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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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 글쎄,소감은 어릴적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나 앙드레 지드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가는 책 안표지를 보니 메부리코에 날카롭고 섬세한 얼굴을 갖고 있는데 사실 이소설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여주인공 마리아 크로스 간의 사랑의 감정을 매우 섬세한 심리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아마 엄격하고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한 작가의 사춘기당시의 체험과 고통이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아들 레몽 쿠레주가 파리의 한 단골술집에서17년전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교류했던 여주인공 마리아 크로스를 만나는 장면('그녀는 마흔네 살이야.  그때 나는 열여덟, 그녀는 스물일곱이었으니까.' 14쪽)에서 시작해서 과거의 회상으로 이어지다 소설의 마지막에 그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아버지(그도 역시 마리아 크로스를 몹시 사랑한다)를 만나고 기차역에서 이별하는 것으로 끝난다.

 

처음 도입부분에서 사춘기 소년과 유부녀의 사랑.. 게다가 전차에서의 만남은 몇달 전에 읽었던 베른 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나중엔 완전 반전)를 연상하게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보르도라는 마을에 이사온 매력적이지만 소문이 좋지 않은 라루셀의 정부, 마리아에게  존경받는 의사(의학박사)인 아버지와 사춘기 아들이 사랑에 빠져드는 이야기이다.(도스또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그루센카를 사이에 둔 아버지 표도르와 아들 드미트리?) 이 난감한 상황...그렇다고 난잡하고, 에로틱한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각 인물의 심리를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세심하게 묘사,설명하는데 가끔씩 작가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그의 긴코 밑에 콧수염을 더 진하게 붙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마치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의 '이수일과 심순애'(프랑스판) 변사흉내를 내는 듯하다. 

 

"정욕을 지배하는 법칙은 예상외로  매우 단순함을, 레몽은 게임의 일장에서 이미 간파할 수 있었다. 누구의 충고없이도 타고난 본능의 가르침에 따라, 소년은 '여자 혼자 안달 복달하도록 놔두기'라는 사랑의 첫 번째 규칙을 충실히 실행해 갔다."(150쪽)

 

"난 닳고 닳은 타락한 여자이고,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야 우리 사이에는 하늘처럼 거대한 공간이 가로지르고 있어. 그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 내 욕망조차 그에게 이르는 길을 내기를 거부해"(154쪽)

 

"마리아는, 박사가 사춘기 이래로 사랑했던 모든 여인들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언제나 동일한 사랑의 방식. 이 추억의 표지판을 따라가면서 박사는,사랑에 빠질때마다 매번 비슷한 감정이 엄습했던 것을 깨달았다.~하나같이 허무하게 끝난 사랑, 그 열정의 주인공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175쪽)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존시킨다. 그들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그래서 죽음은 사랑을 썩지 않게 보존하는 소금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로 사랑을 분해시키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삶이다"(189쪽)

 

레몽은 17년전 사춘기시절 마리아의 집에서 육체적 접촉을 시도하지만 거절당하자 이에 대한 앙심을 품고,여자관계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며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결국 그러한 시도 역시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녀에 대한 더욱 깊은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한 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존경받고,책임감 있는 가장으로서 숨막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마리아에 대한 사랑을 통해 탈출구를 찾았던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마리아에 대한 정염을 끄기 위해 놓았던 수많은 맞불들이, 사실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커지게만 했음을 그는 깨달았다.~ 아마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고통받겠지. 무슨 그런 인생이 다 있담. 난 아버지처럼 하지 않겠어.~ 다시 한 번 늙으신 아버지를 껴안아 드리고 싶다.아들로서의 평범한 애정때문이 아니라... 이제 자기와 아버지 사이에는 혈연이상의 끈끈한 관계가 있다. 둘은 마리아 크로스라는 매개체를 통한 일종의 근친인 것이다."(228,229쪽)

 

 

""널 봤으니 이제 됐다. 날 보려고 온 것만으로 충분해. 얘야, 이젠 내려라. 기차문이 닫힐 시간이야" ~ 늙은 박사는 아들이 안전하게 역의 플랫폼에 내려선 것을 보고서야 평온을 되찾았다."(231쪽)

 

