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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 인간성의 기원을 찾아가는 역사 수업
닐 올리버 지음, 이진옥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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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의 책이다. 제목만으로는 문학책 같다. 저자는 닐 올리버. 이야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는 세계라는 직물 안에서 구성원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실과 같다.” 오래된 이야기들은 시간의 파도가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릴 때 운 좋게 남은 화석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야기란 한때 온전히 전체를 이루었던 것들의 파편이다. 바로 거기서부터 우리는 무엇이든 짜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책은 1 챕터인 가족부터 마지막 12 챕터인 죽음까지 이어진다. 메리 리키가 발견한 라에톨리 발자국은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 인근 라에톨리의 화산재 위에 찍힌 사람 발자국이다. 이는 그들이 날카로운 날을 만들거나 주먹도끼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기 훨씬 이전부터 두 발로 걸었음을 알게 한다. 360만년전 vs 260만전년이 답이다. 전자는 직립을 말해주는 연도이고 후자는 도구 제작을 말해주는 연도다.

 

올두바이 협곡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루돌펜시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등의 화석이 발견된 고인류 화석의 보고(寶庫)다.(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최초로 고인류 화석을 발견한 사람은 한스 렉이다.; 91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크로마뇽인의 크로마뇽은 동굴 또는 바위 그늘을 뜻하는 크로와 그 땅의 주인을 의미하는 마뇽의 결합어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는 약 40만년전부터 2만 5000년전까지 살았던 고인류다. “사랑과 보살핌은 현생인류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보다 수십만년 앞서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는 삶과 죽음의 자리에서 동료를 보살폈다.” 저자는 땅을 밀고 솟아나 깎이고 닳아 바다로 씻겨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것, 돌과의 연결, 돌에 대한 믿음이 자신에게 필요한 유일한 불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라지겠지만 바위들은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인류학자 헨리 번은 약 200만년전의 고인류들이 저녁거리를 신중하게 고르는 미식가들이었다고 말했다. 헨리 번 이전까지 초기 인류는 사자와 하이에나가 포식을 끝내고 고기와 골수를 발라 먹는 쓰레기 처리꾼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번은 그들이 저녁거리를 신중하게 고르는 미식가들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를 찾았다.

 

올두바이의 한 도살 유적에서 번은 180만년전의 인간 사냥꾼들이 남긴 영양, 가젤, 누의 뼈를 발견했다. 턱뼈에 남은 치아를 관찰하여 동물들의 나이를 추정한 결과 닥치는 대로 사냥했던 사자나 표범과 달리, 호미닌 사냥꾼들은 오직 다 자란 동물들만 골라 사냥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른 영장류들은 긴 소화기관에 적합한 채식 위주의 식단에 만족했지만 인류는 영양이 풍부한 고단백 육류를 안정적으로 섭취했다. 그 결과 인간의 두뇌는 점점 더 커졌다. 1931년 영국의 고인류학자 도널드 매킨스는 올두바이에서 고인류 뼈와 석기, 동물 뼈, 둥그렇게 놓인 돌 무더기를 발견했다.

 

메리 리키는 누군가 은거지를 만들기 위해 그 화산암 무더기를 의도적으로 배치해놓은 것이라 설명했다. 190만년전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집이다. 저자는 당시 인류는 식량을 집으로 가져와 기다리는 이들과 나눠먹을 줄 아는 존재였다고 말한다.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고 남성이 먹을 거리를 구해와 가족을 부양하는 성별 분업설을 러브조이(오웬 러브조이가 주장) 가설이라 한다. 물론 그의 주장은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책에는 스카바 브레 이야기도 나온다. 스코틀랜드의 폼페이라 불리는 그곳은 5000년 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다가 1850년에 몰아친 또 다른 사나운 폭풍으로 마법처럼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 유적이다. 이 부분에서 탄자니아 라에톨리 발자국을 생각하게 된다. 응고롱고로 화산 폭발 때 생성된 화산재에 비가 내린 덕에 바닥은 진흙처럼 질척였다. 그래서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연이은 화산 폭발 때 생성된 화산재가 그들의 발자국을 덮었고 그 발자국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계곡을 흐르는 물에 의해 차츰 모습을 드러냈다. 조지아 공화국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두개골 유적은 아프리카 대륙 밖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호미인 화석이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다섯 개체분의 호모 에렉투스 화석이 발견되었다. 호모 에르가스터, 호모 가우텐겐시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루돌펜시스 등이 명명되었다.

