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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연의 역동적 형태 우든북스 시리즈 6
데이비드 웨이드 지음, 최수홍 옮김 / 시스테마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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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理)는 자연의 질서와 패턴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자이크처럼 죽은 것으로서의 패턴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 인간관계, 인간의 최고의 가치에 구체화되어 있는 어떤 것으로서의 패턴을 의미한다.“(조지프 니덤 지음 ‘중국의 과학과 문명’ 중에서) 이 구절은 데이비드 웨이드의 ‘이(理), 자연의 역동적 형태’에서 인용된 말이다.

 

저자는 이를 게슈탈트 즉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패턴의 발현으로 본다. 이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나 아무 연관이 없는 현상에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구조가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서양 과학은 항상 패턴에 관심을 보였다. 사실상 패턴 인식이야말로 과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책에서 보여 주는 것 같은 준대칭 형태들이 진지하게 연구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대칭의 개념을 대폭 확장하고 경직된 고전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이에는 동양 우주관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이원론이라는 철학적으로 아직 서구 사상이 선망하지 않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역동적 형상을 의미하며 특정 순간 정지된 찰나에 포착된 어떤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는 더욱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특정 형태의 관련되어 있는 에너지의 근본원리 같은 것이다.

 

본문에 암모나이트(문어, 오징어의 조상격인 두족류) 화석의 봉합선이 나온다. 저자는 암모나이트 화석이 굽이치는 큰 강을 하늘에서 본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봉합선은 물결 모양의 선들을 말한다. 절단면을 매끈하게 광 낸 대리석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양한 색상뿐 아니라 먼 지질시대에 일어났던 격렬한 형성과정의 한 순간이 포착되어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변성암은 실제 극한의 열과 압력 아래에서 형성된 것들이다.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도자기 표면에 생긴 잔금에 미적 가치를 두었다. 반면 서구에서는 그것을 잘못된 결함 즉 문제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두 세계의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 말해 준다. 도자기의 깨진 듯한 잔금은 유약과 도자기 본체의 수축률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도자기의 잔금은 바짝 말라서 갈라진 땅이나 페인트와 겔이 마르면서 나타나는 잔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든 잔금은 축적되어 있던 스트레스가 분출되어 나가는 통로 곧 힘이 가는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인식하는 동양문화에서 잔금을 매력적으로 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형성되는 위계적 순서에 따라 크거나 작은 잔금들이 생긴다. 지질 구조 체계와 도시의 도로 계획 등의 많은 형태들 역시 이러한 위계적 체계를 가지는 이의 형태를 띤다.

 

저자는 위도가 높은 추운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혹독한 겨울 가끔 찾아와 유리창을 장식하는 우아한 문양의 서리가 생각지 않은 위안이 된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절리(節理)는 한자이고 서리의 리는 한글이지만 같은 차원으로 보인다. 아니 지구 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은 것을 서리라 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닮았지만 아스팔트 포장의 균열 패턴과 도자기의 잔금은 근본적으로 다르게 생성된다. 두 형태의 차이는 물질의 성질에서 온다. 아스팔트는 근본적으로 탄력이 있지만 도자기 유약은 탄력이 없다. 또한 도자기 표면의 잔금이 더 직각에 가깝게 교차된다.

 

나무껍질 모양은 탄력성 있는 물질이 갈라질 때 생기는 대표적인 모양이다. 나무는 껍질 바로 안쪽에 있는 층이 성장해 굵어지는데 이때 바깥쪽 나무껍질은 팽팽하게 당겨진다. 이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나무들은 종마다 다른 전략을 진화시켰다. 소나무는 껍질을 세로 방향으로 갈라지게 하면서 아스팔트 균열과 다르지 않은 방을 만들어 낸다. 반면 밤나무는 팽창하는 힘을 우아하고 부드러운 나선형 고랑 모양으로 유도한다.

 

모든 종은 자신만의 독특한 이를 가지고 있다. 이로써 종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숙한 나무에서는 갈라진 껍질에 새로운 물질이 더해지며 그 결과 참나무에서 보는 것처럼 균열이 더 깊고 뚜렷해진다. 지의류의 조형적 습성은 그 겸손한 존재에 걸맞게 단순하지만 계속 성장해나가면서 여러 층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 무척 복잡하고 아름답다.

 

지의류가 자라는 것과 똑같은 패턴을 산화 갈륨의 표면 형성에서와 같은 일부 화학반응에서도 볼 수 있다. 식물에서 잎이 나는 차례는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규정된다. 그 유명한 피보나치 수열을 따른다. 그러나 양배추와 같이 좁은 공간 내에 배열이 국한되는 경우에는 잎들이 서로 먼저 자리를 차지하려 경쟁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양배추는 말하자면 식물의 끝눈이 비대해진 것인데 연속적으로 자른 단면을 보면 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한 잎들의 기하학적 배열이 어떻게 깨지는지 알 수 있다. 질서정연한 형태에서 훨씬 불안정한 형태로의 진행은 형태와 에너지라고 하는 양대 원칙이 상호작용할 때 창발하는 복잡성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양배추 같은 예에서 이런 고도의 유추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의 영원한 매력이기도 하다.

 

기하학적 이상 상태는 자연의 어느 곳에서도 실현되기 아주 힘들다. 용암이 이상적으로 완벽하게 균일한 물질이라면 그물망이 아니라 정육각형 패턴이 형성될 것이다. 두 유리판 틈 사이에 생긴 비누 거품막도 질서와 패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두 유리판 틈 사이에 생긴 비누 거품막이나 세포들이 우아하게, 그리고 역동적으로 당겨지면서 배열된 곤충의 날개는 최적의 경제적 형태라는 원리를 공유한다.

 

현무(玄武) 이야기가 흥미롭다. 북방의 수호신인 현무는 거북이와 뱀을 합친 도상이다. 현(玄)은 검은색을 뜻하고 무(武)는 거북의 딱딱한 등갑이나 비늘을 뜻한다. 현무는 대체로 중국 전한 초까지 거북의 모습으로 표현되다가 언제부터인가 뱀이 거북을 휘감고 있는 도상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고대 중국인들이 거북은 암컷만 있을뿐 수컷이 없다고 생각하여 머리 모양이 비슷한 뱀을 수컷으로 짝지은 결과다. 암수 한 쌍으로 표현되는 남방의 수호신인 주작(朱雀)에 대한 대응으로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강과 강의 지류는 모든 형태의 이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친숙한 모양이며 액체가 흐르는 많은 종류의 관 체계 특히 동물과 식물의 기본적인 순환계와 아주 비슷하다. 강의 형태는 모든 종류의 액체가 흐르는 통로의 전형일뿐 아니라 지구의 물 순환 과정에서 가장 활발한 단계에 속한다. 그런 면에서 중요한 에너지 이동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의 형성에는 우선순위의 역설이 있다. 강은 지형을 만들고 지형은 강을 담고 있다. 강이 지형을 만든 것이 먼저인지 지형이 강을 담은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 인간의 논쟁처럼 무엇이 먼저인지는 분명치 않다. 사실 이런 형태로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성이 분명히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거의 플라톤적 실제의 선주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모래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지만 힘이 가해지면 어디에 있든지 그 힘의 흔적이 남겨진다. 해변에 새겨진 매혹적인 잔 물결,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언덕 등 이들 형태는 자신만의 법칙에 지배되고 자신만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형태를 구성하는 물질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갱신되지만 이 자체는 꽤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자연에는 삼각형 모양이 드물다. 그럼에도 다이아몬드의 표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윤곽선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티프는 정삼각형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다이아몬드는 완벽한 결정의 상징이다. 결정은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가장 대칭적인 선들로 미리 결정된 격자구조의 일정 위치에 수없이 많은 동일한 원자들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이렇게 흠이 없는 배열에서조차 원자의 위치 이탈로 발생하는 미세한 결함이 가득하다. 그것이 다이아몬드에 나타나는 삼각형 모양의 결정적인 원천이다.

 

식물의 순환 시스템과 동물 혈관 및 신경 시스템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점이 있다. 이들은 묘하게도 강물이 흘러가는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 모든 과정들의 공통된 인자는 언제나 그렇듯 에너지 전달이다. 따라서 이 정교한 형태들은 에너지 전달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무화과나무, 백합나무 등의 도관을 볼 필요가 있다.

 

두 장의 유리 틈에 잉크를 흘린 후 유리를 떼어냈을 때 만들어지는 형태도 주목할 만하다. 기본적으로 잉크가 퍼진 것에 불과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바다 식물이나 불꽃 등 다양한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단순한 최초의 형태에서 고도의 복잡성이 창발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복잡성은 거의 자발적으로 발생한다. 스스로 창조된 우주의 모든 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도교의 중심 사상이다.

 

도덕경에 ”길은 측정 할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안에 형태가 담겨 있다.“는 말이 있다. 이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전혀 연관이 없는 현상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사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모래 언덕의 띠와 얼룩말의 피부, 마른 진흙의 잔금과 기린의 무늬가 그 예다.

 

동물의 무늬에서 특히 이의 예를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다. 동물의 무늬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 수비나 공격을 위해 자신을 위장하고 경고하거나 적을 교란시키고 때로 성적 매력과 연관되기도 하다. 흔히 이런 여러 기능들은 혼재되어 있다. 동물의 외관은 항상 기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생명체의 형태와 특정 이는 그냥 그렇게 되었을뿐이다. 이에 대한 궁극적인 분석은 창조의 수수께끼를 푸는 한 부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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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 - 연구 주제 선정부터 설계, 실행, 평가까지
케빈 엘리엇 지음, 김희봉 옮김 / 김영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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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자 케빈 엘리엇의 '과학에서 가치란 무엇인가'는 가치 배제의 이상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편에 선 책이다. 가치 배제의 이상이란 가치가 과학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사회적, 윤리적 가치는 과학적 추론의 많은 중심적 측면에서 필수적이며 피할 수 없다.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과학이 잘못된 가치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한 작업은 과학에 미치는 가치가 언제 적절하고 언제 적절하지 않은지에 대해 밝힌 것이다.

 

저자는 과학이 어떤 분야에서도 가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령 물리학의 이론적인 분야에서조차도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는 여전히 자신들의 주제를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쓸지, 새로운 발견을 어떤 프레임으로 어떻게 홍보해야 최선인지 등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저자는 희망적 사고의 부적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투명성, 대표성, 참여라는 세 조건에 집중한다.

