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뚜르 - 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0
한윤섭 지음, 김진화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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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이들을 위주로 나온 책은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컴퓨터와 친한 아이들이 책을 보기나 할까 싶은데, 그런 중에 어른의 시선으로 지은 책은 더더욱 보지 않을 듯했다. 지루하고 가르치려드는 책보단 아무래도 재밌고 보여지는 식의 책을 읽지 않을까. 친구와의 우정을 쌓는 것보다 유학 가서 미래를 위한 스펙을 쌓는 일이 더 중요시되고 있는 요즘 아이들이 책을 통해 우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분단 문제와 조국에 대한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 생각됐다.
 

 

 사실, 그런 건 열권의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실전에서 몸과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겪는 것보다는 마음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책을 읽지도 않고, 경험적인 일도 없다면 그 어떤 사회적 이슈든 문제의식을 가지기가 힘들것이고 고로, 자신의 일 밖에는 관심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만큼 시야도 좁아질 것이고 마음도 좁아질 것이다.

 

 

 지금 사회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고, 그런 사회 속에서의 개인들은 사회에 휩쓸려 극적인 이기주의적 행태가 만발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조차도 울타리가 되지 않고 오로지 구성원 개인들의 위주로 각자가 자기밖에 모르는 상태로 자라게끔 알게 모르게 의식이 주입되고 그들은 당연하게 그런 상태로 사회구성원이 된다.

 

 

 아이들도 자기만 알고 어른들도 자기만 안다. 모두 제각기 자기 이익에 맞게 모든 것을 생각하고 거기에서 구성원끼리 뜻이 맞지 않으면 다툼이 일어난다. 이런 다툼은 다소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최소로 마무리지어봤자 서로간의 단절이라는 사회적 문제점을 놓는다.

 

 

 모두가 자기만 알고 자기 이익에 맞게 자기만 편하게 살고, 자기만 알아달라고 할때, 이것이 집단이 된다면 무시무시한 것이다. 개별이기집단. 전혀 타인에 대한 손톱 만큼의 배려나 이해가 없다고 칠 때 사회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타인이 지옥이 될 것이다.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사건들을 훑어보면 이외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과 소통 결여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대에 혹여 가난해질까, 손해볼까 싶어 비참하기 싫어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겉만 번지리리한 돈이나 명예를 가질 미래의 직업을 구할 스펙 쌓기에 바빠 아무리 뭐라고 해도 타인과의 감성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들의 귀에는 먼나라 남의 일처럼 들려버리는 수가 있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우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제로 친구를 사귀면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자신의 의견을 가지면서 고민해본다,고 하면 정말 그 아이는  멋진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1을 택할 때, 2를 택하는 용기와 2의 힘을 아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봉주르, 뚜르'에는 아버지의 일로 인해 프랑스의 파리에서 살다가 다시 '뚜르'라는 도시에 가서 살게 되는 봉주가 나온다. 봉주. 프랑스의 인삿말과 닮았다. 그만큼 왠지 프랑스에서의 봉주는 외국인이지만 낯설지가 않다. 이는 어쩌면 봉주에게는 의미 깊은 일을 겪게 될 도시라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사온 첫날, 봉주는 자신의 방 책상에 비스듬하게 고개를 꺽어야만 보이는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살아야 한다' 라는 글귀를 보게 된다. 이 나라에서 보는 한글은 왠지 낯설었고, 글귀가 풍기는 뉘앙스 또한 왠지 심상치 않

다고 생각한 봉주는 이 글을 쓴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글을 쓴 사람을 찾기 위해 홀로 추리도 해보고 집주인 할아버지에게도 묻지만, 그 방에 한국인이 머물 가능성이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봉주는 새로운 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되는데, 노랑머리로 염색한 일본인 아이 토시를 만난다. 토시는 왠지 모르게 퉁명스럽고 봉주의 인사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봉주와 토시의 첫만남은 이랬다. 하지만 토시는 봉주를 처음 보았을 때 분명 반가웠을 것이다. 단지 개인사정 때문에 봉주와 가까워지는 것만은 피해야 했다. 토시는 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없는 토시는 삼촌이 책상위에 남긴 글귀처럼 조국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도 힘든 나이였다.