 

그런데 드마니시에서 각양각색의 생김새를 지녔으며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다섯 개체 분이 발견되었다. 이는 생김새가 다르다고 무조건 다른 종이 아니며 이들 모두가 하나의 종 즉 호모 에렉투스일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초기의 호모 에렉투스는 시간상으로 우리보다 우리의 친척이자 아프리카의 작은 유인원으로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더 가까웠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던 첫 번째 부류였다. 그들은 아직 인간 즉 호모라고 할 수 없었지만 유인원과는 달리 팔로 물건을 든 채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고고학자들은 호모 에렉투스를 원숭이 같은 인간, 야만적인 멍청이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근 일부 학자들이 호모 에렉투스가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찾아냈다.

 

호모 에렉투스는 구대륙의 끝까지 뻗어나갔다. 남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수십만년 뒤에는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렀다. 그들 중 일부는 지부티의 해변에 서서 아덴만(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과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 사이의 만) 너머를 응시하다가 해협을 건너 아라비아 반도에 당도했을 것이다. 빙하기였던 플라이스토세 동안 간혹 해수면이 낮아지면 걸어서 해협을 건너기도 했을 것이다.

 

이들은 아라비아부터 구대륙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오늘날에도 아프리카를 떠나는 이민자와 난민들은 200만년전 호모 에렉투스가 개척한 그 경로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120, 121 페이지)

 

인간의 외모는 왜 이렇게 다양한 것일까? 유전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인류가 같은 유전자를 나눠 가졌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규모가 크고 건강한 집단에서 무작위로 발생하는 돌연변이는 바다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유전학자들에 따르면 화산 폭발 같은 재난이 일어나 어떤 종의 개체 수가 급감하면 인구의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인류 개체 수가 급감하여 가임 인구가 몇 남지 않은 상황은 돌연변이에게 자기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130 페이지) 현대 아프리카인의 살과 뼈에는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유래한 DNA가 없지만 유럽인에게는 많게는 4%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마주쳤을 때 울려퍼진 메아리는 강철에 부싯돌이 닿을 때처럼 불꽃 같았을 것이다. 그 혼합물에서 한없는 창조성이 마법처럼 피어났다.

 

마지막으로 빙하가 물러난 시기는 약 1만 2천년전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들은 그 광활한 대륙을 떠나 이동을 시작했고 중동을 거쳐 아시아, 유럽, 마지막으로 약 2만 5000년전 오늘날의 베링해협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다.

 

저자가 처음 고고학 발굴에 참여한 것은 18세이던 1985년이다. 장소는 스코틀랜드 에이셔주 댈멜링턴에 있는 둔 호수가였다. 석기시대 사냥꾼들이 쓰던 플린트의 부스러기와 처트(규산을 함유한 퇴적암)의 흔적이 발견된 곳이다. 고고학자들은 석기시대인들이 돌로 도구를 만들 때 생기는 그런 부스러기들을 데비타지(debitage)라 한다.

 

다른 고인류들처럼 호모 사피엔스도 탐험가였고 방랑자였다. 그들의 여정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중동으로 이어졌고 이전부터 사용되던 동쪽 길을 따라 아시아와 호주, 베링해협을 통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졌다.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4만년전에 유럽대륙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들이 유럽에서 멀지 않은 이스라엘 땅에 닿은 것은 무려 17만 7000년전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가르멜산에 있는 미슬리아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네안데르탈인에 비해 좁은 얼굴, 좁은 이마, 전체적으로 덜 건강한 인상, 뚜렷한 턱)을 가진 젊은 성인의 왼쪽 위턱뼈 일부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175 페이지)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 대륙을 코앞에 두고도 건너가지 못한 것은 이미 그곳에 호모 에렉투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쇠닝겐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들의 창은 그들이 생각보다 더 현대적이며 지혜로웠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의 네안데르 계곡에서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발견한 것은 1856년이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긴 사실을 장막에 거주하는 조용한 사람인 야곱이 꾀와 속임수를 써서 능숙한 사냥꾼인 에서를 이긴 성경 이야기에 비유한다.(176 페이지)

 

인류 발달 역사에서 엄지손가락의 진화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여겨진다. 엄지손가락에 다른 손가락과 맞닿는 움직임이 가능해지면서 도구를 집는 힘이 늘고 손재주도 향상되었기 때문이다.(264 페이지) 갓난아기는 270개의 뼈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몇몇 뼈들은 성장과정에서 하나로 붙게 되고 어른은 총 206개의 뼈를 갖게 된다.(357 페이지)

 

우리 종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종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손이었다. 인류는 손으로 도구를 만들고 온갖 기술을 탄생시켰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지고 잡고 움켜쥐었다.(268 페이지) 인도학자 프리츠 스탈 교수는 인간에게 말보다 의례가 먼저 등장했다고 믿는다.