 

과학자들은 가능한 한 데이터, 방법, 모형, 가정을 투명하게 다루어서 그들의 연구가 특정 가치에 의해 지지되거나 영향을 받는 방식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과학자와 정책 입안자는 사회적, 윤리적 우선순위를 대표하는 주요 가치를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명확하고 널리 인정된 윤리적 원칙을 이용할 수 있으면 과학에 영향을 주는 가치의 지침으로 사용해야 한다.

 

윤리적 원칙이 잘 정착되어 있지 않으면 과학은 사회적 우선순위가 가장 높다고 여겨지는 가치의 역량을 최대한 많이 받아야 한다. 과학자, 시민, 정책 입안자들은 과학자를 비롯해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적절한 형태로 참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목표로 하는 것은 가치가 특정(어떤 과정과 방법론을 택할지, 어떤 모형을 개발할지, 어떤 통계기법을 사용할지, 과학적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지) 결정들에 관련되는 방식을 강조하여 과학자들이 더 투명하고 더 사려 깊게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가치의 역할은 세 가지이다. 첫째, 가치는 연구 주제들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까다로운 결정을 내릴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과학 연구의 공적자금을 배분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어떻게 해야 최선인지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일으킨다. 셋째, 민간 부분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연구를 평가하고 이런 연구가 윤리적, 사회적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는 방식을 모색할 때 중요하다.

 

저자는 성(性)에 따른 인지능력 차이에 대한 연구 분야에서는 복잡한 과학적 증거들을 만나면 기존 개념에 도전하는 증거로 인정하기보다 기존 가정에 맞추어 해석하려는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이는 토머스 쿤이 말한 특정 이론에 대한 반증사례 앞에서 저항하는 또는 그 사례를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들의 태도를 연상하게 한다. 저자는 자금을 선택할 때 사회적 가치만을 유일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는 또한 과학자들이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가장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나 자연 세계에 대해 가장 큰 통찰을 줄 것이라고 예상하는 프로젝트를 고려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가치가 다양하므로 상충하는 우선 순위를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울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치는 여전히 자금 지원에 대한 결정과 명백히 관련이 있다. 과학은 과학자들이 너무 공격적으로 말할 때뿐만 아니라 침묵할 때도 약해질 수 있다.

 

과학자들이 이용 가능한 증거가 특정한 결론을 뒷받침한다고 진정으로 믿을 때, 그들이 공개적으로 발언하도록 환영할 만한 가치가 부여된다. 객관성은 과학자들이 지나치게 확신에 찬 결론을 제시할 때뿐만 아니라 판단을 유보하도록 강요당할 때도 위협 받을 수 있다. 객관성이 과학자들에게 궁극적인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고 해도 다른 모든 가치보다 객관성을 우선시함으로써 여전히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사회는 과학계가 신중하고 객관적이라고 믿음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위협이 출연했을 때 과학자들로부터 솔직하고 쉽게 이해되는 경고를 받을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객관성이란 편견 없는 방식으로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그 정보에 대한 오해를 막기 위한 노력도 포함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학자들이 신중하게 발언할 때 대중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중의 적절한 관심을 끌기 위해 과감하고 간결한 주장을 할 필요도 있으며 이것이 때로는 사회적으로 더 책임 있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과학자들이 결론을 설명할 때 그에 따른 주의사항과 불확실성을 함께 설명해도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될 때 이러한 명확성이 쉽게 무시되기도 한다. 99%의 통계적 유의 수준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실험결과가 우연히 일어날 가능성이 1%만 넘어도 과학자들은 그 가설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의 일부 분야에서는 90% 이상의 통계적 유의 수준을 선택하는 것이 실제로 일반적이다.

 

본문에는 환경규제를 이전의 공산주의의 위협과 견줄만한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위협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뛰어난 물리학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대중의 확증 편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는 과학을 놓고 벌어지는 현대 사회의 많은 논쟁이 사람들 사이에 깊이 뿌리박힌 가치로부터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라고 묻는다.

 

많은 경우 완벽하게 중립적이고 가치가 개입되지 않은 정보 제공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어떤 가치들을 다른 가치를 보다 더 크게 지지하게 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최선은 어떤 가치를 지지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성찰하는 것이다.

 

저자는 네 가지 사항을 확실히 할 것을 주장한다. 1) 새로운 연구 결과가 이전의 발견과 과학의 다른 분야와 어떻게 관련되는지 설명하기, 2) 과학적 결과가 궁극적으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명확히 하기, 3) 결과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방지하기, 4) 사람들의 목표, 가치, 어젠다, 세계관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명확히 하기 등이다.

 

저자는 태피스트리 은유를 언급한다.(’태피스트리; tapestry‘는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 또는 그런 직물을 제작하는 기술을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태피스트리 은유에 따르면 과학적 추론은 과학자들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모여야 하는 수많은 성분이나 실마리들로 짜인 태피스트리라고 할 수 있다. 태피스트리의 은유는 과학의 분야에서 적어도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강조한다. 1) 과학적 추론에서 분석적이거나 규칙에 지배되는 성분들은 가치에 영향을 받는 성분들과 서로 깊이 얽혀 있다. 2) 가치의 역할은 과학적 추론의 다른 측면으로부터 분석을 위해 분리할 수 있다. 3) 가치의 특정한 영향은 과학 전반으로 파는 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등이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완전히 투명하게 하는 것은 조금 비현실적이라고 인정되지만 데이터와 연구방법에 관련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는 과학자들의 최근의 노력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연구를 면밀히 조사하고 그 연구가 어떤 가치를 더 우대하는지 알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정치, 윤리, 종교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견해가 엇갈릴 수 있지만 과학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고 하나의 사유로서 결정을 내릴 때 출발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보의 원천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 반론이 가진 문제는 그것이 최첨단 연구에 대해서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의 일부 영역은 매우 잘 정착되어 있지만(예를 들어 물리학이나 화학의 기본원리를 생각할 수 있다.) 과학의 많은 부분을 그렇지 않다.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생물학적 요인, 독성 화학물질, 건강에 미치는 영향, 새로운 농업기술을 개발하는 최선의 방법을 연구할 때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여지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가치의 역할을 인정하면 잃을 것은 적고 얻을 것은 훨씬 많다.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 모두 어떤 결론이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이용 가능한 증거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최우선인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기 때문에 이러한 의견 불일치가 때로 과학의 객관성을 촉진할 것이다. 저자의 바람대로 공공기관, 민간기관, 시민 집단, 학자, 과학자의 사려 깊은 참여를 통해 가치에 기여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식으로 연구에 지침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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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읽기 세창명저산책 72
곽영직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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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직 교수가 쓴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해설서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의 발전 과정을 패러다임과 과학혁명을 키워드로 분석한 책이다. 패러다임은 특정 시대인들의 견해나 생각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의 체계나 이론적 틀을 의미한다. 쿤은 물리학에서 과학사와 과학철학으로 전공을 바꾼 사람이다.

 

쿤의 주 비판 대상은 논리실증주의였다. 그들의 핵심 내용은 명제의 의미는 그 명제를 검증하는 방법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를 검증 가능성 원리라 한다. 그들은 감각경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명제만을 다루는 과학과 검증이 가능하지 않은 무의미한 명제를 다루는 형이상학 가운데 형이상학 논의를 철학에서 배제하려고 했다.

 

미국식으로 변형된 논리실증주의(수용된 견해) 진영에서는 과학 발전 과정을 지식 축적적 과정으로 보았다. 쿤의 과학혁명 이론은 수용된 견해에 대한 반론이다. 쿤의 비판 대상이 된 또 하나의 주의는 칼 포퍼의 반증주의다. 포퍼는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을 제시했다. 반증(反證)이란 어떤 사실과 반대되는 증거로 그 사실이 그릇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포퍼는 경험적 사실의 축적을 통해 과학이 진보한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포퍼는 반증이 발견되기 전까지 가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만 반증이 발견되면 가설을 폐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는다고 주장했다. 쿤은 자신의 과학혁명 모델을 증명하는 예로 물리학, 화학 외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지만 자신의 책에서는 주로 물리학의 발전 과정을 예로 들었는데 이는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고 물리학자라는 자신의 한계 때문이라고 밝혔다.

 

축적에 의한 발전이라는 개념으로는 과학 발전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과학사학자들은 새로운 유형의 질문을 제기하고 지식의 축적에 의한 과학의 발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과학의 역사를 이해한다. 쿤은 정상(正常) 과학에 대해 검토하게 되면 과학적 연구 활동은 전문가 양성 과정에서 제공되는 ’개념의 범주 안으로 우리의 생각을 밀어넣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정상과학은 기본 전제와 다른 새로운 연구를 억제하지만 기존 규칙과 방법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발견되고 전문적인 예측과 맞지 않는 이상 현상이 반복해서 나타나면 정상과학은 위기에 처한다. 이때 비상적(非常的) 연구가 시작된다. 이를 과학혁명이라 한다. 과학혁명은 정상과학에서의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 활동에 전통의 파괴 가능성이 덧붙여진 것이다.

 

과학혁명의 대표적 예들은 흔히 혁명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온 위대한 발견들이다. 쿤이 제시한 과학의 발전 과정은 정상과학 이전의 과학 - 정상과학 - 과학혁명 - 새로운 정상과학 순으로 나타낼 수 있다. 정상과학은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하게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말한다. 정상과학의 기반이 되는 과학적 성취는 특정한 과학자 사회가 일정 기간에 걸쳐 연구활동의 기초로 삼는 이론이나 개념체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뉴턴의 ’프린키피아‘, 라이엘의 ’지질학‘ 등의 고전이 이루어 놓은 성취들은 많은 추종자를 이끌어낼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동시에 모든 유형의 문제를 후대 연구가 그룹이 해결하도록 남겨 놓을 만큼 상당히 융통성이 있었다. 쿤은 이 두 가지 특성을 띠는 성취를 패러다임이라 정의했다. 즉 정상과학에서의 연구 활동의 기초가 되는 위대한 성취가 패러다임이다.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이와는 양립할 수 없는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과학혁명이다. 이는 통상적인 발전 양상이다. 쿤은 패러다임이 확립되지 않은 ’정상과학 이전‘ 시기의 과학활동은 패러다임이 확립된 정상과학 시기의 연구 활동과 크게 다르다고 했다. 뉴턴 이전 시대에는 빛의 본질에 대한 널리 수용된 단일한 견해가 나타나지 않았다. 패러다임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는 의미다.

