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책방 1 - 그, 사랑을 만나다
마쓰히사 아쓰시 지음, 조양욱 옮김 / 예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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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천국의 책방으로 가면, 알로하셔츠를 입은 요상한 할아버지께서 이런 인사를 건네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실 것 같다. 만일 내가 죽어서 천국에 간다면, 나 역시 책방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죽어서도 행복할 것 같다.


  주인공 ‘사토시’는 대학 4학년생으로, 취업을 준비 중이지만 뜻대로 취직이 되지 않아 낙담하고 있는 사나이다. 그런데 어느 날 편의점에서 잡지를 뒤적이던 사토시는, 알로하셔츠를 입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원인불명의 의식을 잃은 후, 깨어나 보니 거기는 바로 ‘천국’이었다. 그것도 천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책방…. 황당하고 기가 막힐 노릇인데도, 어찌 된 일인지 사토시는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기로 마음을 먹고 천국의 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일을 하다보니 책방일이 너무도 적성에 맞아서, 스스로도 놀란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아무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건성으로 삶을 살았는데…. 비록 죽어서 천국으로 온 것은 아니지만, 알로하셔츠를 입은 사나이의 농간에 다른 세계의 삶을 살아보며 다시금 이승에서 살았던 시간들을 돌이켜 보게 된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도 발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도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일본의 어느 헌책방 주인이 이 책을 읽고 감동 받아 손님들에게 권하기 시작하면서, 인기 없이 허물어져가던 소설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천국의 책방」의 간단하면서도 평범한 삶의 진리는 책방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사랑을 발견하고, 잊어버릴 수도 있을 지난 삶을 회고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을 통해서, 혹은 전생과 후생을 통해서, 내가 살아가는 ‘지금’을 돌아보게 하는 책들은 무수히 많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의 책방」의 지나친 평범함은 나에게 커다란 감동까지 선사하지는 못한 것 같다.


  성급한 내가 읽기에 무척이나 얇은 이 책은 정식 메뉴로서는 지나치게 밋밋한 감이 있고, 후식의 아릿함까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저자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젊은 날의 상처와 혹은 잊어버리고 싶은 고통들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책 읽어주는 사나이를 통해서 세상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알싸한 인생의 참맛을 음미하기에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멋진 방법이겠지만, 현실을 살아가다보면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에 좌절하고 마는, 나의 이 나약함부터 치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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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급한 내가 읽기에 무척이나 얇은 이 책은 정식 메뉴로서는 지나치게 밋밋한 감이 있고, 후식의 아릿함까지도 기대할 수 없었다. -> 동감합니다. 책에 실망이 커요.

mind0735 2007-03-26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난책님. - 저도 실망이 좀 컸습니다. ㅠ_ㅠ 기대보다는 부실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답니다. 아쉬움이 남네요.
 
문학 속의 서울 - 한국문학이 스케치한 서울로의 산책 서울문화예술총서 2
김재관.장두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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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학 속의 서울」이란 제목의 책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 근처에도 살아본 적이 없는 경상도 토박이임에도, ‘서울’이란 도시는 전혀 낯설지가 않다. 달갑지는 않지만, 낯설지는 않은 존재.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어렸을 적 즐겨보던 한국 만화영화나 책을 보면 모든 주인공들이 서울에 살았다. 어린 마음에 ‘우리나라는 서울에만 사람들이 사나봐.’라는 생각을 하며 그 질문을 진심으로 궁금해 했었다. ‘정말 우리나라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밖에 없을까? 그럼 나는 뭐지? 엄마. 우리도 서울로 이사 가자….’


  서울, 서울, 서울…. 끊임없이 등장하는 서울이라는 곳. 같은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이토록 이질감이 느껴지는 도시는 서울이 유일하다. 서울에 가야 성공한다, 서울에 가면 다들 잘 먹고 잘 산다. 서울만이 희망이다. 서울 사람들은 모조리 교양 있고, 사투리 쓰는 사람들은 천박하다. 이런 저런 말들로 인해 서울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렸지만, 거부감 느껴지는 서울은 다만 나의 열등감이 표출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하는 설움을 서울 시민들은 알고 있을까? 정작 서울에는 서울 토박이보다 이주민들이 더 많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여하튼 서울에 대한 나의 강한 거부감이 ‘문학 속의 서울’이라는 책에 대한 선입관에 물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상 이 책은 서울을 찬양하는 책도 아니며, 내가 알지 못하는 서울에 대한 정보들을 한가득 수록한 책도 아닌, 그저 한국 근대 문학들 속에 등장하는 서울의 풍경들을 요약한 ‘근대 서울의 역사책’이었다.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그 격동적인 도시의 한 자락에 오늘을 살아가는 애처로운 사람들이 있고, 소시민들의 애환이 있었다.


