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나라가 정부가 국민들에게 어떤 짓을 해왔는가에 대해서 그간 아무 이야기도 안 알려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은 전기를 수도권 대도시에 공급하기 위해 지방의 작은 마을들이 어떻게 희생해야 했는가에 대한, 숨겨진, 피눈물 나는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이다. 
밀양 할매들의 송전탑 투쟁은 언론을 통해 잘 알려져 있고, 전기가 타고 흐르는 '눈물'은 밀양 할매들의 눈물로 상징되어 왔다. 이제 밀양 할매 할배들은 자신들의 '눈물'만 닦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물'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이 책은 그렇게 밀양 할매 할배들이 송전탑과 핵발전소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마을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에 남기고 세상에 알리는 의로운 작업의 산물이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곤지암IC에서 내려서 한 시간가량 들어가면 곤지암 삼합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서울 근교에 있고 교통이 좋은 지방 마을'이 서울 대도시망을 위해 얼마나 고혈을 빨려야 하는 운명인가를 삼합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삼합리에는 765kV와 345kV 송전선이 둘 다 지나고,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제2영동고속도로가 한창 공사중이다. 더구나 여기가 휴게소 예정지란다. 휴게소는 물을 많이 쓰는데 지하수를 300미터 깊이로 파서 하루 140톤의 물을 쓸 예정이란다. 더구나 제2외관순환도로가 건설될 예정이고, 성남-여주 간 복선 전철이 공사중이다. 이를 위해 곤지암에 변전소가 하나 더 생긴단다.
하늘에는 초고압전파, 땅에는 산을 깎는 공사 소음과 먼지와 교통 소음, 그리고 지하에는 물 고갈. 삼합리는 지금 대도시 전기망과 도로망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동네가 되었다. 정말로 '마을 사람들이 다 죽어서 빈 마을이 될 때까지' 기다리며 방치하는 마을이 되어버린 것이다. 
울진의 신화리도 이처럼 방치된 마을이다. 울진 원전 6기 바로 뒤에 있는 마을인데, 원전 뒤에 있으니 당연히 거기서 나오는 송전탑이 마을을 빙 둘러싸 몇 겹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원래 국도 자리에 원전이 들어오는 바람에 새로 놓은 국도가 마을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와버렸다. 조그만 시골 마을이, 뒷동산 너머 원전은 고사하고, 마을 한가운데로 국도가 뚫려 차가 쌩쌩 달리니 교통사고도 나고 무엇보다 집들이 졸지에 도로변에 면하게 되어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포위되고 해체된 마을의 느낌? 이 마을도 둘러싼 송전선 때문에 여러 사람이 암으로 돌아가셨고, 밀양에서 방문한 그날도 주민 한 분이 암을 앓다가 돌아가신 초상날이었다고.

송전탑 '밭'을 이루는 당진에서 암으로 돌아가셨거나 암을 앓고 계시는 분들, 경주 월성 원전에서 나오는 삼중수소 연기로 암을 앓고 계시는 분들. 암 환자가 송전탑과 원전이 있는 마을에서 유난히 많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아직 암의 원인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정부 당국은 그 관계를 부인하고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고 있다. 
핵폐기장과 핵발전소를 몇 번이나 물리친 삼척과 영덕은 또 어떤가. 동해안에 있는 도시라는 이유로, 80년대부터 계속 밀고 들어오려는 핵폐기장, 발전소와 싸워야 했지만 싸움은 끝이 없다. 물리치면 몇 년 후 또 정부에서 낙점하고, 물리치면 이번에는 시장이 주민들 뜻 무시하고 신청서를 내고. 그나마 삼척은 작년에 주민투표를 해서 반핵의 의지를 전국에 보여줬지만, 영덕은 힘에 부친다. 30년간 싸워왔는데 아직도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이다. 

한전과 정부는 전기가 모자란다며 국민들에게 핵발전소 건설의 시급성을 광고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긴 힘들다. 전력대란은 부품 비리와 고장으로 전체 23기의 원전 중 10기나 가동 중지되었을 때 일어난 것이지 밀양이 반대해서 송전탑을 못 세워서 전기 송출을 못해서가 아니다. 지금 밀양에는 작년말로 송전탑이 완공이 되었음에도 시범 송전 이외에 아직 전기는 흐르지 않고 있다. 전기의 출발점인 신고리 3호기가 아직 가동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코메디 같은 일인가. 그토록 급하다며, 밀양 때문에 전기가 모자란다며 그렇게 공사를 다그칠 땐 언제고...!

해마다 전기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처럼 계획을 짜고, 그래서 전기가 모자란다며 끊임없이 원전을 짓고, 산업체에 헐값에 전기를 퍼주며, 민간 발전사에게 이득을 안겨주는 자들은 누구인가? 정부의 '전력계획'에 발전소 건설로 이름 한 줄만 올리면 회사 주식이 엄청나게 뛰어서 큰 이익을 보게끔 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위에서는 이권에 혈안이 되어 있고, 아래에서는 선하지 주민들의 민원에 눈감고, 달랠 필요가 있다 싶으면 몇 억 던져줘서 주민들끼리 서로 물어뜯게 만드는 나라. 그래서 땅만 파먹던 사람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나라.
이 책은 잘못된 에너지 정책에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저항의 이야기이다.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을 전국에 알린 밀양 주민들이 발로 뛰어서 연대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에너지 문제는 대도시에 사는 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가난하고 무지하고 힘없는 촌 사람들이라고 얼마든지 희생되도 상관없다는 식의 국가, 정부 당국, 한전과 한수원, 전문 학자와 언론인들의 태도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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