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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5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케인즈가 말했던가? “돈이란 유일한 무한의 욕망 덩어리”라고. 돈. 보기만 해도 기분좋아지는 것! 얼마면 돼? 도대체 얼마가 있어야 만족할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는 5억? ㅎㅎ. 아마도 5억이 있으면 10억을 바랄 것이고, 10억이 있으면 50억, 그리고,100억, 500억, 1000억....
예전에 인터넷으로 최진기의 경제사 강의(비학술적인 듯하면서 핵심을 짚어내는 맬서스, 아담스미스, 헨리조지, 마샬, 맑스, 케인즈 등에 대한 개략적 설명.)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인상깊었던 얘기다. 케인즈는 ‘돈에 대한 사랑(유동성 선호)’이 공황의 원인이라고 한다.(케인즈가 진단한 대공황의 원인: 경기불황→ 불확실성 증가 →화폐애착 상승→금리상승→ 투자위축→ 소비위축→ 대공황) 근데, 돈에 대한 욕망으로 카지노에 가면 칩을 바꿔준다. 왜? 베팅할 때 돈으로 하면 크게 하지 못하니까! 거울과 시계을를 없애는 것도 도박에 집중하게 하기 위해서고, 신용카드로 마구 지르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빳빳한 현금의 자기돈으로는 아까워서 할 수 없으니.) 그래서 케인즈는 정부는 금융(화폐)정책으로는 공황을 극복할 수 없으니 재정정책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후버댐 건설)
프랑스 제2제정(1852~1870)을 배경으로 졸라가 상품이 아니라 돈을 거래하는 은행과 증권시장의 풍속화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돈’(루공마카르 총서의 제18권)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이러한 인간의 돈에 대한 채울수 없는 욕망과 과시적 소비욕을 비롯한 비열한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야성적 충동이 지배한다는 것! (이것이 요즘 행동경제학이 뜨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로는 과거에도 투기로 거덜난 적이 있으나, 장관인 형 루공을 믿고 여전히 허영심을 버리지 못하는 반유대주의자 사카르와 가톨릭에 의한 세계왕국을 꿈꾸며 동방개척 사업에 매달리는 남매(아믈랭과 카롤린 부인)가 주요인물이 되며, 만국은행의 이사로 참여하는 후작, 국회의원 위레, 고리대금업자 뷔슈와 그의 하수인이자 법정관리 및 파산 전문 메솅아줌마, 유대인으로서 금융왕이자 신으로 군림하는 군데르만, 몸을 팔아 정보를 캐내는 남작부인, 기울어가는 귀족가문을 지키려 증권투자로 모든 것을 날리는 백작부인과 딸, 사카르의 사생아 빅토르, 그리고 기타 수많은 증권중개인들이 등장한다. 또한 이 소설에는 놀라우리만큼 오늘날과 유사한 금융(증권시장) 시스템 그리고 정경유착, 금융과 언론의 결탁 등 현대의 금융자본주의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주인공 사카르은 아믈랭과 공모하여 아믈랭을 이사장으로 앉히고, 본인은 만국은행의 은행장이 되어 이를 필두로 카르멜은광회사, 대형여객선 합동회사, 터키 국립은행을 통해 나폴레옹이 칼과 총으로 이루지 못했던 일을 돈과 황금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꿈을 꾼다.
[“아버지가 도처에서 돈이 쏟아 지기를 바란다면, 어떤 샘에서도 돈을 퍼올린다면, 돈이 자기 집에서 격류처럼 흘러다니는 걸 보기 위해서이고, 돈이 가져다 주는 사치, 쾌락, 권력을 즐기기 위해서죠...아버지는 우리를, 당신과 나를, 그 누구라도 팔아치울겁니다. 만일 우리가 시장에서 거래된다면....왜냐하면 아버지는 정녕 돈의 시인이니까요.”
아! 돈, 인간을 부패와 중독에 빠뜨리고, 영혼을 메마르게 하고, 타인을 위한 선의,애정,사랑을 앗아가는 그놈의 돈! 돈이 바로 인간의 온갖 잔혹하고 더러운 행위를 유발하는 촉매제요 대죄인이었다.](307쪽)
이 돈을 벌기위해 사카르는 허구의 숫자를 펜대로 놀려 자기주식을 매입하고, 명의 대여인을 통해 매수하는 방법으로 주가를 조작해 만국은행의 주가를 계속 상승시키지만 결국 허구의 숫자놀음은 붕괴되어 파산하고 만다. 이 여파로 하루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거덜나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되고, 그의 증권 중개인 마조는 권총자살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체포되어 재판을 통해 받은 벌은 5년의 징역형과 3000프랑의 벌금형뿐이다. 그것도 재판 한달전에 보석으로 풀려나 항소하거나 24시간내에 프랑스를 떠날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카르는 벨기에(나중에 네덜란드로 가서 습지대 간척사업에 뛰어든다)로, 아믈랭은 로마를 향해 떠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경제사범에 대해서는 무척 관대한 것 같다. 결국은 이런 사기꾼을 믿은 투자자의 책임이라는 것. 특기할 사항으로 작가 졸라는 이 소설에 대한 창작 노트에 일반적인 '돈' 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넘어 '문명발달을 위한 부엽토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 역시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서술을 할 것'이라고 적시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결말부분이 다소 애매하고, 흐릿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 볼 사람은 냉혈한이자 철면피인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뷔슈의 동생 시지스몽이다. 맑스를 추종하면서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그는 임종의 고통속에서 이렇게 외친다.
[“아! 그게 보입니다. 그게 저기 서 있어요. 정의와 행복의 도시!...거기서는 모든 사람이 일을 해요. 누구에게나 의무이지만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노동이죠. 국가는 거대한 협동조합일 뿐이고, 생산도구는 만인의 소유이며, 생산품은 중앙창고에 저장됩니다. 사람들은 유용한 노동을 제공하고,사회적 소비에 대한 권리를 가집니다. 공동의 척도는 다름 아닌 노동시간이고, 물건의 가치는 단지 그 물건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됩니다....더이상 돈이 존재하지 않습니다....더이상 적대계급도, 주인과 노동자도,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더이상 유한계급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자로 무위도식하는 금리생활자도 사치도 가난도 없습니다!..](555~556쪽 발췌)
공상적 사회주의에 가까운 그의 이상은 맑스에 의해 체계화 되고, 이론화 되어 혁명으로까지 이어졌지만 맑스의 주장 역시 허황된 공상에 불과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이미 입증되었다.(물론, 그의 탁월한 사상은 영원하리라!) 혹자는 맑스의 사상과 주장이 제대로 실현되어 본적이 없어 여전히 그의 사상과 주장이 유효하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맑스'조차도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에 이미 포로가 된지 오래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