 

의례를 이루는 패턴화된 행위,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몸짓은 새들의 짝짓기 춤이나 곤충의 분봉 행위를 본뜬 것일 수 있다.(296 페이지) 저자는 우리의 첫 조상들은 의식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에 그저 걸었고 창조했고 살고 죽었다고 말한다.(297 페이지) 이는 우리 조상들이 날카로운 날을 만들거나 주먹도끼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기 훨씬 전에 두 발로 걸은 사실을 연상하게 한다.

 

본문에 중석기 시대(Mesolithic)라는 말이 나온다. 마지막 사냥꾼이 살던 시대를 일컫는 고고학 용어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중간을 의미한다. “우리 종은 20만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왔다. 그 시간 동안 인류의 생리나 지능이 근본적으로 변했을 리는 없다. 우리는 그들과 같다. 다른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선택이다.”(325 페이지)

 

저자는 성소(聖所; sanctuary)의 동굴 벽화란 말을 한다. 프랑스 남서부의 트루아프레르 동굴의 성소라 불리는 방에 매머드, 곰, 말, 야생 염소, 들소, 순록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것은 1만 5000년전의 그림이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전율하게 한다. 저자는 그 벽화를 만들어낸 힘이 상상력이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상상력이라는 얇은 막을 걷어내면 우리는 여전히 사냥꾼이다.

 

“우리 종의 동맥에는 보랏빛 세쿼이아보다 고귀한 생명선이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의 생명선, 그것은 바로 지혜다. 원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 지혜는 환기하고 회복하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 조상들이 익히고 알게 된 모든 것이며 현대적 자아를 지닌 우리의 깊은 뿌리에 있는 무엇이다. 수십억년 동안 이어진 삶의 유산, 원시로부터 온 생명력이 우리의 DNA 가닥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지금도 조용히 눈을 감으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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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복과 상담 동양상담학 시리즈 17
나예원.박성희 지음 / 학지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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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이항복은 익살과 재치의 주인공으로만 너무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지혜와 결단력으로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극복하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더욱 그는 풍자와 해학의 주인공임은 물론 고위(高位)에 있었지만 귄위주의적이지 않았던 바람직한 사람이었다. 본문에 의하면 풍자는 부정한 인물이나 시대상을 비판하는 데서 비롯되는 행위이고 해학은 억압받고 고통받는 대상에 대해 애처로움과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데서 비롯되는 행위이다.

 

명종 말년인 1556년에 태어나 광해군 초기인 1618년에 사망했다. 선조 13년인 1580년 문과에 급제해 호조참의, 도승지 등을 역임했고 선조 25년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扈從)해 의주까지 가 명나라에 대해 지원병을 요청할 것을 주장했다.

 

1589년 정여립 반란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항복은 심문 내용을 받아적는 기록관 역할을 담당했다. 이항복은 정여립의 모반사건을 다스린 공로로 정3품 벼슬에 올랐다. 당시 동인은 기축옥사가 반란이기는 하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선조는 모든 책임을 송강 정철에게 씌워 그를 축출했다. 정철은 너무도 가혹하게 정여립과 관련된 동인을 싹쓸이하다시피 한 문제적 인물이다.

 

정철은 강계로 귀양을 갔다. 이때 유일하게 귀양 가는 정철을 배웅해준 사람이 이항복이었다. 감동을 받은 정철은 유배지 강계에서 “내 생애는 설새령에 놓였지만 마음은 필운산에 가 있네“라는 시를 썼다. 이러자 동인은 이항복과 정철이 짜고 사건을 일으켰다고 공격했다. 이에 이항복은 필운 대신 백사라는 호를 썼다. 이항복은 광해군의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해 함경북도 북청에 유배된 지 5개월만에 병사했다.

 

한 마디로 그는 기축옥사, 임진왜란, 계축옥사 등 조선 중기 격동의 사건을 정면으로 관통한 인물이었다.(32 페이지) ‘이항복과 상담’은 학지사의 동양상담학 시리즈의 한 권이다. 지은이는 교육상담학 전문가 나예원과 박성희다. 박성희는 ‘고전에서 상담 지식 추출하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박성희는 서양 사람들에게서 뽑아낸 상담 지식을 한국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의 문제를 직시했고, 나예원은 장난기 넘치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소년, 당쟁과 임진왜란이라는 격동기를 정면으로 맞서 살았던 인물이라는 이항복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지식에 이항복은 긍정적인 삶의 실천가이자 상담자라는 정의(定義)를 추가하려 한다고 말한다.

 

‘이항복과 상담’은 바로 이런 두 사람의 사상적 공명(共鳴)의 결과물이다. 이항복은 자기연민의 승화(昇華), 수용과 성찰, 자애, 개방성의 주인공이었다. 특히 그는 아들에게 과거 급제를 해라, 출세하여 집안의 명성을 드높여라 등의 주문을 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이항복은 선조가 명으로 피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성룡은 선조의 명 피난에 반대했다.

