려 도서관에서 그의 책을 찾다가 우연히 읽게 된 소설이다.
“졸라 문학의 서막, 자연주의 문학의 서설,
해부학자가 시체를 해부하듯 인간영혼의 광기와 공포를 해부한다.“
위와 같이 책 뒷면의 졸라 사진 밑에 소개된 글처럼 졸라가 자연주의 문학의 기본요소인 인간의 추악한 면과 더러운 본능, 그리고 광기를 소름끼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또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 할 정도로 ‘졸라’ 재밌다.(탐정·추리소설 저리가라다. 그래서 혹시 읽지 않은 사람을 위해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기로 한다.)
책 뒷면의 작가연보를 보면 이 소설은 졸라가 27살때인 1867년에 발표했는데 그 전해인 1866년 ‘기성 대가를 비판하고 마네,피사로,모네,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을 지지하는 평론을 발표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전부터 세잔을 만나 이들 인상파들과 교류가 있었던 것이다. 눈치 챘겠지만,이런 내용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소설속의 인상적인 장면이 마네의 《올랭피아(1865년 아카데미 살롱 출품)》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첫 관계에서 테레즈는 창부의 기질을 드러냈다. 충족되지 않은 그녀의 육체는 끝간 줄 모르고 쾌락에 빠져 들었다.그녀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했다. 이제 비로소 정열을 가지고 탄생한 셈이었다. 히스테릭한 여성의 온갖 본능이 말할 수 없이 난폭하게 터져 나왔다. 그녀의 어머니의 피, 그녀의 혈관을 태우는 아프리카의 피가 여윈 그녀의 육체, 아직도 거의 숫처녀 같은 그녀의 육체 속에 사납게 흘러 맥박 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녀는 몸을 펴고 누워서 말할 수 없이 추잡하게 육체를 드러내 놓았다.”(55쪽)
마네의《올랭피아》가 당시 부르주아들의 가식과 속물근성, 허위의식을 조롱하듯 노려보는 맨몸의 매춘부 때문에 비난과 논란이 많았듯이 졸라도 이 작품이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평론가들의 호된 비난과 혹평을 받았던 모양이다. 서문에 이에 대한 졸라의 분노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사실 결말을 보면 ‘권선징악’이라는 도덕적 가치가 훼손되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아무것도 이해하기를 원치 않으면서, 공포에 사로잡힌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펀치를 날리라고 말하기만 하면 언제든 펀치를 날린다. 죄도 짓지 않았는데 두들겨 맞는 것은 화나는 일이다.”
강가에서 뱃놀이를 가장한 살인장면은 어릴 때 보았던 추억의 영화 장면들을 떠오르게 하는데,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의<젊은이의 양지>와 르네 클레망 감독, 알랑 드롱 주연의<태양은 가득히>가 그것이다.
이 소설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시간의 흐름과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다.
“카미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강물로 떨어졌다. 그는 두세 번 물 위로 떠올랐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외침은 잦아들고 있었다. 로랑은 잠시도 주춤하지 않았다. 한팔로 기절한 테레즈를 안고 발로 한번 툭차서 배를 전복시키더니 정부를 껴안은채 그대로 센 강에 몸을 던졌다. 그는 테레즈를 물 위에 쳐들고 처량한 소리로 사람 살리라고 외쳤다. 좀전에 노래를 부르며 지나갔던 보트들이 소리를 듣고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95쪽, ‘좀전에 노래부르며 지나갔던 보트’에서 카미유의 고래고래 소리는 듣지 못했다?)
정욕과 돈에 눈이 멀어 완전범죄를 꿈꾸는 자들...요즘도 심심치 않게 내연의 애인과 공모해 배우자의 재산과 보험금을 노린 범죄가 보도되는 것을 보면, 이 소설을 통해 졸라는‘인간이라는 동물’에 냉정한 모습으로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그는 확실히 천부적이고 천재적인 문학의 ‘외과 의사’다. 그리고 사회의 어둠을 형형한 눈빛으로 응시하는 예리한 눈을 가졌다. 마치 고양이처럼,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