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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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형태는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다. LOVE처럼 쉽게 정의내리기 힘든 감정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항상 질투를 동반하고, 증오와 배신으로부터 파생된다. 그렇다면, 어렵고도 복잡하기 때문에 쉽게 정의내리기 힘든 감정 ‘love’를 토니 모리슨이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할까. 그녀 역시 사랑의 해석이 결코 숭고하다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모순 되는 절박한 감정들을 담고 있었다.

「LOVE」는 두 여자의 쓸쓸하고도, 복잡한 인생을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어렸을 적 절친한 친구 ‘히드’와 ‘크리스틴’ 너무도 서로를 사랑했던 두 친구는 원하지 않는 상황에 지배되어 서로를 증오하게끔 변모하게 된다. 크리스틴의 할아버지 ‘빌 코지’의 재혼 상대로 11살의 어린 ‘히드’가 시집와서 가족이 되면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오묘한 관계가 이어지게 된다. 분노의 폭발이라고 까진 할 수 없겠지만, 아슬아슬하게 빙판 위를 걷는 듯한 불안정한 시선이 느껴진다.

일기장 같이 예쁜 빨간 양장의 책 속에서 두 여자를 둘러싼 삶이 비밀 이야기처럼 조심스럽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애환들과 함께 성공한 부르주아 흑인 ‘코지’의 흥망성쇠. 한 편 한 편 모든 이야기 속에 숨겨진 코지 일가의 복잡하고 겹겹이 쌓인 서사의 흐름은 굉장히 숨죽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난해한 구도는 아니지만, 처음부터 중반쯤까지 밝혀지지 않는 과거의 비밀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약간의 피곤함이 느껴질 수도 있는 글이다.

왜 히드와 크리스틴은 서로를 증오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누구의 배신도 아닌, 자신들 스스로가 만든 방어심리와 사랑의 표현이 어긋나서 발생한 일종의 자격지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친구를 할아버지에게 빼앗기고 말았다는 강박관념이 크리스틴의 작은 머릿속을 지배하는 사이, 히드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두려움과 늙었지만 멋있는 남편에 대한 신비함이 자리 잡게 된다. 어린 꼬마 둘이서 감당하기에 분명히 벅찼을 그 감정의 소용돌이들. 그녀들을 중심으로 코지의 가족들과 이웃들의 얘기가 덧입혀져서 한편의 슬픈 드라마가 완성 된다.

지나치게 미국적이면서도 전혀 미국적이지 않은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이다. 색깔로 친다면 진한 초콜릿 색깔 하늘과 먹색 구름. 그리고 히드와 크리스틴의 어린 시절 투명한 파스텔 톤 해변 가의 조화. 조금은 어둡게 느껴지지만, 그 안에서 슬픔과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멋진 소설이다. ‘토니 모리슨’의 화려하면서도 서정적인 서사의 흐름에 푹 빠져들었던 ‘러브’를 보며 다시 사랑하고 싶다.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누가 되었든지 간에 사랑이란 그 자체로 충만한 기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상깊은구절]
사람들은 내가 언제나 사랑에 대해 글을 쓴다고 말한다. 항상, 늘 사랑 타령이라고.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꼭 그런 건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언제나 배신에 대해서 쓰고 있다. 사랑은 날씨다. 배신은 날씨를 찢어놓고 폭로하는 번갯불이다. - 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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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
존 루카치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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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내외를 암살하면서 협상과 동맹의 효시가 발생하면서 대규모의 세계전이 발발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1870년대 이후 줄곧 곪아있던 제국주의의 폭발이라는 짙은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미국까지 합세하여 제국주의열강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식민지역까지 합세하여 전쟁은 겉잡을 수 없는 세계대전의 총력전이 되었다.

그렇다면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입과 함께 발생한 제 2차 세계대전은 어떠한가? 베르사유체제의 은밀한 모순에 따른 제 2차 세계대전 역시 제국주의 열강들의 세계를 분할하고자 하는 과욕이 부른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잔인했던 피의 축제이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고도로 발달 된 첨단 무기와 전투기까지 합세하여 규모는 1차 대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해졌다.