 

이항복의 주장대로 명으로의 피난이 결정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항복은 유성룡이 머무는 숙소를 직접 찾아가 사죄했고 유성룡은 자기에게도 잘못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지난 앙금을 풀고 다시 좋은 결말을 맞이했다. 두 사람이 만일 소유적인 관계였다면 상대를 자신의 뜻에 맞지 않게 행동한 괘씸한 인물로 낙인찍었겠지만 두 사람은 서로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했다.

 

이항복은 역적으로 몰릴 위험이 있다 해도 상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언행으로 보여주었다. 이덕형이 왕의 미움을 받아 쫓겨나자 자신의 의견은 이덕형과 다를 바 없다며 그를 두둔하고 벼슬을 거절했다. 1602년 우계 성혼과 송강 정철을 구하려다가 축출 위기를 맞았고 1612년 권필이 구속되었을 때 울음으로 그의 억울함을 간언했다.

 

저자는 이항복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목숨을 걸어가며 상대를 구해야만 의미 있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교훈이라고 말한다.

 

‘이항복과 상담’은 이항복을 모신 포천 화산서원(花山書院) 해설을 의뢰받고 읽게 된 책이다. 필운대(弼雲臺)가 포함된 서촌 해설에서도 이항복에 대해 잘 다루지 않았던 미흡함을 반성하며 뒤늦게 이항복의 진수를 알게 해준 책이다.

 

관계를 맺는 것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뜻하고 특히 서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며 성장시키는 것이라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이항복 개인에 대해 배운 것도 의미 있지만 관계의 진수에 대해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항복을 다룬 책이 별로 없는 것이 아쉽다. 시리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미수 허목과 상담’이란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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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형의 빅히스토리 Fe연대기
김서형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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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빅히스토리 유라시아센터 연구교수 김서형이 말하는 <Fe> 연대기를 보며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 , 를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인간만을 역사적 분석 대상으로 삼았던 시각과 관점을 넘어 생명과 우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빅 히스토리라 정의한다. 다양한 생명체들과의 공존을 위한 논의 확대는 인류세 논의와도 공명하는 바다


주제는 자기장에서부터 식물의 광합성에 이르기까지 관련되는 것이 철이다. 자기장은 행성이 자전하는 과정에서 외핵의 철 성분이 회전함에 따라 발생한다. 지구 자기장은 시속 1600만 킬로미터 속도로 날아오는 태양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철은 과거 시기의 산소 농도 측정 도구로도 작용한다


호주 필바라에는 검붉은 부분과 흰 부분으로 구성된 산화철 퇴적층이 빈번하게 발견되는 산화철 퇴적층이 있다. 대기 중 산소가 풍부해 철이 산화되면 검붉은 부분이 형성되었고 반대 경우 흰 부분이 형성된 데 따른 것이다.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생명체의 진화와 멸종에 큰 영향을 미쳤던 요소들 가운데 하나다. 철은 포도당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 역할을 한다. 부족하면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것이 철이다


대륙 빙상(氷床; ice sheet)의 철이 온난화로 녹아 바다로 유입되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증가한다. 이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온난화를 막는다. 이상한 관계다. 철은 농경이 시작된 이후 잉여 생산물을 얻기 위해 발생했던 일련의 기술 발전 속에서 도시와 국가가 탄생하는 데 필요한 도구와 무기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했던 원료다.


18세기 영국은 증기기관을 원동력으로 하는 새로운 산업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것이 제철공업이다. 당시 철 제련의 중요 재료로 쓰인 것은 석탄이었다. 증기기관은 소빙기에 나무 대신 석탄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지하 갱도로 흘러드는 물을 퍼올리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영국은 풍부한 철과 석탄을 이용해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이루었다


미국과 구 소련의 우주 경쟁에서도 철은 매우 중요했다. 우주선을 만드는 재료였기 때문이다. 우주선은 초합금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철 함량을 50 퍼센트 아래로 낮추고 니켈과 크로뮴의 함량을 증가시킨 것이다. 별은 수소를 이용해 빛을 낸다. 수소 원자들은 융합해 헬륨을 만든다. 태양은 중심 온도가 1500만도 이상이다


이 온도에서는 수소 원자들이 융합해 헬륨을 만들 수는 있지만 헬륨 원자들이 융합해 다른 원소를 만들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별이 헬륨을 모두 사용하면 새로운 원소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 시작된다. 우주의 온도가 10억도가 되면 헬륨 양성자들이 융합해 점점 더 빠른 붕괴, 융합 과정을 통해 내온, 산소, 규소 등을 만든다. 그리고 우주의 온도가 30억도 정도 되면 규소를 철로 만드는 융합이 시작된다


