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

만해의 ‘알 수 없어요‘의 한 구절을 들춰 본다.

이 부분에서 의미 있는 구절은 언뜻이란 말이다.

좀 더 말하자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이란 구절이다.

언뜻은 잠깐 나타나거나 문득 생각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인데 다른 부분도 아닌 이 시의 그 부분을 인용하는 이유는 책 한 권을 전부 읽고 리뷰를 쓰던 습관을 지양(止揚)하고 부분 부분을 읽고 생각 거리를 얻는 내 행태(行態)가 마치 언뜻 언뜻 보이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을 통해 푸른 하늘을 보는 것 같아서이다.

아니 지양한다기보다 전부를 뜯어 먹기 힘든 책이 점점 많게만 느껴져 이제는 책 속을 어슬렁거리다가 이거다 싶은 구절이 있으면 눈을 굴려 사람을 만들 듯 생각을 붙여나가 글 한편을 만들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뜯어 먹기 힘든’이란 말은 노혜경 시인의 ’뜯어 먹기 좋은 빵‘이라는 시 제목에서 따온 말이다.

소설에 비유해 책을 말하자면 대개의 것들은 장편이 아닌 소설집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저런 단편들을 하나로 묶은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의미이다.

전체를 다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좋지만 단편적인 부분들을 읽고 단상 형태의 글을 쓰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김행숙 시인의 평론집 ’천사의 멜랑콜리‘도 그런 방식으로 읽는다.

’우리가 엄마, 언니, 소년소녀를 불렀을 때‘란 글에서 나는 무엇 무엇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구절과 어쨌든이란 구절(을 시인이 쓴 것)에 주목한다. 내가 자주 쓰는 어법이기 때문이다.

무엇 무엇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구절은 사랑스런 엄마와는 다른 초자아(超自我: 금지하고 억제하는)적인 엄마로 소개된 기형도 시인의 ’바람의 집 – 겨울 판화‘의 “어머니“ 때문에 있게 되었다.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시인은 초자아로 군림하는 무서운 어머니의 단초를 ’바람의 집 – 겨울 판화‘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201 페이지)

지난 화요일(7월 11일) 백범 기념관에서 동기(同期) 모임을 가졌다. 잘 알다시피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아들을 독립운동가로 키운 강한 어머니이자 그 자신 독립 운동까지 하신 분이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어떤가. 이 분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으로 옥에 갇힌 아들에게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란 편지를 쓴 분이다.

불온한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 분들의 (슬픔과 아픔을 이긴) 강함을 초자아적인 것으로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

나는 초자아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식의 상투(常套)를 되풀이 하고 싶지 않다.

이를 위해 이철송의 ’황지우와 박노해, 증상과 욕망의 시학‘을 읽을 필요가 있겠다. 말 그대로 참고서로.

저자 이철송은 노동자 스스로 자기 욕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박노해의 시적 실천은 정확히 정신분석학적 처방이라 말한다.

이 부분이 초안(草案)일 뿐인 내 생각에 실마리를 준 것이다.(초자아란 말은 정신분석학의 주요 용어이다.) 내 생각은 어디로 가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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