사랑의 감정을 서로 알지만 현실적인 상황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적극적인 사랑을 할 수 없는 안타까움...그리고, 사람에 대한 평가나 판단는 쉽게 단정지을수 없다는 것, 그 누구도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수는 없다는 사실.. 모든 개별자들에게는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과 현실이 사막처럼 가로놓여져 있다.  다만,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이러한 사막을 건너는 방법은 서로 따뜻하게 소통하고, 진심어린 애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주인공 레몽은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그 사막을 완전히 건널 수는 없다는 '존재론적 비극!'을 이 소설은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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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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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재일교포 3세작가인 가네시로 카즈키의 자전적 소설 'GO'를 읽고 나서 최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일본작가들의 소설에 관심이 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임순례감독의 영화(아직 안봤다. 흥행엔 실패한 모양이다.)로 만들어져  익숙해서인지 가장 끌리는 작품인 '남쪽으로 튀어'를 집어 들게 되었다. 읽다보니 이 '오쿠다 히데오'작가라는 작자는  도대체 누구야?  정말 맛깔나게 글 잘 쓰고, 사고의 폭도 넓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미 '공중그네'라는 작품으로 나오키상까지 받은 작가란다. '공중그네' 이후 첫 작품이라는 이 책은 번역자 양윤옥의 후기에 의하면 그의 대표작으로 점찍어도 손색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왜? 자기가 번역했으니까!ㅎㅎ)

 

적시성있는 상황,심리묘사나 기발한 대화내용, 좌중우돌 사건의 전개때문에 유쾌,통쾌,상쾌한 코미디극같은 소설이지만 소설전편을 흐르는 주제는 묵직하다. '국가란 무엇인가?' '학교라는게 꼭 필요한 사회제도인가?' '나의 국민됨은 누가 정하는 것인가?'"나, 이제부터 이 나라 국민 안해"라고 하는 선언이 갖는 효과는? 등등

 

초딩6학년 우에하라 지로를 주인공인 화자로 삼아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옛 운동권 과격파('아시아 혁명 공산주의자 동맹'행동대장 출신)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가 가족과 함께 도쿄에서 남쪽 오키나와의 작은섬에 이주하여 정착(사고치고 어버지본인과 어머니는 또 다른 섬으로 이주)하기까지 과정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진다.

 

"무슨 소릴. 나는 진심이야.당신과 결혼할 때도 말했었지? 내 이상향은 자급자족의 생활이야. 어느 누구에게도 착취당하지 않고 우리 가족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거야.~ 학교에서 너희 머릿속에 주입하는 건 체제에 적당히 써먹을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최면술 같은 것이야. 어떤 시대에나 학교는 일종의 교정 시설이었어.~ 국민의 3대 의무라는거, 새빨간 거짓말이야. 잘 들어둬. 교육,근로,납세의 의무. 그런 건 본래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게 옳아.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일하지 않는다, 세금은 내지 않는다.인류는 역사의 대부분을 그렇게 보내왔어. 전혀 불편할 것도 없었고 전혀 잘못될 것도 없었어."(1권 77쪽)

 

이런 시대착오적인 아버지때문에 우리의 주인공 지로는 주위사람들에게 창피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곤란을 겪기도 한다. 사실, 아버지 이치로 같은 이런 인간은 어느나라에서든지 경찰,교육,과세,노동,사법당국의 골치덩어리일 것이다. 그런데 1권 후반부에 아버지의 옛동료로서 그의 집에서 숙식하던 아키라 아저씨가 지로의 도움으로 사람까지 죽였는데, 아버지 이치로와 주인공 지로가 너무 쉽게 풀려나오는 모습을 보니 일본 사법체계가 매우 느슨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아버지 이치로는 최소한 살인방조혐의로 상당기간 조사받은 후 구속되지 않았을까? 설사 본인은 전혀 아는바 없다고 잡아뗀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범죄행위에 대해 보호자로서의 책임도 있을테니 말이다.(일단 잡아가둔후 공모공동정범이니 교사범이니 하며 윽박지르고, 족쳤을 공산이 크다)  

 

오키나와에서도 더 남쪽에 위치한  작은섬 이리오모테섬에서의 생활이 그려지는 2권은 '유이마~루'라는 품앗이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풍습이 소개되는 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의 집성촌의 풍경과도 닮아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제도권교육의 맹점과 시민사회운동의 허구성이나 시민운동가의 허위의식, 자본주의의 끝없는 욕망,개인의 자유의 한계문제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과연 아버지 이치로는 아들 지로가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는가?

