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불쾌하지 않은 공포가 있을까? 여름 특수를 노린 상업성에 휘둘린 살인귀의 등장으로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여 나가는 공포물에 식상한 독자들은, ‘오츠 이치’의 「ZOO」처럼 공포의 근원을 해부하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다려 왔을 것이다. 「ZOO」가 그려내는 공포는 불편 내지는 불쾌하지 않은 공포다. 마치 인간이라는 지층의 가장 최 하단에 자리한 ‘공포’라는 근원을 알게 쉽게 차곡차곡 해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짧은 분량의 총 10편에 이르는 단편들이 하나 같이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연결이 가능하게 만들 수 있지?’ 저자는 마치 SF에 버금가는 놀라운 상상력 하나로 치밀한 사건 전개를 이룩해 내고 있다. ‘이토 준지’의 만화를 소설로 그려내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나 이토 준지의 만화가 소름이 끼치는 잔인함과 서늘한 공포를 제공한다면, 오츠 이치의 작품들은 무서운 공포 끝에 애잔함 내지는 묘하게 전율 시키는 서글픔까지 함께 선사하고 있다. 서글픈 자아의 충돌, 인간 내면에 자리하는 악의 은밀한 고발, 그래서 참혹하도록 슬픈 공포 소설이다.

  거의 모든 작품이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몇 편의 후기를 남길까 한다. 첫 번째 읽었던 ‘SEVEN ROOMS’는 마치 영화 ‘쏘우’를 그대로 보는 듯한 생생함이 느껴졌다. 이유 없는 납치와 감금.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의 울타리. 마지막 엔딩이 이토록 인상적이었던 공포 소설은 처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ZOO’ 에 담겨진 내면의 악마성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하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인간 그 자체라는 명제를 가장 명확하게 충족시켜 주고 있다. 다중인격의 변질된 악마성이 철저히 고발되고 있는 그 소설에서는 무엇보다 가장 큰 공포감을 맛보았던 것 같다.

  「ZOO」에 등장하는 10편의 소설들 대부분이 비슷하게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세상과의 차별이 주는 외로움과 고독이다. ‘카자리와 요코’에서 요코는 어머니로부터 지독한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쌍둥이 여동생 카자리와의 차별이,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외로움의 공포를 자극한다. 극단의 상황에 처한 요코의 말투가 오히려 너무 차분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차가운 숲의 하얀 집’의 주인공 역시 백모로부터 거친 학대를 당하며 마구간에서 생활하며 세상과 벽을 쌓게 되고 외로움의 공포가 세상과의 단절, 자아와의 단절까지 초래하게 된다. ‘떨어지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니컬한 세상 바라보기 역시 철저히 자기중심 적인 현 사회에 대한 고립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ZOO」에서는, 가슴 아플 만큼 애잔함이 있는가 하면, 철저히 이성적인 공포도 존재한다. 추리 소설 형식을 빌려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소설, 그리고 형식이 파괴된 소설에서 맛 볼 수 있는 신선함과 놀라운 반전까지.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달리 절대 뒷내용을 유추할 수 없다는 점이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한 번 손에 쥐게 되면 절대 놓을 수 없는 흡입력을 지니고 있는 작품집이다. ‘오츠 이치’의 모든 작품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7-07-2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다른 작품이 나온다고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mind0735 2007-07-2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기대되어요, 물만두님! ^^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어렸을 적 썼던 일기장을 읽어보며 문득 소스라치게 놀랐던 경험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게 짝이 없는 ‘살의’를 그 어렸던 시절의 내가, 아무렇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휘갈겨 쓴 글씨로 누군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라는 끔찍하고 잔인한 감정을 품을 수 있었던 모습이 지금은 전혀 기억 나지조차 않지만, 당시의 나로썬 온 몸을 다 바쳐 저항하고픈 고통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혹은 ‘누군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이러한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문제가 많은 가정일수록 가족 중 누군가의 부재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가령 폭력이나 강간에 시달리는 어린 여학생의 경우, 아동 시기에 자리 잡은 증오의 표출은 숨죽인 채 참는 수밖에 달리 해결 방법이 없기에 차라리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가 자연 사라지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도저히 가정사에 대한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없어 참으며 빈 방에 웅크리고 있었던 기억.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열 세 살의 같은 반 두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평범하거나 혹은 평범한 척 가장하는 ‘아오이’와 묘한 고딕풍의 차가운 소녀 ‘시즈카’. 어떠한 계기로 두 소녀는 친구가 되어 살인의 미스터리 속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다. 여린 소녀 둘이서 겪는 질풍노도의 공황상태는 그 시절에만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특권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은 바꾸어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자신을 아껴주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자 자기 방어의 수단이다.

