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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철학한다
이광래 지음 / 미술문화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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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예술, 과학은 구별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들은 마치 서로 다른 본질을 통해 연장되면서 끊임없이 서로 따라다니는 동일한 그림자를 나눠 갖고 있는 듯하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 기타리, 들뢰즈」
  실제로 철학만 알고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사람은 철학마저도 모르는 사람이다. 이것은 미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술만 알고 그 어떤 것도 모르는 사람은 미술마저도 모르는 사람이다. - 8P

  본서는 이렇듯 강렬한 서문으로 미술에 대한 철학 탐색을 시작하고 있다. 한 가지 학문의 사고방식으로 획일화 된 틀에 갇혀 있을지라도 모든 학문은 서로 소통하듯 대화를 시도한다. 과학과 수학, 언어와 문화, 문학과 사회, 그리고 미술과 철학……. 각각을 담는 형식의 틀만 다를 뿐, 동일한 그림자를 나눠 갖고 있듯이 서로서로 소통하듯 닮아있다. 미술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를 공부해야 하고, 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고, 주제가 가진 의미나 미술가의 사상, 나아가 회의적인 미술에 대한 비평과 탐색 역시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가도 아닌데 미술을 왜 해석해야 하는가? 그것은 관람자의 자유이며, 불필요한 해석과 철학적인 탐구는 오히려 관람자의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가 아닌가? 혹자가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반문의 여지가 없겠지만, 미술을 천천히 철학해 본다면 어려움과 동시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미술만 알기에, 결국은 미술마저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문학의 종말과 더불어 불거진 미술의 종말론.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나에게 먼 미래의 일인 것만 같아서 부인하고 싶다. 오히려 극 사실주의에서 추상적으로 변모하며 파괴되어 가는 미술의 형식을 보면서 과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떠한 미술이 쏟아져 나올지 몹시 궁금하기만 하다. 인류의 유일한 시각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미술의 종말론이 자못 씁쓸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희망으로 보이기도 하다. 

  예술을 결정짓는 요소, 즉 시각으로 전해오는 아름다운 이미지의 근원이 될, 미(美)라는 형식이 언제부터인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20세기의 폭발적으로 변화하여 흘러가듯 표류하는 현대 미술을 과연 철학으로 해석해 본다면 아름다움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내기조차 힘들 것 같다. 피카소의 발작적인, 그리고 강압적인 추상화들의 난해함. 더 나아가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폴록의 기하학 무늬를 보면서, 그 그림들을 과연 어떻게 읽어내야 하며, 어떻게 받아들 것인가, 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의 해답조차 찾기 힘들었다.

  앤디 워홀의 팝 아트를 즐길 수만 있다면 예술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했던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과분한 소유욕을 불러  일으키던 유명 화가들의 전시물에서부터, 지나친 자유분방함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기하학, 탈자연화 한 미술들까지 욕망의 분출구로서 하나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언제부터 미술은 사상 자체를 파괴하는 형식을 안고 관람객을 찾아와 미친 듯이 표류하기 시작했을까. 관음증에 걸린 사람마냥 자신도 타자를 훔쳐보며 즐기던 시대의 합법적인 욕망 분출구. 그것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예술작품의 생명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그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그 시대의 문명의 상태이다. 예술에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예술은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존재한다. 모든 예술작품은 신화가 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왕도 - 앙드레 말로」

  기나긴 예술의 역사만 보더라도 작품에게 시간의 흐름이란 중요치 않다. 다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고유 가치의 상승만이 존재할 뿐이다. 마치 일정하게 분비되는 불순물들을 한데 섞어서 정화 시키는 작업을 하듯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 그토록 치열한 미술에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들의 욕망이 일정한 속도로 표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술가뿐만이 아니라 관람자 역시 마찬가지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어지는 소시민적 이데올로기가 마치 커다란 재산인양 받아들여지면서 미니멀리즘에 열광한다.  재현하지 못해 안달하는 미술가들이나, 전시품을 관람하지 못해 안달하는 관객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산실이 아닐까 싶다.
 