 

패러다임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더욱 심오한 정보를 수집해야 할 이유가 없으므로 수집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더미를 쌓는 데 그친다.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이론이 경쟁 상대들보다 더 좋아 보여야 하지만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은 없다. 확립된 패러다임은 어떤 실험이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알려준다.

 

패러다임이 확립되면 과학자들은 패러다임 자체를 정당화하기 위한 연구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일은 교과서 저자들이 할 일이다. 교과서가 만들어지면 연구자들은 교과서가 끝나는 지점에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 패러다임이 확립되기 전에는 과학 서적이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이지만 형성 후에는 패러다임을 공유한 전문가들만의 비밀문서처럼 바뀐다.

 

패러다임은 전문가 그룹이 시급하다고 느끼는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경쟁 상대들보다 훨씬 성공적이라는 이유로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더욱 성공적이라는 말은 단일한 문제에 대해 완벽하게 성공적이라든가 많은 문제에 대해 상당히 성공적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이 확립된 정상과학에서의 연구활동은 자연을 미리 짜인 고정된 상자 안에 밀어넣는 시도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상과학에서의 연구 활동은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현상과 이론을 명료하게 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없으면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 결정할 수 없다. 쿤은 정상과학 안에서 사실적 과학 탐구 활동들을 세 가지 핵심적 유형으로 분류했다. 1) 사물의 본질에서 패러다임이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사실을 수집하는 활동, 2) 실험을 통해 패러다임의 예측을 확인하는 연구 활동, 3) 패러다임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수행되는 경험적 연구 등이다. 

 

과학 활동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비상적인 문제들을 푸는 것이다. 비상적 문제는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정상 과학의 진보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에 봉착하는 경우에만 나타난다. 쿤은 결과를 상세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경우에도 과학자들이 그런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에 흥미를 갖는 것은 정상과학에서의 연구 목표가 새로운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라 보았다.

 

정상과학의 연구활동과 퍼즐 풀이 사이에는 흥미 있는 유사성이 있다. 그림 조각들을 이용하여 전혀 다른 창조적인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은 올바른 퍼즐 풀이가 아니다. 퍼즐의 올바른 풀이는 빈 공간 없이 그림을 채워 미리 결정되어 있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것은 새로운 그림을 찾아내는 창조적 작업이다. 결과를 미리 알기 때문에 퍼즐을 푸는 사람의 목표는 결과 그림이 아니라 결과 그림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정상과학이 급속도로 진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퍼즐 풀이에 해당하는 문제들만을 연구 주제로 삼기 때문이다. 정상과학의 연구 활동에서는 유용한 사실을 알아내려는 욕구, 새로운 영역을 탐사하려는 정신, 자연 현상에서 질서를 발견하려는 욕구, 이미 정립된 지식을 실험하려는 충동 등을 발견하기 어렵다. 측정 결과가 이론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이론이 예측된 결과와 같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면 동료들은 그가 아무것도 측정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퍼즐 풀이에서처럼 정상과학에서의 연구도 제한 조건에 얽매인다. 정상과학의 연구에서 불규칙한 부분이 완연히 드러나는 경우 과학자들은 이런 불규칙을 해소하기 위해 패러다임 안에서 실험 기술을 향상시키거나 이론을 더욱 명료하게 하는 연구에 도전하게 된다. 정상과학의 연구 활동은 고도로 결정적인 성격의 연구 활동이지만 모든 것이 규칙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

 

규칙이 패러다임으로부터 파생되지만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연구 활동의 지침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패러다임은 공유된 규칙이나 가정, 견해라기보다 정상과학 전통이 일관성을 갖도록 하는 원천이다. 과학자들의 연구 활동을 퍼즐 풀이에 비유하는 것은 그것의 타당성을 떠나 과학자들에게는 매우 불쾌한 것이 될 수 있다.

 

쿤은 패러다임이 규칙이나 공약보다 우선한다고 말한다. ’과학혁명의 구조‘에서는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규칙이나 공약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패러다임을 결정하는 것과 규칙을 결정하는 것은 약간 다른 종류의 작업이다.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의 완벽한 해석이나 합리화에는 동의하지 않거나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패러다임의 확인에는 동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학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완벽한 한 벌의 규칙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전문가 그룹의 연구 전통에서 드러나는 일관성이다. 패러다임이 확립되기 이전에는 합법적인 방법, 연구 주제, 풀이의 표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지만 확립 후에는 논쟁이 점차 사라진다. 패러다임이 공격을 받는 과학혁명 동안에는 이런 논쟁이 다시 벌어진다. 규칙들과 달리 패러다임은 광범위한 과학자 집단에 공통적일 필요가 없다.

 

양자역학은 다수의 과학자 그룹에게 하나의 패러다임이기는 하지만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패러다임은 아니다. 물리학자들과 화학자들은 헬륨 원자는 원자인가 분자인가에 대해 다른 답을 한다.(화학자들은 하나의 원자로 이루어진 분자로 본다. 기체 운동론의 입장에서 보면 분자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원자로 본다. 분자 스펙트럼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쿤의 설명에 의하면 정상과학에서의 연구 활동은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연구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의 역사에서 수많은 새로운 이론이 나타났다. 쿤은 정상과학에서의 연구 활동이 정상과학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패러다임의 예측과 다른 결과를 나타내면 정상과학이 위기에 처하고 그것이 심각해지면 새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상 현상의 출현이 즉각적으로 정상과학의 위기를 불러오거나 패러다임의 폐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정상과학은 사실이나 이론의 새로움을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적인 경우라도 새로운 이론이 찾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과학 연구에 의해 새로운 사실이 끊임없이 밝혀졌고 새로운 이론들이 창안되어 왔다. 이상(異常) 현상을 패러다임 안에 수용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조정할 수 있는 경우 그것은 더 이상(以上) 이상(異常) 현상이 아니다.

 

모든 이론이 패러다임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패러다임이 확립되기 이전이나 대규모 패러다임의 변화가 진행중인 경우 과학자들은 발견 방법이 명료화되지 않은 추론적인 이론을 전개한다. 실험 결과와 이런 이론의 예측이 일치하여 이론이 명료화되는 경우 발견이 이루어지며 이론은 패러다임의 지위를 확보한다. 쿤은 무엇을 예측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면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새로움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빛을 입자의 흐름으로 본 뉴턴의 입자 이론은 회절이나 편광과 같은 이상 현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후에야 파동 이론으로 대체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은 오랫동안 놀랍도록 잘 맞는 천문학이었지만 행성의 위치와 세차운동에서는 오차가 존재했다. 이런 오차를 줄이는 것이 정상 천문학의 과제였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이 복잡성을 증가시키거나 한 문제의 해결이 다른 문제를 불러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기존의 천문학 패러다임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연구를 시작하기 위한 선행조건이 되었다. 달력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교회의 압력 즉 세차 운동이라는 퍼즐을 풀어야 했던 사회적 압력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지구가 우주 중심에 정지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비판했던 코페르니쿠스주의자들처럼 이들 역시 뉴턴역학의 절대 공간을 대체할 상대적인 공간으로의 전환이 새로운 관측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공간의 상대성에 관련된 문제들은 1890년대까지 아무런 위기도 야기하지 못했다. 전자기파가 에테르라는 매질을 통해 전파되는 파동이라고 믿었던 당시의 과학자들은 천체를 이용한 실험과 지상 실험을 통해 에테르를 확인하려고 했다. 많은 과학자들은 광행차를 측정하여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실험을 통해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이 문제는 이론물리학자들에게로 이전되었다.

 

기존 이론의 붕괴를 가져온 실패가 오랜 세월에 걸쳐 인식되어 왔던 형태였다는 점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실패는 해당 과학 분야에서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던 기간에도 계속 관측되었던 것들이다. 그러나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는 이런 실패들이 무시되었다. 쿤이 비판하는 과학 발견 이론 중 하나는 칼 포퍼의 반증 이론이다. 포퍼의 반증 이론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기존 이론에 반하는 증거가 발견되면 기존 이론을 폐기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든다.

 

그러나 쿤은 기존 패러다임의 예측에 어긋나는 이상 현상의 출현으로 야기된 정상과학의 위기에 과학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포퍼의 반증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과학자들은 위기에 처한 패러다임을 보며 믿음이 흔들려 다른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을 위기로 몰고 간 패러다임을 쉽게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이상 현상을 반증 사례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이 확립되어 있는 정상과학에서는 패러다임에 위배되는 이상 현상이 아무리 많이 나타나도 새 패러다임 후보가 나타날 때까지 기존 패러다임을 폐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쿤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폐기하는 것은 기존 이론에 반하는 반증이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 후보와의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이상 현상에 부딪혔을 때 패러다임의 다양한 명료화를 궁리하고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이론을 수정하려고 한다.

 

그들은 이상 현상의 발견과 이들을 패러다임 안에 수용하려는 시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기존 패러다임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하지 않은 채 기존의 패러다임을 포기하는 것은 과학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반증 사례들을 포함하지 않은 과학 연구는 없다. 정상과학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정상과학의 바탕을 이루는 패러다임에 대한 반증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과학에서 진실과 거짓이 확실하게 밝혀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상과학은 이론과 사실이 더 가깝게 일치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그런 노력은 확증 또는 반증을 조사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많은 경우 이상 현상들은 풀이 과정이 밝혀질 때까지 방치되기도 한다. 뉴턴의 원래 계산 이후 달이 지구에 가까워지는 근지점에 대한 예측이 관측 결과와 맞지 않는다는 이상 현상이 방치되었다.

 

하나 이상의 이상 현상이 정상과학의 위기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단순한 변칙 이상의 것이라야 한다. 패러다임과 자연의 일치 사이에는 항상 함정이 숨어 있다. 모든 이상 현상에 주목하는 과학자는 제대로 된 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없다. 여러 갈래의 수정을 거침에 따라 정상과학의 규칙들은 점차 모호해진다. 아직 패러다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패러다임에 합의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이미 풀었던 문제의 표준적인 풀이도 의문의 대상이 된다.