  어렸을 적, 황폐한 어른들의 공격으로 고통을 안게 되는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 섬뜩한 면도 있었고, 같은 동질감을 느꼈던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성장 소설과 미스터리 소설의 어정쩡한 경계에 머물러있다. 강한 임팩트가 빠진 싱거운 숭늉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서 후반에 등장하는 줄거리가 「지푸라기 여자」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가졌는데, 정말 이 책에 등장해서 놀라웠다. ‘카트린 아를레’에 대한 ‘사쿠라바 가즈키’의 오마주? 실질적으로 책의 제목과 줄거리까지 인용하여 등장시켰다는 점을 보면 작가도 그 책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던 것이 분명하다.

  잠시 사족을 붙이자면, 나 역시 「지푸라기 여자」를 굉장히 강렬하게 읽었다. 오래되어 노랗게 빛바랜 낡은 문고본으로 읽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지금이야 워낙 흔한 줄거리가 되어버렸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서스펜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생각난 김에 조만간 다시 한번 그 책을 읽어보며 비교를 해봐야겠다.

  여하튼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은, 소녀들이 느끼는 성장기의 아픔과 고통들을 또렷하게 전해주는 잔혹 동화 같은 소설이다. 아픔을 털어 놓을 상대가 없어 혼자 괴로워하고, 친구들과의 사교에 문제가 생겨 쩔쩔 매고, 누구에게나 사랑받기를 원하는 평범한 열 세 살의 소녀. 그러나 여러분 들 중 누구라도 고민이나 아픔은 혼자 묻어둔 채 동굴 속을 갖혀 있지 않기를 바란다. 혼자 끙끙 앓다보면,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증오하는 상대를 향한 살의로 빚어진 살인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릴리안의 알약
슈테피 폰 볼프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낄낄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변에 사람이 많았으므로 혼자서 조심스럽게 웃었지만, 간혹 웃음을 참기 힘들어 소리 내어 웃을 때도 있었다. ‘릴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엽기적인 독일 아가씨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어찌나 감칠맛 나게 코믹하던지……. ‘웃찾사’ 저리 가라 할 만큼 우습고 재밌는 대사들과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코미디라는 장르의 특성에 부합되게 웃음 꽃 선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릴리안의 알약」의 배경은 페스트가 전 유럽을 휩쓸던 16세기 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르네상스가 한창 무르익어 가고 있었고, 독일에서도 비슷한 시대적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자들의 지위가 낮았던 중세시대, 여성들은 마초의 남자들에게 휘둘리며 원하지 않는 성행위와 더불어 임신까지 해야만 했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여자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피임약이 발명되기 전, 여성들은 과연 어떻게 만일의 사태에 대처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확답은 물론 기대할 수 없었기에, 이 소설이 중세의 여성들에 대한 재기발랄한 재해석을 하게 되었던 듯하다.

16세기 독일. 여느 유럽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주의 초야권이나,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가한 횡포들. 교수형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지켜봐야만 했던 시민들. 페스트가 창궐하여 유럽 전 지역을 휩쓸어 죽어가는 시체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시대적 상황이지만,「릴리안의 알약」을 읽어본다면 이러한 심각한 문제들의 걱정을 지우고 한층 가볍게 당시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 ‘릴리안’과 그녀의 주위를 둘러싼, 한 마디로 ‘재밌고도 나사가 여럿 빠진 듯 이상한’ 사람들과 함께 도피 행각에 빠져들어 본다면.

주인공 ‘릴리안’은 18살의 호기심 왕성한, 그리고 다소 엽기적인 발상의 소유자다. 우연히 마녀의 마법 레시피로 피임약을 발견하게 되었고, 동물 실험에 이어 인체 실험까지 성공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릴리안의 알약’은 빠른 속도로 여성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녀로 오인 받은 릴리안과 체칠리에는 묘한 동행인들과 함께 도피 행각을 벌이는데, 다른 지방을 옮겨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또한 하나 같이 재미있으면서도 괴상한 캐릭터 투성이다. 하다못해 릴리안의 애완동물들의 이름 또한 어찌나 재밌는지. 피임약의 키워드 ‘팜파탈’과 무지하게 말을 안 듣는 ‘소시지’!

