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와 히데키(1907 – 1981)와 도모나가 신이치로(1906 – 1979)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적 과학자들이다.

이론물리학자 유가와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1949년으로 전 분야를 통틀어 일본 최초이다. 도모나가가 수상한 것은 1965년이다.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설국’으로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1968년, 오에 겐자부로가 ‘만연 원년의 풋볼’로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 1994년이다.

유가와와 도모나가는 연구가 잘 되지 않을 때 죽음을 생각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것도 공통점이다.

이 가운데 더 많은 관심을 끄는 사람은 유가와이다. 자서전에서 유가와는 “문학적인 아름다움과 이론물리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지금도 잘 알고 있다.”는 말을 했다.

유가와는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많은 에세이를 썼다.(고토 히데키 지음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 202 페이지)

유가와는 논문을 잘 쓰지 않아 학과장인 야기로부터 유쾌하지 않은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원래 도모나가를 초빙하려 했지만 자네 형님이 부탁을 해 어쩔 수 없이 채용한 것이며 도모나가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유가와는 야기를 마음 속에서 끊어냈다고 한다.

이렇듯 유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 페친의 글 때문이다. 도서 디자인 관련 편집 회의에서 이 책(과학책)은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이다.

나는 (할머니도 이해할 수 있게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쉽게 쓰기보다) 쉬울 것 같다는 인상을 갖도록 하는 것은 미끼 아니냐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다.

사실 사기(詐欺)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미끼라 말한 것이다.

‘천재와 괴짜들의 일본 과학사’의 저자는 학자의 논문은 세일즈맨의 영업 실적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한다.

순수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지만 할머니도 이해할 것 같다는 인상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략 차원으로 보고 싶다.

유가와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중간자(中間子)의 존재를 예언했기 때문이다.

이 예언의 배경에 유가와의 비범함이 있다. 어릴 적 한 절에서 형과 놀다가 넘어진 일이 유가와에게 있었다고 한다.

넘어지면서 묘비에 머리를 부딪혀 울던 어린 유가와의 눈에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보였는데 그렇게 흩어지는 햇살을 보고 유가와가 상상한 것이 바로 무수한 별이었다고 한다.

어떻든 나뭇가지 사이로 곱게 흩어지는 햇살을 보고 무수한 별을 상상한 것도 인상적이고 성인이 되어 그 기억을 되살려 중간자를 떠올린 것도 예사롭지 않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를 읽다가 불확정성 원리의 영감을 얻은 하이젠베르크의 사례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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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7-03-25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자의 논문은 세일즈맨의 영업 실적 같은 것‘이라는 말이 와 닿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17-03-25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blueyonder님... 생각이 같아 반갑습니다...^^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테리 이글턴 지음, 조은경 옮김 / 알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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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의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는 무신론은 결코 쉬운 개념이 아니며 전능한 신은 진정 없애버리기 힘든 존재라는 전제하에 문화가 신을 대체하는 기제임을 주장한 책이다. 이글턴은 제도의 의미를 갖는 종교와 개인적 차원의 신앙을 구분하고 교회와 신을 구분한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럼에도, 그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 등의 부사(副詞)가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종교 또는 신에 반()하는 행동을 보였지만 결국 종교적이거나 신앙적인 면모를 보였거나 신학에서 유래한 개념들에 주된 초점을 두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기에 이글턴은 무정부주의자들보다 무정부주의란 개념이, 허무주의자들보다 허무주의란 개념이 무신론자들보다 무신론이란 개념이 먼저 등장했음을 언급한다. 이 중 무신론에 초점을 맞추면 결국 무신론자라 불린 사람들이 신을 저버린 게 아니었다는 말이 가능하다.

 

알랭 바디우의 행적도 도마(?)에 오른다. 즉 그는 열렬하게 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신학적 내력을 가지고 있는 무한함(infinity)과 공허(the void)라는 개념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글턴에 의하면 무신론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16세기이다.

 

계몽주의에 대한 논의도 관심을 끈다. 이글턴에 의하면 계몽주의 프로젝트는 신을 끌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지몽매한 종교적 믿음을 런던 스트랜드 가()의 커피 하우스에서 일어날 법한 대화로 대체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같은 차원에서 계몽주의가 종교를 공격한 것은 초자연적인 것을 자연적인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야만적이고 미개한 믿음을 추방하고 그 자리를 문명화된 믿음으로 대체하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거론되었다.

