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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 갑질 공화국의 비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5월
평점 :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승열패로 대변되는 힘의 관계는 갑과 을로 나뉜다. 갑질은 바로 그 갑이 저지르는 못된 횡포를 말한다. 우리 사회의 갑들은 정치인, 고위 공직자, 재벌 등이다. 하지만 갑질은 상대적이어서 힘센 사람 앞에서 을인 사람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갑으로 군림할 수 있다.
저자 강준만은 갑질을 우리가 옳거나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본다. 저자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스템은 신분 상승을 이룰 수 있는 코리안 드림의 토대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신분 서열제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왜곡된 능력주의' 즉 갑질이라는 실천방식을 내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문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스템은 각개전투 사회의 시스템이다. 요즘에는 각자도생이란 말이 더 자연스럽다. 저자는 진보가 힘주어 주장하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가 그들이 온힘을 다해 비판하는 낙수효과의 사회적 버전임을 깨닫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용과 미꾸라지를 구분해 차별하는 신분 서열제를 깨거나 완화하는 동시에 개천 죽이기를 중단하고 개천을 우리의 꿈과 희망을 펼칠 무대로 삼자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6.25 심성(心性)이란 것이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참사를 겪는 동안 우리 국민들이 몸에 익힌 극단의 생존경쟁, 물질만능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개인주의 등을 말한다.
갑질은 6.25 심성이 구현된 것이다. 물론 갑질은 한국인의 전투성을 키워준 동력이었다. 한국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압축성장을 하게 한 힘이 한국인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모욕사회이다. 남에게 모욕을 주는 걸 자신의 인정욕구 충족이나 존재감의 확인수단으로 이용하는 사회인 것이다.(42 페이지)
한국은 우리가 개인주의 사회로 알고 있는 서구 사회보다 공동체성이 훨씬 취약한 나라이다. 한국 사회는 조선시대보다 더한 계급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저자는 나는 모욕을 견디는데 너는 왜 못하냐며 내부 고발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약한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를 보며 이는 인간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라 말한다.(59 페이지)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온갖 불합리와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참으로 난제 중의 난제이다. 이런 불합리와 모순은 상당히 폭력적이고 원초적인 양상으로 드러난다. 이성은 없고 떼 쓰고 과시하고 일그러진 의식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양상을 보면 어린아이들의 막무가내를 보는 듯 하다.
'내가 누군지 알아?'란 말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는 '너 따위가 감히'를 핵심으로 하는 권력 담론이자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갑질 언어이다. 저자는 나름으로는 제법 성공을 거둔 이들이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으로 간주하는 가운데 우리들이 그들이 기고만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열심히 조성해오지 않았는지 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 정체성을 오직 남과의 서열관계 속에서만 파악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84 페이지) 사실 속물적 과시와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신분이나 지위를 표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조선시대보다 더한 계급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철저한 서열의식과 귀천 관념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꾼 1897년경 매관매직(賣官賣職)은 국가 시책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도를 폐지해버린 탓도 있었지만 황실은 세원(稅源)이 없어 벼슬을 팔아서라도 국고를 충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 탐관오리들만이 득실거렸는데 벼슬을 돈 주고 샀으니 본전 뽑고 이익까지 남겨야 했음은 너무도 뻔한 사실이다. 갑질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오늘날 양반 족보는 학력, 학벌 증명서로 대체되었다.
저자는 능력주의는 허구이거나 사기(詐欺)라 말한다. 능력은 주로 학력과 학벌에 의해 결정되는데 고학력과 좋은 학벌은 주로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서울대 합격률은 아파트 가격과 상관관계를 보인다.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모든 능력을 세습되지 않은 재능과 노력의 산물로 보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격차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즉 능력주의이다.(145 페이지) 우리 사회의 교육은 온갖 차별과 서열주의의 시발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로부터 배운 그런 악덕들을 학생들이 되풀이하는 것이다.
한국의 학벌 카스트는 상징자본은 물론 돈과 힘까지 독식할 수 있는 근거가 되니 어떤 면에서 인도보다 뒤떨어진 카스트제도를 갖고 있는 셈이다.(161 페이지) 저자는 지위(地位)의 본질은 비교라 말한다.(191 페이지) 한국인들이 자부심이 낮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저자는 한국인들은 남의 시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라 말한다. 좁은 땅에서 동질적인 사람들이 몰려 살다보니 갖게 된 인정 욕구 때문이라는 것이다.(211 페이지)
저자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는 상상력과 용기, 이것이 바로 지위 불안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 말한다.(222 페이지) 학력, 학벌 차별처럼 외모 차별도 갑질의 하나이다. 대기업의 중소 기업 착취도 그렇다.
‘미생(未生)’을 통해 널리 알려진 비정규직에 대한 푸대접, 차별 등도 그렇다. 우리나라도 서구 선진국들처럼 고용 안정성이 없는 비정규직이 돈을 더 받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272 페이지)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전히 재벌을 사랑하는 것을 스톡홀름 신드롬에 비유한다.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남기면서도 고용확대를 주저하고 오히려 사내 하청을 통해 비정규직 남용을 주도한다. 하도급 기업에 대해 납품 단가 후려치기, 기술 빼앗기 등 불공정 거래를 일삼으며 이익의 공유를 거부한다. 중소기업 영역과 심지어는 골목상권까지 침투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사회경제적 약자들(을)이 사는 나라는 경쟁 과잉이지만 강자들(갑)이 사는 나라는 경쟁 과소이다.(245 페이지) 관피아, 전관예우, 담합 등을 보라. 저자가 말했듯 한국은 시장경제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공정 경쟁조차 구현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245 페이지)
우리 사회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승자 독식 사회가 되었다.(276 페이지) 승자 독식 사회란 개천에서 용 나는 시스템이다. 저자는 대학 등록금 폭등의 원인이 대학 서열화에 있는데 그것을 오히려 강화하면서 억울하면 너도 대학 가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라 말한다.
저자는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성찰의 필요성을 “왜 우리만 자기성찰을 해야 하느냐?”, “왜 적을 이롭게 하느냐?“는 항변으로 대체하는 멘털리티라 말한다.(280, 281 페이지) 한 사교육 관계자는 가진 사람들이 부를 세습하는 장치들이 너무 단단하다, 공부 잘 한다고, 명문대 나온다고 중산층으로, 그 이상으로 올라가긴 쉽지 않다, 대학 잘 가는 것은 경쟁력 요소의 하나일 뿐 그리 큰 경쟁력은 아니라는 말을 했다.(318 페이지)
온갖 독설을 하며 공부를 독려하던 이의 말이다. 목숨 걸고 공부해도 소용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고착화 사회, 변화(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없는 정체 사회가 되었다. 이게 가장 큰 갑질이 아닐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사회를 우리 나라를 설명하는 데 쓸 수 있는데 문제는 그런 가혹한 투쟁이 을에게만 해당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제대로 보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는 것이라 말한다.(33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