역사물의 일명, ‘묻지 마. 패러디’. 출처도 불분명하고 사건의 정확성이나 인물의 연대기 또한 부정확할 지라도 친숙한 역사속의 인물들이 대거 출연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재미를 주기엔 충분하다. 의적 ‘로빈 훗’을 비롯하여,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소심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그리고 지나치게 유명한 화가들 ‘미켈란젤로’와 ‘보티첼리’까지! ‘로빈 훗’에서부터 시작해 돌고 돌아 어느덧 르네상스 3대 화가 중에 2명이나 등장하기에 이른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스토리에 빠져들다 보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에서 한참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긴 하지만, 귀여운 릴리안 때문에 또다시 웃어버리고 만다.

아쉬운 점은 앞서 말했다 시피, 후반으로 갈수록 이 책의 핵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초반, 임신 문제로 인해 난황을 겪는 여성들의 문제를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루었더라면 아무리 코미디물이라도 당시 사회를 예리하게 비꼬는 풍자 소설처럼 조금 더 진지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다소 불필요하게 등장하는 역사 속의 인물들은 패러디의 특성상 출연을 반갑게 맞아줄 수 있지만, 굳이 첨가하지 않아도 무방한 부분들이 많았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지금이야 워낙 피임 방법이나 약 등이 대중화 되었으니 실수하는 경우가 적지만, 피임약이 없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기는 족족 낳아야 하고, 그만큼 태아의 사망률도 높았다고 한다. 지금 시대는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우자.’ 라는 슬로건 아닌 슬로건을 내세우고 자식을 천금마냥 아끼며 보살피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한다지만, 중세의 그녀들처럼 마치 방목하듯 여럿을 낳아서 키울 수 있었던 시절이 어쩌면 지금보다는 웃을 일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당시를 회상하는 듯한 기발한 상상력과 재미있는 캐릭터들의 결합 덕택에 킥킥거리며 웃을 수 있었던 즐거운 릴리안과의 데이트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메레르 1 - 왕의 용 판타 빌리지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인의 인식 속에 박혀있는 ‘용’의 이미지와 너무나 상반되는 용을 만났다. 비단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용’에 대한 이미지는 기껏해야 저주를 내리는 악의 화신이나, 신성시하면서 존경해야 할 수호신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이미지가 존재할 것이다. 생긴 것도 어찌나 징그럽고 무섭게 생겼는지……. 세상에서 가장 큰 뱀이 막 허물을 벗은 모습으로 징그러운 비늘이 몸 전체를 뒤덮고서 불을 내뿜으며 하늘로 승천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 속에 자리한 미개한 토템문화로 등장하던 ‘용’을 화끈하게 재해석한 작품이 등장했다. 이름 하여 ‘테메레르’!   

  용의 이름이 참 예쁘다. ‘테메레르’. 테메레르라는 이름을 가진 수컷용은 지혜롭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인정이 많은 따뜻한 용이다.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며, 옳고 그름을 사고하여 판단하고, 알에서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언어를 습득했다. 배움에 대한 욕구와 호기심이 왕성해서 책을 매우 좋아하며 자신의 조종사인 로렌스에게 신뢰와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가르쳐준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미 넘치는 이웃집 친구 같은 테메레르.

  상상조차 할 수 있었겠는가? 마치 다정한 이웃 같은, 친절한 꽃미소를 달고 웃는 용의 이미지를……. 그러나 판타지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인간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르이므로, 판타지를 위한 판타지, 오직 판타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획기적인 기획력을 체험할 수 있다. 「테메레르」의 매력은 용을 신격과 하는 것이 아닌, 친근한 이미지로 변신시켜 준 것 뿐만이 아니라, 나폴레옹 시대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하여 리얼한 과거를 완벽하게 재생시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발생했던 트라팔가르 전투와 도버 전투까지.

  만약 이 작품이 소설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용을 전투에 투입시켜 프랑스와 영국이 치열한 해전을 치렀다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용이 사람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여 전투를 치르고, 최고의 파트너이자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일심동체로 움직인다는 설정이 매우 신선했다. 치열한 전쟁 소설은 아니지만 우선은 전쟁을 소재로 잡았기 때문에 그 당시의 실제상황이라는 리얼함이 부각 되는 듯하다.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선도 그 정도면 양호하고, 중국과 일본의 혈통 좋은 용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비해, 조선은 몇 번 나오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사실 피터 잭슨이 차기작으로 영화화 한다는 문구에 마음이 쏠렸지만 ‘용’이 나온다고 하기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용’하면 우선 유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 기대이상으로 재미있어서 푹 빠져들며 읽었다. 로렌스와 테메레르라는 두 파트너의 매력은 말할 것도 없고, 초반부에서 용의 알이 부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뒷내용이 몹시 궁금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용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고 새삼 용을 처음으로 집중탐구해보고 싶은 욕구가 든다. 정말 신화일까, 사실일까…. 사실이 아니래도 누구에게나 상상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기에 용의 존재여부는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치부하고 싶다.