근대의 마지막 살풍경한 모습이 진행되었던 1939-1945년을 역사학자들이 회고해 본다면,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두 인물에 포커스가 집중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전기만 해도 수 백 권에 이르고, 역사의 재조명 아래 탄생한 오류의 역사적 진실까지 루머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좀 더 나아가 처칠과 루스벨트, 무솔리니로 이어지는 복잡한 이해갈등 관계는 국제질서의 커다란 변수로 작용했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그리고 통합된 또 하나의 제국주의라는 시대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역사의 흔적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본서는 두 번에 걸쳐 세계대전을 치른 20세기의 전환기에서 핵심이 된 인물 ‘히틀러’와 ‘스탈린’의 관계를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른 관점으로 해석되고 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전, 히틀러는 독일의 승리를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굳건한 상태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불리한 패로 작용하며, 독일의 패배를 뻔히 눈앞에 두고도 끝까지 소련에 굴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그 보다 먼저,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는 등 두 사람의 단결된 세계재패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히틀러가 극단적인 표현으로 스탈린을 배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 아리송한 이유는 히틀러의 지나친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나 반공주의, 유대인 공포증, 러시아의 불신, 성격적인 결함 등으로 함축된 일관보도만으로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 ‘존 루카스’는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히틀러의 입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국이라는 걸림돌에 대한 히틀러의 마지막 히든카드로써 소련을 이용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끝까지 항복하지 않는 영국과의 정면승부를 위하여, 소련을 먼저 정복하면서 자신의 위대함을 입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코 항복하지 않는 영국이 믿는 것은 오직 미국과 소련뿐이라는 굳건한 믿음에서 출발한 독일의 소련 침공. 어쩌면 역사상 가장 아이러니 하게 현재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원인은, 히틀러라는 천제적인 지도력을 지닌 인물의 기묘한 심리 상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직 그의 저서 ‘나의 투쟁’을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완벽한 악의 카리스마로 세계를 손안에 넣고 주무르던 히틀러의 세기적인 지도자의 모습은 얼추 그려볼 수 있을 듯 하다.

또한 독재자로써의 면모와 정치가로써의 강한 인상까지 남긴 소련의 스탈린 역시 본서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진다.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묘하게 잘 맞는 궁합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낀 존경심의 변형된 모습이라던가, 꼬여가는 운명의 실타래에서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 내면의 어두운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독일이 소련이 침범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리고 침범 후에도)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을 피하려고 노력했던 스탈린의 믿음은 매우 의외였다. 대단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스탈린이 히틀러와의 정면승부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독일의 승리를 간단히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독일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어찌 되었든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1941년 6월의 결전은 끝내 소련의 승리로 일단락되었고, 1945년 8월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도 막을 내렸다. 러시아를 패배시키면 영국으로부터 평화조약을 강요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전 유럽을 독일의 영역으로 통합시키려던 야망의 남자 히틀러와 그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를 유럽에 심으려고 노력했던 무서운 독재자 스탈린…. 두 남자의 숙명적인 대결과 끝내 이루지 못한 허망한 야심의 날들은 비참한 최후와 함께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신은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았지만, 역사 속에 자리한 두 사람의 위치는 그 어떤 인물도 대신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매력과 증오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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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박목월.박동규 지음 / 대산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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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인간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품을 때마다 나도 멋모르고 주워 읽은 소설이나 시 속에서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하던 그 감동의 원천이 영원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결국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문자 속에서 인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240쪽

강물 줄기가 스스로
비롯된 근원을 모르듯
철없는 열매가
그 줄기의 뿌리를
깨닫지 못하듯
당신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당신 안에 자랍니다.
방 안에서 이슬 맺히는 꽃봉오리 방 안에서.

- <어머니의 기도 8> 박목월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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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박목월.박동규 지음 / 대산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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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모든 시를 외우게 하셨다.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 회상하면 그 때의 혹독한 훈련이 얼마나 귀중한 경험이었는지 모른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까지 내가 ‘박목월’님의 「나그네」를 외우고 있으니 말이다. 도시에서 자고 나라 나에게 고향이란 아련한 존재는 없다. 문득 이 시를 조용히 읊어보면 고향이라는 친근한 이미지가 촘촘하게 각인된다. 국어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나그네’가 깊은 추억 한편에 자리해 있었다. 

  문학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한국 시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음에 나에게 박목월 시인은 그저 「나그네」와 함께, 국어시간에 달달 외워야 했던 교과서의 주인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유명한 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침범하면서, 그 분의 진정한 문학가로서의 묘미를 깨우쳤다. 그리고 박목월, 박동규 두 부자의 끈끈한 결속과 참다운 믿음을 깨닫게 되면서 부모와 자식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저 감사함에 목이 메어오는, 언제나 그리움과 죄송함 사이에서 코끝이 찡해지는 부모와 자식. 세상이 끝날 때까지 되 물림 되는 그 인연의 고리가 얼마나 귀중한 인연인지, 단단한 바탕의 사랑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박목월 시인과 그 분의 장남 박동규님의 공동 저작으로, 평생을 문단에 몸을 담은 참다운 필력으로 가족사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시인의 문장은 가슴이 배어 나갈 듯 사무쳐오는 성찰의 미학을 깨우친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모두들 어렵던 50-60년대, 그 시절 고단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의 교육과 부인의 건강을 걱정하며, 가족의 안위를 염려하는 가장의 어깨는 바위를 올려놓은 듯 무거웠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어디 있을까. 대가족을 이끌고도 시인은 모든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다감하고, 그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들 또한 아버지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올곧게 자라나긴 마찬가지다.    