철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온도가 높은 별 안에는 수소에서부터 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원소들이 가득 찬다. 그리고 별의 중심이 철로 가득해지면 더 이상 융합은 일어나지 않고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다. 별이 폭발하면서 다양한 원소들이 별의 주변과 우주 전체로 퍼진다. 물론 우주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원소는 수소, 헬륨으로 98퍼센트에 달한다


헬륨 이후의 원소들은 2퍼센트 정도이지만 이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해 생명체,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든다. 초기 지구는 오늘날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매우 뜨거워서 모든 것이 녹은 상태였다. , 니켈, 마그네슘 같은 무거운 물질들은 지구 중심으로 가라앉아 지구 핵을 형성했다. 가벼운 물질들은 핵 위를 떠다니게 되었다. 이것이 맨틀이다


아주 가벼운 물질들은 지각을 구성했고 가장 가벼운 물질들은 대기를 형성했다. 이후 오래도록 비가 내려 지구 온도가 내려갔고 바다가 형성되면서 다른 행성들과 달리 생명체가 등장할 수 있는 조건들이 만들어졌다. 138억년 전 아무것도 없었던 우주에서 빅뱅이 나타났고 이후 별과 원소가 등장하면서 우주는 점차 변화했다


온도나 중력 차이에 따라 원소나 물질들이 결합하면서 태양계 형성처럼 이전 우주에는 없던 새 현상이 나타났다. 45억년 전에 발생했던 초신성 폭발로 태양, 지구 등의 여러 행성들이 만들어졌고 달이 만들어졌다. 지구는 탄소, 산소, 질소 등 다양한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고 물이 있다


35억년 전에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했고 25억년전에 세포막으로 둘러싸인 핵을 가진 진핵생물이 등장했다. 10억년전쯤 다세포 생명체가 탄생했다. 47500만년전 다세포 생명체들이 바다에서 육상으로 이동했다. 폐로 호흡하게 되었고 다리가 출현했다. 6500만년전 소행성 충돌과 그로 인한 기후 변화로 당시 지구를 지배했던 거대 파충류 공룡이 멸종하고 포유류가 나타났다.


1만년전 농경의 출현은 빙하기가 끝난 것, 급속한 인구 증가 등과 관련이 있다. 저자는 우주 탄생 이후 별과 행성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탄생하고 진화하는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인간은 끊임 없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했다고 말한다.(283 페이지) ‘Fe 연대기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우주, 지질, 기후, 생태에 이어 인류세 논의까지 아우른 책이면서 흥미 있게 읽힌다. 우리가 빅히스토리를 읽는 이유는 인류세를 논해야 하는 위기상황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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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44
얼 C. 엘리스 지음, 김용진.박범순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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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란 너무나 강력해진 나머지 자기 자신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갖게 된 인간종이 지배하는 시대를 말한다. 다른 말로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생태계와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1922년 구소련 지질학자 알렉세이 파블로프가 인류세란 말을 처음 사용했지만 그것은 구소련을 벗어나지 못했다.

 

1980년대 미국 출신의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1934 - 2012)도 사용했다. 2000년 이후 네덜란드 출신 대기화학자로 오존층 파괴 원인을 밝혀 노벨화학상을 수상(1995년)한 파울 크뤼천(Paul J. Crutzen; 1933 - 2021)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파울 크뤼천은 ‘핵겨울'이라는 개념도 처음 쓴 분이다.

 

핵전쟁이 불러올 기후재앙을 경고했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도시와 산림, 농경지, 석유 및 가스전으로 불이 번지면서 엄청난 연기가 대기로 날아가 햇빛을 차단하는데 이로써 지구 표면이 냉각되어 전 세계 농업생산이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 전체 역사(46억년)를 하루로 환산할 경우 인류의 등장은 12월 31일 자정을 몇 시간 남겨둔 시각에 이루어졌다. 지질시대는 선캄브리아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이루어졌다. 인류세는 신생대 제3기(팔레오세, 에오세, 올리고세, 마이오세, 플라이오세)와 신생대 제4기(플라이스토세, 홀로세)에 이은 시대다. 현재는 지질시대 중 가장 최근에 해당하는 시기인 260만년전에 시작된 제4기로 그 가운데 홀로세(완전히 최근이란 의미)다.

 

인류세가 인정된다면 홀로세 다음의 인류세가 되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시기는 20만년전(’전곡선사박물관‘ 자료)이다. 지질시대를 다루는 전문가들은 우리 행성을 형성하는 지질학적 과정에 의해 암석에 물리적인 흔적이 남아야만 지질학적 연대표를 직접 구성해낸다고 밝힌다. 지질학자 중 층서(層序) 기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층서학자라고 한다.

