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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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출생했는데 톨스토이가 1828년에 태어났으니 톨스토이보다 7살 형이다. 근데 톨스토이가 더 나이가 많은 이미지로 기억되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인터넷이나 책날개에서 접하는 그들의 사진 때문일 것이다. 흰수염에 인상쓰고 있는 만년의 톨스토이 이미지가 강하다.

 

이 책은 열린책들에서 20083102쇄로 발행한 것인데, 싼값에 고전을 널리 보급하고자 하는 출판사의 의도 때문이겠지만 430여 페이지로 상당한 부피인데도 정가가 7,800원으로 저렴하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아쉬운 점은 줄 간격이 너무 좁아 글이 빡빡하다. 읽다가 토나올 뻔 했다! 게다가 작품 발표순서상 [가난한 사람들]이 먼저 오고, [분신]이 나중에 와야 할 것 같은데 표지의 제목 순서를 바꾼 이유는 뭘까? (책 본문은 위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분신]을 알리려는 의도일는지...)

 

 

[가난한 사람들]

 

중년의 하급관리 제부쉬낀(마까르 알렉세예비치)과 병약한 처녀 바르바라(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사이의 편지글 형식의 소설이다. 서간체 소설은 독일에서 요한볼프강 폰 괴테가 1774년 발표한 [젊은 베르테르(베르터)의 슬픔(고뇌)]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자, 이에 힘입어 프랑스에서도 1782년에 쇼데들로 드 라클로가 [위험한 관계]를 출간하여 상당한 재미를 본 소설양식으로, 도스또예프스끼도 그 유행의 끝물에 편승한 듯 하다. 공병학교 졸업후 그의 나이 24세인 1845[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여 러시아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한 것이다.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먼 친척뻘 되는 처녀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편지에 플라토닉한? 사랑고백을 하거나 관청에서의 일이나 주변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는다는 것은 남사스럽고 사삭스럽다. 러시아 소설의 인물들은 왜 이리도 수다스러운지... 첫편지에서 부터


더없이 소중한 나의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 당신 창문의 커튼 끝자락이 접혀 봉선화 화분에 걸쳐져 있더군요. 바로 그때 당신의 얼굴이 창가에 어른거린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제 방쪽을 보시며 제 생각을 하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소중한 당신, 하지만 당신의 고운 얼굴을 똑똑히 볼수 없어서 저는 얼마나 골이 났었는지 모릅니다! 소중한 나의 아가씨, 제게도 모든 걸 훤히 잘 볼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답니다.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러운 일이지 뭡니까!”(13) 결말부분에서는 바르바라가 맘에 들지 않지만 가난 때문에 시골 지주에게 시집가버려 결국은 닭쫒던 개보신탕 신세가 되긴 했어도 결혼준비를 위한 망사레이스, 주름장식 등 온갖 심부름을 다해주고도 마지막 편지에 나의 친구여 ,안녕히. 행복하게 사셔야 해요. 건강하시고요. 저는 언제나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192)라며 소갈머리없는 소리나 해대는 것이다. 어찌보면 정말 대책 없이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이들이 사는 집안구조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몇 개의 (하숙)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 한데, 우리 소설 김원일의 소설[마당깊은 집]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들 모두 가난하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가난과 궁핍을 주제로 한 빈궁 소설은 우리문단에서는 1925년 최서해의 [탈출기]를 필두로 주로 자연주의 문학에서 흔히 다루어 진다. 외국소설로는 작년에 인상깊게 읽은 에밀졸라의 [제르미날]도 그렇고, 도스토옙스키로부터 영감을 받은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에서도 그렇다.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니잖습니까.”(155) ‘가난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대립구조. 자신도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도 더 불쌍한 사람을 위해 자선을 베푸는 선행. “아내도 아이들도 굶고 있습니다.10꼬뻬이까짜리 은화 한 닢이라도 좋습니다. 제게 남아 있던 돈은 20꼬뻬이까가 전부였고, 내일 꼭 필요한 것을 사려고 둔 돈이었죠.~ 저는 서랍에서 20꼬뻬이까를 꺼내서 그냥 다주어 버렸습니다. 나의 소중한 이여, 좋은 일 아닙니까! 에이, 빌어먹을 가난 같으니라고!"(161)

 

또한 도스토 옙스키의 성향이 반영 되어서이겠지만 가난하면서도 이들의 책과 문학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이 소설에서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르바라의 수기에서 가난한 뽀끄로프스끼와의 순수한 사랑얘기, 그리고 죽은 뽀끄로프스끼의 장례식에서 그의 아버지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마부가 속력을 냈다. 노인이 그 뒤를 쫒아가면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옷에 달린 주머니에서는 온통 책들이 비어져 나왔다. 그가 내내 꼭 쥐고 있던 커다란 책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다. ~ 그의 주머니에선 계속 책들이 빠져나와 진흙탕 속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멈춰 세우고 떨어뜨린 물건을 가리켜 보였다. 그는 그것을 주워 들고 다시 관을 쫒아 달렸다.”(72,73)

아버지는 아들이 좋아하던 책들을 끝까지 지키고, 챙기려 했던 것이다. 마치 책들이 죽은 아들의 분신인 것처럼.