 

정상과학이 처한 위기는 연구 활동에 어떤 영향을 줄까? 모든 위기는 패러다임이 모호해짐과 더불어서, 그리고 그에 따라 정상과학의 규칙들이 해이해짐에 따라 시작된다. 이런 맥락에서 위기 기간의 연구는 패러다임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의 연구와 유사해진다. 다만 이 기간의 연구에서는 패러다임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보다 견해 차이의 폭이 작으며 견해 차이가 더욱 명확하게 정의된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새로운 기반을 바탕으로 그 분야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 연구활동의 방법과 응용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이론의 일반화조차 변화시키는 재건 사업이다. 패러다임의 이행 시기에는 옛 패러다임에 의해 해결되는 문제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해결되는 문제들이 많이 중복되겠지만 완전히 중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추론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성공하는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에 이르는 길을 열게 된다.

 

쿤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확립에 기여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젊거나 그들이 속한 전문분야에 새롭게 참여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이전 활동들로 인해 기존의 패러다임에 구속 되는 일이 거의 없고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기존의 규칙을 대치할 새로운 규칙을 쉽게 착상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자칫 과학자 사회를 나이로 기준으로 구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이보다는 기존의 과학 전통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고 있느냐에 의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과학혁명은 옛 패러다임이 양립되지 않는 새 패러다임으로 전반적 또는 부분적으로 대치되는 비축적적인 발전 과정이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사건을 왜 혁명이라고 불러야 할까?

 

쿤은 정치혁명과 과학혁명의 비교를 통해 이 물음에 답을 찾으려고 했다. 정치혁명이 기존 제도가 주위 상황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더 이상 적절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정치적 사회 집단에 팽배하면서 시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 혁명도 기존의 패러다임의 자연 현상에 대한 다각적 탐사에서 더 이상 적절하게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과학자 사회에 점차로 증대될 때 시작 된다는 것이다.

 

과학혁명은 과학자 사회가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과학자 사회는 양립되지 않는 두 가지 패러다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러한 선택에서는 패러다임 자체가 논의의 주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한 설득은 순환논리에 빠지게 된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그룹들이 자신들의 패러다임을 옹호하는데 상대방이 인정하지 않는 패러다임을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론이 꼭 이전 이론과 양립할 수 없는 이론인 것은 아니다. 새로운 이론이 예전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현상을 다룰 수도 있고 이전 이론보다 수준 높은 이론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보다 낮은 차원의 이론들을 크게 변형하지 않고 포함할 수 있다. 새로운 이론들이 모두 이와 같다면 과학의 발전은 원칙적으로 축적적이다. 과학발전에서 새로운 지식은 다른 모순되는 지식을 대치하기보다는 무지를 대치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이론을 축적적으로 쌓는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상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제한된 새로운 이론은 기존의 이론이 예측했던 것과는 다른 예측을 내놓아야 한다. 만약 두 이론이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것이라면 두 이론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나 두 이론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면 새로운 이론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론을 파괴하고 그 자리를 대체해야 한다.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에게 지도뿐 아니라 지도를 만드는 데에 필수적인 방향까지 제시한다. 패러다임을 익히면서 과학자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는 이론적 방법과 기준을 모두 획득하게 된다. 패러다임이 변하면 문제와 제안된 풀이 모두의 타당성을 결정짓는 기준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과학자는 익숙한 환경에서 새로운 게슈탈트를 형성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한 후의 그의 연구 세계는 이전의 세계와 같은 표준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사람이 무엇을 보는가는 그가 보고 있는 대상에도 달려 있지만 이전의 경험과 개념이 무엇을 보도록 하는지에도 달려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처음 제안된 후 50년 동안에 예전에는 불변이라고 여겼던 하늘 세계에서의 많은 변화를 찾아냈다. 밝기가 변하는 신성이나 태양 흑점의 변화와 같은 것들은 하늘 세계는 불변이어야 한다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지 않던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다.

 

이전의 과학자들이 흔들리는 돌을 보았던 곳에서 갈릴레이가 진자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임페투스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에 의해 가능했다. 진자는 패러다임에 의해서 유발된 게슈탈트 전환과 비슷한 것에 의해 실체를 갖추게 되었다. 게슈탈트 전환이란 관점(어떤 것을 전경으로 보고 어떤 것을 배경으로 보느냐의 문제)을 바꾸어 같은 것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에 의해 세상이 변하지는 않지만 패러다임이 변하면 과학자들은 다른 세계에서 연구하게 된다. 쿤은 과학혁명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은 자료의 재해석 이상의 무엇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한 과학자는 자료의 새로운 해석자가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안경을 낀 사람과 비슷하다.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관찰 결과를 해석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해석은 특정 패러다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런 해석들은 이미 존재하는 패러다임을 정련하고 확대하고 명료화하는 정상과학의 연구 활동이다. 이런 해석 작업들은 패러다임을 정련할뿐 수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행하는 조작과 측정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들여서 수집한 것이다.

 

그것들은 과학자가 보는 무엇이 아니라 더 기본적인 지각작용의 의미에 대한 구체적 지표들이다. 수용된 패러다임을 정련하는 데 유용하다는 이유로 탐사 대상으로 선정된 것들이다. 다른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실험 조작을 하고 다른 종류의 자료를 수집한다. 태양을 전통적인 명칭인 행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부했던 코페르니쿠스주의자들은 행성과 태양이 무엇인지만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천체가 종종 종전과는 달라보이게 되는 세계 속에서 유용한 구별이 지속될 수 있도록 행성 의미를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돌턴은 화학자가 아니라 물에 의한 기체의 흡수 및 대기에 의한 수분의 흡수와 관련된 물리적 현상을 다루던 기상학자이다. 따라서 돌턴은 당시의 화학자들과는 다른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었다. 돌턴으로부터 화학자들이 취했던 것은 새로운 실험 법칙이 아니라 화학을 수행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혁명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가 아닌 이상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나 문헌을 읽는 일반인들의 역사적 감각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혁명의 결과에만 한정된다.

 

교과서는 역사에 대한 과학자의 감각을 제거하고 최근에 있었던 혁명의 결과물만을 제공한다. 교과서는 서론이나 이전 시대의 거장들에 대한 산발적이고 단편적인 인용에서 역사의 편린만을 다룰뿐이다. 그러한 인용들로부터 학생들과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오랜 과학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느끼는 교과서 유도적 전통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과학 교과서는 대부분 고도로 기능적이라는 이유로 과거 과학자들의 연구 중 패러다임 문제들의 서술과 해결에 기여했다고 평가되는 것들만 인용한다. 교과서에는 더러는 선택에 의해서, 더러는 왜곡에 의해서 이전시대의 과학자들이 최근에 있었던 과학혁명의 결과로 형성된 정상과학의 기준에 의해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했던 것처럼 설명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을 경시하는 태도는 사실성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전문 분야, 다시 말해 과학 전문분야의 이데올로기에 깊숙하게 그리고 기능적으로 침투해 있다. 그 결과 과학의 역사가 직선적 그리고 축적적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돌턴 원자론의 전개 과정에 대한 설명에서는 돌턴이 배수비례의 법칙과 같은 화학적 문제들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문제들은 그의 창의적 연구가 거의 완성되던 시기에 그것들의 더불어 비로소 그에게 떠올랐던 것이다. 돌턴의 과학적 업적을 설명하는 교과서에는 이전에는 물리학과 기상학에 국한되었던 일련의 질문과 개념을 화학에 적용시킨 것의 혁명적 영향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뉴턴은 중력에 의해 운동하는 물체가 이동한 거리는 시간의 제곱의 비례한다는 사실을 갈릴레이가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갈릴레오의 운동학을 뉴턴 자신의 역학으로 분석하면 그런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이와 관련해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낙하하는 물체에 대한 그의 논의에서는 물체를 낙하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균일한 중력에 대해서는 물론 힘 자체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갈릴레이 시대의 패러다임 아래에서는 제기될 수 없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갈릴레이의 공으로 돌림에 따라 뉴턴역학이 가지고 있는 혁명적 성격이 가려진 것이다.

 

과학 발전과정의 혁명적 성격을 숨겨버림으로써 과학발전을 선형적이고 축적적인 것으로 만드는 교과서의 경향은 과학 발전의 핵심에서 일어나는 과정이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 버린다. 교과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과학자 사회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빨리 익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함으로써 현행 정상과학의 다양한 실험, 개념, 법칙, 이론들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가능한 지속적으로 다룬다.

 

이것은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지만 과학은 현대의 기술적 총체를 구성하고 있는 일련의 발견과 발명에 의해 현재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교과서는 건축에서 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처럼 과학자들이 당대의 교과서가 제공하고 있는 정보 더미에 또 다른 사실, 개념, 법칙, 이론들을 하나씩 추가해 왔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연을 더 잘 설명한다는 기준은 모호하고 그것을 비교하고 판단할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 외적인 기준에 의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선택되는 일도 일어난다. 정상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은 퍼즐을 풀이하는 사람일뿐 패러다임의 검증자는 아니다 .특정한 문제의 풀이를 받는 찾는 과학자는 원하는 결과를 내놓지 못하는 접근법을 피해서 수많은 대안적 조건을 시도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패러다임을 검색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체스판의 말들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것과 같다. 그것은 주어진 규칙 안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한 것이지 게임 규칙에 대한 검증은 아니다. 패러다임에 대한 검증은 퍼즐을 풀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위기를 자초한 후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때에도 위기의식이 대안적 패러다임 후보를 출현시킨 후에나 검증이 일어나게 된다. 패러다임에 대한 검증은 특정한 패러다임과 자연과의 대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두 개의 경쟁적 패러다임 사이의 경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어떤 이론도 그와 관련된 시험을 모두 통과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론이 입증되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증거에 비추어 그 이론이 개연성을 갖는지에 대해 묻게 된다. 그리고 그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로 다른 이론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증거를 얼마나 잘 성명하는지를 비교한다. 사실 입증은 마치 자연선택과 같아 특정 역사 상황에서 제시된 대안들 중 가장 적합한 것을 가려낸다.

 

그런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묻는 것은 유용한 질문이 못 된다.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사용될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쿤은 칼 포퍼가 주장한 오류 입증(반증)의 역할은 이상 현상의 경험 즉 위기 유발을 통해 새로운 이론을 위한 길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면한 퍼즐을 모두 풀 수 있는 이론은 없다.