  60년대부터 변화하기 시작하는 대한민국 신경제체제에 발맞추어 서울 역시 무던히도 많은 변화를 추구했다. 각종 이념과 수많은 슬로건을 내세우며, 자본주의에 흡수된 재력을 지닌 속물들이 있는가 하면, 자본에 휘둘리며 전전긍긍 내일을 걱정하는 민중의 고통도 있었다. 무조건 서울에 상경하여 큰 돈을 벌겠다 다짐한 이주민들이 가장 큰 고통들의 전담을 맡았던 것 같다. 한국 소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소시민의 삶이 뼈에 사무치도록 철저하게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비극적인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나의 또 다른 자아를 엿보고 있다.


  ‘개발’에 파괴되어 가는 것은 도시 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간혹 지나치게 깨끗해서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건물이나 도로들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콘크리트로 덮인 토지와 초고층 아파트들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현재의 모든 사람들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전염이 되기라도 한 걸까. 그러나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 통쾌한 부정을 내릴 수 없다. 나도 이미 자본주의라는 현대 사회에 너무 깊이 물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더 좋은 아파트, 더 좋은 차, 그리고 더 많은 부를 축적시키기 위해 고군분투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능한 노력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콘크리트 더미를 보면서 위안을 찾는 단절된 현대인들은 문학 작품 속에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을 듯 하다. 「문학 속의 서울」에서 참고한 수많은 문학 작품들 속에서, 낡은 도시의 개발과 함께 파괴된 우울한 문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영자씨’처럼 (영자의 전성시대 -조선작) 살풍경한 도시 속에서 소외당한 불행한 영혼이 존재하고 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변하기에, 모든 존재는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서구에 물들어 변화하고자 몸부림쳤던 서울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속에 포함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보석 같은 한국 문학 속에서 발견 한 서울의 변화는 안타까움을 동반한 희망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너무 낡아 새로운 교체가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애써서 너무 많은 변화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무 빨라서 변화의 속도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리워 할 것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한번쯤 들어봤고, 한번쯤 읽어봤던 한국 문학들을 만나면서 괜스레 아련한 기분에 물들어 보았다. 문학 작품 속에 그려졌던 서울이 비록 아름답지만은 않은 풍자의 대상이나, 서러움의 대상일지언정, 동경과 분노의 울타리 속에서 자기만의 색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한국인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진지하게 느껴보면서,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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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풍경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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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도서는 모든 이들에게 통용되는 철저한 감정의 답습이다. 책을 읽는 독자의 연령층을 구분하여 선을 긋는 행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반드시 필요하지 않는 행위이기도 하다. 성인이 된 후에, 아동용이나 청소년을 주요 독자층으로 삼는 책들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면, 오히려 그러한 책들에 삶의 순리가 더욱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는 경우도 드물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거의 모든 동화가 아름답듯이 청소년 도서 역시 아름답고 솔직하다. 나이로 따지자면 겨우 10살 내외의 차이 따위의 비교는 단순한 수적 나열에 지나지 않음을 느낀다. 청소년 시절, 딱 그 맘 때쯤 느꼈던 인생의 고난을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처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감정의 답습은 여전하기만 하다.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아름다운 그 때, 그리고 언제나 빠지지 않는 방황과 혼동 사이에서의 갈등. 처음으로 느끼는 이성과의 떨림. 사소하게 일어나는 주변인들과의 마찰이 「바다의 풍경」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고치에서 나오는 화려한 나비의 비상처럼, 무언가를 갈망하며 마침내 얻게 되는 소중한 청춘들의 모습 속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미 성숙하지만 더욱 성숙하게 변모해 가는 주인공 ‘소키치’가, 한 인간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매우 사실적이게 그러져 있기에 더욱 동감했던 것 같다.


