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1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 카피라이터의 시선으로 사로잡은 일상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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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장 큰 배움들은 사람들이었다. 유난히 사람 운이 좋은나는, 유난히도 좋은 선배들만 만났다. 어떻게 카피를 써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하는지,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결국 빛을 찾아내는지, 어떻게 그 빛 쪽으로 사람들을 이끄는지,
어떻게 절망하지 않는지, 어떻게 고집을 부리는지, 어떻게 욕심을 부리는지, 어떻게 회사와 사생활을 분리해야 하는지, 후배에겐 어떻게해야 하는지, 그 모든 것들을 회사에서 배웠다. 선배들에게 배웠다.
여섯 살 때 뭐라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그 아이는 커서카피라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배우는 걸 직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 P211

지쳐도 계속했으니까 그 순간의 단맛을 볼 수 있었던 거다.
이게 뭐가 될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뭐가 될 거라고 기대를 했다.
면, 꿈에 부풀었다면, 내 손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재능 없음에 한탄했을 것이다. 쉽사리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으니까. 계속했으니까. 몸에게 시간을 줬으니까. 그래서 결국은 머리의 말을 몸이 알아들은 거니까. 계속하는 거다. 묵묵히, 계속 가보는거다. 마치 인생의 잠언 한 줄을 얻은 기분이었다. - P220

치는 맥주 코너가 우리에겐 보물상자가 되니까. 그 속에서 새로운보물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 둘은 키득거리니까. 새로운 병뚜껑의 개수만큼 우리가 남들보다 더 웃을 확률이 늘어나니까. 우리 둘만의기쁨이 탄생하는 것이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맥주 병뚜껑 100개를 모아도 책 하나의 무게보다 가볍다. 여행 가방 안에서 자리를 차지할 일도 없다. 이토록 가볍고 사소하고 재미있는 취미라니, - P228

어떤 부모가 안 그렇겠냐만은, 나에 대한 엄마의 믿음은 신앙에가까운 측면이 있다. 정말 어릴 때부터 그랬다. 방치에 가까운 방목아니냐면서 내가 엄마를 놀리지만, 나도 알고 엄마도 안다. 그 방목이 아니었다면, 나는 울타리 안에서 영원히 머물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울타리만 넘어가면 더 풍성한 풀밭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울타리 안에서 먹을 풀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믿음은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고, 멀리멀리 떠나보낸다. 그래도된다는 용기를 준다. 내 맘대로 해도 결국 엄마는 나를 믿을 거니까.
엄마는 그럴 거니까. - P245

마지막으로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그냥 봤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기억 속의 그 얼굴과 많이 달랐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그냥 평생 나를 괴롭혔던, 우리를 괴롭혔던, 나의 음울한 성격의 원인이라 추정되는, 버릴 수도 없고 버려지지도 않는 어둠이었던 그 사람이 거기에 누워 있었다. 이제야 끝나는 건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어 한참을 바라봤다. 그냥 봤다. - P258

나는 많은 것들 가운데 기껏해야 몇 개만 쓸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손가락 사이로 후두둑 떨어져나갈 것이다. 나는 내가 쓴 것을 읽고, 그때의 경험을 음미하고, 손가락 사이로 떨어진 세세한 감정 같은 것들은 잊어버릴 것이다. 죄책감도 없이. 내가 쓴 몇 문장만경험했다고 믿으며,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믿으며, 그것이 쓴다는 것의 어쩔 수 없는 맹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남자주인공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 똑같은 하루를 다시 한 번 살아간다. 어제 놓쳤던 많은 것들을 음미하며,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의미 있게, 작은 실수들 없이. 하지만 나에겐 타임머신도, 두 번의 기회도, 좋은 머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쓸 수밖에 없다. 쓰면서 그 막연함을 약간이라도 구체화할수밖에 없다. 글을 쓰면 적어도 복기할 기회가 주어지니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내 감정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니까.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아니, 이해해보려고 적어도 노력해볼 수는 있으니까. 그러니 쓴다는것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 하나이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 P261

결국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쓰다‘와 살다‘는 내게 불가분의 관계인 것.
이다. 나는 이 문장 속에서도 언제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쓸 수 있어 진실로 다행이다. - P278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

마이클 커닝햄, 《세월, 비채, 2012. 1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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