 

이미 얻어진 풀이 또한 완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런 불완전성이 이론 거부의 근거가 된다면 모든 이론은 어느 때나 부정될 수 있다. 단 한 번의 심각한 실패가 이론 폐기를 정당화한다면 모든 이론의 폐기를 막기 위해 오류 입증의 정도를 정하는 기준이 따로 마련되어야 한다. 적어도 과학사학자들에게는 사실 입증이 사실과 이론의 일치를 확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이론들은 모두 대체로 사실과 일치했다. 그러나 어느 이론이 사실과 부합하는가 또는 얼마나 잘 부합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없다. 쿤은 패러다임에 대한 오류 입증보다 두 가지 경쟁적인 이론 가운데 어느 것이 사실과 더 부합하는가를 묻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패러다임 사이의 경쟁은 증명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는 종류의 싸움이 아니다. 혁명이라는 분수령을 가로지를 수 있는 의사소통은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코페르니쿠스가 이루어낸 혁신은 단순히 정지해 있던 지구를 움직이게 한 것만이 아니라 물리학과 천문학의 접근방식을 새롭게 바꾼 것이었다.

 

패러다임 전환은 개종(改宗)에 비유될 수 있다. 옛 패러다임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벌이는 저항의 근원은 옛 패러다임이 결국 모든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는 확신 즉 자연이 자신들의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틀에 들어맞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비록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개종은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개종은 과학자들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가장 유력한 주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옛 패러다임을 위기로 몰아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이 위기를 야기한 문제들을 해결했다는 주장은 그렇게 확실하지 않으며 언제나 그렇게 떳떳한 주장도 아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보다 더 정확하지도 않았고 달력의 개량에 도움이 되지도 못했다.

 

이런 경우에는 그 분야의 다른 부분으로부터 증거가 유도되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예전의 패러다임 아래서는 문제되지 않았던 현상들을 예측하는 경우 특히 설득력을 갖는다. 코페르니쿠스가 예측한 금성의 위상 변화가 그가 죽은 후 60년이 지나 갈릴레이의 망원경 관측을 통해 확인되자 많은 전향자들이 생겼다.

 

쿤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옛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또 다른 종류의 사고방식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더욱 간결하다‘, ’더욱 적합해 보인다‘, ’더욱 단순하다’와 같은 개인적 심미적 감각이다. 경쟁에서 승리한 그룹이 승리의 결과를 진보 외에 다른 무엇이라고 판단할까? 자신들의 승리를 발전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들이 틀렸고 상대방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적어도 경쟁의 승리자들에게 혁명의 결과는 발전이어야 하며 미래의 과학자들이 그렇게 보도록 확신시킬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과학자 사회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 해결되는 문제의 수효와 정확도를 극대화하는 고도의 효율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과학을 자연에 의해 미리 설정된 어떤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활동으로 간주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과학에 그런 목표가 반드시 있어야 할까?

 

다윈 이전에도 진화론은 널리 퍼져 있었다. 다윈 이전의 진화론은 목적론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목적론을 붕괴시켰다. 많은 사람에게 목적론의 붕괴는 다윈의 제안에서 가장 의미 깊고 수용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종의 기원’은 신이나 자연, 그 어느 것에 의해 설정된 목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대신 주어진 환경에서 유기체들에게 작용하는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더욱 정교하고 복잡하며 훨씬 더 분화된 유기체들의 점진적이지만 꾸준한 출현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생물학적 진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과학 발전의 전 과정 역시 미리 설정된 목표나 절대적인 진리의 도움 없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과학에서 발전이나 진보라는 말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쿤은 진보가 아니라 변화라는 표현이 과학에 더 적절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유보적 입장을 취한다.

 

‘과학혁명의 구조’의 많은 부분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두 가지 다른 의미로 쓰였다.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이 특정한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에 의해서 공유되는 신념, 가치, 기술 등을 망라한 총체적 집합을 가리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집합에 속하는 한 가지 유형의 구성 요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모형이나 예제로 사용되는 구체적 퍼즐 풀이를 의미한다.

 

쿤은 더욱 심오한 의미를 가진 패러다임의 두 번째 의미가 이 책이 불러온 논쟁과 오해의 원천이 되었다고 보고 추가 부분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과학자 사회의 가장 중요한 성격 가운데 하나는 패러다임이 없는 시대로부터 패러다임의 시대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행이 일어나기 전에는 여러 갈래의 학파들이 그 분야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이후 몇몇 주목할 만한 과학적 성취에 의해 다수의 학파가 하나의 학파로 수렴되어 더욱 효율적인 연구 활동을 시작한다. 정상과학의 위기가 항상 혁명에 선행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쿤은 위기가 혁명의 필수요건이 아니라 통상적인 서막일뿐이라고 한다. 가치관은 항상 작용하지만 과학자 사회의 구성원들이 위기를 확인해야 할 때, 그리고 양립할 수 없는 방식 중에서 특정한 방식을 선택할 때 특히 중요하다.

 

‘과학혁명의 구조’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각 문장에서 어떤 유형의 전문 분야(disciplinary) 행렬(matrix)을 나타내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하기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읽기를 어렵게 한다. 전문 분야 행렬은 패러다임이란 말이 지닌 다의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쿤이 제안한 개념이다. 패러다임들, 패러다임의 부분들, 패러다임적인 것들은 모두 전문 분야 행렬의 요소를 이루고 있으며 그 요소들은 온전한 하나를 형성하여 총체적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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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수의 학.예.사상 논고
윤사순 외 / 미수연구회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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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 허목 선생은 23세 때 부친 허교의 임지인 거창으로 가 용주 조경을 만나 종유(從遊)했고 문위(文緯) 문하에서 공부했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생이 되었다. 한강 선생의 조카 사위인 장현광(張顯光) 문하에도 급문(及門)했다. 32세에 인조의 아버지(정원군)를 추존하자는 박지계(朴知誡)를 처벌한 것으로 인해 인조로부터 정거(停擧) 처분을 받았다.

 

미수는 후에 정거가 풀린 뒤에도 과거를 치르지 않았다. 이로부터 미수는 외조부 백호 임제를 본받아 전국 명소와 산천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호연지기를 길렀다. 미수는 56세에 처음으로 정릉(靖陵) 참봉에 제수되었다. 57세 되던 해인 효종 2년 시월에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었다. 대왕이 책을 읽다가 미심(未審)한 것에 부표(付標)한 것에 대해 답하는 역이었다.

 

62세 되던 해 정월 봉정대부(奉正大夫)에 조지서(造紙署) 별좌(別坐)라는 관직을 받았다. 그해 6월 공조좌랑으로 승진했으나 사직하고 연천 구택(舊宅)으로 내려왔다. 미수는 이후 여러 차례 제수(除授)되었으나 의견만 올리고 물러나 연천으로 돌아오기를 거듭했다. 66세 때인 3월에 장령(掌令; 사헌부의 정 4품 벼슬)이 되어 경연(經筵)에 참여해 송시열이 정한 기해상복레가 잘못되었다고 소를 올렸다.

 

오례(誤禮)를 지적했다고 하여 9월에 삼척부사로 외보(外補)되어 시월에 부임하였다. 68세 때 가을 관직을 버리고 오직 학문과 저술에만 몰두했다. 84세 때 숙종으로부터 저택을 하사받았다. 85세에 연천으로 돌아왔다. 88세 때인 1682년(임술년) 4월(숙종 8년) 병을 얻어 연관(捐館; 집을 버렸다는 의미로 죽음을 뜻함)했다.

 

선생이 젊었을 때 광주 자봉산(紫峯山中)에서 체득한 고전(古篆) 8분체는 우리나라 서예사상 혁명적인 업적이다. 선생의 서체는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선생은 승지 김수홍(金壽弘)과 함께 적서통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백호 윤휴(尹?)가 연천의 미수 선생 댁을 찾았던 점이 이채롭다.

 

예송 논쟁은 효종의 죽음으로 인해 빚어진 일이다. 소현세자가 죽음으로써 차자인 봉림대군(효종)이 왕이 되어야 하는지, 소현세자의 아들이 왕이 되어야 하는지 논쟁이 있었다. 봉림대군이 왕이 되었다. 효종이 죽자 모후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지를 놓고 남인 계열과 서인 계열이 다투었다. 서인은 효종이 차자(次子)이니 자의대비가 1년을 입어야 한다고 했고 남인은 효종이 자차이지만 왕이 되었기에 자의대비가 3년을 입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기해예송이라 한다.

 

갑인예송은 효종 비 인선왕후 장씨가 죽자 자의대비가 얼마의 기간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를 놓고 서인과 남인이 다툰 사건이다. 서인은 9개월, 남인은 1년을 주장했다. 미수와 윤휴의 예학은 당시 조선 예학의 고전적 경향을 대표하는 것이었고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 학자들의 예론은 예학의 보편주의적 경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예의 분별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제왕가는 사서인(士庶人)과 달리 왕위 계승자에게 종법을 주게 되므로 효종이 장자의 지위에 있고 그에 대한 모후의 복(服)을 재최(齊衰)삼년으로 단정하게 된다. 재최(齋衰)는 흔히 자최(齊衰)라고도 한다. 자(齊)는 옷자락을 꿰매어 마름질한다는 뜻으로 옷의 끝단을 꿰맨 상복을 말한다.(衰; 상복 최, 쇠할 쇠)

 

예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효종이 왕위에 올랐더라도 차자(次子) 지위에는 변함이 없으며 그에 대한 복(服)도 기년(朞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의례(儀禮), 주례(周禮), 예기(禮記) 등의 고전에서는 주로 왕족 귀족들의 예를 기술하였고 이 때문에 신분적 특수성을 강조한 요소가 많았다. 고전 예악은 봉건체제와 귀족사회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예제가 신분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고 다르게 적용된다는 관념은 당연한 추세였다.

 

따라서 신분의 귀천, 지위고하, 존비의 차례를 분별하는 것이 예제의 한 기능이 되다시피 하였다. 그래서 천자 7묘, 제후 5묘, 대부 3묘, 사 1묘라든지 기지상(朞之喪) 달호대부(達乎大夫) 3년지상 달호천자(達乎天子)와 같은 차별관념은 말할 것도 없고 예는 서인(庶人)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刑)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또는 사(士) 이상은 반드시 예악으로 절제시키고 중서(衆庶) 백성은 반드시 법수(法守)로 통제해야 한다는 발상이 보편화되었다.