  모든 종말이 그렇듯 미술의 종말도 그것을 철학적(이성적) 반성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대상에서 비대상으로, 재현에서 표현으로처럼 미술은 또다시 철학적 반성과 더불어 해탈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공간의 통섭이든 포월이든 미술은 또 다른 욕망의 표류를 시작하려 한다. 인간의 조건인 욕망의 표류에는 종말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140P

   어지럽다. 현기증이 난다. 미술가들의 나르시시즘적 리비도, 누드를 탐하는 억압과 해방, 현대미술의 시뮬라르크, 신노마디즘……. 철학자에게는 길가의 풀 한포기 조차 지나친 상념을 줄 텐데, 하물며 철학의 주제를 미술이라 정의 내린다면 더욱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사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들이 한꺼번에 밀려들기 시작한다. 간혹 이렇게 무언가를 열망하게 만드는 책을 만날 때는 골치가 아프다. 사물의 문제는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보는 자의 눈에 있다. 내 눈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한, 그리고 미술사의 종말이 없는 한, 더욱 진지하게 미술의 철학적 문제들을 탐색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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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6
알레산드라 프레골렌트 지음, 임동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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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술 고유의 철학을 탐색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루브르에 가면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희열 비슷한 감정의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다름 아닌 인류 역사의 집약체가 아닌가. 건축의 크기만큼이나 장엄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이 박물관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는 사실 자체가 만용으로 느껴진다. 비록 루브르가 다른 나라의 보물들을 약탈하기도 했고, 강압적으로 매입했다고 할지라도, 그로인해 작품 자체에 대한 가치가 하락된다거나 변질되는 것이 아니니 역사적인 관점은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루브르를 한번 느껴보도록 하자.

  로마에서 시작된 르네상스가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갈 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높은 콧대를 지닌 이탈리아인들의 예술품들을 보며 프랑스는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서로 서로 르네상스 문화 부흥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지만, 은근한 로마의 위압감에 프랑스 국왕은 얼마나 위축되었을까? 여하튼 나폴레옹의 광적인 예술품 수집에 힘입어 루브르는 점점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며 어느 덧 박물관의 수준이 이르게 되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현기증이 날 정도로 뛰어난 작품들을 대거 소유하게 된 「루브르 박물관」.
 
  궁전이 박물관으로 개축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면서 서서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위엄이 드러나게 되는데, 한 마디로 ‘오직 예술만을 위한 만인의’ 공간이 주는 무게감은 일반인들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의 한계를 압도하고 있다. 변화를 시작하는 다양한 화풍의 변화 속에서도 일률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건함과 특유의 고전주의 우아함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혼이 그 공간 속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이 책 한권을 통해서 과연 루브르를 몇 %나 이해할 수 있을까? 원본을 최소한도로 축소시켜 종이에 담은 명화들을 보면서 물론 뼈에 사무치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어디까지나 이 책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나마 일반인들에게 친숙하지만 낯선 몇몇 작품들을 소개 하고 있을 뿐이다. 안내 가이드로 보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를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이 멍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황홀경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혼이 쏘옥 빠져 나가는 듯한 이 무아의 상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그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 속에 나를 맡기게 되는 일이다. 루브르의 그림들을 보면서 이와 비슷한 감정의 연장선이었던 것 같다.   

  오늘도 모나리자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그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겠지. 카라바조의 그림을 실제로 본다면 난 그대로 굳어 버리지 않을까. 루벤스의 그림, 그 다채로운 색상과 거친 캔버스의 질감. 누군가가 그린 누군가의 초상화 속의 섬세한 손짓들……. 만약 이런 생각이 자꾸만 들고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싶어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면 나도 언젠가 파리 행 비행기를 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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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안의 알약
슈테피 폰 볼프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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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낄낄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변에 사람이 많았으므로 혼자서 조심스럽게 웃었지만, 간혹 웃음을 참기 힘들어 소리 내어 웃을 때도 있었다. ‘릴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엽기적인 독일 아가씨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찌나 감칠맛 나게 코믹하던지……. ‘웃찾사’ 저리 가라 할 만큼 우습고 재밌는 대사들과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에 부합되게 웃음 꽃 선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릴리안의 알약」의 배경은 페스트가 전 유럽을 휩쓸던 16세기 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르네상스가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었고, 독일에서도 비슷한 시대적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자들의 지위가 낮았던 중세시대, 여성들은 마초의 남자들에게 휘둘리며 원하지 않는 성행위와 더불어 임신까지 해야만 했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여자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피임약이 발명되기 전, 여성들은 과연 어떻게 만일의 사태에 대처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확답은 물론 기대할 수 없었기에, 이 소설이 중세의 여성들에 대한 재기발랄한 재해석을 하게 되었던 듯하다.

16세기 독일. 여느 유럽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주의 초야권이나,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가한 횡포들. 교수형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지켜봐야만 했던 시민들. 페스트가 창궐하여 유럽 전 지역을 휩쓸어 죽어가는 시체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시대적 상황이지만,「릴리안의 알약」을 읽어본다면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의 걱정을 지우고 한층 가볍게 당시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 ‘릴리안’과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한 마디로 ‘재밌고도 나사가 여럿 빠진 듯 이상한’ 사람들과 함께 도피 행각에 빠져들어 본다면.