 

계몽주의의 관심은 신의 죽음이 아니었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이글턴은 계몽주의는 철학적인 글에 국한하지 않는 하나의 정치적 문화였다고 말한다. 계몽주의가 종교를 공격한 것은 신학적 차원에서라기보다 정치적 이유에서였다. 계몽주의자들은 신에 대한 사랑의 자리를 인류에 대한 헌신으로 대체했고 신성한 은총은 시민의 덕성으로 바꿔놓았다.

 

이글턴은 계몽주의는 정서적으로 그리고 상상의 근원으로는 너무 희박하고 상징적 관점은 너무 빈약해서 근대성에 자기정당화를 이룰 확실한 수단을 제공할 수 없는 형태의 사상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주적 조화보다는 종교가 주는 위안에 더 관심이 많은 대중의 충성을 이끌어낼 수 없었다고 말한다.(45, 46 페이지)

 

도덕도 거론되었는데 이는 여러 가지 가명(假名)을 이용하며 숨은 신()의 이름 중 하나였다. 회의주의자 데이비드 흄은 신앙의 진리와 이성의 진리는 별개의 것이고 진리는 두 개라는 의미를 지닌 이중진리론을 연출했다. 이성(理性) 역시 거론되었다. 이성은 그 자제로 형태가 없다는 점에서 어느 면으로 보나 점점 확실해지는 신의 부재에 그럴듯한 대체자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성서의 하느님은 인격을 가진 존재인 반면 이성은 비인격적 거만함 때문에 명백하게 신 같지 않다고 이글턴은 말한다. 이글턴이 말하는 것은 딜레마 같은 현실이다. 물론 이성이 처한 딜레마이다.

 

전능한 신의 개입 없이 돌아가는 엄격하게 이성적인 세상은 모순되게도 자의적이고 비이성적인 신을 만들어내었고 신을 우주의 주변부로 추방하는 것은 신을 없어도 되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신의 신비성을 한층 깊게 만드는 행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글턴으로부터 이성은 사실과 가치를 연결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글턴은 신의 왕국은 현존하면서 부재하고, 인간 역사에서 모든 곳에 편재하지만 여전히 초월적 형태로 온다는 정통 기독교의 내부 갈등은 치명적일 정도로 느긋하다고 말한다.

 

이런 무능력한 이중성을 개조하는 일은 독일 관념주의자들에게 맡겨질 터였다. 근대의 역사는 신의 대리자를 찾는 일에 집중한 역사였다.(65 페이지) 신을 대체하는 문화를 이야기했지만 정신분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고위 성직자, 고백 의식, 원죄 의식, 존재론적 죄책감, 신비스러운 법, 종파간 분립, 황당할 정도로 불가해한 무의식을 탐구하는 준() 신학적 방법 등을 갖춘 대용 종교를 만들어내기도 한 것이 정신분석이다.(66 페이지) 이글턴이 강조하는 바 아마도 신임을 잃어버린 신의 대역으로 가장 성공한 사례는 문화일 것이다.

 

예술로 알려진 이미지의 보물 창고가 종교적 믿음의 경쟁관계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낭만주의가 도래한 다음일 것이다.(75 페이지) 이글턴은 영()인 아버지가 신체를 가진 아들로 구현(具現)되듯 이성이라는 영원한 관념이 예술이라는 초라한 물질에서 스스로를 명시(明示)한다고 말한다.(76 페이지) 절묘한 말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숭고한 진리를 매일의 품행으로 연결시키는 종교적 믿음을 대체하기에 예술은 소수적 성향이 강하다. 역사상 그 어떤 상징 체계도 종교와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78 페이지)

 

시인이나 철학자는 세속의 성직자라는 지위를 부여받았고 예술과 신화는 일련의 신성한 의식과 유사한 것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개인주의로 인해 그리고 자연은 완전히 죽은 물질이라는 시들어버린 합리주의로 인해 고통받은 인간 정신도 치유되었을 수 있다.(83, 84 페이지)

 

자발적으로 종교를 세속적으로 다룸으로써 종교를 불명예스럽게 만든 바로 그 체계(자본주의)가 종교가 제공하는 상징적 통합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다.(86 페이지) 이글턴은 종교가 이미지, 의식, 이야기를 활용했듯 이성도 새로운 신화 또는 미학이라는 새롭고 흥미로운 담론을 이용했다고 말한다.(93 페이지)