 

[분신]

 

도스토 옙스키의 아버지는 자선병원의 의사였다. 당시의 의사들은 대부분 내,외과를 담당한. 이때에는 당연히 정신과 전문의는 없었을 것이니까.도스토 옙스키가 앞서 [가난한 사람들] 성공에 고무되어 이듬해인 1846년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인 9등 문관 야코프 뻬뜨로비치 골랴드낀이 서서히 미쳐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익숙한 이야기 구조다. 가만보니 1835년 발표한 러시아의 작가 고골리의 일기체 소설 [광인일기]와 비슷하다. [광인일기]의 내용은 자신이 9등문관이란 미약한 하급관리가 아니고 에스파냐의 국왕이라고 공상함으로써 현실의 굴욕감을 극복하려고 한다. 주인공의 수기라는 형식을 통하여 관료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함과 아울러, 광기와 착란의 세계에서밖에 살 수 없는 하급관리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이 1918년 발표한 소설제목도 [광인일기]. 루쉰이 고골리의 [광인일기]에서 모티프를 얻어 수기 형식으로 쓴 것으로서 광인의 심리를 빌어 가족제도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유교사상의 봉건적 모순을 인간본능의 공포감으로 폭로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E.H.Carr의 [도스또옙스키 평전]을 읽은 적이 있다. 도스또옙스키는 간질환자에 심각한 도박중독자다. 천재의 광기이겠지만, 의식분열과 심리적 불안이 그의 거의 모든 소설에 반영되어 있다. 오늘의 위대한 작가 도스토 옙스키가 탄생하게 한 일등공신은 첫 번째 아내가 죽고, 시베리아 유형 경험이 녹아 있는 [죽음의 집의 기록] 발표한 후[ 죄와 벌]러시아 통보에 연재하면서 [악령]도입부를 쓰던 45. 여전히 도박에 빠져 소설 쓰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고용한 속기사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스니뜨끼나. 이 여자 정말 대단하다. 이 중증 도박중독자의 아내가 되어 그가 구술한 소설을 속기하면서 도박자금도 대준다. 도스토 옙스키는 아내의 희생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나중에는 도박을 끊는다항상 돈에 허덕이는 도스토 옙스키를 위해 직접 인쇄, 출판까지 하면서 말년에는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도입부 역시 골랴드낀이 내과 및 외과 전문의 끄레스찌얀 이바노비치 루쩬쉬삐쯔에게 정신상담을 받고 약을 받아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날부터 4~5일간의 골랴드낀의 생활과 체험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집에 가는 길에 자기와 똑 닮고, 이름도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도플갱어’<현대 정신의학 용어로는 오토스카피 (Autoscopy : 자기상 환시)>. 황당하고, 환장할 상황이다. 주위사람들의 반응은 더 미치게 한다. 나만 바보가 되는 기분. 마치 악몽을 꿀 때 귀신에 쫒기는 상황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답답함, 안타까움이라고 할까? 그러니 갈수록 광증이 심해진다.

 

형편없는 몰골, 잔뜩 흥분한 모습, 어지러운 손짓, 공중에다 대고 정신없이 중얼거리는 알아들을수 없는 말들.~ 탁자 위에는 누군가 방금 식사를 했는지, 더러운 접시와 입 닦은 휴지, 그리고 이미 사용한 칼,포크,숟가락 등이 널려 있었다. 우리의 주인공은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먹고 난 흔적일까? 난가?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모르게 식사를 한 거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눈을 번쩍 치켜뜬 골랴드낀 씨는 옆에 서서 뭔가 말하려던 종업원을 보았다. 여보게, 내가 얼마를 내야 하지?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골랴드낀 씨 주위에서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365,366)

 

이런 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은 대개 관료제사회의 경직성과 부정직함,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산업사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의 귀족과 부르주아의 허영심 또는 무지한 민중에 대한 풍자거나 착하고, 순수한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주제로 삼는다. 이 소설은 도스토 옙스키가 상당한 기대를 하였으나 당시 평론가와 독자들에게 혹평을 받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나는 꽤나 흥미있게 읽었다. 게다가 이 소설을 그의 작품목록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유는 나중에 그의 위대한 대작들을 위한 자양분 또는징검다리가 되는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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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4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2-14 0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그렇더군요 이름읽다가 ‘미취~어‘ 버린줄 알았습니다.ㅎㅎ 설명절 잘쇠세요!

cyrus 2018-02-1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장인물 이름에 휘말리지 않는다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전 아직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분신>이에요. ^^

sprenown 2018-02-1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도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죄와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청소년을 위한 요약본으로 읽은것 같은데 언젠가는
제대로 완독하고 싶군요^^
 
돼지들에게 - 2006 제5회 이수문학상 수상작
최영미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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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문단 성추행,성폭력 등과 관련해서 최영미 시인이 인터넷에 자주 등장한다. 흥미롭게 검색은 해보았지만 사실관계나 최영미 시인의 인간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무지한 내가 뭐라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투운동이 확산되어 우리 사회에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더이상 고통과 피해를 받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때마침 뒤져보니 집에 사다놓고 읽지 않은 그녀의 시집 [돼지들에게]가 있어 펼쳐봤다. 이번 사태를 접하고 나서 표제작인 '돼지들에게'를 비롯한 돼지연작을 읽어보니, 우리사회의 허위와 탐욕을 은유와 알레고리로 풍자한 것이라는 일반적인 평보다 문단 성폭력문제를 훨씬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돼지들'이여 각성하라!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

돼지에게 진주를 준적이 잇다. 