 

"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발 한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 낸 것이지.누군가가 나서지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2권 245쪽)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아버지는 약간 극단적이거든. 하지만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제 이익으로 만 살아가는 그런사람은 되지 말라고.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2권 288쪽)

 

아버지 이치로가 아들 지로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이 말은 자본주의(신자유주의)체제하의 치열한 경쟁,부당한 제도속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도 초식동물처럼  순하게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일갈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그런데 현실적으로 이치로와 같은 삶은 살수는 없을 것이다. 지로의 아버지 이치로는 이제 더이상 공산주의자도 아나키스트도 아니다.(사실 소설에서의 그의 언행은 무정부주의자와 가장 가까워 보이지만 본인은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그는 극도의 개인주의자인가? 아니면 단순한 사회부적합자 또는 사회부적응자인가? 아마 그는 이렇게 말하겠지..." 날 내비둬.. 나를 규정하지마. 나는 그냥 나일 뿐이라고.. 내가 어떻게 살든 니가 뭔 상관이야!" "아하, 그렇다면 당신은 완전한 자유주의자이시군요." "이쒸, 캭~"

 

그나저나 탈주한 지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최남쪽에 있다는 이상향 '파이파티로마'라는 섬을 향해 떠났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어도'일텐데..거기서 어떻게 잘 먹고,잘 살아 가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한번 남쪽으로 튀어볼까?' ㅎㅎ맨날 생각뿐이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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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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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권여선의 작품은 우연히 '토우의 집'이라는 장편소설과 '안녕 주정뱅이'라는 소설집에 나온 단편소설 '봄밤'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이야 문제작가구나.. 술도 엄청 좋아하고..나랑도 코드가 맞는데다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는 친근감..우후~ (사실 나보다는 몇년 누나뻘이다. 그래도 80년대에 대학생활을 같이 했었다는 동질감과 소설에서 묘사되는 풍경이나 시대상황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같이 겪었다는점?)

 

그녀의 이 소설은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80년대 대학신입생 시절에서 부터 밀당하면서 애끓었던 연애.. 그리고 배신.. 친구와의 우정.. 어릴적 아버지와의 추억과 아버지의 초라한 현재의 모습( 나, 아직 안죽었어.. 이 년들아!),그리고 어머니,외할머니,이모들 등 여인군단과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소설은 굳이 분류하자면 아픈 성장소설 이랄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게 단순히 분류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삶속에서의 인간관계..사랑과 우정,신뢰의 문제는 모든 인간에게는 보편적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1때'광주'를 겪고나서,  80년대 후반 나도 대학을 다녔다.이 소설을 읽으면서 30년전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 분단현실 아래서, 농민과 노동자의 한맻힌 절규를 들었다. 광주의 아들인 나는 "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소심하고, 비겁한 나... 그녀의 '젖은 방' 처럼 축축했던 나의 자취방..번개탄에 불피우던 때.. 새어나온 연탄가스로 어지러웠던 기억..이제는 한줄 한줄 읽는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반드시 그녀가 전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 싶었다.

 

읽을 수록 이 작가는 참 독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푸레나무'의 김태정 시인처럼 그때의 선배들은 정말 치열한 삶을 살았구나...지적이면서도 면도날 처럼 날카로운 그녀의 문장과 문체는 가끔씩 내 심장을 예리하게 스쳐 지나간다. 뜨끔하고 에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나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능청스런 작가가 숨겨놨던 웃음코드가 가끔씩 지혈제 역할을 하기도하고, 통쾌한 쾌감을 선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경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침착하게 장갑을 끼려다 말고아직도 고개를 처박지 않고 목을 길게 빼고 있는 나를 보자 들고 있던 가죽장갑으로 내 뺨과 이마를 찰싹찰싹 후려갈겼다. 나는 얼얼해진 얼굴을 싸안으며 고개를 처박고 울었다. 곤봉으로 맞았다면 이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것을...."(121,122쪽)

 

" 한영은 내 손찌검에 쓰러졌고 쓰러진 김에 길바닥에 꿇어앉아 목놓아 울었다. 나는 그를 연거푸 세 차례 때리면서 마음이 아프기는 커녕 뜻하지 않은 쾌감을 맛보았다.  폭력에 맛들인 내 육체는 꿇어앉은 그의 왜소한 무릎을 박살내어 앉은뱅이로 만들고, 그의 목에 새끼줄을 매어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구걸하게 만들고 싶었다."(244쪽)

 

