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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ㅣ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평점 :
비밀이나 암호처럼 추리소설의 고전적인 소도구를 좋아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스커레이드 호텔]에서 또한 이 장치를 잠깐 사용한다.
10월 4일, 45.761871, 143. 803944
10월 10일, 45.648055, 149.850829
10월 18일, 45.678738, 157.788585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이 암호는 큰 소재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야기 전체가 완성되기 위한 부분적 요소일 뿐이다. 암호를 푸는 것조차 보통 추리물에서 독자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처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 경위 '닛타'라는 주인공에 의해 이미 풀어진 상태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암호가 풀어진 형식은 생각보다 복잡하지도 않고 생각보다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참신한 방법도 아니다. 암호가 풀어진 방식에 비하면 작품 속에 일어난 사건은 생각보다 복잡한데 코르테시아 호텔이 다음 살인 목표 지점으로 잡힌 이래 경찰들은 유래없는 방식을 택하기로 결정한다.
바로 호텔 안에 잠입하여 다음 목표지가 된 이 곳에서 정확한 날짜를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범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들이 호텔에 비치되어 있다면 당연히 범죄자는 호텔에 오지 않을 것이고 누가 범죄자인지도 모르기에 불특정 손님들 중 누군가가 그 대상이라면 경찰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호텔 직원으로 변장하지만 워낙에 우락부락한 외모의 소유자라 그들이 풍기는 포스에서 손쉽게 탈로나고 말 것이라 정말로 호텔 직원처럼 보이기 위해 호텔 교육까지 받는다.
그 중 그나마 프런트에 어울리는 외모를 지닌 닛타 경위는 자신을 교육해줄 베테랑 호텔 직원 나오미와 함께 직접 호텔 업무에까지 관여하게 되지만 처음부터 너그럽게 풀리지는 않는다. 직업상의 버릇 때문에 호텔에 오는 손님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판단하는가 하면 어울리지 않는 뻣뻣한 태도 때문에 나오미와 갈등을 일으키게 되지만 호텔을 찾아오는 다양한 손님들의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요구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나오미의 프로다운 행동들이 점점 닛타의 마음을 열게 한다.
나오미는 자신이 일하는 호텔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호텔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불운한 일에 대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지만 어떤 식으로 도울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그녀 나름대로 사건의 개요나 관련된 정보를 얻고 싶어하지만 닛타는 경찰들의 방침 상 외부인에게 정보를 결코 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을 닫는다. 만일 그나마 얻게된 미량의 정보가 혹여 일반인에게 새어나가 퍼지게 되면 언론에 발표하지 않은 책임은 물론이고 다음 목표지인 이 호텔로 범죄자를 오게 하여 확실히 검거할 기회마저도 놓칠 수 있는 엄청난 실수가 될 수 있었다.
나오미는 포기하지 않고 홀로서라도 사건에 대한 정보를 찾아 퍼즐을 끼워 맞춰보며 사건의 그림을 그리고 이를 보던 닛타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듯이 나오미를 바라본다. 그러나 얼떨결에 나오미의 이야기에서 단서가 될 수 있는 실마리를 깨닫고 지금까지 찾은 얼마 되지 않는 사건 개요의 줄거리를 가상으로 만들어본다.
한편, 이런 닛타를 찾아온 무능해보이는 파트너 노세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닛타에게 살갑게 굴며 이미 팀이 해체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닛타에게 아직 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자신도 밖에서 열심히 뛰고 있노라고 귀뜸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종종 진위를 알 수 없는 행동과 생각과는 달리 유능한 형사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반전을 일으키는 인물이라 이외의 주목을 끄는 캐릭터이다.
매일 같이 호텔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 다른 목적과 다른 뜻을 품고 평소와는 다른 얼굴로 들어온다. 한 손님 한 손님마다 이전보다 더욱 유심하게 관찰하고 세세히 분석하며 보다 보니 그들의 프라이버시에까지 간섭하게 되는 호텔리어와 형사들의 옥신각신한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가장 마지막의 사건의 복선 형태가 되어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 기존의 추리물들처럼 아주 자극적이고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지만은 않아 어쩌면 일부 독자들에게는 조급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을 듯 하다. 어찌 보면 사건이 메인이라기보다는 호텔에 오는 손님들을 메인으로 세운 이 작품은 다양하고 생생한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가 더 쏠쏠한 소설이다. 공포와 미스테리 형식보다는 사건에 대한 원인과 결과의 큐브를 하나씩 하나씩 끼워 맞추는 형식으로 인해 일반적인 소설에 가깝다.
그나저나 가장 힘든 것은 상대방에 대한 미움을 지닌 당사자라고 했던가. 범죄자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이 모든 것을 계획하는 철두철미함이 너무 피곤해보인다. 생각해보면 복수의 잣대가 자신을 그렇게 만든 남자, 또는 어리석게도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남자에게 기댄 자신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제대로 진실을 알지도 못했던 호텔리어에게 간 것이 그 호텔리어에게는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치면 이 세상에서 남에게 억한 심정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물론 범죄자에게 일어났었던 불행은 같은 인간으로써 동정을 유발하는 요소가 있지만 그럼에도 그 일로 인해 말도 안되는 이유로 희생된 사람들을 보노라면 확실히 범죄자에게 꽂힐 냉정한 법의 심판에 대해서는 이변의 사태가 없어보인다.
사실 이 범죄자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이고 이런 범죄를 일으키기 위해 계획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고와 육체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일인데 일반적인 사람이 생각했을 때 고작 그까짓 이유(따지고보면 본인의 책임이 가장 큰 게 아닐까. 굳이 임심한 몸으로 거기서 그렇게 버티고 있을 것이 뭐란 말인가.)로 이런 짓을 저지르는가 싶을 정도로 어이없는 인물이라 소설의 완성도를 조금 떨어뜨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개연성 또한 약간 미흡해서 끝에 가서야 힘이 빠진 독자도 많을 듯 싶다.
아예 범죄자를 정신이상자로 만들어버려 정신이상자로써의 특징을 복선 형태로 곳곳에 깔아두었다면 이 사건의 범죄자에 대해 좀 더 설득력이 강했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로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원한을 가질 수 있을 만한 원인이 있었다면?
달리 생각해보면, 요즘 같이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세상과 각박한 인심에 의해 점점 마음이 좁아지고 자기 안에 갇히다보니 조그만 일에도 크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확실히 불특정 대상을 향해 마구잡이로 해를 입히고 공격하는 사람들, 사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긴 하다.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왕따 문제와 자신이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 딱히 대상을 정해두지 않고 무분별하게 상해나 살해를 하는 범죄자들, 외톨이 은둔형 범죄, 성폭행범들.. 험한 세상이다. 방어가 상대방에게는 공격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없어 이해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매스커레이드의 뜻인 가면무도회, [마스커레이드 호텔]은 유명인의 불륜 현장이 되기도 하고 스키퍼들의 계획적인 시도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며 좋은 방을 얻으려고 방에 대해 문제 삼는 얌체 같은 사람들이 유일하게 변덕을 부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과거와의 조우가 뜻밖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곳이 되는 가 하면 소통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의 내면이 폭발되는 장소로써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인간 관계의 의미도 담아둔 것일지도 모르겠다.
훈훈하게 끝나는 마무리는 오히려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 형태에 대한 여운을 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