 

 

 그럼에도 가족들이 위태로워질수도 있기 때문에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는 비밀을 간직해야 하고 마음껏 사귀고 싶은 친구와 사귈수도 없다. 봉주가 과제로 한국에 대한 발표를 할때 프랑스 아이가 묻는다. 넌 북한과 남한 중 어디에서 온 거냐고. 봉주는 자신있게 자신은 남한에서 왔다고 말하며 북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상황이 못되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토시는 봉주의 말에 반박하며 얼마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실랑이를 한다. 딱딱하고 전투적인 현 분단상황에 대한 시선을 이 책에선 순수한 눈 그대로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 보듯이 볼 수 있게 한다.

 

 

 너무 깊게 들어가서 자칫 무거워지지 않고 봉주와 토시의 잔잔한 우정이 시작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한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계속 만나진 못하지만 여운을 남긴 우정은 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는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교훈을 주려는 목적은 전혀 없다고 썼다. 마침 아들이 태어났고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이 선사해주는 재미와 잔잔한 감동, 진정성은 아이들에게만 주는 것은 아닌듯 싶다.
 


 '친구가 되려는 순간,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라는 문장처럼 마지막은 여운을 남기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단지 또다른 토시 같은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단현실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또 얼마나 안타까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지 생각해보니 덤덤한 기분이었다.

 

 

 안녕.. 봉주와 토시는 비록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지만 이 책 제목의 어감처럼 인사를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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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 세트 - 전3권 푸른숲 어린이 문학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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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림)

 

 모든 인공 지능 로봇과 컴퓨터에게는
 반드시 로봇의 3원칙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로봇의 3원칙은 아래와 같다.


 하나, 로봇은 인간을 해칠 수 없다.
 둘, 첫째의 경우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셋, 첫째와 둘째의 경우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 로봇에 관한 지구 연방법 제1조 1항

 

 인간은 열등하다. 피부는 부드럽고 근육은 연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교활하다.. 책의 본문에 나온 말이다. 왠지 씁쓸한 진실인 듯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버금가는 한국의 SF판타지라는 타이틀을 걸고 당당하게 불모지의 한국의 장르소설에 도전한 [로봇의 별].

 

 해리포터 보다 재미있다고? 처음 이런 소개글을 보고 글쎄.. 과연 그럴까. 의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해리포터 소설을 읽으면서 성장했고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사랑한다. 미야자키 작품에는 자국의 전통에서 벗어난 세계관 사상이 스며있다. 그가 손댄 하나하나의 작품에 들어있는 주제와 소재의 관심사가 내가 원래 좋아했던 관심사였기도 한 터라 그의 작품이 내 속에 스며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로봇의 별]이 이들 소설에 비교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심 이 작품이 민족주의적인 세계가 아니라 개방적 세계관으로 주제를 살려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책을 마지막으로 덮는 순간. 느낌을 표현하자면, 음. 나쁘지 않다.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의 장르소설에서도 제법 풀도 나고 예쁜 꽃들이 많이 피어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의 별]이 어린이소설이긴 하지만 어른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게다가 어른이 읽어도 전혀 유치하지 않을 만큼 책속의 사건들이 어른인간의 비양심적인 면을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이 읽기에 조금 이해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질문명을 비판하고 인간들의 너무나도 교활한 이기심을 비판하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스토리 말이다. 아이들은 정말 그렇게 물을 것이다. '도대체 어른들은 왜 저렇게 싸우는 거예요?' '도대체 어른들은 왜 저러는 거예요?' '도대체 어른들은 왜?' 그렇지 않은가. 실제가 그런데 이야기속에서도 아이들이 이해하는 게 쉽나 어디.

 

 

 그래서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인간이 아닌 나로, 아라, 네다. 세 로봇이다. 물론 소수의 인간은 좋은 사람들이라 착한 편에 속해 세 로봇을 돕는다. 나머지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무지하며 불쌍하고 사뭇 병적이고 또, 이기적이다. 이런 인간들이 자신이 신이라 착각하며 인간과 비슷하게 만든 창조물 로봇. 로봇의 3원칙에 따라 그들은 인간들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에 관한 법에서 작가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던 듯.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살아도 좋으냐?' -65p

 

 백곰 할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로봇 나로는 자아에 대한 탐색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로봇의 세계를 변하게 하는데 첫번째 계기이다. 이 부분은 윌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을 떠올리게 한다. 그 영화에서 자아를 깨달은 한 로봇은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Who am I?' 이 순간 나로는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런 나로에게는 멋진 인간 엄마가 옆에 존재한다.