 

그들이 지질학적 시간을 뚜렷하게 구분되는 단위로 나누는 것은 지구의 역학이 불연속적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런 방식이 실용적이기 때문이다.(243 페이지) 층서학(stratigraphy)은 지층의 기원, 구성, 분포를 다루는 학문이다. 지층의 수직면은 시간 차원, 수평면은 공간 차원을 나타낸다. 지질시대 구분은 층서학자들의 소관이다.

 

지질시대로 등록되려면 지구 시스템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절한 종류의 층서학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층서학자들이 연구하는 물질적 기록의 특징은 복잡하고 혼합적이며 통시적이다. 한 사회, 한 가구가 흔적을 남긴다고 해도 다음 세대 샤람들은 같은 곳에 도랑을 치고 터를 닦고 무덤을 파며 건물을 짓고 쓰레기를 버리고 잔해를 남기면서 퇴적물을 변화시킨다.

 

이후에 홍수를 비롯한 자연현상 때문에 흙이 덮이기도 하고 새로운 공사를 위해 퇴적층의 상당 부분이 제거되기도 한다. 지층의 어떤 부분은 지하 묘지, 깊은 우물, 지하터널 등으로 뚫려 있을 수도 있다. 어떤 부분은 경작한 토양, 인공 습지, 매립지, 수천년 동안 여러 겹의 정착지의 흔적이 만들어진 언덕(중동에서 흔히 발견되는 ’텔; tel’이라 부르는 고고학적 지층)으로 덮여 있을 수 있다.(163 페이지)

 

17세기 후반 덴마크의 해부학자 니콜라스 스테노(니콜라우스 스테노; 1638 - 1686)에 의해 층서학이 시작되었다. 층서학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새로운 층은 오래된 층 위에 형성된다. 이를 누중법칙(law of superposition)이라 한다. 또한 퇴적암은 원래 수평으로 형성된다. 그리고 연속적인 층으로 형성된다.

 

스테노는 후원자인 메디치가의 페르디난도 2세의 부탁을 받고 ’글로소페트라(Glossopetrae; 혀 돌; 설석; 舌石)’라는 1,270kg의 화석화된 상어 이빨을 절개하게 되었다. 그것은 마법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진 물질이다. 당시 그 물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 생각되기도 했고 몰타 섬에서 독사에 물리고도 해를 입지 않은 사도 바울의 기적(사도행전 28장 3, 4, 5절)으로 인해 독사 이빨 모양으로 자라게 되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스테노는 글로소페트라와 상어 이빨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둘이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정 층위 안의 물리적 특성(광물 구성, 질감, 색상)과 화석 내용물을 통해 층위를 변별할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지역의 다양한 암석 형성물과도 그 층위의 상관 관계를 규명할 수 있다.

 

스테노 이후 한 세기가 지나 광산 측량사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 1769 ? 1839)에 의해 층서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윌리엄 스미스는 화석 천이(遷移) 법칙을 밝혀냈다. 최근에 생성된 지층일수록 진화된 화석이 나옴을 의미하는 법칙이다. 전 지구적 변화를 인지할 수 있는 지질 기록이 보존된 곳을 표준층서구역(GSSP, Global Boundary Stratotype Section and Point)이라 표시한다.

 

표식의 모양과 형태가 황금색 못을 박은 것과 비슷해 '황금못'(Golden Spike)이라 부른다. 그곳을 조사하면 특정 지질연대의 경계를 가늠할 수 있다. 고고학자 메슈 에지워스 등은 고고학과 지질학은 연결되어 있고 동일한 층서학적 원리를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고고학적 시대 체계는 일반적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된다.

 

플라이스토세와 함께 구석기 시대가 끝나고 홀로세와 함께 중석기와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에디아카라기는 6억3000만~5억4200만 년 전 신원생대 시기다. 생물이 대거 나타난 고생대 캄브리아기 직전에 해당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에디아카라다. 생물체가 대거 출현한 ‘캄브리아 폭발’ 이전에 완벽한 상태의 다세포 생물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에디아카라군이 주목된다.

 

인류세 시작점은 18세기 중반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보기도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개량했다. 그는“산업혁명의 아버지“다. 세계 첫 증기기관차는 1804년 트레비딕의 페니다렌호다. 선로 궤도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1740년 이후 유럽은 소빙하기를 겪었다. 아일랜드에 7주간 서리가 내렸다. 아일랜드 인구의 20퍼센트 이상 굶어죽었다. 추위를 피하려고 목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용량이 급증했다. 가격이 급등하자 사람들은 새로운 연료를 찾아나섰다. 석탄은 지질시대에 식물이 퇴적되어 매몰된 후 열과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광물이다. 고생대 석탄기는 3억 6700만년전 - 2억 8900만년전에 이르는 시기다.

