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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연의 역동적 형태 ㅣ 우든북스 시리즈 6
데이비드 웨이드 지음, 최수홍 옮김 / 시스테마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理)는 자연의 질서와 패턴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자이크처럼 죽은 것으로서의 패턴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 인간관계, 인간의 최고의 가치에 구체화되어 있는 어떤 것으로서의 패턴을 의미한다.“(조지프 니덤 지음 ‘중국의 과학과 문명’ 중에서) 이 구절은 데이비드 웨이드의 ‘이(理), 자연의 역동적 형태’에서 인용된 말이다.
저자는 이를 게슈탈트 즉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패턴의 발현으로 본다. 이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나 아무 연관이 없는 현상에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구조가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서양 과학은 항상 패턴에 관심을 보였다. 사실상 패턴 인식이야말로 과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책에서 보여 주는 것 같은 준대칭 형태들이 진지하게 연구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대칭의 개념을 대폭 확장하고 경직된 고전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이에는 동양 우주관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이원론이라는 철학적으로 아직 서구 사상이 선망하지 않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역동적 형상을 의미하며 특정 순간 정지된 찰나에 포착된 어떤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는 더욱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특정 형태의 관련되어 있는 에너지의 근본원리 같은 것이다.
본문에 암모나이트(문어, 오징어의 조상격인 두족류) 화석의 봉합선이 나온다. 저자는 암모나이트 화석이 굽이치는 큰 강을 하늘에서 본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봉합선은 물결 모양의 선들을 말한다. 절단면을 매끈하게 광 낸 대리석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양한 색상뿐 아니라 먼 지질시대에 일어났던 격렬한 형성과정의 한 순간이 포착되어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변성암은 실제 극한의 열과 압력 아래에서 형성된 것들이다.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도자기 표면에 생긴 잔금에 미적 가치를 두었다. 반면 서구에서는 그것을 잘못된 결함 즉 문제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두 세계의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 말해 준다. 도자기의 깨진 듯한 잔금은 유약과 도자기 본체의 수축률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도자기의 잔금은 바짝 말라서 갈라진 땅이나 페인트와 겔이 마르면서 나타나는 잔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든 잔금은 축적되어 있던 스트레스가 분출되어 나가는 통로 곧 힘이 가는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인식하는 동양문화에서 잔금을 매력적으로 본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형성되는 위계적 순서에 따라 크거나 작은 잔금들이 생긴다. 지질 구조 체계와 도시의 도로 계획 등의 많은 형태들 역시 이러한 위계적 체계를 가지는 이의 형태를 띤다.
저자는 위도가 높은 추운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혹독한 겨울 가끔 찾아와 유리창을 장식하는 우아한 문양의 서리가 생각지 않은 위안이 된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절리(節理)는 한자이고 서리의 리는 한글이지만 같은 차원으로 보인다. 아니 지구 대기 중의 수증기가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은 것을 서리라 하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닮았지만 아스팔트 포장의 균열 패턴과 도자기의 잔금은 근본적으로 다르게 생성된다. 두 형태의 차이는 물질의 성질에서 온다. 아스팔트는 근본적으로 탄력이 있지만 도자기 유약은 탄력이 없다. 또한 도자기 표면의 잔금이 더 직각에 가깝게 교차된다.
나무껍질 모양은 탄력성 있는 물질이 갈라질 때 생기는 대표적인 모양이다. 나무는 껍질 바로 안쪽에 있는 층이 성장해 굵어지는데 이때 바깥쪽 나무껍질은 팽팽하게 당겨진다. 이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나무들은 종마다 다른 전략을 진화시켰다. 소나무는 껍질을 세로 방향으로 갈라지게 하면서 아스팔트 균열과 다르지 않은 방을 만들어 낸다. 반면 밤나무는 팽창하는 힘을 우아하고 부드러운 나선형 고랑 모양으로 유도한다.
모든 종은 자신만의 독특한 이를 가지고 있다. 이로써 종을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숙한 나무에서는 갈라진 껍질에 새로운 물질이 더해지며 그 결과 참나무에서 보는 것처럼 균열이 더 깊고 뚜렷해진다. 지의류의 조형적 습성은 그 겸손한 존재에 걸맞게 단순하지만 계속 성장해나가면서 여러 층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 무척 복잡하고 아름답다.
지의류가 자라는 것과 똑같은 패턴을 산화 갈륨의 표면 형성에서와 같은 일부 화학반응에서도 볼 수 있다. 식물에서 잎이 나는 차례는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규정된다. 그 유명한 피보나치 수열을 따른다. 그러나 양배추와 같이 좁은 공간 내에 배열이 국한되는 경우에는 잎들이 서로 먼저 자리를 차지하려 경쟁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혼돈스러운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양배추는 말하자면 식물의 끝눈이 비대해진 것인데 연속적으로 자른 단면을 보면 각기 다른 속도로 성장한 잎들의 기하학적 배열이 어떻게 깨지는지 알 수 있다. 질서정연한 형태에서 훨씬 불안정한 형태로의 진행은 형태와 에너지라고 하는 양대 원칙이 상호작용할 때 창발하는 복잡성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양배추 같은 예에서 이런 고도의 유추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의 영원한 매력이기도 하다.