 

이성과 감각을 연결하는 것이 미학의 역할이다.(94 페이지) 문화는 신의 세속적 이름이다.(102 페이지) 이글턴은 기독교의 중요 미덕으로 교육받은 자를 위한 것(신학)과 대중을 위한 것(헌신적 실천)이 따로 있는 것을 꼽는다.(107 페이지)

 

낭만주의자를 주제로 한 챕터에서 이글턴은 예술은 욕망을 정련 또는 숭고화시키는 작업으로 그 분열성을 진정시키면서 동시에 보편적 상태로 끌어올린다고 말한다. 자기표현과 미학적 균형의 필요조건 사이에 가능한 최상의 균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128 페이지)

 

절대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절대성의 존재를 느낀다. 절대성은 보여질 수는 있으나 말로 표현될 수는 없다. 아마도 절대성은 그저 규율적 관념이거나 편리한 가상, 본질적이지만 손에 닿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낭만주의는 분명 믿음과 신의 죽음 사이 어딘가에 갇힌 일종의 부정(否定)적 신학이다.(129 페이지)

 

()은 적극적 규정이 아닌 무엇이 아니라는 식의 부정의 방법으로만 인식할 수 있다는 신학이 부정 신학이다. 낭만주의는 관념론자들과 신정론(神正論)을 공유한다. 인간은 다투고 불화하지만 이는 오직 미래의 조화에 필수적인 서곡일 뿐이다.(131 페이지)

 

상상력은 은총의 세속화된 형태이다. 상상력은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이 너머에서 자아를 붙잡고 그렇게 해서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방식으로 자아가 꽃피게 만든다. 상상력을 욕하는 것은 최소한 문학계에서는 일종의 신성모독이다.(133 페이지)

 

그러나 괴테의 말을 들어보자. 그에 의하면 상상력은 분열된 능력, 창조적 에너지의 원천인 동시에 공포와 망상의 근원이다.(135 페이지) 상상력에는 라캉의 실재와 프로이트의 타나토스적 요소가 있다. 상상력은 통합적이기보다 분열적이다. 상상력에는 은혜로움 뿐 아니라 신성의 공포가 있다.(136 페이지) 워즈워스는 이런 사나운 힘을 우화시키고 길들이는 것이 시의 임무중 하나라고 보았다.

 

근대성이 진정한 무신론을 성취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생각해보면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마침내 무신론을 달성했을 때도 결코 종교적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종교적 믿음을 타파해서 얻은 것은 아니었다.(155 페이지)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신은 항상 다른 모습을 하고 무대에 다시 등장한다. 문화는 과연 일반 대중과 지성인을 정신적 교감 안에서 하나로 묶으며 종교 이후 시대의 신성한 담론이 될 수 있을까?(158 페이지) 가능하지 않다.

 

계몽주의가 종교적 신념을 축출하는 데 실패했다면 관념론자와 낭만주의자들은 종교를 세속화하지 못했다. 우리의 경외감, 존경심, 의무감 등을 신에게서 인류에게로 돌리려 무던히 애를 쓴 허버트 스펜서, 조지 엘리엇, 조지 헨리 루이스 같은 19세기 합리주의자들에게 과학은 불가해한 신비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준종교적 활동이었다.(181 페이지)

 

예수에 대해 적확한 논리를 펼친 이글턴은 쇼펜하우어에 대해서도 선언적인 말을 한다. 쇼펜하우어는 일종의 종교적 이단자이자 그가 몹시도 시기한 헤겔의 악몽 버전이며 순수한 형이상학자라고.(196 페이지)

 

이글턴은 신이 죽어버린 후 욕망의 죽음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197 페이지) 니체가 볼 때 진정한 초인은 우주의 공허함에 맞서고 종교의 위안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과학자다.

 

신을 계속해서 생존하게 하는 다양한 인공호흡기 중 가장 효율적인 것은 도덕이다. 이글턴은 도스토예프스키에 반대하며 라캉이 주장하듯 신이 죽었다면 우선 허락해줄 이가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한다.(201 페이지)

 

자연에 대한 통치권과 으스대는 자기독립적 모습의 초인에게서 신에 대한 신성함의 기색 이상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신이 결국 죽지 않았음을 의미한다.(202 페이지)

 

이글턴은 마르크스의 사상 특히 초기 사고는 유대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에 그에게서 진정한 무신론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203 페이지) 니체의 초인이 문제이다. 즉 전능한 신처럼 초인도 오로지 자신에게 의지한다. 퇴행적으로 신학을 훔쳐보지 않으면서 자율성이나 자기생산을 말할 수는 없다.