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 

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

~

언제 어디서였는지 나는 잊었다.

비를 피하여 들어간 오두막에서 

우연히 만난 돼지에게(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나도 몰래 진주를 주었다.

앞이 안 보일 만큼 어두웠기에 

나는 그가 돼지인지도 몰랐다.

~

그날 이후 열 마리의 배고픈 돼지들이 달려들어 

내게 진주를 달라고 외쳐댔다.

~

나의 소중한 보물을 지키기 위해 나는 피 흘리며 싸웠다.

때로 싸우고 타협했다. 두개를 달라면 하나만 주고

속이 빈 가짜 진주목걸이로 그를 속였다.

~

그들은 내게 진주를 달라고

마지막으로 제발 한번만 달라고...

- <돼지들에게> 11~15쪽


그는 자신이 돼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훌륭한 양의 모범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신분이 높고 고상한 돼지일수록 이런 착각을 잘한다.


그는 진주를 한 번 보고 싶었을 뿐,

두번 세번 보고 싶었을 뿐.....

만질 생각은 없었다고 

해칠 의도는 더더군다나 없었다고 

자신은 오히려 진주를 보호하려 왔다고.....


그러나 그는 결국 돼지가 된다.

그들은 모두 돼지가 되었다.

-<돼지의 본질> 24쪽



[서른, 잔치는 끝났다]이후 그녀의 시세계는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예술가적 기질 때문이겠지만 그녀는 무척 예민하고,자아가 강하며,정직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한편에선 사회성이나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하겠지만... 얼마전에 읽은 톨스토이 소설[안나카레니나]에서 귀족사회의 가식과 허위를 못견뎌 하는 '레빈'이나 '안나' 와 닮은 구석이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에게는 "산다는 것이 내게 치욕이다. 시는 그 치욕의 강을 건너는 다리 같은 것.내가 왜 어떤 항구에도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방랑자가 되었는지,돌아갈 고향이 없는 나그네처럼 떠돌았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들을 나직이 풀어놓을 힘이 내게 남아 있으면 좋겠다"(<바람 부는 날.의 시작 노트>.51쪽) 는 고백처럼 세상살이에서 겪는 고독과 치욕이 클수 밖에 없으며 이들에게는 삶이란 '시쓰기'로 간신히 버텨가는 고통의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서른, 잔치는 끝났'음에도 여전히 허위와 가식에 찬 인간과 세상에 대해 "그처럼 당연한 일을 하는데 그렇게 많은 말들이 필요했던가 박정희가 유신을 거대하게 포장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논리를 과대포장했다 ~관념으로 도배된 자기도취와 감상적 애국이 종이로 인쇄되어 팔리는 이것이 진보라면 밑씻개로나 쓰겠다 아니 더러워서! 밑씻개로도 쓰지 않겠다"(<시대의 우울>93쪽)라며 세련되지 못한 저주를 퍼붓고, 사랑과 믿음에 배신당한 스스로를 일깨운다.


또한 지치고, 나이들어 상처에 굳은살이 생기면서 "잔치가 끝난 뒤에도 설거지 중인 내게 죄가 있다면, 이세상을 사랑한 죄 밖에...한번도 제대로 저지르지 못했으면서 평생을 속죄하며 살았다."(<세기말, 제기랄>55쪽)고 되돌아보며 자책하다가  "나 또한 그처럼 어리석었으니, 재능은 발자크에 못 미치나 어리석음에서는 그에 못지않았다. 다시 살아야겠다. 써야겠다. 싸워야겠다."(<발자크의 집을 다녀와>79쪽)라며 여전히 서툰 시로나마 삶에의 투쟁의지를 이어갈 것임을 꿋꿋한게 다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성폭력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위의 다짐과 각오처럼 최영미 시인이 앞으로도 더욱더 열심히 시를 쓰고, 상처를 이겨내 앞으로는 그녀의 시세계가 보다 웅숭깊고,여유로워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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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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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자비필고 (伏久者飛必高)"라는 말은 중국 명나라 말기에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에나오는데  오랫동안 엎드려 (움츠리고) 있는 자(새)는 반드시 높게 난다는 뜻이다. 고시생들이 책상 앞에 붙여 놓는 경구로도 많이 쓰이는데 문득 이 말이 생각난 이유가 있다. 요즘 고전을 읽으면서 긴호흡의 독서를 묵묵히 하면서 '독서의 힘과 생각의 근육'을 키우자는 본래의 의도와 달리, 갈수록 심드렁해지면서 독서속도가 추~욱, 쳐진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다 높이날기는 커녕 너무 오래 엎드려 있다보니 침흘리며 잠들어버린다는 것. 고시낭인이 이래서 생기는 구나. 아아, 그렇다. 긴호흡이 필요하긴 하지만 계속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이 말은 주식투자에도 적용되는 모양인데, 제는 움츠리면서 힘을 비축했는지,아니면 날 기력이 없어서 주저앉아 있는 것인지 구별하는 현명한 눈이 필요하다.