 

의례(儀禮) 상복편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상이한 많은 복제(服制) 규정들도 이러한 사회적 예학적 통념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왕조예제를 집대성한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는 사서인의 예도 수록하긴 하였으나 그것이 신분 혹은 품계별로 정리되었고 대명집례(大明集禮)나 대명회전(大明會典) 등에서도 모든 전례가 황실례, 품관례, 서인례 등으로 분별되었다.

 

조선 초기에 완성된 국조오례의는 거의 전부 왕조례를 규정한 것이며 사서인의 예는 수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제왕가의 예가 사서인과 다른 고유성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당연하게 인식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가례(家禮)의 저자인 주자나 그 연구의 제일인자였던 사계 김장생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윤휴, 미수, 윤선도 등의 복제론에 이르러 절대적으로 강조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원래 사대부 계층의 예서였던 가례를 제왕가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조선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성리학을 국시로 한 조선왕조가 불교 의례를 유교식으로 대체해나가는 과정에 있었던 것인데 태종 - 세종대 제도 정비기에 미처 왕조례가 마련되지 못했던 부분에 가례의 활용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태종이 세종의 치상(治喪) 절차를 한결같이 주자가례에 의하도록 한 것이 그런 예다.

 

그래서 국조오례의의 흉례, 국휼 부분에는 특히 가례가 많이 수용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왕조를 사대부례와 동일시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미수의 학문은 가학으로 축적되어 온 근기(近畿) 내지 기호(畿湖)의 학풍을 겸습(兼習)하는 과정에서 독자적으로 이룬 것이다. 미수는 염락관민(濂洛關?)의 성리서 정도를 공부하던 시대에 박학을 추구한 드문 인물이다.

 

당시 박학은 위인지학(爲人之學)에 속하는 잡학으로 천시되었다. 물론 미수에게는 중심 분야가 있었다. 그는 육경(六經)을 근본으로 삼아 예악(禮樂)을 참구하면서 백가의 잡설들을 통람(通覽)하기에 발분,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이 50년이었다는 말을 했다.

 

오늘의 예(禮)는 예절, 에티켓 정도의 의미이지만 당시의 예는 그런 의미는 물론 법률, 제도, 문화 일반을 두루 포괄했다. 다른 선비 같으면 벼슬 후 은퇴할 나이인 50대 중반까지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채 수많은 곳으로 피난, 유람, 이사하면서 학문을 했다. 미수의 생애는 50대 후반부터 타계한 해인 88세까지 노년기가 벼슬을 의욕적으로 하고 저술 역시 왕성하게 한 시기다.

 

미수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전성기에 태어나 당쟁이 격렬한 시기에 남인 중에서도 청남(淸南)의 대표자로 활약하다가 타계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성리학은 형이상학적 과제인 우주론과 인성론을 논리적 분석으로 이론화한 학문이 되었으나 형이하학적 문제인 경세치용과 이용후생 등 실학에는 이용되지 못하였다. 미수는 이에 성리학에서 탈각하여 선진유학으로 회귀하여 육경(시서역예악춘추)에서 성인의 도를 찾아 명덕(明德) 신민(新民)하는 것을 여생의 임무로 자부하였다.

 

미수는 당시 유행하던 사단칠정론이나 이기심성설 같은 공소(空疏)한 형이상학적 논쟁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고문(古文)과 고자(古字)에 탐닉했다. 미수는 윤휴와 같이 경전에 대한 과감한 고증이나 선유(先儒)의 정설에 대한 대담한 비판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하물며 경전 자체를 부인하거나 장구(章句)를 개편하는 윤휴의 태도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미수는 그의 과격한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의 심오하고 독창적인 학문 태도를 긍정 평가하기도 했다. 이점이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매도한 송시열과 같은 맹목적 주자 추종자들과 다른 점이었다.

 

미수에 대한 평가는 당대부터 상반되게 나타났다. 그의 글에 고기(古氣)가 있어서 훌륭하며 그의 상고정신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주자학에 대한 도전으로 뒷날 실학사상의 근원이 되었다는 우호적인 설이 있는가 하면 그의 글은 시대에 맞지 않으며 그의 상고학 또한 선별적인 복고가 아닌 완전한 복고로 시대역행적인 학문태도라는 비우호적 평가도 있었다.

 

미수에 대한 근세 학계의 관심은 예론에 치우친 감이 있다. 미수의 상고학 학문 태도는 그의 도가적 의식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것은 공히 반주자학적 의식하에서 형성된 것이다. 미수는 도가적 의식이 무위자연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 선진(先秦) 고학(古學)이 후대의 유학보다 인위적인 면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상고학 정신은 선진 시대를 재현하려는 의도의 산물이 아니라 당시 학풍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도가적 의식은 임병(壬丙)양란 이후의 사회 안정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성리학에 대한 반발 의식이었으며 시끄러운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 묻혀 살고자 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부친 허교(許喬)는 도가적 인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인물이다.

 

외조부 임제(林悌)도 반주자학적 의식을 가진 처사(處士) 시인이었다. 미수가 교유한 인물들 가운데 주자학을 신봉한 인물은 없었다. 위와 같은 배경에 의해 형성된 도가적 의식은 노장적 처사관을 수용했다. 성리학자들이 배척하는 처사 다시 말해 조수동군(鳥獸同群)하여 장저(張沮)와 걸익(傑溺)과 같은 생활을 하는 인물을 동경하고 이들을 수용하는 입장을 취했다.

 

공자가 밭일을 하는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을 보고는 자로(子路)를 시켜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도록 하였다. 자로가 장저에게 다가가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 묻자 장저는 수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자로가 공자라고 말하자 장저는 공자라면 나루터가 있는 곳도 알 것이라고 말하고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은자(隱者)인 장저의 말에는 뜻을 펴기 위하여 주유열국(周遊列國)하는 공자를 비웃는 뜻이 담겨 있었다. 자로는 다시 걸익에게 물었다. 걸익은 자로가 공자의 제자임을 알고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것이 세상이거늘 누가 그것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인사를 따르지 말고 세상을 피하는 인사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오라고 말한 뒤 밭일을 계속했다.

 

자로가 돌아와 그들의 말을 고하였다. 공자는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와 짐승과 더불어 살 수는 없다.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천하에 도가 행해지고 있다면 내가 바꾸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미수의 시 가운데 공자와 안회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이 있다. “공자의 일흔 명 제자 중에서/ 어짊을 물은 이 몇몇 사람인가?/ 오직 안회란 분이 계시니/ 석달 동안을 어기지 않으셨네.” 공자의 제자라 해도 수준이나 지향점, 생각하는 바가 다 다름을 알 수 있다. 미수는 “인정은 본래 수없이 변하는 것/ 날마다 갈수록 세상일 복잡하다/ 친숙한 사람도 때로는 멀어지니,/ 언제나 똑같이 보기는 어렵다네..”란 글도 남겼다.

 

미수는 천지 자연과 인간을 같은 자리에 놓고 자연의 천태만상적 아름다움과 질서정연한 운행은 곧 인간의 글이고 그 글은 도덕과 같으니 도덕이 훌륭해지면 글도 융성해지고 도덕이 타락하면 글도 타락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미수의 대표작인 기언(記言)은 자신이 한 말을 기록한 문집으로 글을 위한 글이 아니다.

 

한영우의 연구에 따르면 미수는 자신의 학문을 고학(古學)이라 규정했다. 주자의 해석을 통해 이해되는 유학(儒學)이 아니라 육경고문을 직접 파고드는 원시유학을 말한다. 고학적 세계관에서 신화의 세계는 이상사회로 그려지고 단군의 존재는 부각되는 반면 주자학의 중화(中華)와 이융(夷戎)의 구별이나 존화주의는 배격된다.

 

상고(尙古)주의는 옛적의 문물을 숭상하여 표준·모범으로 삼는 주의를 말한다. 허목은 73세 때인 1667년(현종 8년)에 동사(東事)를 편찬했다. 이 해에 허목은 동사뿐 아니라 경설, 청사열전을 함께 저술, 편집하여 기언(記言)이라 하였다. 허목이 책을 저술할 수 있었던 것은 현종 3년에 삼척 부사를 그만 두고 5년간의 휴식기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수는 73세의 고령임에도 여러 서적을 참고하여 대저작을 남길 수 있었는데 이는 그 자신이 학문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미수는 숙종 3년에 경설과 동사를 왕에게 바치면서 왕이 두 책을 제왕학적 교훈서로 참고하기를 기대했던 듯하다. 그는 경설을 바치는 차문(箚文)에서 공리(功利)를 진언(進言)하는 사람을 경계하고 3대 고(古)성인의 학(學)을 따라 정치할 것을 권고하였으며 동사의 내용을 설명하여 우리나라는 중국과 기후, 말, 풍속, 취미가 다른 방외(方外)의 별국(別)國)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단군으로부터 통일신라까지의 역사를 개관하고 칭송받아야 할 시대는 단군, 기자, 신라이며 경계해야 할 나라는 위만, 백제라 하여 경계의 기준을 전쟁을 좋아하느냐 좋아하지 않느냐에 두었다. 이는 당시 군비확장 정책과 벌호(伐胡) 운동을 의식하고 한 말이었다. 그래서 허목은 우리나라의 풍토적 조건, 그 풍토에 맞춰 형성된 농업 조건, 인심, 풍속 그리고 역사를 헤아려 그에 순응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 부국안민의 요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동사(東事)’는 기전체의 사서다. 전통적 가치관에 의하면 서화는 대체로 선비들의 여기(餘技), 말기(末技)로 취급받았다. 때로 완물상지(玩物喪志)의 경계조차 없지 않았을 만큼 폄척(貶斥)을 당하던 분야이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여기에 속하는 말기(末技)로 취급되었을망정 그것에 대한 관심과 교양은 사실에 있어서는 매우 컸다.

 

소동파가 한 '퇴필여산미족진 독서만권시통신(退筆如山未足珍 讀書萬卷始通神; 몽당붓이 산처럼 쌓여도 보배로운 것이 되기에는 부족하고 만권의 책을 읽어야 비로소 귀신과도 통한다.)'이란 말을 통해 알 수 있듯 서화는 고도의 교양과 높은 인격성을 전제로 한다. 미수의 고전(古篆)은 어떻게 보면 된 것 같기도 하고 덜 된 것 같기도 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부적 같기도 한 신비로운 명적(名蹟)이다.