  ‘소키치’는 세토나이카이 작은 섬에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의 학생이다. 그러나 학교 다니는 것은 인생의 낭비라고 느끼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등교거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된다. 소키치가 궁금해 하는 일은 바로, 아버지와의 사별 이후, 줄 곧 아버지께서 생전에 하셨던 이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며 그 일의 비밀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과거를 추억하며 섬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느끼는 소키치는 섬에 살고 있는 여느 학생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믿음직스럽고, 우직한 성격은 아버지를 꼭 빼닮아,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꼼꼼하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아버지의 비밀을 찾아서 마음으로 떠나는 작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아버지의 자취를 밟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을 때마다 원인불명의 미소가 언뜻 번져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의 풍경」은, 변화를 감지하며 꿈틀거리는 자아를 어느 청소년의 이야기이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크고 깊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산업화에 물들어 점점 색깔을 잃어가고 있는 퇴색한 바다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개발이라는 목적아래 파괴되어가는 지구상의 모든 바다들, 물질에 인간미까지 상실되어 가는 서글픈 우리네 현실과 사회상까지 반영하고 있는 책이다. 「바다의 풍경」을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금 냄새 물씬 풍기는 비취빛 바닷가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낡은 어망을 손보는 어부들의 움직임, 인심 후한 섬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 차가운 바닷바람으로도 지울 수 없는 사람의 온기와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역동적이게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들은 터전을 잃어버리고, 소멸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20세기 모습과 너무도 닮아서 「바다의 풍경」을 읽는 내내, 마냥 투명하게 유지되었던 지난 바닷가의 풍경들이 무척 그립고도 아련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참 가슴이 아프다. 잃어버릴 수 없는 것들을 잃어버려야만 하는 지금의 현실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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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시공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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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라는 세상 아래, 개인에게 주어지는 삶의 짐은 간혹 지나치다 싶을 만큼의 힘겨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어렵고 고단하고 지치는 세상  살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투박하고 무거운 짐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힘겨운 인생의 고통들을 가볍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발견하게 되는 작은 진리는, 신께서는 정말 소중한 인생의 발견은 가장 마지막에 남겨둔다는 점이다. 슬프고, 지치고, 고단한 일생, 이러한 아픔들 후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생각지도 못했던 달콤한 행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모리 에토’의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는, 누구나 겪게 되는 고단한 인생길에서, 반드시 발견하게 되는 행복의 미학을 알려주고 있다. 그 행복이란 결단코 크거나 화려하지 않고, 감동의 깊이를 측정할 수도 없을 만큼 작고도 소박하다. 겹겹이 쌓여있는 양파 껍질을 벗기듯 조심스럽게 들추어 낸 누군가의 인생은 우리가 결코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기가 막힌, 너무도 비밀스러운 행복들이 존재하고 있다.


  지금의 내 인생을 누군가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면, 지극히 다채롭고 상식을 깨는 신선함이 존재하듯이, 이 책을 통해서 바라보게 되는 타인의 인생 역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발견’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6편의 단편들 속에서 각각의 인생에 자신을 투영시켜 본다면 어느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막연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삶’이라는 괴리감이,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 틈엔가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첫 번째 단편 ‘그릇을 찾아서’에 등장했던 ‘야요이’의 관심사는 오직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 하나뿐이다. 케이크라는 매개물로 인해 자신의 행복의 질과 미래의 운명까지 결정짓는다. 이러한 삶의 기준은 자신이 좋아하는 기호품을 넘어선 본인의 꿈과 연관 되어 있고, 이것은 각각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다. ‘강아지의 산책’에서 ‘에리코’의 삶은 강아지가 자신의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수호신’의 ‘유스케’에게는 고전 문학, ‘종소리’의 ‘기요시’에게는 자신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하는 불상이 존재하고 있다. ‘X 세대’의 ‘동창들과의 동네 야구 약속’ 역시 잃어버렸던 과거의 추억을 상기시키면서 보다 행복할 수 있을 현실과 미래의 감동을 깨닫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의 제목이자, 가장 마지막 부분에 실려 있는 단편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를 읽고 나서는, 눈시울마저 붉어졌다. 코끝이 시큰거리는 감동을 느끼며, 깊은 사랑이라는 참 존재에 대해 탐구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사람들은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손으로 만지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찾게 된다. 허상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감동이나 사랑의 원천 따위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인생의 모순을 파헤치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작은 사랑과 행복의 감동을 세심하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 이 책의 제목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를 보고 무슨 내용일까 상상해봤었다. 진부한 사랑 타령을 하거나, 또 반복되는 일상의 편린들을 읊고 있지 않을지 내심 걱정스러웠는데, 의외로 차분하게 전개되는 문체 속에서 아늑함을 찾을 수 있었다. 여섯 편의 단편들 모두 한결 같이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고, 특색 있는 주인공들의 이력과 다채롭게 펼쳐지는 인생사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고 있다. 내 안에 자리하고 있던 어떠한 선입견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모두 다른 내용들의 단편들이지만, 다른 단편들이 모두 모여서 하나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고, 그 뼈대에는 고단한 인생 속에 꼭꼭 감춰져 있는 행복의 존재라는 달콤한 감동들이 붙어있었다. 단단하게 닫혀 진 문을 열고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내 인생의 숨겨진 비밀들은 과연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아마 아직 나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한 작지만 소중한 행복들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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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 2007-03-14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스카 님, 잘 읽었습니다. 모리에토의 장편소설 <검은마법과 쿠페빵>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모리 에토의 진정한 맛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겁니다.