아무튼, 소설로 돌아가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게 된 레빈과 키티도 처음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독신시절에는 남의 결혼생활을그 자질구레한 걱정과 입씨름질투 등을 보면 그는 마음속으로 그저 얕잡듯이 미소지을 뿐이었다그는 장차 자신의 결혼생활에는 그와 같은 일들은 결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외적인 형식가지도 남들의 생활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러나 놀랍게도 그와는 반대로 자기와 아내의 생활은 남다르게 짜여지기는커녕 오히려 모든 면에서 그가 이전에 그렇게 경멸하였던 아주 하찮고 자질구레한 일들로 짜여져 있었다”(2권 제5부 474)라는 남편 레빈 입장의 서술에서 보듯 결혼생활은 질척질척한 현실인 것이다.

알콩달콩한 신혼초최초의 입씨름은 레빈이 30분 정도 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 키티는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게 아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리거나 레빈이 혼자 아픈 형에게 갈려고 할 때 그럼 어째서 당신은 결혼 같은 것을 했어요자유로운 몸으로 지내시지.... 이제와서 후회할 바에야?... 라며 훌쩍거리는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하더라도 현실의 결혼생활에서 부부싸움이 이 정도라면 귀여운 애교에 불과하다.

소설을 읽다보니,첫문장에서 그랬듯이 이야기 서술구조나 인물, 사상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대구나 대조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교묘하게 직조해 나가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귀족과 민중(농노,농부) , 인물 상호간의 성격이나 성향, 복수와 용서행복과 불행무신앙과 신앙 등과 같이 대구 또는 대조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수 있다예를 들어 안나의 오빠인 오블론스키라는 인물을 봐도 그는 안나와 달리 매우 현실적이면서 능청스럽다. 그러면서 바람기는 다분한 인간이지만 파경에 이르지는 않을 정도로 얍삽하다.(그의 비하면 아내 돌리는 안나의 본능에 충실한 사랑을 부러워하다가도 자식생각을 하며 가정으로 돌아간다)

동생안나가 산욕열로 사경을 헤맬때도 그의 바람기는 계속된다.“공작부인 벳시를 현관까지 배웅하고 다시한번 그녀의 손에,장갑위로 맥이 뛰고 있는 손목 언저리에 입을 맞추고 그녀가 성을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라할 만큼 쑥스러운 농담을 퍼붓고 나서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누이방으로 들어갔다그는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금방이라도 기뻐 날뛸 만큼 즐거운 기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이내 자연스럽게 그녀의 기분에 맞춰 감상적이고 동정어린 분위기로 표변했다.”(4부 372

이들 남매는 오빠가 바람피워 어려움에 처할 때 동생안나가 도와주고안나가 부정을 저질러 곤경에 처할 때는 오빠 오블론스키가 도와 준다.피는 못속인다 했던가바람둥이 집안이다에밀졸라식으로 말하면,이런 바람기는 유전인 것이다반면 안나남편 카레닌은 그에게 호감을 갖고 덤비는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에게 어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쑥맥이다그에게는 모든 여자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는 두렵고 징그러운 존재였다”( 5527)

또한 대구구조는 레빈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 주는 스비야쥐스키와 상심에 젖어있던 키티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바레니카를 통해서도 나타나는데, 이 부분에서 톨스토이는 인간의 성숙에는 고통과 함께 교육의 중요성과 이러한 정신적 스승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소설에서의 이러한 대구 또는 대조구조는 감정과 이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드러난다브론스키가 지방자치 선거회의에 참석할 때 그의 눈빛을 보며 안나는 그 눈빛은 그이의 마음이 식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6부 228)라고 생각하며 사랑과 매력만으로 그를 묶어둘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어 낮에는 일밤에는 모르핀(아편)으로 버티면서 그의 사랑이 식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신경쇠약상태에 이른다결국 후반 제7부 에서는 카레닌에게 "당신은 ... 당신은 이 일을 틀림없이 후회할 거예요".라며 협박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성이 주어져 있는 것이라면 벗어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이성적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충동적으로 기차자살을 기도하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고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몸을 일으켜 뛰어나려다 "꽝! 질질~"...여기에서 끝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소설은 이후 제8부까지 이어져 안나 사후 처리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레빈이 삶과 신앙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장면까지로 질질 끄는 느낌이다.   