 

수요 급증에 따라 노천 탄광뿐 아니라 땅속 탄광에서도 석탄을 채굴하게 되었다. 광산으로 스며드는 지하수를 퍼올리는 과정에서 개발된 기술이 증기기관이다. 20세기 중반(1950년 이후) 인간활동 및 환경변화의 속도가 극적으로 증가한 것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보며 그것을 거대한 가속으로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지난 50년 동안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 인간이 촉발한 변화의 규모, 공간적 변화, 속도는 인류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으며 아마 지구 역사의 차원에서 보아도 그럴 것이다. 지구 시스템은 이제 기존 자연계에서 나타나던 변이 범위를 넘어섰다는 의미에서 유사체 없는 상태로 작동하고 있다.”(미국 기후학자 윌 스테판)는 말을 새길 필요가 있다.

 

육지 생물권의 3/ 4이 직간접적으로 인간의 토지 사용 때문에 변화했다. 직접적인 인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육지 생물권의 1/ 4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춥고 건조하며 척박한 곳들이다. 인간이 땅을 사용해서 환경에 미치는 결과는 온실가스 배출, 환경오염, 토양침식, 자연 서식지 소실, 생물 멸종, 외래종 도입 등 다양하다.

 

인류세 실무단은 인간 활동이 남긴 층서적 증거를 찾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45년에 시작해 1963년, 1964년에 정점을 찍은 핵무기 실험 과정의 부산물(방사능 낙진 퇴적층), 플라스틱 퇴적층, 화석 연료의 불완전한 연소 때문에 생기는 블랙 카본 등이 유력 증거다. 인간의 시대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고학계 내부에서 먼저 나왔을 법도 하다.

 

불을 이용해서 땅을 정리하는 능력에서부터 다른 생물종을 길들이고 땅을 경작하는 능력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생물도 인간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강력하게 환경을 바꾸지는 못한다. 인류세는 멸종과 관련된다. 지금껏 11번의 멸종이 있었다. 그 가운데 5번은 대멸종이었다.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이상 고생대), 트라이아스기, 백악기(이상 중생대) 등에 있었던 일이다.

 

인류에 의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류세의 시작 시기로 볼 곳들이 많다. 거대동물이 멸종한 플라이스토세(홀로세가 가장 최근을 의미한다면 플라이스토세는 대부분 새로운이란 의미다.) 후기, 농업이 시작되고 퍼져나가면서 특히 쌀 생산으로 인해 대기 중 메탄이 증가한 5000년전, 인위적 토양이 확산된 2000년전, 글로벌 체계가 확립된 약 500년전, 산업혁명이 시작된 약 200년전...

 

굳이 새로운 GSSP를 제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단지 이름을 바꾸어 부르면 된다는 것이다. 고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지구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은 결코 최근의 현상도 아니고 특별한 현상도 아니다. 인간 세계는 언제나 인간 스스로가 만들고 변화시켰다.

 

지구 역사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인간 사회는 자신의 선조들이 이미 변화시켜놓은 환경 속에서 살아갔다. 과거의 인간이 토양에 남긴 흔적은 수백년, 심지어 수백만년이 지나도 남아 종의 구성이나 식물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인간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은 인류의 영향이 미치기 이전의 생태라는 믿음이 현재의 생태 패턴이나 생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179 페이지) 호수에서 추출된 오래된 퇴적물 코어는 장기간의 생태 변화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 기록들은 인류가 생태계에 일으킨 교란이 얼마나 복합적인지를 말해준다.

 

저자는 멸종은 새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종의 99퍼센트는 멸종했다. 현재 척추동물의 멸종률은 기본 멸종률보다 적어도 열 배, 많게는 천 배 정도 높다. 멸종을 확인하는 일은 특정 종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보다 어렵다. 존재 확인은 한 번에도 가능할 수 있지만 멸종 확인은 마지막 개체까지 해야 한다. 물론 멸종을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하지 않고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존재 확인보다 멸종 확인은 어렵다.

 

동질세란 개념도 있다. 지구의 생물종이 섞이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 사회는 자연계를 교란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시스템은 지구 시스템 내에서 이미 행성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 부상하였다.(203 페이지) 인구 증가 속도가 더뎌지고는 있지만 부유한 인구 집단이 더 많은 자원을 요구함에 따라 식량, 물, 에너지 등 자연 자원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사회학자 아일린 크리스트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은 인간 지배의 시대를 인정하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소유권과 파괴를 정당화하게 되고 자연을 더욱 변형시키고자 하는 미래의 거대한 프로젝트에 터를 닦아줄 뿐이라고 주장했다.(213, 214 페이지) 인간은 무엇이든 시도해도 괜찮다, 인간에 의한 지구 변형을 제한하려는 노력은 구시대적이다 등의 말이 있을 수 있다.