권여선 작가의 본명은 계집 희(姬)에 부러워할 선(羨,) 권희선이란다. 이 책 말미에 문학평론가 정여울과의 인터뷰가 있는데 솔직한 작가의 심정과 소설쓰기에 대한 태도가 담겨있다. "항상 술집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친구랑 '술집을 하자!'이런 포부로 뭉쳤던 적도 있다."(299쪽) 그러나, 술집동업을 하자고 약속했던 그 친구가 전날 술 먹고 헤어지고 그 다음날 저녁때 한강에 투신 자살을 했다. 내가 그녀에게 모진 소리를 한마디 했던 것 같다. 나 자신에게 던진 가혹한 말이기도 했는데.."(306쪽)

 

아마, 그 사건이 자연인 권희선이 소설가 권여선으로 변신, 이렇게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평생 지울수 없는 죄책감...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나이 먹는 건 좋은 것 같다. 삶이 점점 이배속, 삼배속으로 스피디하게 진도를 뽑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녀가 이제는 술을 조금만 마시고, 그녀 특유의 날카롭고 예리한 문장으로 이 알량한 밥벌이를 핑계로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나에게 '그때는 그렇게 비겁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주체적으로 너의 온전한 삶을 살기 바란다.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라고... 정 힘들면 나랑 같이 소주나 막걸리 마시자!'며 따뜻한 위로 건네는 소설을 계속 써주기를 바란다. 말하는 냄비가 들려주는 '아라비안 나이트'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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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1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빠르게 지나간다면 영화 한 편이 진행되는 것처럼 흘러 갈거예요.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소설에 영화 러닝타임과 같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

sprenown 2017-11-1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감사합니다.기회되면 읽어보겠습니다.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시선 237
김태정 지음 / 창비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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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하고 부르는 순간 입속에서 푸른 나뭇잎이 돋아날 것만 같다.

 ‘물푸레나무’라는 단어 속에는 오묘한 힘이 있다. 부르기만 하면 마음이 푸르게 정화되는 것만 같다. 가지나 나무껍질을 물에 담가두면 물빛이 푸르게 변한다 해 ‘물푸레나무’라고 한다.

 물푸레나무의 파르스름한 빛깔을 찾아 땅끝 마을 해남까지 간 시인.

 “그 파르스름한 빛깔”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 같다던 시인.

그 마음의 결을 따라 걷다 보면 물푸레나무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파르스름한 빛깔을 찾아서, 이 가을 하늘을 걸어가야겠다. 그런데 하늘로 돌아간 그녀는 그 빛깔을 찾았을까? /이설야 시인

 

 

 

 

무지개 빛깔.. 빨주노초파남보! 그 화려한 빛깔.  

그런데 시인이 좋아하는 빛깔은 무지개 빛깔이 아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명확히 볼수 없는 빛. 물푸레나무의 그 파르스름한 빛...

   

김태정.. 그녀의 삶과 착하고, 순수한 얼굴을 알고 나서는'물푸레나무'라는 시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아, 나의 부끄러운 이 눈물도 물푸레나무 처럼, 파르스름한 눈물이기를... 

 

 

 

물푸레나무

          - 김태정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여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그녀는 파르스름한 물푸레나무를 찾아 해남 미황사에 왔다. 

그리고, 혼자 죽었다...애닯고, 안타까운 죽음이다. 

그래서 선배시인 김사인은 그녀를 위해 다음과 같은 시를 바친다.

 

 

 

 

김태정

   -  김사인

 

 

  1.  울 밑의 봄동이나 겨울 갓들에게도 이제 그만 자라라고 전해주세요

기둥이며 서까래들도 그렇게 너무 뻣뻣하게 서 있지 않아도 돼요 좀 구부정하세요

  쪽마루도 그래요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천장의 쥐들도 대거리하는 사람 이제 없다고 너무 외로워 마세요

  자라는 이빨이 성가시겠지만 어쩌겠어요

  살 구부러진 검정 우산에게도 이제 걱정 말고 편히 쉬라고 해주세요

  귀 어두운 옆집 할머니와 잘 지내라고 전해주세요

  더는 널어 말릴 양말도 속옷 빨래도 없으니 늦여름 햇살들께서도 고추 말리는 데나 거들어드리세요

 

 

  해남군 송지면 해원리 서정리 미황사 앞

 

 

  2.  죽는다는 일은 도데체 무슨 일인가요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안 보이는 무슨 깔때기 같은 것이 있어