물론 안나는 무척 감정적인 인물로 사랑에 대한 불안속에서 사회의 기만과 허위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향은 모든 인간이 누구나 갖고 있으며 상황과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그리고 인생이란 이런 감정과 이성의 엇갈림속에서 살아가는 모순(또는 아이러니)투성이다는 사실이 톨스토이의 통찰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중 하나는 '복수와 용서'라고 생각한다과연 인간이 인간의 잘못에 대해 진정한 용서를 해줄수 있는가? 최근 '검사 성희롱사건'에서도 누가 누구를 용서하느냐는 얘기도 나오던데, 이야기의 맥락은 다르지만 갑자기 우리 영화 이창동감독의 '밀양'이 떠오른다.

"그러나 심판을 우리들이 할 수는 없겠죠, 백작부인."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말했다."(제8부448쪽)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인 카레닌은 아내의 장례식에 참석하고,브론스키과 아내 안나사이에 난 딸까지 넘겨받는다. 구질구질한 삶이고, 인생이라하더라도 그는 꿋꿋히 참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극적 구성상 굳이 없어도 될 듯한 결말부분은 레빈이 신앙에 대해 눈을 뜨는 얘기다."아내의 분만중에 그에게는 이상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무신앙자인 그가 기도를 시작했고 심지어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신을 믿었던 것이다. (제 8부446쪽) 과연 이것이 신앙이라는 것일까? 그는 자기의 행복을 좀처럼 믿지 못하면서 생각했다. 아아, 하느님, 당신께 감사합니다!"치밀어 오르는 오열을 꿀꺽 삼키면서, 그리고 두 눈에 넘쳐흐르는 눈물을 두손으로 닦으면서 그는 말했다."(제8부 490쪽)

물론 기독교라는 종교를 문화적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이겠지만 도스또예브스키가 극찬했다거나 서구문인들이 최고로 꼽는 소설이라는 이 [안나카레니나]가 위대한 고전으로 계속 읽혀지는 이유는 우리네 삶이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네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당대의 사회문제와 인간 본성에의 탐구 그리고 행복의 본질에 대한 천착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을 읽고, 글쓰기가 만만치는 않구나! "밥벌이로서(써)의 글쓰기"는 커녕, 취미로서(써)의 책읽기만이라도 제대로 했으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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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0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로쟈님 톨스토이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면 이번에 톨스토이 대표작들에 도전해보려고 했어요. 아쉽게도 시간이 맞지 않네요. 저녁 6시 이후에 강연이 시작했으면 좋았을 거예요. ^^

sprenown 2018-02-04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로쟈님이 대구에 자주내려와 강연을 하는가 보네요..아쉽겠어요.반가워 하실텐데. 전 이제 톨스토이는 좀 쉬었다 읽을까 싶네요.^^.도스또 형님께도 안부인사드려야 할것 같아서요.ㅎㅎ편안한 휴일보내시길~
 
안나 카레니나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으이구! 저 웬수, 저런 미친년! 욕을 하면서도 계속보게되는 막장드라마처럼 제2권에서도 불륜커플과 모지리 남편, 그리고 풋풋한 연인의 사랑얘기는 계속된다. 제2권에서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브론스키의 자살미수사건과 산욕열로 사경에 헤매는 안나와 안나를 용서하는 남편 카레닌의 모습일 것이다.


제2권을 읽다보니 제1권에서 부터 그렇게 바보같고 머저리 같았던 안나의 남편에 대해 동정하게 된다.어쩌면 이소설에서 가장 불쌍한 인간이 그가 아닐까 싶다.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안나'나 '레빈'이 아니라 바로 오쟁이 진 안나의 남편 '카레닌(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톨스토이의 정신적 자아가 '레빈'이고, 육체적 자아의 상징이 '안나'라면, 현실적 자아는 운명의 수레바퀴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통을 감수하는 '카레닌'인 것이다.


 명문 백작가의 4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던 톨스토이처럼 그도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숙부의 집에서 성장하면서 열성과 성실로 직무에 충실, 고위관직에까지 올랐다. 다른 여자에게 한눈 한번 팔지않고, 교회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누구보다 신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 그다. 이렇게 모범적으로 관리생활을 하고 있던 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처럼 아내가 바람을 피워 곤경에 빠지게 되고, 그로인한 온갖 치욕스런 상황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곰곰 생각해보니 그의 잘못은 일밖에 모르고, 너무 고지식 하다는 것과 나이차(20살)가 많아 아내의 욕망(정욕)을 채워주지 못하는 부실한 정력의 소유자라는 점.그리고 소심하고,우유부단한 성격때문인 것 같다.(아님, 그냥 너무 못생긴 죄?)

 

체면과 명예를 소중히 생각하는 카레닌이 아내의 부정에 대해 알고, 브론스키와 결투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하는 그의 이 어이없는 상념을 들여다 보자.(명예심도 없고 인정도 없고 신앙심도 없는 타락한 계집! 나도 평소부터 알고 있었다) "죄를 지은 아내와 아들에 대한 나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그녀에 대해서 역시 내가 해야할 만큼의 행동은 결행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보다도 더욱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사실은 내가 살해되든가 부상을 입든가 하리라는 것이다. 내가, 이 아무런 죄도 없는 인간이 희생되어 살해되거나 부상을 입거나 하는 것이다. 더욱 무의미한 일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내 쪽에서 결투를 신청한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행위가 될 것이다."