 

 "나로야, 무서운 건 당연해. 엄마도 무서워. 그렇지만 우리는 용감해. 왜인지 알아? 우리의 선택이 용감한 거니까. 두려움을 모르는 게 용기가 아니야. 그건 어리석은 것일 뿐이야. 진짜 용기는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거야. 어려워도, 힘들얻, 두려워도 옳은 길을 갈 수 있는 게 진짜 용기야. 나로야, 우린 용감해. 그러니까 가! 어서 가!" - 112p

 

 엄마가 불어주는 용기에 힘입어 나로는 로봇의 별로 향하게 된다. 거기서부터 사건은 벌어지고 1권은 나로의 이야기, 2권은 아라의 이야기, 3권은 네다의 이야기. 그러나 세권 모두에는 이 세 로봇의 이야기가 모두 연결된다. 이런 구성 자체가 흥미로웠다.

 

 누군가의 희생,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 이들을 막아서는 방해물들. 이 모든 것들이 흥미진진했고 마치 꿈을 위해 한발짝 용기 있는 걸음을 걷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그들 각자의 꿈(독자들 각자의 꿈)에 용기를 얻어 동참하게끔 만든다. 

 

 솔직히 그림에 대해 평가하면 너무 한국적으로 그린 것 같아 세계적 다양함이 조금 베여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조금더 모자란 점을 보완하면 [로봇의 별]이 만화로 나와도 괜찮을 것 같다.

 

 현실 세계의 여러가지 부분이 비슷하게 묘사되어 있는 [로봇의 별]. '은발의 아기토'의 장면들과 비슷한 부분들도 떠오르게 한다. 아직 미야자키작품들 보다 해리포터 보다 더 낫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이 작품 나름대로의 탄탄한 구성과 재밌는 스토리는 나름대로의 매력으로 은은히 빛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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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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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현실이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회피하면 안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쳐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어떤 일에 대해서 내가 판단하고 정의를 물으며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흔들린다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여태까지 내가 생각해본 적 있고, 그랬으나 결정하지 못했던 많은 시각이 관점에 의해 다르게 정의가 성립되는 것을 보여준다. 정의란 정해진 것일 수 없고 세상의 변화에 따라 그 시대의 정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보편적인 옳음이 존재했을 것이다. 어쨌든, 시대의 정의를 논할때 집중해야 하는 것은 그동안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결함을 찾으며 충분히 토론을 하였고 그 토론 속에서 충분히 옳다고 생각되는 결과를 끌어냈는냐가 중요하다.

 

 

 바로 이 점을 마이클 샌델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답이 나오지 않을 도덕적 딜레마를 생각해봤자 골치 아프다고 제쳐 둘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도덕적 딜레마들은 언제나 생기는 것들이고 어차피 이런 딜레마들과 부딪힐 것이라면 그것에 대해 얼마나 결함이 적고 바른 결정을 하도록 하는 시스템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것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토론이다. 문제시 되는 내용을 놓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해봐야 한다. 마이클 샌델은 수많은 학생들에게 도덕적 딜레마가 되는 이야기와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던지고 그 학생들에게 의견을 내놓게 한다. 학생이 의견을 내놓으면 그는 약간 내용을 뒤틀어 다시 질문을 건네고 그 학생으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뿐만 아니라 함께 듣고 있는 다른 학생들조차 지금까지 자신이 지닌 시각이 흔들린다.

 

 

 무엇보다 이 책이 흥미로울 수 있던 점은 현대의 여러 도덕적 딜레마들을 과거 최고의 철학자들의 눈을 통해 보고자 한 것이다. 처음 등장한 이야기는 부록 시디 동영상에도 나와 있었듯이 철로를 이탈한 전차에 관한 딜레마다. 한쪽에는 5명의 사람들이 있고 한쪽에는 1명의 사람이 있는데 전차가 멈추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장은 1명이 있는 곳으로 전차를 돌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의 희생이 필요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한명의 군인을 구하기 위해 많은 군인들이 희생된다. 이 영화를 보면 전차에서 5명을 구하기 위해 1명이 희생되는 이야기의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는  한 사람의 목숨이 다수의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까. 라는 도덕적 물음을 저절로 생각해보게 한다.