  그리로 내 영혼은 빨려나가는 걸까요

  아니면 미닫이를 탁 닫듯이 몸을 털썩 벗고 영혼은

  건넌방으로 드는 걸까요

 

 

  아이들에게 말해주세요

  마당에서 굴렁쇠도 그만 좀 돌리라고

  어지럽다고

 

 

  3.  슬픔 너머로 다시 쓸쓸한

  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

  한없이 처량한 그림자만 덮어쓰고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듯 다니 던

  소설공부 다니는 구로동 노동자 공아무개 젖먹이를 도맡아 봐주던

  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

  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

  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더라는

  그 말 너무 선선하고 환해서

  자는 게 뭔지 알고나 하는 소린지 되려 못 미덥던

  눈길 피하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기나 잘하던

  살림솜씨도 음식솜씨도 별로 없던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4.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겁많은 귀뚜라미처럼 살다 갔을 것이다

  길고 느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마루 끝에 앉아 지켜보았을 것이다

  한달에 5만원도 안 쓰고 지냈을 것이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이

  시를 써 장에 내는 일도 부질없어

  그저 조금만 먹고 거북이처럼 조금만 숨 쉬었을 것이다

  얼찐거리다 가는 동네 개들을 무심히 내다보며

  그 바닥의 초본 식물처럼 엎드려 살다 갔을 것이다

 

 

  이제 더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그 집 헐어진 장독간과 경첩 망가진 부엌문에게 고장난 기름보일러에게

  이제라도 가만히 조문해야 한다

  새삼 슬픈 시늉은 할 건 없겠으나, 

 

 

                  *김태정(1963~2011)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한 권을 남김.

 

- 김태정 시인 타계(2011년 9월9일 해남신문)

 

미황사 직원들의 보살핌 속에 병마와 싸워오던 김태정(여·49) 시인이 지난 6일 오전 8시 40분께 눈을 감았다.

김 시인은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이라는 첫 시집을 출판한 시인이다.

해남에 내려와 생활한지 7년.

지난해 말 갑작스런 암 판정을 받고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을 비롯한 미황사 직원들이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김 씨의 곁을 지키며 열과 성을 다해 병간호를 해왔다.

미황사 관계자는 "김태정씨는 이미 암세포가 골수 깊숙이 번진 상태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었다"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을 돕는다는 것이 덕을 쌓는 일이며 당연한 일이다"고 말했다.

김태정 시인의 가족들은 "미황사 직원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감사하다는 말 외에 그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가족처럼 옆에서 챙겨주어 떠나는 길이 덜 외로웠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김 시인은 미황사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은 별로 없지만 갖고 있는 것은 미황사에 전달되길 바란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떠났다.

이제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은 영영 만나볼 수 없게 됐다./

 

그렇다! 항상 시급 2000원의 밥과 노동의 정직성을 고민하면서 호마이카상(8,9쪽)에서 궁핍한 끼니를 잇던 그녀.."흰 쌀밥과 미역국. 이 단순한  흑과 백의 영토 안에서 아무려나 생일상 앞에서 만큼은 보수도 진보도 따로 없으려니 자본이든 노동이든 살아남은 값으로 최초의 성찬과 대면하리니...(최초의 성찬 30,31쪽 ) 그녀의 필생의 울음이 물푸레나무 빛이 되어 미황사가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홀로 충만(미황사 33,34,35쪽) 하길 간절히 빌어본다.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말간 영혼의 시인... 죽은 그녀는  드들강의 물새가 되어 물푸레나무에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그리고 '꾹꾹' 슬픔을 씹어 삼키며 속울음을 울 것이다.

 

이제는 그녀의 시가  물푸레나무가 되어 우리들 가슴을 '파르스름하게'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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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10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인생 시집 중 하나입니다.....