한심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이 인간이 선택하는 방법은 하나다. 결투, 이혼, 별거의 조건을 짚어보고 다시 그것을 부정하고 난후,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자신이 취할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바로 사건을 세상에는 비밀에 부쳐두고 그들의 관계를 끊게 하기 위해,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그녀를 벌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그녀를 지금 그대로 자기 곁에다 붙들어두는 것이었다.(제3부93쪽) 이러고도 브론스키의 애를 낳다가 빈사지경에 빠진 안나를 용서하고, 브론스키 마저 용서한다. 심지어 안나가 낳은 딸(안나)에게까지도 애정을 느낀다. 성인이 따로 없다. 그에게는 모지리교 교주의 포스가 느껴진다.

 

또한 제2권에서는 레빈의 농촌생활이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 진다.농부들과 함께하는 풀베기작업. "레빈도 자기가 벤 자국을 따라 마찬가리로 되돌아올때, 땀이 우박처럼 얼굴에 흘러내리고 코끝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등은 온통 물 속에 잠겼다 나온 것처럼 잔뜩 젖어 있었지만, 그는 무척 기분이 좋았다. 특히 자기는 이제 이일을 견디어 낼 수 있다는 자부심이 그를 한층 더 즐겁게 했다.~ 그는 농부들에게 뒤지지 않아야겠다는 것과 될 수 있는 한 잘 베어야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제3부 34쪽) 


농부들과의 노동을 통해 레빈은 자신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고, 행복한 삶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농부와 함께하는 효율적 농업방식과 농부의 교육에도 관심을 갖게되는데 특히 시골 귀족 스비야쥐스키를 만나 그의 사상과 행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농부들과 악수를 했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여성문제에서 그는 여성의 절대 자유를, 특히, 여성이 일을 가질 권리를 극렬히 지지하기는 하였으나,자기 아내와는 아이가 없음에도 모든 사람이 이 가정생활을 부러워할 만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제3부 179쪽)  


1861년 러시아 농노제 폐지..이 당시 톨스토이는 허버트 스펜서, 존스튜어트 밀,마르크스 등의 사상을 접했던 것으로 보인다.흔히들 '격동의 현대사'를 거쳐왔다는 표현을 쓰는데, 가만보면 인류가 탄생한 이후 모든시대는 '격동의 현대사'가 아닌 적이 없다.톨스토이가 살았던 시대 역시 격동의 시기였다. 1848년 공산당선언, 프랑스 2월 혁명,1859년 다윈의 [종의기원]그리고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급속한 침투와 팽창,러시아의 서구화와 슬라브주의의 갈등 등...톨스토이 역시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지만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보수적 시각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나중에 '톨스토이 주의'로까지 나아가는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평가할 역량은 없다.)


1869년과 1870년에 존 스튜어트 밀의 저서 [여성의 예속]이 세가지 러시아어 판본으로 나왔다. 그러자 모든 민주적, 급진적 간행물은 남녀평등권의 시작으로서의 여성교육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1870년대 정신 및 사회생활 분야에서의 독립에 대한 여성들의 희구 자체는 상당히 명확한 표현을 얻었다. 1870년대에 톨스토이는 전화국이나 전신국의 일  가운데서 독립적 힘의 응용을 탐색했던 여성들에 대해 회의적이었다.(제4부 299쪽 각주)

 

이 소설 [안나 카레리나]를 완성할 무렵부터 톨스토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함으로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다고 하는데 레빈이 피골이 상접한 형을 만나 그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면서 부터'난 일을 하고 있다. 난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어한다. 그러나 난 잊고 있었다. 이 모든것이 끝난다는 것을 죽음이 있다는 것을'(제3부 221쪽)라는 문장에 나타나 있으며 후반부에는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한 키티와 함께 죽어가는 형을 간호하면서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긴병에 효자없다는 우리 속담처럼 간병에 지쳐 형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갖는다. 톨스토이는 여기서 노련하게도 형의 죽음과 새생명의 잉태(키티의 임신)를 대비시킨다. 삶의 순환과정이다.

 

제4부는 카레닌의 잘못된, 착오에 의한 용서(애낳다 죽을줄만 알았던 안나가 쌩쌩하게 살아났다!)이후 "한달 뒤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카레닌)는 자기의 집에 아들과 둘만 남게 되었다. 안나와 브론스키는 이혼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연하게 그것을 물리친후 외국으로 떠나버렸다"라는 문장으로 끝나고, 제5부에서 이들은 룰루랄라 이탈리아 여행(브론스키의 그림그리기)을 하다 지루해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그리고 안나는 뻔뻔스럽게도 카레닌의 집에서 아들을 만난다.  이후 사교계에서의 불편한 눈치때문에 브론스키가 만류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단순무식,용감한 여자는 기어코 오페라 극장에 가서 결국 망신을 당한다. 그러고나서도 이여자, 브론스키에게 오히려 화풀이 한다 "난 당신이 태연하게 있는 것이 얄미웠어요. 당신은 내가 이런 망신을 당하게 해서는 안되는 거였어요. 당신이 만약 날 사랑하고 있다면...."(제5부 606쪽) 이 대책없는 여자를 어쩔 것이냐? 그냥, 싸다구 한대? 아니다. 참는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라... 동지여, 이제는 복수다! 파국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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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2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달에 읽기 힘들다는 책을 꾸준히 읽기 시작했군요. 조금만 더 참고 읽으신다면 완독 성공하시겠어요. 대하소설은 당장 읽어야 해요. 자꾸 미루기만 하고, ‘읽어야지‘라고 생각만 하면 결국 시작을 못하게 되요. ^^

sprenown 2018-01-2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그렇지요 이젠 낙장불입 입니다. 고전읽기는 긴호흡이 필요할 듯 싶네요^^.
 