 

미수로 하여금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모와 고고(高古)한 문장, 기이한 전법(篆法)을 쓰게 한 근거와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선진(先秦)고문(古文)만을 숭상할뿐 한당 이하 근세의 작품에 대해서는 좀처럼 평가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것은 은(殷)주(周) 고대의 전적과 이사(李斯)의 소전(小篆) 이전의 고문자들이다.

 

은주고대의 전적이란 고문상서를 주축으로 하는 공벽(孔壁)고문(古文: 한무제 때 공자의 구택에서 나왔다는 일련의 고문서)들이다. 소전 이전의 고문자란 과두문자를 필두로 하는 갑골, 종정(鐘鼎) 등을 말한다. 미수는 요청이 있을 때마다 고문 또는 고전으로 응수(應酬)했다.

 

허목을 사사한 성호 이익은 허목의 서첩에 발문을 붙이며 이때 일을 거론한다. “미수 선생은 매사 옛것을 좋아하여 사소한 편지나 만필이라도 과두문자의 획으로 예서를 썼다. 벌레 주둥이, 새 발톱 모양의 글씨가 완연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참으로 기이하다.”

 

미수는 나는 일찍이 웅연석벽에서 돌에 새긴 이상한 글씨를 보았는데 그 글씨는 괴괴하고 기기하여 어떤 것은 내려 그었고 어떤 것은 가로 그었으며 혹은 합쳐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는 등 변화가 진정 놀라웠다고 썼다.

 

미수는 그것을 기회의 작용으로 이루어진 귀신의 자취라고 단정했다. 주목할 점은 미수가 웅연석문을 감상한 이후 진(秦) 이후 나타난 서체에 대해 인식의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척주동해비는 미수 전서의 대표작이다. 미수의 유작을 가장 먼저 필사하여 정리한 사람은 선생 사후 2년인 1684년(숙종 10년) 승지와 황해 감사를 지낸 권수(權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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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박병철 옮김 / 책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행성 물리학, 판 구조론, 지구 내부 화산 원리 등을 연구하는 예일대학교 교수 데이비드 비코비치의 책이다. 그는 말랑말랑한 과학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은 전체 여덟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우주와 은하, 2장 별과 원소, 3장 태양계와 행성, 4장 지구의 대륙과 내부, 5장 바다와 대기, 6장 기후와 서식 가능성, 7장 생명, 8장 인류와 문명 등이다.

 

저자는 어두운 밤 하늘을 이야기하며 그것은 우주의 시작임을 언급한다. 우주의 나이가 무한대라면 즉 시작이 없다면 밤하늘은 어둡지 않을 것이다. 무한대의 나이를 가정한다면 아무리 멀어도 빛이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나이가 유한하고 공간이 팽창한다는 것은 우주에게 생일이 있다는 의미다.

 

우주의 경계면 바깥에는 빛도, 물질도, 에너지도 없고 시간과 공간도 없다. 세상에 그런 공간이 어디에 있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세상이란 우주의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계 바깥이 어떤 곳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애써 상상할 필요는 없다. 우주에 존재하는 질량과 에너지의 70%는 암흑 에너지이고 25%는 암흑물질이다.

 

별과 행성, 인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은 나머지 5%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들은 거의 대부분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은하와 같이 큰 규모의 우주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의 한정된 감각으로는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없다. 최초의 기체 구름은 주성분이 수소와 헬륨이었기 때문에 이로부터 지구와 같은 행성이 탄생할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면 주기율표에 나와 있는 그 많은 원소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리튬, 베릴륨, 탄소, 산소, 질소, 납, 철 등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별의 내부에서 핵융합반응을 통해 만들어졌다. 우리 태양은 핵융합 과정에서 에너지를 방출함으로써 중력에 의한 수축을 버티면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태양의 중심 온도는 1,500만도c다. 질량이 태양의 15배 이상 되는 별들은 중심 온도가 1,500만 도c에 도달해도 멈추지 않고 계속 수축하면서 무거운 원소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온도가 1억도c에 도달하면 헬륨이 핵융합반응을 일으켜 탄소와 산소를 만들고 이보다 큰 초거성들은 핵융합을 여러 번 반복하여 철까지 만들 수 있다.

 

무거운 원소를 생산하는 핵융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헬륨 원자핵인 알파입자의 융합이다.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세 개의 알파입자가 두 차례 반응을 거쳐 탄소로 변환하는 3중 알파입자 반응은 매우 드물게 그리고 어렵게 일어나는 사건이어서 산소보다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기도 하다.

 

태양계에서 수소와 헬륨 다음으로 흔한 물질은 알파입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지구와 생명체를 구성하는 탄소, 산소, 실리콘, 마그네슘, 칼슘, 철 등의 핵심 성분이다. 지구의 생명체들이 탄소에 기반을 두게 된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탄소는 알파입자 연쇄 반응에서 제일 먼저 생성되는 원소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으며 결합 능력이 뛰어나서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생명의 기본단위인 유기분자는 주로 탄소와 수소의 화합물이다. 만일 원시지구에 각기 다른 원소를 생명의 기반으로 하는 생명체들이 무더기로 등장했다면 탄소에 기반을 둔 생명체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을 것이다.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질소와 인도 탄소에서 시작된 연쇄 핵융합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당신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자들은 과거 어느 날 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단 물에 포함되어 있는 수소는 빅뱅 직후 만들어졌다. 별의 후손이라고 하면 무슨 외계인이나 신성한 존재를 떠올리지만 사실 우리가 별의 직계후손인 셈이다. 인간은 육지에 기반을 둔 생명체이고 최초의 생명체는 바다에서 태어났으므로 진화의 한 단계에서 우리의 먼 선조들에게는 물 밖에서 생명활동을 이어갈 만한 육지가 필요했을 것이다.

 

대륙은 지구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환경이다. 그러나 대륙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하려면 지구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지구의 내부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려면 깊이 6,400km에 달하는 금속과 바위층을 직간접으로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구의 내부는 멀리 떨어진 은하보다 훨씬 관측하기 어렵다.

 

첨단 망원경을 이용하면 50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은하까지 촬영할 수 있지만 6,400km에 불과한 지구의 내부는 아직도 태반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지구의 내부에 관한 지식은 대부분은 지구를 관통하는 탄성파를 분석하여 알아낸 것이다. 이 분야를 지진학이라 한다. 지구의 평균 밀도는 5.5g/세제곱 cm다. 물의 밀도는 1g/ 세제곱 cm다. 돌의 밀도는 3g/세제곱 cm다.

 

대부분의 금속은 10g/ 세제곱 cm다. 그러므로 지구의 밀도는 바위와 금속의 중간쯤 되며 내부 깊은 것은 압력이 매우 높다. 지구 내부는 크게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졌다. 바깥은 가벼운 바위로 이루어진 얇은 지각이고 그 밑으로 지구 반지름의 절반에 해당하는 무거운 바위로 이루어진 맨틀로 되었으며 가장 깊은 중심부 맨틀보다 무거운 철 코어가 자리잡고 있다.

 

맨틀과 핵의 두께는 거의 같지만 맨틀이 핵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부피는 맨틀이 압도적으로 크다. 실제로 지구 전체에서 맨틀이 차지하는 비율은 80%가 넘는다. 밀도가 다르다는 것은 온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핵을 둘러싸고 있는 맨틀은 마그네슘, 철, 실리콘(규소), 산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큰 별의 내부에서 핵융합을 거쳐 생성된 원소들이다.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는 지각은 실리콘과 산소를 비롯하여 칼슘, 포타슘, 알루미늄, 나트륨 등 다양한 광물질이 섞여 있다. 처음 이 다양한 원소들은 골고루 섞여 있었으나 융해 과정을 거쳐 분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의 맨틀은 매우 거대하고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에 냉각 과정뿐 아니라 지질학적 변화 흔적까지 곳곳에 남아 있다.

 

시생대의 맨틀은 여전히 뜨거웠으나 몇 군데 중요한 지점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굳은 상태였다. 한편 우라늄, 토륨 등 불안정한 방사성 원소와 칼륨의 불안정한 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발생한 에너지는 맨틀에 열에너지를 공급하고 있었다. 뜨거운 것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현상을 열대류 또는 자유대류라 한다.

 

맨틀은 물론이고 바다와 대기, 행성과 별, 그리고 당신의 책상 위에 놓인 커피 잔에서도 항상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구 대류는 태풍과 뇌우를 일으키고 태양 대류는 흑점을 만든다. 단 대류가 일어나려면 물질의 유동성이 높아야 한다. 그래야 뜨겁고 가벼운 물질과 차갑고 무거운 물체가 쉽게 자리를 바꿀 수 있다. 맨틀은 고체 상태였지만 긴 시간 규모에서 볼 때 유체처럼 행동한다.

 

빙하가 높거나 흔들리지 않고 갈라지지도 않으면서 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류는 유체가 열을 식히는 방법 중 하나다. 지표면 근처의 차가운 물질이 대류를 타고 가라앉아서 내부의 뜨거운 물질과 섞이면 전체 온도는 내려간다. 중심부의 뜨거운 물질이 대류를 타고 위로 올라가 표면의 차가운 물질과 섞일 때도 빠른 속도로 열이 손실된다. 그러므로 지구는 자신과 같은 크기의 거대한 돌덩어리보다 식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도 맨틀 대류 자체는 워낙 느리게 진행되기에 인간적 관점에서 보면 거의 정체 상태나 다름없다. 외핵은 액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흐를 수 있고 주성분이 전기적 도체인 철이기 때문에 전류를 실어나를 수 있다. 외핵에서 일어나는 유체운동은 주로 대류와 지구 자전에 의해 발생하며 여기에 걸려 있는 외부 자기장에 의해 전류가 발생한다. 이 과정은 발전기의 작동 원리와 비슷하다.

 

지질학자들은 판구조론 혁명을 불러일으킨 1등공신으로 해저확장의 발견을 꼽는다. 지구의 표면이 움직이고 있다는 아이디어가 처음으로 대두된 것은 1930년대였는데 당시 유행했던 대륙이동설은 판구조론과 사뭇 다른 이론이었다. 독일의 기상학자 베게너가 처음 제안했던 대륙이동설은 대륙이 대양 지각을 밀어내면서 마치 빙하처럼 표류 한다는 이론(후일 이런 식의 이동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인 판구조론은 지표면 전체가 몇 개의 조각으로 나뉜 채 각자 상대적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개개의 조각 위에 놓인 대륙들은 판이 이동할 때마다 무임승차한 승객처럼 따라서 움직인다는 이론이다.