mind0735 2007-03-1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마법과 쿠페빵>... 이 작품도 제목이 특이하네요. 관심이 팍팍 가는걸요~ 앞으로 꼭 읽어보도록 할게요!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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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이라는 넓은 영역이 포함하고 있는 범위의 한계란 있을 수 없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시기가 언제가 되었든 간에, 사랑을 하고 있다는 순간이 주는 쾌락은 실로 대단하다.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첫사랑의 의미는 그런 의미에서 더욱 특별하다.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목적을 탐구하게 해주는 인물을 만났을 때의 충만한 기쁨. 인생에서 가장 고독하고, 가장 절망적인, 그리고 가장 섬세한 나이라고 자부하는 열여섯에 만난, 그 특별한 사랑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는, 생애 처음으로 겪게 된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떨림에 따르는 살벌한 공포감과, 환회로운 감정을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이끌어나가는 인물 ‘헨리’는 열여섯의 나이로, 분주하게 머릿속을 떠다니는 잡다한 생각들이 끝이 없는 복잡한 내면의 소년이다. 항상 ‘죽음’의 존재를 염두 해 두고, 지나칠 만큼 죽음에 대해 파고들며 사색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는 상태에서 가장 사랑하던 친구의 죽음을 맞게 되면서, 친구와 함께 했던 최초의 기억으로 돌아가 그를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강렬하게 다가오는 흐름의 특색을 읽을 수 있었다. 사건은 종횡무진 과거의 현재를 넘나들면서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간간히 등장하는 사건일지를 통해서 ‘왜 헨리는 배리의 무덤에서 춤을 추었는가?’라는 주제를 더욱 깊이 탐색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질문의 답을 소설적인 형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사건이 주는 긴박감 속에서 끝없이 독백하는 주인공의 깊은 마음속까지 침범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을 느껴볼 수 있었다.


  잔혹한 성장 통을 겪는 청소년 소설로 간주하기에는 이 책이 주는 감동의 스케일이 무척이나 광범위하다. 헤리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볼만한 인생의 ‘솔 메이트’를 꿈꾸던 중, 기적처럼 등장한 배리와 친구를 넘어선 사랑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영혼의 소통을 꿈꾸고 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이 이루어 낸 허상의 이미지라 할지라도 두 사람이 진정한 마음을 나누어 가졌다는 의미에서는 반문의 여지가 없다. 동성애라는 편견의 시선을 배제하고, 상대방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우주의 원리에 따라 그 속에 자신을 내맡기게 된 것이다. 친구라는 단순한 의미의 차원을 넘어선 영혼의 동반자는, 그는 그렇게 큰 의미가 되어 자신의 인생으로 뛰어 들었고, 그 후로 머릿속에는 온통 배리의 생각만이 동결된 채 서글픈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 어떤 종류의 사랑이 아닌, 단지 스스로의 인생을 걸고 싶었던 유일한 존재 일뿐….


  죽음은 최고의 자극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129p


  죽음은 진정 최고의 자극이자, 살아 있을 동안에는 영원히 풀 수 없을 신비의 ‘그 어떤 것’이다. 고뇌하는 해변의 카프카처럼, 이 책의 화자 ‘헨리’는 계속해서 죽음에 대한 미지의 영역 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하고 있다. 의례 모든 청소년 도서가 그렇듯, 그 시절 느꼈던 모든 불안과 흥분들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기분이다.


  친구와의 모험을 꿈꾸던 중, 몇 번의 스릴 있는 모험을 경험하기도 하고, 생애 처음으로 자신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타인에게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문학에 고취되어 소설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넓혀가기도 하고, 또 어느 한 순간 좌절하기도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16세란 벽의 통과 관문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리얼하게 표현된 청춘의 페이지가 매섭고도 예리한 작가의 손길에 맞닿아있다. 여름, 해변, 새로운 친구, 떨림, 선택, 흥분, 질투, 우정, 사랑, 슬픔, 감동, 약속, 그리고 죽음! 이 모든 소재들의 집합으로「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라는 하나의 성(城) 도달하게 된다.


  작품이 주는 철학적 의미도 강렬하지만, 소설 자체에서 오는 문학적 성취감 역시 매우 큰 작품이다. 개성 있는 문체와 빠른 사건의 전환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기만 하다. 게다가 최초의 질문, ‘왜 헨리는 친구의 무덤에서 춤을 추었을까?’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느껴지는 미스터리 또한 작품의 재미를 한 층 더 극대화 시킨다. 하나의 코드로서 전락 할 수도 있을 동성애라는 소재를 매우 고급스럽고 산뜻하게 해석해 놓은 듯 하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작가임에도 선택의 후회가 없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에이단 체임버스’ 소설의 매력에 빠져 나오기 힘들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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