안나 카레니나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이 소설의 그 유명한 첫 문장이다. "고만고만"과 "나름나름"으로 댓구를 이루는 문장으로 번역에 고심한 흔적은 있지만 다소 어색하다.그래서인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안나카레니나 첫문장에 대해 각 출판사의 번역본이 비교되어 있다. 


여기서 행복한 가정은 레빈과 키티의 가정을 의미하고 불행한 가정은 안나와 카레닌의 가정을 의미한다고 하는 해석도 있는 모양인데, 너무 도식적인지 않나 생각한다. 겉으로 행복해 보이는 어떠한 가정이라도 안으로는 모두 불행의 씨앗을 감추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런지.


젊은날의 방탕과 정신적 고통을 겪고 회심이후 도덕주의자가된 톨스토이에게는 당연하겠지만 소설에서의 주인공은 톨스토이 자신의 자아를 반영한다. 이 소설에서의 주인공 안나 역시 육체적 자아를, 레빈은 정신적 자아를 상징한다고 한다고 하는데 제법 그럴 듯하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외국소설 특히 러시아소설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길고애칭(별칭)이 있어 헷갈린다이 소설 역시 인물 관계도를 그려놓고 이름과 애칭(별칭)을 대입해서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그런데소설 읽으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하긴 에밀졸라 소설은 가문 계통수를 그리는것이 필수인 것 같은데 그에 비하면 약과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오블론스키,돌리,카레닌, 안나,브론스키, 레빈키티 등이 중요인물이고, 모스크바(레빈이 살고 있는 곳)와 페테르부르크(안나가 살고 있는곳 )가 주요 공간적 배경이다.

27살의 애 둘 딸린 유부녀와 청년 귀족장교와의 비극적 사랑이라는 소설의 줄거리야 영화등을 통해 이미 익히 알고 있지만톨스토이는 왜 이런 치정관계와 비극을 소재로 이 긴 소설을 썼을까그 비밀의 열쇠는 책 맨앞에 나오는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 주겠다는 성서에서 따온 제사에 있지 않을까?  


일단 안나의 입장에서 일밖에 모르는 무뚝뚝한 남편결혼생활의 무료함, 프랑스 문화를 동경하고,모방하는 가식적이고 허위에 찬 귀족사회(무도회와 극장).사랑의 설레임과 격정.아들에 대한 모성애와 남편에 대한 죄책감 등이 다루어 지고, 남편인 카레닌 입장에서 질투와 복수심, 그리고 용서라는 문제에 대한 심리적 갈등이 큰 줄기를 이루며 전개된다.


1권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오빠가 가정교사와 연애하다 언니 돌리에게 발각되어 도와달라는 편지를 받고 안나가 모스크바에 가는데 기차역에서 브론스키를 처음 만나게 되고호감을 느낀다. 그런데,브론스키가 이때 안나에게 첫눈에 반해 저돌적인 애정공세를 하면서 안나가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이 주로 묘사된다. 또한 오쟁이진 남편 카레닌의 심리와 키티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레빈, 브론스키와 안나와의 관계때문에 충격받은 키티의 모습이 그려진다. 


러시아 상류사회에서의 귀족들의 삶을 묘사하는 장면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톨스토이 자신의 경험도 많이 반영되어 있겠지만, 당시에는 유부녀와 청년장교의 불륜이 그리 비난할 만한 것은 아닌 것이고, 다만 공공연히 알려지거나, 그로인해 모욕과 비난을 받지 않는다면 쉬쉬하면서 넘어가 주는 것이 예의였던 모양이다. 


