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푸른 눈
토니 모리슨 지음, 신진범 옮김 / 들녘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93년 미국 흑인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첫 번째 소설이다. 250페이지도 안되는 소설이지만 읽어내기가 만만치는 않다. 화자인 이웃집 소녀 클라우디아의 시점과 작가의 시점이 혼합되거나 교차되고, 일상대화와 묘사, 서술이 지적인 문체로 혼재되어 있어서일 것이다.

 

이 소설은 책 뒤쪽의 작가후기에 밝혔듯이, 작가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한 아이가 푸른 눈을 갖고 싶다고 한 말 때문에 쓴 작품인데 왜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는지, 또한 왜 그렇게 불가능한일을 바라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초등학교 갓 입학한 그 어린나이에 그 말을 기억하고 창작동기로 삼았다고 하니 위대한 작가의 감수성과 능력은 타고난 것인가 보다)

 

소설은 가을, 겨울, , 여름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을과 겨울의 쇠락과 침잠(아버지의 폭력으로 클라우디아 집에 오게 된 피콜라와 그녀의 가족이 사는 집에 대한 묘사 등)을 거쳐 봄, 여름으로 넘어오면서 이야기의 서사 구조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작가는 1960년대의 인종차별 철폐(또는 블랙파워) 운동이라는 정치적 조류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나, 단순히 백인의 악행이나 인종차별에 대한 고발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소설은 거의 흑인가정 또는 사회의 폭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렇게 비정상적인 폭력성이 어디에서 연유하게 되었는지 등장인물의 성장배경 및 특이한 차별, 폭력경험(또는 그 경험의 체화)에 대한 서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 인종 전체를 귀신들리게하는 무엇인가가 사회의 가장 여린 구성원인 어린이, 그 가운데서도 가장 상처받기 쉬운 소녀에게 어떻게 뿌리내리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작가 후기 피콜라에게 경의를.....’ 245)

 

여기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은 거의가 다 태어나서부터 결핍의 경험을 겪었고, 폭력이 일상화 된 인물들이다. 어린 친딸 피콜라를 성폭행하여 임신하게 까지 한 아버지 촐리를 보자. 그는 태어나고 나흘이 지났을 때 그의 엄마는 그를 두 장의 담요와 신문지에 싸서 철로변에 있는 쓰레기 더미에 내다버렸다. 그리고 자라서는 소년시절 풀밭에서 첫 경험을 할 때 총을 들고 손전등을 비추면서 비웃고 멸시하는 백인들(이들이 '사냥꾼'이라는 설정은 상당히 상징적이다!)에게 한마디 저항도 못하고, 오히려 상대 소녀에게 분노와 증오를 나타낸다.

짜증이 나고 초조해진 그는 달린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갔다. 한번도 자신의 분노를 그 사냥꾼들에게 돌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일 사냥꾼들에게 분노의 감정을 가졌다면 그는 파멸했을 것이다. 그들은 어른이었고 백인이었으며 무기까지 있었다. 반면에 그는 어린 흑인이었고 무력한 존재였다.(179)

 

이런 무기력하고, 무능했던 경험은 문신처럼 그의 무의식 깊숙이 뿌리내리게 되는데, 소설 후반부 술 취해 그의 딸 피콜라를 강간할 때도 그가 느낀 감정의 순서는 혐오, 죄의식, 연민 그리고 사랑이었다. 그의 혐오는 어리고 무기력 하고 희망없는 딸의 모습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는 딸의 목을 부드럽게 부러뜨리고 싶었다. 죄의식과 무능함에 대한 인식이 불협화음을 내며 삐걱거렸다. 도대체 그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191)라는 서술을 통해 드러난다.

 

한편, 피콜라의 엄마 폴린. 그녀는 열한 명의 아이들 중 아홉 번째였고, 두 살때 녹슨 못을 밟아 비틀리고 평평한 발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 그녀는 늘 발 탓을 했다(134) 결혼하고 나서는 게으른데다, 주정뱅이인 남편 촐리와 하루가 멀다하고 싸운다. 그것도 매우 폭력적으로.

 

이런 비정상적이고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비참한 가난, 학교에서의 놀림 등은 피콜라에게 백인 인형, 셜리 템플컵, 메리 제인 사탕, 백인배우 출연영화 등 백인지배문화가 설정한 미의 기준에 따른 문화상품들을 선망하게하고, 급기야 눈을 푸르게 해주세요라며 미쳐가는 것이다.(작가는 의도적으로 각 장의 첫 부분에 띄어쓰지 않는 불완전한 문장을 삽입하여 기형적이고 부조리한 흑인의 삶을 블루스 곡으로 연주하는 듯 하다)  

 

여전히 와스프( White Anglo-Saxon Protestant,WASP)가 주류 지배계급으로 득세를 하고 있는 미국사회.눈에 보이지 않은 차별과 무의식적인 우월감과 편견. 이 슬픈 소설은 그들에게 날리는 말벌의 따끔한 침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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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8-03-2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읽었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셔서 잘읽었어요. 제겐 토니 모리슨 책은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사실은 가슴으로는 잘 와닿지 않았던 기억이 나는 씁쓸한 독서였던 거 같아요^^ 따뜻한 주말 입니다~~

sprenown 2018-03-25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고맙습니다. 즐겁고 편안한 휴일되시길...

레삭매냐 2018-03-26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토니 모리슨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술라>를 읽었고, 지금은 신간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를 읽고 있습니다.

여전히 흑인들에게 주류사회 진입은 요원
한 문제가 아닐까요...

재출간되고 있는데 <가장 푸른 눈>도 새로
번역이 돼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