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하이미의 극치.


"조용히 부는 바람 같은 사랑이나 눈물 같은 사랑, 탄식의 사랑이아닙니다. 폭풍우 같은 사랑, 달력에도 실려 있지 않은 엄청난 폭우같은 사랑, 비수 같은 사랑입니다."
"비수 같은 사랑이 자줏빛인가요?"
"비수 같은 사랑이 자줏빛이 아니라 자줏빛 사랑이 비수 같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자르면 자줏빛 피가 나온다는 뜻인가요?"
"사랑이 화를 내면 비수가 자줏빛으로 번뜩인다는 뜻입니다."
"셰익스피어가 그런 이야기를 썼나요?"
"셰익스피어가 쓴 것을 제가 평한 것입니다. 안토니우스가 로마에서 옥타비아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령이 가져왔을 때 클레오파트라의…"
"질투심으로 자줏빛이 짙게 물들었겠네요?"
"자줏빛이 이집트의 햇빛을 받으면 비수가 차갑게 빛납니다."
- P39

꽃향기마저 묵직하게 지나가는 깊은 거리에서 서로를 부르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죽음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봄 그림자 위에 또렷하게 떠오른다. 우주는 두 사람의 우주다. 3천 개의 혈관을 끊임없이흐르는 젊은 피가 모이는 심장의 문은 사랑으로 열고 사랑으로 닫아움직이지 않는 남녀를 드넓은 하늘 속에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위태로운 찰나에 두 사람의 운명은 정해진다. 동쪽인가 서쪽인가, 털끝만치라도 몸을 움직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부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불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생사 이상의 난관을 사이에 두고 뭔가에 싸인 폭발물을 내던질지 아니면 폭발물이 내던져질지,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의 몸은 두 덩어리의 불꽃이다. - P45

옛 도읍 교토를 더욱더 적막하게 하는 보슬비가, 붉은 배를 보이며 하늘을 찌를 듯이 날아가는 제비의 등에 자극을 줄 정도로 세차졌을 때 교토 전체는 조용히 비에 젖어 동쪽에 있는 산들의 녹음 아래로스며들고, 소리는 유젠의 잇꽃을 적시며 유채꽃으로 흘러드는 물소리뿐이다.
....다만 옛날 그대로의 봄비가 내린다. 데라마치에서는 절에 내리고, 산조(三傑) 거리에서는 다리에 내리고, 기온에서는 벚꽃에 내리고, 긴가쿠지에서는 소나무에 내린다. 여관 이층에서는 고노와 무네치카에게 내린다. - P59

물밑의 수초는 어두운 곳을 떠다녀 하얀 돛단배가 지나는 강가에햇살이 비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오른쪽으로 흔들리는 왼쪽으로너울거리는 희롱하는 것은 물결이다. 다만 그때그때 거스르지 않기만하면 된다. 익숙해지면 물결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물결은 어떤 걸까, 하고 생각할 여유도 없다. 왜 물결이 모질게 자신에게 부딪치는지는 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된다 한들 개선할 수도 없다. 그저 운명이 어두운 곳에 있으라고 할 뿐이다. 그래서 거기에 있다. 그저 운명이 아침저녁으로 움직이라고 할 뿐이다. 그래서 움직이고 있다. 오노는 물밑의 수초였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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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0-16 12: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암사에서 출간된 소세키의 작품이 14권이나 되네요.
이거 다 갖고만 있어도 완전히 뿌듯할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10-16 14:26   좋아요 1 | URL
예 뿌듯해요^^
마저 읽어야지요!~^^~♡

서니데이 2021-10-16 17: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몸은 좀 어떠세요.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따뜻하게 입고, 감기 조심하세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0-16 17:45   좋아요 2 | URL
예 많이 괜찮아졌어요
서니데이님도 갑자기 추우날씨에 건강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나뭇잎처럼 2021-10-17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열네 권인가요? 집에 네 권밖에 없는데... 완전 소장각이죠. 천천히 읽고 또 읽는 맛. 책이 예뻐서 두고두고 아끼게 되는 맛.

그레이스 2021-10-17 20:48   좋아요 0 | URL
예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