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작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가 정확히 문제점만 훑고 들어간 이 책에서 저자는 단순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여러가지 문제가 되는 자유시장의 단점들 중 구체적인 근거와 실제 처해진 상황을 통해 해결점을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사실 해결방법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우선 부자들과 힘있는 자들에게는 그리 달가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많이 버는 자의 세금을 현상황보다 더 떼겠다고 하면 그들은 그들이 가진 힘으로 제도를 제압한다. 저자는 많이 버는 사람의 세금을 더 떼는 것을 주장하고 그 뗀 세금을 현 제도의 복지에 이바지하는 것이 지금의 불평등으로 일어나는 범죄와 불안정을 막는 방법이라고 말하지만 부자인 입장에서는 자기가 돈을 버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능력이 되니까 버는 것인데 많이 번다고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돈을 많이 벌면 평균적으로 나라의 소득도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나라가 잘 살게 되는 것이니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사람도 혜택을 보게 되어있다고 말한다.

 책속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기에서 부자들이 하는 말에는 근거가 없다. 게다가 구체적인 상황 제시도 없다. 여태까지 부자들이 하고 싶은 대로 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혜택을 잃을 수 없기 때문에 계속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다.

 부자들이 돈을 많이 벌수록 그만큼 한 편에는 손해 보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라가 잘 산다고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에 범죄가 많고 보안체계가 발달되어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드는 제도 하에서 부자가 아닌 사람이 부자가 되는 일은 더 힘들어지게 되었고 그런 나라에서는 정부에서 복지 예산조차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평균 생산량은 일인당 생산량과 다르다. 어떤 일인은 생산량이 아주 높을 수도 있고 어떤 일인은 생산량은 아주 낮을 수 있으나 이들을 모두 합해 나타내는 평균은 그다지 유용한 분석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몇가지 점을 강조하며 반복하기도 한다.

 - 자유 시장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시장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각종 규제에 반대하는 소리에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다.

 - 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경제의 역동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촉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정부에 대해 널리 퍼진 불신이 근거가 없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밖에도 탈산업화된 지식 경제 시대에 대한 착각, 부자들에 대한 과도한 세금 감면에 대한 문제점, 인간의 힘으로 는 바꿀 수 없는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 쉬운 예를 보이며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때 우리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들이 확고한 증거와 제대로 된 논리에 근거한 것들인지를 따져 봐야 한다. 그런 후에야 기업, 정부, 국제기구 등에도 올바르게 행동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 (p. 15,16,17)

 장하준씨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바는 이 문장에 나와 있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부자와 힘 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들이 스스로 그르치지 않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에 힘을 실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제대로 따지고 들면 평소 결정을 내리던 자들도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역사에서 살펴보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지금 있던 불공정의 관행대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많은 내용들이 부자들과 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불ㅈ편할 수도 있다. 자신들이 받던 혜택을 흔드는 것이니까. 오바마가 부자들의 세금을 더 거둬 복지 제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할 때 부자들이 대통령인 오바마에게까지 넣는 압박을 보라. 얼마나 무서웠는지. 대통령이라 해도 미국의 부자들을 위한 제도를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

 영화 '월 스트리트: 머니네버슬립'에는 미국의 부자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만한 고찰이 담겨 있다. 주식시장이 급격히 발달되어 있는 미국에서 대표되는 월 스트리트는 미국 경제의 모든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주식시장이 붕괴되면 연거푸 연결되어 있는 다른 산업과 경제들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이 미국이다. 그런 위태하지만 아슬아슬한 주식시장에서 일부는 거대한 돈을 챙기게 된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겉잡을 수 없게 된 상황이 닥치자 정부는 자칫 나라가 휘청거릴 수 있겠다 싶어 자금을 지원해주게 된다. 이런 경우는 영화에서만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의 주식시장이 그랬고, 기업들이 그랬다. 자신들의 탐욕으로 회사가 휘청거리자 정부는 이들이 망하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자금을 대줄 수 밖에 없었고, 이 덕에 아무 죄책감 없이 덕을 본 것은 그런 문제를 만든 당사자들이었다.

 미국, 그리고 미국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영국의 경영자 계층이 시장을 조종하고 자신의 결정이 부른 부정적인 결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가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이 강해진 마당에 그들에 대한 적절한 보수 체계가 시장의 힘에 의해 결정되고, 또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 208p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 말하는 바는 자신들이 받고 있는 임금의 정도가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능력이 되기 때문에 경영자는 그만큼의 보수를 받는다고. 당연히 그들의 입장에서 현제도를 바꾸고 싶을 마음이 없겠지.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손해라고 생각하니까.

 부자 나라들의 일부 개인이 가난한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에 비해 생산성이 수백 배나 높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머리가 더 좋다거나 교육을 더 잘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제도와 물리적 인프라를 가진 경제 환경에서 살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수세대에 축적된 집단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 55p

 그들이 말하는 23가지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제시하며 이 책에는 많은 부분이 서민들에게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불편한 사람도 많을 듯하다. 어떤 부분은 전편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제시했던 논제와 이야기들이 반복되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새로운 점을 제시하고 보충하기도 했다.

 우리가 자녀들을 노동 시장에 내몰아 성인들과 경쟁하도록 하지 않고 학교에 보내는 것과 같은 논리로, 개발도상국 정부는 자국의 기업들이 도움 없이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능력을 갖출 때까지 유치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 - 105p - '나쁜 사마리아인들'와 연결되는 부분

 
 문제는 규제의 절대량이 아니라 규제의 목적과 내용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62p - 정부 규제의 핵심

 277p에 나온 부분은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나오던 정의의 딜레마를 떠올리게도 한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아이가 배가 고파서 수업 시간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생계비 지원을 받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통해 밥을 굶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어야(결과의 균등) 그 아이도 같은 조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277p

 균등함을 정하는 데는 여러가지 변수가 있긴 하지만 생각해보아야 가장 가까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정세와 각국의 장점과 단점들을 분석하고 비교하며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제시한 이 책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 많은 경제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경제가 좋아진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소수가 아닌 다수가 더 나은 삶을 누리는 것이 이 책이 바라는 바다. 그렇기에 조금 불편하고 다소 복잡하고 언뜻 당장 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관행을 바꾸는 것은 단순해 보이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힘을 가지고 있고 한명 한명 읽는 독자들 스스로에게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올해는 유난히 장르를 불문하고 윤리적 가치에 대해 말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한 것 같다. 마이클센델의 작품이 그렇고 장하준의 작품이 그렇다. 아마도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가 그것이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이런 책들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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