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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
존 루카치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1941년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내외를 암살하면서 협상과 동맹의 효시가 발생하면서 대규모의 세계전이 발발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1870년대 이후 줄곧 곪아있던 제국주의의 폭발이라는 짙은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 미국까지 합세하여 제국주의열강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식민지역까지 합세하여 전쟁은 겉잡을 수 없는 세계대전의 총력전이 되었다.
그렇다면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입과 함께 발생한 제 2차 세계대전은 어떠한가? 베르사유체제의 은밀한 모순에 따른 제 2차 세계대전 역시 제국주의 열강들의 세계를 분할하고자 하는 과욕이 부른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잔인했던 피의 축제이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고도로 발달 된 첨단 무기와 전투기까지 합세하여 규모는 1차 대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해졌다.
근대의 마지막 살풍경한 모습이 진행되었던 1939-1945년을 역사학자들이 회고해 본다면,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두 인물에 포커스가 집중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전기만 해도 수 백 권에 이르고, 역사의 재조명 아래 탄생한 오류의 역사적 진실까지 루머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좀 더 나아가 처칠과 루스벨트, 무솔리니로 이어지는 복잡한 이해갈등 관계는 국제질서의 커다란 변수로 작용했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그리고 통합된 또 하나의 제국주의라는 시대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간 역사의 흔적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본서는 두 번에 걸쳐 세계대전을 치른 20세기의 전환기에서 핵심이 된 인물 ‘히틀러’와 ‘스탈린’의 관계를 지금까지와는 다소 다른 관점으로 해석되고 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기 전, 히틀러는 독일의 승리를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굳건한 상태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불리한 패로 작용하며, 독일의 패배를 뻔히 눈앞에 두고도 끝까지 소련에 굴복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아니, 그 보다 먼저, 독소 불가침조약을 맺는 등 두 사람의 단결된 세계재패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히틀러가 극단적인 표현으로 스탈린을 배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 아리송한 이유는 히틀러의 지나친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나 반공주의, 유대인 공포증, 러시아의 불신, 성격적인 결함 등으로 함축된 일관보도만으로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 ‘존 루카스’는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히틀러의 입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국이라는 걸림돌에 대한 히틀러의 마지막 히든카드로써 소련을 이용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끝까지 항복하지 않는 영국과의 정면승부를 위하여, 소련을 먼저 정복하면서 자신의 위대함을 입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코 항복하지 않는 영국이 믿는 것은 오직 미국과 소련뿐이라는 굳건한 믿음에서 출발한 독일의 소련 침공. 어쩌면 역사상 가장 아이러니 하게 현재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원인은, 히틀러라는 천제적인 지도력을 지닌 인물의 기묘한 심리 상태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직 그의 저서 ‘나의 투쟁’을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완벽한 악의 카리스마로 세계를 손안에 넣고 주무르던 히틀러의 세기적인 지도자의 모습은 얼추 그려볼 수 있을 듯 하다.
또한 독재자로써의 면모와 정치가로써의 강한 인상까지 남긴 소련의 스탈린 역시 본서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진다.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묘하게 잘 맞는 궁합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낀 존경심의 변형된 모습이라던가, 꼬여가는 운명의 실타래에서 각기 다르게 반응하는 내면의 어두운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독일이 소련이 침범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리고 침범 후에도)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을 피하려고 노력했던 스탈린의 믿음은 매우 의외였다. 대단히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던 스탈린이 히틀러와의 정면승부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독일의 승리를 간단히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독일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어찌 되었든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1941년 6월의 결전은 끝내 소련의 승리로 일단락되었고, 1945년 8월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도 막을 내렸다. 러시아를 패배시키면 영국으로부터 평화조약을 강요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전 유럽을 독일의 영역으로 통합시키려던 야망의 남자 히틀러와 그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를 유럽에 심으려고 노력했던 무서운 독재자 스탈린…. 두 남자의 숙명적인 대결과 끝내 이루지 못한 허망한 야심의 날들은 비참한 최후와 함께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신은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았지만, 역사 속에 자리한 두 사람의 위치는 그 어떤 인물도 대신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매력과 증오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