 

좀더 넓은 의미의 문화는 종교의 공산주의적 정신과 같은 무엇인가를 보유한다. 과학, 철학, 문화, 그리고 정치는 종교의 쇠퇴에도 존속하며 제각기 그들만의 사업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의 사업을 유지하면서 종교의 임무 중 몇 가지를 나눠서 수행해야 하는 입장이다.(221 페이지)

 

비극은 자유와 결정론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쳤는데 그 한 가지는 혐오스러운 결정론을 섭리 또는 신이라는 좀더 고상한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다.(227 페이지) 비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근대에 또다른 형태의 분열된 종교 역할을 했고 개념이라기보다 이미지의 문제로 더욱더 인상적인 존재감을 풍겼다.

 

미국의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는 어떤 사람이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린 후 삶의 구원으로서 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본질이 시라고 말한다. 스티븐스는 시와 훌륭한 음악이 천국의 빈자리와 찬송가를 대신한다고 말한다. 신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경제는 아마 순전한 무신론자일 수 있지만 경제를 감시하는 국가는 여전히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될 필요성을 느낀다.(246 페이지)

 

종교적 믿음과 관련해 인간은 역사상 가장 성공을 거둔 상징체계를 하루 아침에 버리지 않는다. 원리주의는 전지구적 교리다. 세상은 너무 심하게 믿는 자들과 너무 믿지 않는 자들로 양분된다.(248 페이지) 서구 자본주의는 세속주의 뿐 아니라 원리주의를 낳는 데도 일조한 셈인데 이는 가장 칭찬할 만한 변증법의 위업이다.

 

동시대 자본주의가 탈신학, 탈형이상학, 탈이념, 탈역사의 시대를 향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시점에 분노에 찬 신이 자신의 부고 공지를 너무 빨리 돌렸다고 항의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계몽주의가 도래하면서 과학과 이성은 종교의 권위 비슷한 것을 계승하려 했다. 급진적 낭만주의 시대에는 이성보다는 예술이 통치권을 찬탈하려 했다. 혹은 찬탈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신의 자리를 대체하려 했다.

 

현재는 우파가 아닌 좌파 진영에서 정치에 대한 종교적 보충물을 찾는 이들이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분명 후기 자본주의의 정신적 공허감에 대응하기 위해서이지만 사실상 믿음, 희망, 정의, 공동체, 해방 등에 대해 세속적 개념과 종교적 개념 사이에 중요한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254 페이지)

 

지적 측면에서 볼 때 종교는 순전히 헛소리이지만 종교가 반드시 필요한 공손함, 미학적 매력, 사회 질서, 도덕적 교화에 기여한다면 지적 측면에서 헛소리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256 페이지)

 

이글턴은 알랭 드 보통, 마키아벨리, 니체 등이 종교에 대해 보인 '그럼에도'의 역설을 언급한다. 마키아벨리는 종교적 개념은 공허하지만 공포를 조장하고 폭도를 진정시키는데 유용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니체는 뻔뻔스러운 대담성을 발휘해 문제가 되는 것은 신의 죽음이라기보다 인간의 불신이라 지적했다.(258 페이지)

 

내가 마르크스주의를 유사(類似) 종교라 말하는 것을 들은 것은 꽤 오래이다.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는 이 불분명한 말의 의미를 풀어서 설명한 책이다. 물론 마르크스만이 아니라 니체, 알랭 드 보통 등을 비롯한 많은 사례들이 망라되었고 풀어서 설명했지만 쉽지만은 않다. 같은 저자의 신을 옹호하다를 읽어야겠다. 이글턴의 종횡무진의 박학과 다식(多識)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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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의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에서 예수는 유대인 예언자로서 평화가 아닌 칼을 들고 이 땅에 왔고, 가족을 파괴하고 세상을 불로 심판할 것이라 말하고, 사기꾼과 창녀들과 어울림으로써 그 당시 종교적 권위에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상인과 환전상을 사원 바깥으로 내쫓고, 지극히 독실한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저주를 퍼붓고, 자신의 동지들에게는 그들이 약속을 지킨다면 그들 또한 나라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 경고한 존재로 그려짐... 깔끔한 정리... 이런 정리. 이런 예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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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ken sewol ferry‘란 말도 있지만 ‘1만톤의 슬픔‘이란 말도 있다.