주인공 ‘릴리안’은 18살의 호기심 왕성한, 그리고 다소 엽기적인 발상의 소유자다. 우연히 마녀의 마법 레시피로 피임약을 발견하게 되었고, 동물 실험에 이어 인체 실험까지 성공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릴리안의 알약’은 빠른 속도로 여성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녀로 오인 받은 릴리안과 체칠리에는 묘한 동행인들과 함께 도피 행각을 벌이는데, 다른 지방을 옮겨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또한 하나 같이 재미있으면서도 괴상한 캐릭터 투성이다. 하다못해 릴리안의 애완동물들의 이름 또한 어찌나 재밌는지. 피임약의 키워드 ‘팜파탈’과 무지하게 말을 안 듣는 ‘소시지’!

역사물의 일명, ‘묻지 마. 패러디’. 출처도 불분명하고 사건의 정확성이나 인물의 연대기 또한 부정확할 지라도 친숙한 역사속의 인물들이 대거 출연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재미를 주기엔 충분하다. 의적 ‘로빈 훗’을 비롯하여,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소심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그리고 지나치게 유명한 화가들 ‘미켈란젤로’와 ‘보티첼리’까지! ‘로빈 훗’에서부터 시작해 돌고 돌아 어느덧 르네상스 3대 화가 중에 2명이나 등장하기에 이른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스토리에 빠져들다 보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에서 한참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긴 하지만, 귀여운 릴리안 때문에 또다시 웃어버리고 만다.

아쉬운 점은 앞서 말했다 시피, 후반으로 갈수록 이 책의 핵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초반, 임신 문제로 인해 난황을 겪는 여성들의 문제를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루었더라면 아무리 코미디물이라도 당시 사회를 예리하게 비꼬는 풍자 소설처럼 조금 더 진지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다소 불필요하게 등장하는 역사 속의 인물들은 패러디의 특성상 출연을 반갑게 맞아줄 수 있지만, 굳이 첨가하지 않아도 무방한 부분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지금이야 워낙 피임 방법이나 약 등이 대중화 되었으니 실수하는 경우가 적지만, 피임약이 없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기는 족족 낳아야 하고, 그만큼 태아의 사망률도 높았다고 한다. 지금 시대는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 라는 슬로건 아닌 슬로건을 내세우고 자식을 천금마냥 아끼며 보살피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한다지만, 중세의 그녀들처럼 마치 방목하듯 여럿을 낳아서 키울 수 있었던 시절이 어쩌면 지금보다는 웃을 일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당시를 회상하는 듯한 기발한 상상력과 재미있는 캐릭터들의 결합 덕택에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었던 즐거운 릴리안과의 데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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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1 - 왕의 용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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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인식 속에 박혀있는 ‘용’의 이미지와 너무나 상반되는 용을 만났다. 비단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용’에 대한 이미지는 기껏해야 저주를 내리는 악의 화신이나, 신성시하면서 존경해야 할 수호신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이미지가 존재할 것이다. 생긴 것도 어찌나 징그럽고 무섭게 생겼는지……. 세상에서 가장 큰 뱀이 막 허물을 벗은 모습으로 징그러운 비늘이 몸 전체를 뒤덮고서 불을 내뿜으며 하늘로 승천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 속에 자리한 미개한 토템문화로 등장하던 ‘용’을 화끈하게 재해석한 작품이 등장했다. 이름 하여 ‘테메레르’!   

  용의 이름이 참 예쁘다. ‘테메레르’. 테메레르라는 이름을 가진 수컷용은 지혜롭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인정이 많은 따뜻한 용이다.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며, 옳고 그름을 사고하여 판단하고, 알에서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언어를 습득했다. 배움에 대한 욕구와 호기심이 왕성해서 책을 매우 좋아하며 자신의 조종사인 로렌스에게 신뢰와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가르쳐준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미 넘치는 이웃집 친구 같은 테메레르.

  상상조차 할 수 있었겠는가? 마치 다정한 이웃 같은, 친절한 꽃미소를 달고 웃는 용의 이미지를……. 그러나 판타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르이므로, 판타지를 위한 판타지, 오직 판타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획력을 체험할 수 있다. 「테메레르」의 매력은 용을 신격과 하는 것이 아닌, 친근한 이미지로 변신시켜 준 것 뿐만이 아니라, 나폴레옹 시대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리얼한 과거를 완벽하게 재생시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발생했던 트라팔가르 전투와 도버 전투까지.