 

 

 그런데 만일 한사람이 한 조국의 대통령이라거나,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면, 이 한사람이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희생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되는가. 한 사람의 천재와 10명의 바보가 있다고 치자. 10명의 바보보다 1명의 천재에게 교육적 혜택을 주고 싶은 게 도덕적으로 문제시 된다면, 10명의 바보들에게 교육적 혜택을 주고, 한명의 천재를 희생시키는 건 또 어떤가. 그건 도덕적으로 문제시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
 


 전차 문제는 여러가지 다른 상황에 대한 딜레마를 떠올리게 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것도 도덕적 정의가 성립된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남는다.

 

 

 이 책에는 선뜻 답을 내놓기 힘든 사례들과 문제들로 가득차 있다. 칸트의 철학은 언뜻 많은 도덕적 문제를 설명해주는 듯하나 말의 아이러니에 의한 허점이 있다는 점에서 모든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봤던 건 존 롤스의 철학이었다. 우리는 흔히 운은 타고 난다고 말한다. 부잣집에서 태어나는 것은 운이고, 좋은 부모와 좋은 환경에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부모 세대와 같은 부를 누리는 것은 노력이 들어가 있지 않으므로 자신이 그런 부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런 운을 타고 났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이가 수긍할 것이다.

 

 

 그런데 빌게이츠나 마이클 조던처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노력을 했을 때 그리고 그 노력으로 막대한 부를 얻었을 때 또한 그 사람이 부를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조차도 운에 속한다. 부자로 태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재능이나 좋은 사회나 국가, 환경에서 자라는 것 또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부를 누릴 확률이 커진다.

 

 

 그렇게 운에 의해 얻게 되는 부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에 따르면 이런 부를 소수만 누리다보면 소외되는 계층이 나올 것이고 소외되는 계층이 많아질수록 전체적 사회, 국가는 빈부적 격차로 인해 문제점을 불러온다. 그런 와중에 부자들은 자기들이 버는 돈의 일부를 세금을 내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게되면 정부는 공공시설이나 공공 혜택을 줄이다가 결국 복지는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은 나라 안에 설 곳을 잃게 된다.

 

 

 지금까진 존 롤스의 철학의 허점은 찾아볼 수가 없었던 듯하다. 벤담의 공리주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의 생각과 어긋나는 점이 많았고 마이클 샌델 또한 그런 그들 철학의 결점을 명확하게 끄집어내기도 했다.

 

 

 낙태문제와 동성애, 줄기세포,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평등의 악몽, 증권사고 등 이 책에는 많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도 가득차 있으며 그런 이야기속의 딜레마에 명확한 논점을 제시하며 여러 시각을 살펴본다. 저자의 명철함과 흠잡을 때 없는 그의 논리적 철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지성을 현실앞에 끄집어낸 생생함을 느끼면서 책을 덮을 때 즈음엔 든든한 사고와 정의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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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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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들이 사형당하는 미래, 남자들이 사라진 세상, 인간이 사려져 문명으로 남고 진화한 개미들이 사는 세상,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실제 일어난 일들을 찍는 영화감독, 나무가 된 인간들...,
 

 

 이야기는 다르지만 왠지 비슷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있을 법한 미래나 과거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른 어떤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쾌락, 교만, 폭력, 욕심에 의해서 파멸한다. 하지만 베르베르는 파멸적인 모습을 그려내진 않았다. 그 전의 모습과 그 후의 모습을 통해 단지 그런 모습을 유추해보게 한다.

 

 

 베르베르의 글은 단조로울 수가 없다. 하나의 문장마다 그는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메시지는 그가 오랫동안 지녀온 생각과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모든 글에 몽환적인 면이 항상 베여있다. 인간중심주의적인 서양의 관점과 달리 저자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른 종보다 우월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미처럼 사회를 이루는 곤충이나 식물, 또는 다른 동물 종 집단이 어쩌면 인간보다 건설적이고 미래의 지구는 그들이 지배하게 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인간들이 지구를 오염시켜 환경재해들이 빈번해질 무렵, 조금만 더 오염되면 오존층 구멍이 커져 대지 위에서 인간은 살 수 없다. 그에 정부는 오염될만한 일을 한 인간들은 모두 사형에 처한다고 법으로 명시한다. 석유로 가는 자동차를 이용할 수 없자 사람들은 발로 움직여 가는 차를 발명했고 비행기를 비롯한 모든 이동수단들은 사람들의 발이 필요했다. 조금 힘이 드는 이동수단은 투석기다. 단, 이 방법은 위험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런 세상이 지금 우리의 생각으로는 그리 행복할 수 없는 세상일 것이다.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쾌락적인 요소를 배제한 그런 시대에 사는 것을 상상한다는 게 몸소 실감이 나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사람들이 지구를 오염시키면서 실제로 오존충이 파괴되고 자연은 오염된만큼 되갚아주고 있다. 자연이 복수한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들은 오염물질을 안고 있을만한 재주가 없을 뿐이기 때문이다.