 

자연보전주의자들은 인류세 개념에 반대한다. 지구 생태계가 인간에 의해 전적으로 변형되었다고 선언하는 일은 과장이고 자연보전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조장한다는 주장도 있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 전체가 급격한 지구적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222 페이지)

 

저자는 2005년부터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중국이 산업 발전을 위해 대규모로 화석연료를 태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로 미국은 이미 한 세기 이전에, 영국은 미국보다 수십 년전에 현재의 중국과 비슷한 수준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도달해 있었다고 말한다.

 

자본세는 인류세의 대안으로 많이 거론되는 개념이다. 툴루세란 개념도 있다. 인간이 지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단 한 가지만 존재할 수 없다. 기술화석이라는 말이 있다. 강철 대들보, 전기 전선, 플라스틱 등의 인공 물질이 호수나 해양 침전물, 매립지 등 층서 퇴적층에 남아 화석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를 기술화석이라 한다.

 

이미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지구의 다음 빙하기가 10만년 정도 늦춰졌다는 증거가 있다. 지구 기온이 올라가면 식량 체계 파괴, 가뭄 증가, 극심한 폭염, 해수면 상승, 혹독한 폭풍, 각종 사회적 피해가 나타나고 그에 대처하는 사회적 비용도 증가할 것이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공학적 전략들이 필요하다.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고 저장하기, 나무 심기, 토지 경작 줄이기, 토양에 숯 묻기, 해양 비옥화하기, 여타 생물학적 탄소 흡수량 및 저장량 증대시키기 등이다.

 

파울 크뤼천은 성층권에 빛을 반사하는 미세한 황산염 에어로졸 입자를 주입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 방법은 부작용 우려도 크다. 인류세란 단어는 2014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되었다. 브뤼노 라투르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저지른 잘못은 그가 오만하게도 첨단 기술을 사용하여 새로운 존재(괴물)를 창조한 데에 있지 않고 그 피조물을 방치한 데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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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 - 안전거리와 디테일이 행복한 삶의 열쇠다
장샤오헝 지음, 정은지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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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든다. 사적인 일을 묻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자신이 마치 관리자라도 된 듯 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완곡하게 선택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말하기 전에 자신이 하려는 말이 “진실인가?”, “선의에서 나오는 것인가?”, “과연 필요한 일인가?”란 점을 스스로 물어야 하리라. 이에 대해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의 저자는 어떻게 말하는가.

 

그는 분수를 아는 사람은 보통 경청을 통해 좋은 인연을 얻는다고 말한다. 경청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내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고 분명하게, 간단하게 핵심만 짚어 주는 정도로만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판은 어떤가. 그것의 핵심은 소통하고 인도하고 함께 발전하는 데 있다.(29 페이지) 강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도리에 맞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으로 분수를 아는 사람은 상대방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역지사지하며 합리적인 제안을 한다.(30 페이지) 사람 사이에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관계는 디테일에 달려 있다. 한 사람이 미움을 받거나 인기를 얻는 것은 대부분 사소한 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들 때문임을 잊지 말자.

 

저자는 우리는 관용과 방임 사이에서 분명하게 선을 긋고 엄격하지만 아량이 있으며 관대하지만 격식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58 페이지) 매사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저자는 “일리가 있으면 몰아붙여도 될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자신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길을 터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70 페이지)

 

원칙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옳고 그름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일에 대해서는 웃어넘기는 것이 필요하다. 사소한 원한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아주려 하면 그저 상대방과 같은 수준이 될 뿐이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자랑과 잘난 척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라.

 

분수를 아는 사람은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는 비록 자신의 성과와 명성이 뛰어나도 일부러 어려운 점을 찾아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라. 그러면 상대는 지금 힘든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을 것이다. 배움이 많지 않은 사람 앞에서 지식을 뽐낸다고 한들 재능이 보이기보다 천박하고 무지해 보일 것이다.

 

상대방이 금기시하는 것을 기억하라. 관계 맺기는 낚시하듯 느긋하게 하라.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 동료의 요구가 정말 기이하거나 너무 심하다면 상대방에게 문제를 완곡하게 지적해서 퇴로를 열어주는 것이 좋다. 동료를 자주 도와주지 말라. 작은 이익을 탐하는 것은 앞길을 막는 행동이다. 리더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독립적 개체로 존중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말을 기억하자. 포기해야 할 때는 과감히 하자. 많이 쏟아부을수록 포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방향이 잘못된 것을 알고도 그 자리를 악착 같이 사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떤 관계든 따지려 들지 말라. 끊임없이 계산하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스스로 삼가는 것은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스피노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최대의 교만이나 최대의 낙담은 스스로에 대한 최대의 무지다.”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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