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한 직역을 읽느니 차라리 원서를 읽는게 나을듯하다는 생각이다.
<등대로> 번역서 4개 중 가장 가독성이 높은 책이다(나에게)
세월 파트중 읽고 또 읽게 되는 부분! 너무 좋아서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이유일것 같다.
원서도 세월편이 좋았다.
그녀의 글은 비유나 상징을 뛰어넘어, 세계의 또다른 현상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진다.
밤의 냄새로 가득찬 바람, 어둠으로 채워진 공기가 지나가는 집의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는것 같다.
그리하여 모든 불이 꺼지고, 달도 지고, 가는 비가 지붕을 두들기면서, 거대한 어둠이 퍼붓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그런 홍수를, 넘쳐나는 어둠을 이겨 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어둠은 열쇠 구멍과 틈새로 기어들고, 창문의 블라인드 주위로 새어 들고, 침실로 들어와, 여기서는 물병과 대야를, 저기서는 빨갛고 노란 달리아꽃이 담긴 화병을, 또 저기서는 서랍장의 각진 모서리와 단단한 형체를 집어삼켰다. 가구들만 알아보기 힘든 것이 아니라, 몸이건 마음이건 간에 이건그 남자〉, 〈이건 그 여자라고 분간할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때로 무엇인가를 움켜쥐려는 듯 또는 밀쳐 내려는 듯 손이 들리고, 누군가는 신음하고 누군가는 잠꼬대를 하는 듯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거실에도 식당에도 계단에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녹슨 경첩이나습한 바닷바람에 부푼 목재를 통해, 바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자락들이 (워낙 낡아 빠진 집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기어들기도 하고 용감하게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렇게 새어 든 바람은 거실로 들어와 너덜거리는 벽지를 가지고 놀면서 좀 더 오래 버텨 보겠어? 언제쯤 떨어질 거야?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벽을 쓸면서, 벽지에 그려진 노랗고 빨간 장미들에게 시들어 버릴 거야? 묻는듯이, 휴지통에 담긴 찢어진 편지들과 꽃과 책과 이제 바람 앞에 노출된 이 모든 것에게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부드러운 태도로) 아군이야? 적군이야? 얼마나 오래 버틸 거야? 묻는 듯이, 생각에 잠겨지나가는 것이었다.
층계나 깔개를 희미하게 비추는 빛, 구름을 벗어난 어느 별이나 떠도는 배에서 어쩌면 등대에서 비쳐 드는 빛의 인도를 받아, 이 가느다란 바람들은 계단을 올라가 침실 문 주위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야 했다. 다른 무엇이 소멸하고 사라지든 간에, 여기 있는 것만은 굳건하다. 여기서는 저 미끄러지는 빛들에게, 침대 위에까지 몸을 굽혀 더듬는 저 바람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건드릴 수도 파괴할 수도 없다고, 그러면 그들은 지친 듯이, 유령처럼,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손가락과 깃털처럼 가벼운 끈기라도가진 듯이, 감은 눈과 느슨히 쥔 손가락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는피곤한 듯 옷자락을 접으며 사라질 것이었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쑤석대고 비비대며 계단의 창문으로, 하인들의 침실로, 다락방의 상자들로 갔다가, 돌아 내려가 식탁 위의 사과들을 희끗하게 비추다가, 장미 꽃잎을 뒤적이기도 하고, 이젤 위의 그림을 만지작거리고, 깔개를솔질하기도 하고, 마룻바닥에 조금 흩어진 모래를 쓸어 가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 단념하고는 모두 동작을 그치고, 한데 모여서, 함께 한숨지으며, 지향 없는 탄식을 일제히 내뱉으면, 부엌의 어느 문이 화답하듯 활짝 열렸다가 아무것도 들여보내지 않은 채 쾅 닫힐 것이었다. (베르길리우스를 읽고 있던 카마이클 씨도 촛불을 불어 껐다. 한밤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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