  「반지의 제왕」도 북유럽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탄생시킨 만큼, 「테메레르」역시 역사적인 사건과 무대를 배경으로 하여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용’에 관한 전설을 보다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다듬었다. 빠른 전개와 인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언어나 행동들이 여느 문학작품 못지않게 사실적으로 다가왔기에, 그 스토리가 너무 허무맹랑하지 않고 오히려 설득력 있게 여겨진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에 열광하던 판타지 마니아들이 숨 좀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이러한 대작이 쏟아져 나오다니! 이젠 타는 듯한 여름 밤 열기를 시원하게 식혀줄 ‘테메레르와’의 오붓한 데이트만 남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창 일본 현대 소설에 열광 할 무렵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소재의 참신함이나 독특한 설정 덕택에 한껏 매료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부터 지금까지 출간되고 있는 책들을 보면 비슷하게 결합된 소재들이 결국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내기 힘들다. 밝으면서 유쾌하고 그러면서 지나치게 가볍고 쉽기만 한 문장들. 쉬운 문장들을 한번 읽어나가기는 좋으나 읽고 나면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허무한 줄거리가 대부분이다.

  마치 만화책을 읽듯이, 읽는 순간만큼은 대단히 즐겁고 푹 빠져들어 읽게 되지만, 읽고 난 후에 이어지는 감동의 깊이는 확연히 줄어들거나 아예 감동이 없는 경우도 많다. 순간의 즐거움을 위주로 한 책들을 굳이 헤아려 본다면 전 세계 모든 출판사에서 통용되고 있겠지만, 유독 일본 현대 소설들은 그런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개연성 없는 줄거리도 비슷하고 주인공도 비슷하고, 문체라든가 발걸음의 템포가 어찌나 닮아있는지…. 그럼에도 가끔 그런 소설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미우라 시온’의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 집」은 고등학교 동창생인 두 남자의 이야기다. 마호로시에서 심부름센터도 아닌, 심부름 집을 운영하는 주인공 ‘다다’와 ‘교텐’은 전혀 친하지 않은 동창생이지만 우연히 만나 함께 심부름 집을 이끌어가게 된다. 사려 깊고 꼼꼼한 성격의 ‘다다’와 어쩐지 4차원 세계를 노니는 듯한 독특한 정신세계의 소유자 ‘교텐’…. 이 두 남자로 인해 심부름 집에 부탁을 하러 왔던 많은 사람들이 작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작고 사소하지만 언제나 재생되는 행복의 방문.

  개인적으로 ‘교텐’이라는 캐릭터가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과묵하고 엉뚱하고. 매사에 의욕적이지 못하고 대충대충 이런 식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따뜻한 본심. 읽다보면 교텐의 성격이 요약된 문장이 다다의 독백을 통해서 등장한다. ‘이런 녀석이었구나. 제멋대로 말하고, 남이고 자신이고 아무래도 좋다는 듯 행동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슴속 깊이 감춰 두고 있었어. -302p’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는 사실이 중요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 (아니, 현실에 정말 이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피곤하려나?)

  단순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하는 다다네 심부름 집이지만, 그 속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무뚝뚝하지만 의리 있는 두 남자 주인공 덕택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지기도 하고……. 둘 다 이혼남에 애가 있었다는 공통적인 사실 또한 두 사람을 끈으로 묶어 둔 것 같지만, 여자와 한 번도 잠을 잔적이 없다는 교텐의 말에 ‘혹시 게이 아냐?’ 라는 의심을 하던 다다의 모습에 실웃음도 나왔다. 과거의 아픔을 잊지 못해 계속 기억하고 현재까지도 그 아픔이 이어지고 있는 ‘다다’. 그리고 다다와는 반대로 과거에는 과거일 뿐, 자신이 살아온 흔적에 그 어떤 미련도 후회도 없는 ‘교텐’. 이렇게 다른 성격의 두 남자에게서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에 대한 자극을 받게 된다.

  여하튼 한번 쓰윽 훑어 내리기엔 무리 없이 즐거운 소설. 하지만 나오키상을 탈 만큼 높은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조를 할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