"페테르부르크의 상류사회는 사실상 하나의 단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서로 왕래까지 하고 있었다안나는 서로 다른 세 집단에 친구를 비롯해서 밀접한 연줄을 가지고 있었다그 하나는 그녀의 남편이 속해 있는 직무관계의 관료적인 집단.또하나 안나에게 밀접한 집단은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의 출세길을 연 집단으로 중심인물은 백작부인 리디야 이바노브나 였다나이들어 아름다움은 잃었지만 신앙이 두텁고 덕행이 있는 부인들과총명하고 학문이 깊으며 명예를 중시하는 남자들고 구성되어있었다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티는 이 집단을 굉장이 존중하고 있었다그러나 안나는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이 집단이 못견디게 싫어졌다그녀도 다른사람들도 모두들 서로를 속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 모임 속에 있기가 몹시 지루하고 거북해졌다.끝으로 안나가 교제하고있는 제삼의 집단은 흔히 말하는 그대로의 사교계,춤과 향연과 화려한 화장의사회화류계로까지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한 쪽 손으로 궁정을 야물게 붙들고 있는 이들이었다이 집단의 사람들은 자기들로서는 화류계를 경멸한다고 여겼으나사실상 그들의 취미는 그곳과 공통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동일한 것이었다.모스크바에 다녀온 뒤로는 자기의 정신적인 친구들을 피하고 대규모의 사교계로 발을 내디뎠다거기에서 그녀는 브론스키를 만났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뿌듯한 기쁨을 경험했다브론스키는 안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쫒아갔다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녀에게 자기의사랑을 얘기했다.그와 만날때마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기차에서 처음 보았던 그날과 같은 생생한 느낌이 불타오르는 것이었다."( 2부 251~254)

 

모지리 남편 카레닌이 아내 안나와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푸쉬킨처럼 깨끗하게 결투를 신청하여 결판을 내지 못하고 이 덜떨어진 인간이 하는 말과 안나의 변명과 태도, 화가난다.화가나!


 아니 제발내가 끝까지 얘기하게 해줘요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소그러나 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오이런 경우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우리의 아들과 당신 자신이오거듭 말하지만내 얘기가 당신에게는 전혀 무익하고 부당한 것으로 여겨질지도 몰라요정말 그럴지도 모르오아마 모든게 내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거요만약 그렇다면 난 당신에게 용서를 빌어야 해요하지만 만약비록 내 생각에 티끌만한 근거라도 있다고 당신자신이 느낀다면그렇다면 난 당신이 잘 생각해 주길 바라오그리고 만약 당신이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나에게 모두 털어놓기를 바란다면...” 안나의 이뻔뻔스러운 말 나는 아무것도 말씀드릴게 없어요게다가 한술더 떠...”그녀는 미소를 참으려고 애쓰면서 불쑥 말했다정말이지 이제 그만 잠잘 시간이에요.”"( 제2부 293)


브론스키의 애를 임신한후 브론스키가 참가한 경마장에 가는 장면 "나 그럼 다녀올게안녕안나는 아들에게 입을 맞추고 나서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쪽으로 다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와줘서 정말 반가워요.”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다. “자아.그럼 이따 봐요차 드시러 들르시겠죠아이 기뻐라!” 그녀는 환한 얼굴로 즐겁게 나갔다그러나 그의 앞을 벗어나자 마자 그녀는 자기의 손에 그의 입술이 닿는 곳을 생생하게 느끼고 혐오감에 떨었다 그녀는 그의 이러한 거동을 잘 알고 있었다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메스꺼운 것들이었다‘ 명예심과 사행심저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단지 그것뿐이다’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고귀한 견해라든지 문명에 대한 사랑이라든지 종교라든지 하는 것들은 모두 출세를 위한 무기에 지나지 않는다.“( 2부 404,405)


키티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한 레빈이 시골로 내려가 전원생활에서 만족감을 드러내는 장면은 앞으로의 소설전개에 단초를 제시한다.


"레빈은 축사와 광에 있는 것도 즐거웠지만 들로 나오자 더욱 즐거워졌다나무껍질에 이끼가 디살아나고 새싹이 비어져 나올 듯이 부풀어 있는 자기의 나무 한그루 한그루를 보며 기쁨을 느꼈다.(2부 310)"


전지적 작가 시점의 이소설은 심리소설의 극치를 보여준다.톨스토이는 어린아이의 시각, 심지어 사냥개의 생각까지 세밀하게 서술하는데, 매우 인상적이긴 하지만 묵직한 주제에 대한 위대한 거장의 서술기법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사삭스럽다.

 

안나의 자식으로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으나 예닐곱살의 맏딸 탄츄로치카대여섯살의 막내아들 세료쥐아어린아이들도 눈치와 감각으로 분위기를 짐작한다. "‘이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저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람어떻게 내가 저 사람을 좋아 할수 있을까만약 그것을 모른다면 내 잘못이다그렇지 않으면 난 천치거나 나쁜아이인 것이다하고 어린애(세료쥐아)는 생각했다."(2부 366)


 

멧도요 사냥나가서 오블론스키가 레빈에게 키티가 결혼은커녕 굉장히 몸이 나빠져 신병치료차 외국으로 요양시켰다는 말을 전하자 라스카라는 개의 마음과 시각에서


그들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라스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머리위의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비난하듯 그들을 쳐다보기도 했다 이런급기야 지껄일 틈을 찾고 말았군’ 하고 개는 생각했다. ‘새가 날아오고 있는데...여기 왔다정말 왔다놓쳐버리겠는 걸...’(2부 326)

 

유난히 추운 올겨울은 러시아 고전소설을 읽으며 보내보자고 생각했는데, 상당한 두께와 양이라 쉽지는 않다. 도스또옙스키까지는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여전히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시간나는대로 '그저 읽는다는 것' 뿐이다. 제2권에서는 어떤 흥미진진한 일들이 벌어 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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