  만약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용을 전투에 투입시켜 프랑스와 영국이 치열한 해전을 치렀다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용이 사람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여 전투를 치르고, 최고의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일심동체로 움직인다는 설정이 매우 신선했다. 치열한 전쟁 소설은 아니지만 우선은 전쟁을 소재로 잡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실제상황이라는 리얼함이 부각 되는 듯하다.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선도 그 정도면 양호하고, 중국과 일본의 혈통 좋은 용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비해, 조선은 몇 번 나오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사실 피터 잭슨이 차기작으로 영화화 한다는 문구에 마음이 쏠렸지만 ‘용’이 나온다고 하기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용’하면 우선 유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 기대이상으로 재미있어서 푹 빠져들며 읽었다. 로렌스와 테메레르라는 두 파트너의 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초반부에서 용의 알이 부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뒷내용이 몹시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용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고 새삼 용을 처음으로 집중탐구해보고 싶은 욕구가 든다. 정말 신화일까, 사실일까…. 사실이 아니래도 누구에게나 상상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기에 용의 존재여부는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치부하고 싶다.

  「반지의 제왕」도 북유럽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시킨 만큼, 「테메레르」역시 역사적인 사건과 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용’에 관한 전설을 보다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다듬었다. 빠른 전개와 인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언어나 행동들이 여느 문학작품 못지않게 사실적으로 다가왔기에, 그 스토리가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고 오히려 설득력 있게 여겨진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에 열광하던 판타지 마니아들이 숨 좀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이러한 대작이 쏟아져 나오다니! 이젠 타는 듯한 여름 밤 열기를 시원하게 식혀줄 ‘테메레르와’의 오붓한 데이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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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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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일본 현대 소설에 열광 할 무렵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소재의 참신함이나 독특한 설정 덕택에 한껏 매료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부터 지금까지 출간되고 있는 책들을 보면 비슷하게 결합된 소재들이 결국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힘들다. 밝으면서 유쾌하고 그러면서 지나치게 가볍고 쉽기만 한 문장들. 쉬운 문장들을 한번 읽어나가기는 좋으나 읽고 나면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허무한 줄거리가 대부분이다.

  마치 만화책을 읽듯이, 읽는 순간만큼은 대단히 즐겁고 푹 빠져들어 읽게 되지만, 읽고 난 후에 이어지는 감동의 깊이는 확연히 줄어들거나 아예 감동이 없는 경우도 많다. 순간의 즐거움을 위주로 한 책들을 굳이 헤아려 본다면 전 세계 모든 출판사에서 통용되고 있겠지만, 유독 일본 현대 소설들은 그런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개연성 없는 줄거리도 비슷하고 주인공도 비슷하고, 문체라든가 발걸음의 템포가 어찌나 닮아있는지…. 그럼에도 가끔 그런 소설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미우라 시온’의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 집」은 고등학교 동창생인 두 남자의 이야기다. 마호로시에서 심부름센터도 아닌, 심부름 집을 운영하는 주인공 ‘다다’와 ‘교텐’은 전혀 친하지 않은 동창생이지만 우연히 만나 함께 심부름 집을 이끌어가게 된다. 사려 깊고 꼼꼼한 성격의 ‘다다’와 어쩐지 4차원 세계를 노니는 듯한 독특한 정신세계의 소유자 ‘교텐’…. 이 두 남자로 인해 심부름 집에 부탁을 하러 왔던 많은 사람들이 작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작고 사소하지만 언제나 재생되는 행복의 방문.

  개인적으로 ‘교텐’이라는 캐릭터가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과묵하고 엉뚱하고. 매사에 의욕적이지 못하고 대충대충 이런 식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따뜻한 본심. 읽다보면 교텐의 성격이 요약된 문장이 다다의 독백을 통해서 등장한다. ‘이런 녀석이었구나. 제멋대로 말하고, 남이고 자신이고 아무래도 좋다는 듯 행동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슴속 깊이 감춰 두고 있었어. -302p’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는 사실이 중요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 (아니, 현실에 정말 이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피곤하려나?)

  단순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하는 다다네 심부름 집이지만, 그 속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무뚝뚝하지만 의리 있는 두 남자 주인공 덕택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지기도 하고……. 둘 다 이혼남에 애가 있었다는 공통적인 사실 또한 두 사람을 끈으로 묶어 둔 것 같지만, 여자와 한 번도 잠을 잔적이 없다는 교텐의 말에 ‘혹시 게이 아냐?’ 라는 의심을 하던 다다의 모습에 실웃음도 나왔다. 과거의 아픔을 잊지 못해 계속 기억하고 현재까지도 그 아픔이 이어지고 있는 ‘다다’. 그리고 다다와는 반대로 과거에는 과거일 뿐, 자신이 살아온 흔적에 그 어떤 미련도 후회도 없는 ‘교텐’. 이렇게 다른 성격의 두 남자에게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에 대한 자극을 받게 된다.

  여하튼 한번 쓰윽 훑어 내리기엔 무리 없이 즐거운 소설. 하지만 나오키상을 탈 만큼 높은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조를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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