 

 

 베르베르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그저 지켜야 한다! 미래의 자손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게끔이 아니라 일어날수도 있음직한 구체적인 일들을 이야기방식으로 구성해나간다.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내 자신에게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느긋하다. 결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으면서 그런 세상에 살 수밖에 없게 이유를 만드는 인간들을 보면, <부릉부릉>대는 쾌락은 언제나, 자식들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욕망보다 앞선다. 라는 마지막 말이 얼마나 인간의 특징을 잘 묘사한 것인지 충분히 알만하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에 담긴 베르베르의 가치관과 인간관, 세계관은 내가 한번쯤 생각해보던 주제와 이어지는 것들이 많았다. 아마도 이것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걱정거리이기 때문에 그런것도 있을 것이다. 


  베르베르는 '어떤 현실이 미래에 존재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가 오늘 꿈에서 그 현실을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에서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건 이미 우리 조상들이 꿈에서 본 것들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날 좋은 일은 우리 중 누군가가 꿈에서 볼 수 있다. ... 지금,.' 라고 말했는데 그는 꿈과 상상력의 긍정적인 면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개미들이 만드는 사회적 네트워크를 보며 인간도 비슷하지만 개미만큼의 집단성과 협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그는 만일 인간 또한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좀더 완성에 가까운 집단을 이룰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꽃섹스라는 이야기에서만 해도 모든 어른이 아이를 함께 키우고 공동체적 사회를 묘사해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베르베르의 이야기가 좋다. 그의 모든 책들은 그만의 독특한 개성의 필치가 살아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모든 면들을 다룬 상상력의 산물이 드러나있는 것이다. 한번쯤 생각해본적은 있지만 드러내지 못한 내 생각들에 비해 그는 생각을 해낸 작가이다. 그는 방법은 간단하다. 다만 그 생각을 해내기만 하면 된다. 고 말했던 콜럼버스의 말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건 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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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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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 정확히 문제점만 훑고 들어간 이 책에서 저자는 단순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문제가 되는 자유시장의 단점들 중 구체적인 근거와 실제 처해진 상황을 통해 해결점을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사실 해결방법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부자들과 힘있는 자들에게는 그리 달가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많이 버는 자의 세금을 현상황보다 더 떼겠다고 하면 그들은 그들이 가진 힘으로 제도를 제압한다. 저자는 많이 버는 사람의 세금을 더 떼는 것을 주장하고 그 뗀 세금을 현 제도의 복지에 이바지하는 것이 지금의 불평등으로 일어나는 범죄와 불안정을 막는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부자인 입장에서는 자기가 돈을 버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능력이 되니까 버는 것인데 많이 번다고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돈을 많이 벌면 평균적으로 나라의 소득도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나라가 잘 살게 되는 것이니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사람도 혜택을 보게 되어있다고 말한다.

 책속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기에서 부자들이 하는 말에는 근거가 없다. 게다가 구체적인 상황 제시도 없다. 여태까지 부자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혜택을 잃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부자들이 돈을 많이 벌수록 그만큼 한 편에는 손해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라가 잘 산다고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에 범죄가 많고 보안체계가 발달되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드는 제도 하에서 부자가 아닌 사람이 부자가 되는 일은 더 힘들어지게 되었고 그런 나라에서는 정부에서 복지 예산조차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평균 생산량은 일인당 생산량과 다르다. 어떤 일인은 생산량이 아주 높을 수도 있고 어떤 일인은 생산량은 아주 낮을 수 있으나 이들을 모두 합해 나타내는 평균은 그다지 유용한 분석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몇가지 점을 강조하며 반복하기도 한다.