sprenown 2017-11-1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삶이 너무 애닯고,안타깝습니다. 이 시집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신채호 다시 읽기 -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돌베개 한국학총서 15
이호룡 지음 / 돌베개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오늘 동아일보 앞 청계광장에서 보수,수구꼴통의 집회 때문에 귀가 먹먹하다. 도저히 업무를 제대로 할수 없을 정도다. 도대체 이 인간들이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의 국민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너무 심하다. 앰프를 틀어놓고, 군가와 애국가,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박근혜!를 외치면서 문재인 물러나라!를 외치고 있다. 게다가 성조기에, 왠 이스라엘 국기까지..(건너편에서는 트럼프 반대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아마 트럼프는 청와대 가는 길목에서 엄청 흐뭇했을 것이다. "아, 나의 불쌍한 식민지 백성들아!" 의기양양..트럼프 지나갈 때 몇몇은 울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를 살려줄 구세주라고..울부짖는다.오 주님! 결국은 무기 팔아 먹기위한 1박 2일 일정..예전 고등학교 다닐때, 연도에 나가 박수치던 시절이 생각났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의 동남아 순방을 축하드립니다!"와 똑같은 상황이다.이게 국격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것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대한 애국당.자신들만이 애국자인 모양이다. 아마 대구에서 관광 버스타고 올라 온것 같다. 시민단체 보조금과 후원금 받아서 이런 행사진행하는 게 그 조직의 존립의미 인가 싶다.내가 너무 편협한가? 민주사회에서의 다원성을 관용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게 아닌가? 건너편 트럼프 반대를 외치는 집단과 이쪽 트럼프 만세를 외치는 저들은 모두 한결같이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피를 토하는게 아니냐..

 

나라.. 나라라는게 무엇인가? 애국지사,독립투사들을 생각하다보니 신채호가 떠오른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  처음에 과거합격한 후  성균관박사에 제수 되었으나 그 다음날 사직하고 단발을 결행한 뒤 낙향하여 계몽운동을 시작하였다.1910년 나라가 망하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그리고 언론 활동 등 애국 계몽운동을 벌이고, 상해 임정에 참여 한다.이승만의 위임통치안에 실망, 탈퇴하여 가열찬 무장 투쟁을 벌인다.그리고 1923년 이후에 이회영, 유자명 등과 교류하며 무정부주의 사상을 갖게 되었다. 신채호는 김원봉의 요청에 따라 상하이로 와서 폭탄 만드는 시설을 살펴보고, 의열단 선언, 즉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했다.

 

그는 왜 민족주의자에서 무정부 주의자가 되었을까? 그 진실은 아직까지 우리 역사학계에서명확히 파악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그의 급변하는 사상적 편력은 독립투쟁의 치열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짐작.. 그는 당시의 공산주의와 제국주의(식민주의,자본주의)라는 시대조류에서 사상의 한계를 느꼈을 것이며 크로포트킨을 비롯한 무정부주의의 매력에 빠져들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당시 그의 진로 변경은 명확하고, 냉철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무정부주의는 독립을 위한 하나의 전술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위조화폐를 제조하다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을 때 “나라를 찾기 위하여 취하는 수단은 모두 정당한 것이니 사기가 아니며 민족을 위하여 도둑질을 할지라도 부끄럼이나 거리낌이 없다”고 당당히 진술한다. 결국, 이러한 진술에서 "여전히 그의 무정부주의 사상의 한계가 드러난다. 그가 무정부 주의자가 된 이유 역시, 나라를 되찾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렇게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자신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그를? 그런데, 도대체 그에게 '나라'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정부주의자가 되었어도 그것을 위해 목숨을 버릴 만큼 나라와 민족이란 것이 그리도 중요하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그는 진정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다..역시 시대적,사상적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여전히 우리사회의 마르크스 주의나 무정부주의의 가치를 더 우선하는,진보주의자들은 그가  '1936년 뤼순감옥에서 순국 하였다.' 고 하는 것 보다 차라리 '한 개인으로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죽었다!' 라고 서술하고 싶을 것이다. 입진보인 나도  사실은 그러고 싶은 심정이다. 자유의지로 태어나지도 않고,본성적으로 이기적이며 자유롭기를 바라는 개인에게 도대체 나라와 민족이란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박근혜. 만세! 앰프의 소음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우리사회의 이데올로기 갈등은 아직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오늘 무척 우울하고,화가 난다. 빨리 집에 가서 막걸리나 한잔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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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08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은 자유이지만, 반 트럼프 시위와 친 트럼프 환영 집회 모두 도가 지나쳤다고 생각해요.

레삭매냐 2017-11-08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조국 응원하는 심정은 그럭저럭 알겠는데
이스라엘 깃발은 정말 이해를 하지 못하겠
습니다. 이스라엘하고 무슨 상관이 있나요.
심지어 이스라엘은 기독교 국가도 아닌데.

저도 막걸리 먹고잡네요.

sprenown 2017-11-08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어제는 소음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막걸리가 시원하고 너무 맛있더라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