기하학적 이상 상태는 자연의 어느 곳에서도 실현되기 아주 힘들다. 용암이 이상적으로 완벽하게 균일한 물질이라면 그물망이 아니라 정육각형 패턴이 형성될 것이다. 두 유리판 틈 사이에 생긴 비누 거품막도 질서와 패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두 유리판 틈 사이에 생긴 비누 거품막이나 세포들이 우아하게, 그리고 역동적으로 당겨지면서 배열된 곤충의 날개는 최적의 경제적 형태라는 원리를 공유한다.
현무(玄武) 이야기가 흥미롭다. 북방의 수호신인 현무는 거북이와 뱀을 합친 도상이다. 현(玄)은 검은색을 뜻하고 무(武)는 거북의 딱딱한 등갑이나 비늘을 뜻한다. 현무는 대체로 중국 전한 초까지 거북의 모습으로 표현되다가 언제부터인가 뱀이 거북을 휘감고 있는 도상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고대 중국인들이 거북은 암컷만 있을뿐 수컷이 없다고 생각하여 머리 모양이 비슷한 뱀을 수컷으로 짝지은 결과다. 암수 한 쌍으로 표현되는 남방의 수호신인 주작(朱雀)에 대한 대응으로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강과 강의 지류는 모든 형태의 이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친숙한 모양이며 액체가 흐르는 많은 종류의 관 체계 특히 동물과 식물의 기본적인 순환계와 아주 비슷하다. 강의 형태는 모든 종류의 액체가 흐르는 통로의 전형일뿐 아니라 지구의 물 순환 과정에서 가장 활발한 단계에 속한다. 그런 면에서 중요한 에너지 이동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의 형성에는 우선순위의 역설이 있다. 강은 지형을 만들고 지형은 강을 담고 있다. 강이 지형을 만든 것이 먼저인지 지형이 강을 담은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 인간의 논쟁처럼 무엇이 먼저인지는 분명치 않다. 사실 이런 형태로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성이 분명히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거의 플라톤적 실제의 선주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다.
모래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지만 힘이 가해지면 어디에 있든지 그 힘의 흔적이 남겨진다. 해변에 새겨진 매혹적인 잔 물결,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언덕 등 이들 형태는 자신만의 법칙에 지배되고 자신만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형태를 구성하는 물질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갱신되지만 이 자체는 꽤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자연에는 삼각형 모양이 드물다. 그럼에도 다이아몬드의 표면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윤곽선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티프는 정삼각형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다이아몬드는 완벽한 결정의 상징이다. 결정은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가장 대칭적인 선들로 미리 결정된 격자구조의 일정 위치에 수없이 많은 동일한 원자들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에서는 이렇게 흠이 없는 배열에서조차 원자의 위치 이탈로 발생하는 미세한 결함이 가득하다. 그것이 다이아몬드에 나타나는 삼각형 모양의 결정적인 원천이다.
식물의 순환 시스템과 동물 혈관 및 신경 시스템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점이 있다. 이들은 묘하게도 강물이 흘러가는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 모든 과정들의 공통된 인자는 언제나 그렇듯 에너지 전달이다. 따라서 이 정교한 형태들은 에너지 전달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무화과나무, 백합나무 등의 도관을 볼 필요가 있다.
두 장의 유리 틈에 잉크를 흘린 후 유리를 떼어냈을 때 만들어지는 형태도 주목할 만하다. 기본적으로 잉크가 퍼진 것에 불과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다. 바다 식물이나 불꽃 등 다양한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단순한 최초의 형태에서 고도의 복잡성이 창발하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복잡성은 거의 자발적으로 발생한다. 스스로 창조된 우주의 모든 부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도교의 중심 사상이다.
도덕경에 ”길은 측정 할 수도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안에 형태가 담겨 있다.“는 말이 있다. 이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전혀 연관이 없는 현상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사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모래 언덕의 띠와 얼룩말의 피부, 마른 진흙의 잔금과 기린의 무늬가 그 예다.
동물의 무늬에서 특히 이의 예를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다. 동물의 무늬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다. 수비나 공격을 위해 자신을 위장하고 경고하거나 적을 교란시키고 때로 성적 매력과 연관되기도 하다. 흔히 이런 여러 기능들은 혼재되어 있다. 동물의 외관은 항상 기능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생명체의 형태와 특정 이는 그냥 그렇게 되었을뿐이다. 이에 대한 궁극적인 분석은 창조의 수수께끼를 푸는 한 부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