탄핵이 결정된 박근혜에 대해 외신이 ‘Park out‘이라는 무미하고 간결한 표현을 한 것은 좋게 보았지만 세월호를 무미하게 표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은유나 수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세월호에 대해서는 비유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1만톤의 슬픔‘같은 말..

슬픔을 양화(量化)할 수 없으니 1만톤의 배 즉 비극의 세월호가 일깨우는 슬픔이란 말이다.

슬픈 시 같은 현실, 아픈 세월(歲月), 아픈 세월(世越)...더 이상 아파서는 안 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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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하나 단순하거나 쉬운 것은 아니며 우리가 하는 호흡마저도 힘들어지면서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단편 ‘나는 고독한 별이었다‘ 중에서)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이 말이 피부에 와닿는 때는 달리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26일 해설사 시험 합격 이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간 한 것은 없고 연구원 과정 등록을 한 기(期; 약 3개월) 늦췄을 뿐입니다.

5월 말 접수, 6월 중 결과 발표를 통과하면 연구 및 수습 과정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한 기를 늦춘 것은 한 분 외의 저희 36기 합격자들 대부분이 일요일 수습 일정을 맞출 수 없어서였습니다.

물론 저는 일정(지금 하는 일의 휴일)을 조정하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기 수습 일정을 평일로 해줄 것을 요구한 제 의사가 반영되어 실력도 뛰어나고 인성도 좋은 동기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한 호흡을 멈추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되겠지만 다음 기에도 일요일 일정으로 밖에 참여할 수 없다면 저는 홀로라도 참여할 생각입니다.

오늘 앞서 말씀 드린 일요일 일정에 지원한 분이 연구원 과정 합격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축하했지만 저는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저 뿐 아니겠지만 불안은 시스템을 잘 모르고 시나리오를 잘 써서 통과해 유료 해설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인한 것입니다.

오늘 올 해 첫 시행하게 된 서대문 역사 문화 해설사(자원봉사) 선발과 관련해 담당 직원과 통화했습니다.

당연히 이 과정 역시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과해야 합니다. 합격할 경우 주 1회 활동비를 받는 자원봉사 일을 하게 됩니다.

제게 절실한 것은 돈보다 말할 기회입니다. 문화해설이 고백은 아니지만 고백을 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제 심성의 주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고백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인 것은 왜일까요?

최근 ‘가족은 선택할 수 없지만 심리치유사는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이 제게는 고백을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리기까지 합니다.

글 잘 쓰는 정희진 씨가 페북을 사기(詐欺) 수준의 인격 세탁이 일어나는 곳, 부정의의 온상이라 표현한 것을 보았습니다.

많지 않은 경험에 근거해 부정적인 면모를 일반화해 말한 지나친 생각이지만 귀기울일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희진 씨가 말한 것과 같은 포장과 세탁은 페북만의 고유 특징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행위를 페르소나 차원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포장하고 가리고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인간관계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진정성이 무조건 타당하지는 않겠지만 허위와 가식은 우선 자신부터 황폐하게 만드는 지름길임을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고요한 방에 들어가 휴식할 줄 모르는 단 하나의 사실로부터 비롯된다는 파스칼의 말이 생각납니다.

자신의 약하고 어두운 부분에 주목한다면 자연스럽게 진정성 있는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고백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기법의 문제입니다. 문화해설사 이야기를 하다 이렇듯 고백 문제까지 언급한 탓에 글이 길어졌습니다.

한 지인이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한달쯤 전입니다.

진심으로 세션(session)이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정신분석이란 증상의 소멸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증상과 화해하고 그것과 함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백상현 지음 ‘라깡의 루브르‘ 98 페이지)

여성주의 심리학의 미리암 그린스팬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심리 치료를 받으러 갈 때 ‘내 감정을 없애주었으면’이 아니라 ‘이 감정에 대해 더 알고 그것이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내고 싶다’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감정 공부‘ 참고)

과정을 즐길 필요가 있겠지요. 삶도 그렇고 그 삶의 한 부분인 해설사 과정도 심리상담도 정신분석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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