 

지각판이 갈라진 이유는 미스테리다. 우리가 아는 한 다른 행성 표면은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있지 않다. 해저 확장이 일어나는 곳에서는 지각판들이 서로 멀어지는데 한 지역에서 멀어지면 다른 지역에서는 가까워져야 한다. 하나의 판이 이웃한 판으로부터 멀어지면 반대편의 또 다른 판 아래로 파고 들어가는데 섭입대는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지질구조판이 처음 생성된 뜨거운 지역에서 멀어지면 차갑고 무거워지면서 서서히 흐르는 맨틀 쪽으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해양에서 분출한 용암이 물과 반응하면 각섬석(角閃石; amphibole)이나 사문석(蛇紋石; serpentine) 같은 함수광물(含水鑛物)이 생성된다. 함수광물이 맨틀의 특정 깊이(약 100km)에 도달하면 온도와 압력이 너무 높아 수분을 밖으로 토해내는데 이 수분은 섭입판의 상부로 올라왔다가 근처의 맨틀바위로 유입된다.

 

이렇게 수화(水化)된 바위는 마른 바위보다 쉽게 녹기 때문에 수분을 머금은 맨틀에 용해된다. 실리카를 가장 많이 함유한 마그마는 화강암으로 이는 차가운 용해 과정의 전형적 산물이다. 화강암은 지각이 녹았다가 굳고 또 녹으면서 지금도 계속 생산되고 있다. 이는 가벼워서 맨틀에 가라앉지 않기 때문에 욕조 배수구 위에 떠다니는 장난감처럼 섭입대 근처에 계속 쌓인다.

 

그러므로 화강암은 지각 위에 점점 더 두껍게 쌓여 대륙지각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124, 125 페이지) 맨틀에 섞여 있던 규산염과 화강암이 융해와 분리를 반복하면서 대륙을 이룰 정도로 누적될 때까지 20억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초대륙의 이합집산 주기를 윌슨 주기라 한다.(윌슨은 캐나다의 지질학자 '투조 윌슨; Tuzo Wilson'의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

 

지질구조판과 물은 오랜 세월 지구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왔다.(지질구조판, 물, 적절한 온도는 삼각대의 다리처럼 하나가 존재하기 위해 둘이 필요한 관계였다.) 두께가 100km에 달하는 판의 경계면 전체를 매끄럽게 만들 정도로 물이 많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토록 압력이 높은 곳에 다량의 물이 많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빠르게 변형된 판의 경계면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바위들은 특히 작은 광물 알갱이를 함유하고 있는데 이런 바위를 압쇄암이라 한다.

 

이 알갱이들이 바위를 부드럽게 만들어서 판의 경계면이 매끄러워졌고 판이 미끄러지면서 경계면 바위에 손상을 입혀 알갱이는 더욱 작아졌다. 아마도 대륙의 경계는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광물 알갱이는 혼자 있을 때 서서히 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바위는 일종의 치유과정을 거쳐 다시 견고해지고 이런 과정은 온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진행된다.

 

현재 바닷물의 총 무게는 맨틀 무게의 0.05%에 불과하다. 고체 맨틀의 대류는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 뜨거운 바위가 압력이 낮은 표면으로 올라오면 쉽게 녹고 녹은 바위는 대부분 대양지각이 되었다. 고체 맨틀의 일부가 녹아서 물과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후 지표면으로 배달되면 화산을 통해 분출된다. 화산은 지면에도 있고 깊은 바닷속에도 있다. 그러므로 대기와 바다가 지구 내부에 존재했다는 가설도 나름대로 타당성을 갖고 있다.

 

대기의 압력이 1기압일 때 물은 100도c에서 끓지만 기압이 높으면 더 높은 온도에서 끓는다. 부엌에서 쓰는 압력솥은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지구의 대기압이 60 기압이었던 시절 물은 200~ 300 도c에서도 액체상태로 존재했다. 정확한 비등점은 270 도c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물과 바위에 스며들면서 기온이 서서히 내려갔다. 온실효과가 완화되었기 때문이다.

 

날씨란 대기의 가장 낮은 층인 대류층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류권의 고도는 지표면에서 약 10km까지로 이 영역에서 빠르고 변화무쌍한 열역학적 대류가 일어난다. 대류권 위의 공기층을 성층권이라 한다. 대류권과 달리 성층권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온도가 높아진다. 성층권의 온도가 높은 이유는 오존 때문이다. 오존은 생성되거나 분해될 때 특정 파장의 자외선을 흡수한다.

 

오존층이 없다면 지구 생명체들은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되어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동물은 식물에게 산소, 오존이라는 이중의 신세를 지는 것이다. 성층권은 고도 50km까지 계속된다. 성층권 위로 고도 100km까지를 중간권이라 한다. 중간권에서는 열복사가 훨씬 효율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성층권보다 온도가 낮다. 중간권 위로는 온도가 훨씬 높고 밀도가 희박한 열권이 있고 그 위로 1만 km까지를 외권이라 한다. 외권 밖으로 나가야 비로소 우주(행성간 공간)라 할 수 있다.

 

행성이 태양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물이 얼어붙고(화성), 너무 가까우면 증발해 버린다.(금성) 행성에 물이 존재하려면 골디락스 영역에 놓여 있어야 한다. 희귀 지구 가설에 의하면 지구는 은하수의 적절한 위치에 자리 잡은 덕분에 생명체 탄생의 적절한 환경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만일 우리의 태양계가 은하의 중심에 가까웠다면 초대형 블랙홀이 내뿜는 가공할 복사 에너지에 초토화 되었을 것이다.

 

또한 지구는 탄생 시기도 적절했고(생명이 필요한 원소들이 모두 만들어진 후에 탄생했다.) 물이 고체, 액체, 기체 상태로 존재할 수 있을 정도로 태양과의 거리도 적당했다. 천문학적 조건 외에도 지구는 지질구조판을 가지고 있어서 안정된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달의 조력(潮力)에 의한 조수현상 덕분에 수상 생물이 육지생물 진화할 수 있었다.

 

조간대(潮間帶)에 사는 생물들은 물이 찼을 때 물속에서 살다가 물이 빠지면 육지 생활을 하면서 육상생물의 첨병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지구는 자전축의 공전면에 대하여 적당한 각도로 기울어져 있어서 계절이 주기적으로 변했고 그 덕분에 다양한 생명체가 출현할 수 있었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행성이 떨어지거나 대형 화산이 폭발하여 생명체가 대량으로 멸종한 적도 있고 초대륙이 형성된 후에는 해안선이 급감하여 연안 생태계에 심각한 위기가 닥치기도 했다.

 

그러나 대량멸종이 일어날 때마다 지구의 생태계는 새롭게 정리되어 생물학적 다양성과 진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저자는 생명이란 화학반응을 이용해 주변 환경으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취하여 성장하고 번식하는 생물학적 개체를 말한다고 설명한다.(209, 210 페이지)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은 결과물이 반응 자체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자가촉매적이다.

 

무기화학반응 중 생명 활동의 특성을 그대로 빼닮은 것도 있다. 가령 불은 호기성 생물처럼 물질과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물과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낸다.(광합성과 정반대) 불은 생명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연료(나무, 잔디 등)를 소모하기 위해 멀리 퍼져나가고 발화할 때까지 연료를 태우면서 자신의 활동을 촉진한다. 그러나 불은 물이나 이산화탄소와 같이 단순한 분자만 재생산할 수 있다.

 

불은 습도에 강한 것과 약한 것이 따로 있지 않아서 주변에 습기가 많으면 그냥 꺼진다. 생명체는 물 이외에 포도당, 지방산, 아미노산, 뉴클레오티드 등 네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졌고 이들은 다섯 종류(수소, 탄소, 질소, 산소, 인)로 이루어졌다. 수소는 빅뱅 직후 만들어졌고 나머지는 별의 내부에서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졌다.

 

지표면에 사는 생명체는 예나 지금이나 직간접적으로 광합성에 의존해왔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지구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사건은 생명체의 출현이고 두 번째는 광합성의 개발이다. 지구에 생물이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태양에너지와 급변한 대기, 그리고 광합성 덕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광합성을 어린 학생들도 아는 기초 지식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지금도 새로 발견되는 내용이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과 침팬지는 지금으로부터 700만년전에 진화나무에서 분화되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차드에서 발견된 초기 인류의 화석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가 이 사실을 입증한다. 인간이 침팬지와 작별을 한 결정적 계기는 직립보행이다. 대형 유인원도 두 발로 걸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직립보행의 가설들 중 셋이 눈길을 끈다. 1) 음식을 손으로 운반하면 은밀한 곳에 저장해놓을 수 있어 끼니때마다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2) 먼곳까지 볼 수 있어 포식자를 피하고 음식을 찾는 데 유리하다. 3) 두 발로 서서 양팔을 휘두르면 몸집이 실제보다 커보여 상대방을 위협하여 우위를 점하거나 더 좋은 짝을 만날 수 있다 등이다.

 

직립보행은 체온을 유지하는 데도 유리하다. 우리가 땀으로 체온을 조절하게 된 이유중 하나는 호모 사피엔스가 빙하기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대기가 뜨겁고 습했던 5천만년 - 3천만년전에 태어났다면 다른 방식으로 체온을 조절했을 것이다. 사람의 땀은 춥고 건조한 날씨에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저자는 지질학자로서 재러드 다이아몬드가‘총, 균, 쇠’에서 제기한 근대사에서 식민지 확장 사업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의문에 대해 논한다. 다이아몬드는 그 원인을 대륙의 방향성에서 찾는다. 대륙의 방향성을 결정한 것은 판의 구조다. 거대한 대륙의 한복판에 자리한 유라시아 문명은 주로 동서 방향으로 확장했기 때문에 제국 전체에 걸쳐 기후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체적인 기후대가 수백, 수천 km에 걸쳐 비슷하더라도 도중에 사막이나 강이 있으면 수십 km 간격을 두고도 환경이 크게 달라진다. 지질구조판 중 유라시아 판은 지질학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았다.

 

대륙의 축이 동서방향으로 뻗어 있어서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영토확장을 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농경민들이 모여들어 다양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다른 대륙들은 대부분 남북방향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기후가 비슷한 동서방향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어려웠고 남북으로 진출하면 국물과 가축들이 서식가능 지역을 벗어나 큰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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