  한 편 한 편, 날짜가 적힌 그 날의 기록을 읽어나가며, 마치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 기분이 묘했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알고, 감사하고자 노력했던 한 가족의 단란함이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버지와 아들의 보이지 않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대화들…. 애써 화려하게 채색하지 않고도 참다운 문장의 힘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분들의 삶의 단편을 그려 넣는다면 아마도 뽀얀 안개 빛으로 물든 낡은 노트를 산처럼 쌓아 올릴 수도 있으리라. 쌓이고 쌓인 겹겹의 세월이 지난날의 나의 모습까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나의 아버지는 박목월 시인처럼 다정다감하고 친근한 분이셨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내가 갖고 싶다는 물건, 내가 배우고 싶다는 것은 모두 해주고 싶어 하셨다. 지금도 그 때 필름처럼 찍어둔 기억의 현상으로 가끔 아버지를 불러본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오지만, 박동규님의 추억 속에 자리한 아버지의 기억처럼 영원히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란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설명하려고 애써도 부족하고, 아무리 표현하려 애써도 부족한, 그저 운명보다 더욱 진하게 맺어진 일평생의 동반자이자 영원한 인생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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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빈자리 (특별보급판) - 지난 5백 년간 지구에서 사라진 동물들
팀 플래너리 지음, 이한음 옮김, 피터 샤우텐 그림 / 지호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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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뉴스에서, 어느 밀렵꾼이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을 몰래 잡아다가, 배를 가른 후 쓸개에다가 고무호스를 연결해 놓은 모습을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살아있는 곰의 쓸개에 고무호스를 연결해서 쓸개즙을 채취했던 그 끔찍한 영상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도 잊혀지지 않으리라…. 그 때의 충격과 더불어 멸종 위기에 놓은 야생동물들을 더욱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몇 종씩이나 되는 야생동물들이 사라져 가는데, 그 동물의 숫자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착하고 귀여운 반달가슴곰도 이런 탐욕스러운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언젠가는 멸종될 것이다.   

  이 책은 실제로 찍은 사진보다 더욱 생생한 모습의 동물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지난 500년간 지구에서 멸종 된 생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자연의 빈자리」를 통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과거의 친구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평소에도 동물에 관심이 많았고,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동물관련 다큐멘터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인데, 그 채널에서조차 단 한번도 다루어지지 않았던 (내가 못 본 것일지도 모른다.) 멸종된 생물의 모습들을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라 감회가 남다르다. 

  우선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에세이 형식이나 논문 형식으로 길게 써내려간 동물기가 아닌, 생물의 간단한 소개와 커다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물도감처럼 소개란은 매우 짤막하다. 멸종된 정확한 날짜와 멸종된 이유, 생물의 분포지역과 간단한 습성 등. 한 페이지가 채 넘지 않는 간단한 소개 글이다.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과거의 생물들에 대한 정보가 미흡하기에 아쉬웠지만, 학회에서조차 남아있는 자료가 워낙 없으니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반해 야생동물 전문화가 ‘피터 샤우텐’의 그림들은 실제로 내 눈앞에 그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이 들만큼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운 그림들이었다.

  예상보다 조류가 압도적으로 많이 소개되어 있다. 솔직히 조류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굉장히 예쁘고 신기하게 생긴 새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에 매우 안타까웠다. 특히 ‘도도’라고 하는, 체중이 25kg이 넘는 거대한 비둘기과의 새를 다시 한번만 더 볼 수 있다면, 공룡시대를 다시 보는 듯 신비로움에 경악할 것 같았다. 통통한 허리가 얼마나 예쁠지, 커다란 부리가 얼마나 튼튼할지, 또 울음소리는 어떨지, 모든 것들이 궁금하지만,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새 ‘도도’를 이제 우리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생물 대다수가 내가 좋아하는 포유류가 아닌, 대부분이 조류여서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그리고 멸종된 생물들이 전 세계의 다양한 지역의 생물들이 아닌, 일부 특정 지역에 한해 소개되어 있다는 점 또한 아쉽다. 하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 종들의 슬픈 최후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기에 아쉬움이 드는 반면, 너무도 안타까운 감정으로 고개가 숙여짐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동물들의 그림을 보며 생태적인 습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의 모습들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연이 파괴된 이유는 오직 단 하나, 바로 ‘인간’때문이다. 새롭게 찾은 대륙에 정착해서 개발을 일구고, 살림을 파괴한다. 사냥과 채집이라는 이유로 그곳에서 살아가던 동물들을 죽였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동물들을 잡아먹어야 했던 사람들도 있지만,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수천만 마리나 되는 새들과 여우를 사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해서, 그 후에는 재미나 돈을 위해서 동물을 죽였고, 결국은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자연이 주는 경고는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척 위험한 신호로 다가오고 있다. 지구에서 사라진 수많은 생물들처럼 결국에는 인간들 역시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최후의 모습이 결코 아름다울 것 같지는 않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등장하는 황폐한 지구. 동물들은 물론이고,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적막한 기계의 도시. 그 텅 빈 자연의 한가운데서 우두커니 서 있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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