 - 자유 시장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시장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에 반대하는 소리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 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경제의 역동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촉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정부에 대해 널리 퍼진 불신이 근거가 없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밖에도 탈산업화된 지식 경제 시대에 대한 착각, 부자들에 대한 과도한 세금 감면에 대한 문제점, 인간의 힘으로 는 바꿀 수 없는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 쉬운 예를 보이며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때 우리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들이 확고한 증거와 제대로 된 논리에 근거한 것들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그런 후에야 기업, 정부, 국제기구 등에도 올바르게 행동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 (p. 15,16,17)

 장하준씨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바는 이 문장에 나와 있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부자와 힘 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들이 스스로 그르치지 않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에 힘을 실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제대로 따지고 들면 평소 결정을 내리던 자들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역사에서 살펴보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지금 있던 불공정의 관행대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많은 내용들이 부자들과 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불ㅈ편할 수도 있다. 자신들이 받던 혜택을 흔드는 것이니까. 오바마가 부자들의 세금을 더 거둬 복지 제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할 때 부자들이 대통령인 오바마에게까지 넣는 압박을 보라. 얼마나 무서웠는지. 대통령이라 해도 미국의 부자들을 위한 제도를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영화 '월 스트리트: 머니네버슬립'에는 미국의 부자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만한 고찰이 담겨 있다. 주식시장이 급격히 발달되어 있는 미국에서 대표되는 월 스트리트는 미국 경제의 모든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주식시장이 붕괴되면 연거푸 연결되어 있는 다른 산업과 경제들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이 미국이다. 그런 위태하지만 아슬아슬한 주식시장에서 일부는 거대한 돈을 챙기게 된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겉잡을 수 없게 된 상황이 닥치자 정부는 자칫 나라가 휘청거릴 수 있겠다 싶어 자금을 지원해주게 된다. 이런 경우는 영화에서만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의 주식시장이 그랬고, 기업들이 그랬다. 자신들의 탐욕으로 회사가 휘청거리자 정부는 이들이 망하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자금을 대줄 수 밖에 없었고, 이 덕에 아무 죄책감 없이 덕을 본 것은 그런 문제를 만든 당사자들이었다.

 미국, 그리고 미국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영국의 경영자 계층이 시장을 조종하고 자신의 결정이 부른 부정적인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이 강해진 마당에 그들에 대한 적절한 보수 체계가 시장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또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 208p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 말하는 바는 자신들이 받고 있는 임금의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능력이 되기 때문에 경영자는 그만큼의 보수를 받는다고. 당연히 그들의 입장에서 현제도를 바꾸고 싶을 마음이 없겠지.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손해라고 생각하니까.

 부자 나라들의 일부 개인이 가난한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에 비해 생산성이 수백 배나 높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머리가 더 좋다거나 교육을 더 잘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제도와 물리적 인프라를 가진 경제 환경에서 살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수세대에 축적된 집단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 55p

 그들이 말하는 23가지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제시하며 이 책에는 많은 부분이 서민들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불편한 사람도 많을 듯하다. 어떤 부분은 전편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제시했던 논제와 이야기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새로운 점을 제시하고 보충하기도 했다.

 우리가 자녀들을 노동 시장에 내몰아 성인들과 경쟁하도록 하지 않고 학교에 보내는 것과 같은 논리로, 개발도상국 정부는 자국의 기업들이 도움 없이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능력을 갖출 때까지 유치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 - 105p - '나쁜 사마리아인들'와 연결되는 부분

 
 문제는 규제의 절대량이 아니라 규제의 목적과 내용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62p - 정부 규제의 핵심

 277p에 나온 부분은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나오던 정의의 딜레마를 떠올리게도 한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생계비 지원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통해 밥을 굶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어야(결과의 균등) 그 아이도 같은 조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277p

 균등함을 정하는 데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긴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가장 가까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정세와 각국의 장점과 단점들을 분석하고 비교하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제시한 이 책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 많은 경제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소수가 아닌 다수가 더 나은 삶을 누리는 것이 이 책이 바라는 바다. 그렇기에 조금 불편하고 다소 복잡하고 언뜻 당장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관행을 바꾸는 것은 단순해 보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힘을 가지고 있고 한명 한명 읽는 독자들 스스로에게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올해는 유난히 장르를 불문하고 윤리적 가치에 대해 말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것 같다. 마이클센델의 작품이 그렇고 장하준의 작품이 그렇다. 아마도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가 그것이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이런 책들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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