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음표들 - 마음을 일으키는 힘
최대환 지음 / 책밥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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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송이 잘 지적하고 있듯 호메로스가 생각하는 인간 불행의 원인은 힘 있는 인간의 ‘휘브리스‘, 즉 오만함과 선을 넘는 어리석음의 악덕입니다. 탐욕이 원인이 되었든, 명예를 추구하다 그리되었든, 분노를 이기지못해서였든, 휘브리스는 인간에게 인간다움을 잃게 하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경계를 넘게 하고 마침내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갑니다. 이 사실에 대한 고통스러운 깨달음이 『일리아스』의 장대한 이야기를 읽고 났을독자의 마음에 남습니다.
테송이 『일리아스』를 박진감 넘치는 영웅 서사시이거나 상고 시대의 신비스럽고 낯선 전설로서가 아니라, 도처에서 선을 넘으며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지금의 시대를 경고하는 ‘오늘을 위한고전‘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의 대목에서 확인할수 있습니다.

테송이『일리아스』를 박진감 넘치는 영웅 서사시이거나 상고 시대의 신비스럽고 낯선 전설로서가 아니라, 도처에서 선을 넘으며 환경을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지금의 시대를 경고하는 ‘오늘을 위한고전’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다음의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도 자연을 상대로, 아킬레우스가 신들에게 한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균형을흩뜨려 놓았다. 한계를 넘어섰고, 세상을 약탈했다. 동물들을 멸종시켰고, 빙하를 녹게 했고, 토양이 산성화하게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우리의 스카만드로스 강이, 다시 말해 생명의 모든 발현이 침묵을 깨고 우리의 남용을환기한다.

가을과 함께 ‘진실의 시간‘을 마주합니다. 가을은무릇 존재가 열매를 맺어 본모습을 보이는 계절입니다. 황금빛 들판과 과일이 탐스럽게 열린 과수원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잘 익은 밤과 도토리가 툭툭 떨어지는 산길을 여유로이 산책하다가, 문득 내가 이 가을에내어놓을 소출을 생각합니다. 유예나 변명의 기한은다 지나갔고, 올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정직하게 따져봐야 할 때가 왔습니다.

한 해의 시작에 마음먹은 결심과 계획과 약속이 혹여 빈말에 그친 것은 아닌지 살펴봅니다. 그리고 내면적이고 인격적이며 온전한 한 인*R간이 되고자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나는 올해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덕이야말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를 비추고 가늠하는 거울이자 잣대입니다. 덕이 잘 무르익어 수확할 수 있다면, 그래서 내가 한 인간으로서 그 인격이 한뼘이라도 더 자라고 한 치라도 더 깊어져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이번 가을은 더 바랄 것 없이 풍요합니다.

때때로 부족한 그들 안에도 고귀한 행위를 할 수 있는품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습니다. 사람을 겉모양으로만 보고 호감을 갖지 말기를 조언하면서도 또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말기를권고합니다. 제인 오스틴은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담백하면서도 피상적이지 않은 필치로 그려내고 내면을 통찰합니다.

깊은 슬픔 속에 위태로이 닿아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겉으로는 무탈하게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뒤안길에는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홀로 힘겨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기억하려 합니다. 사람들이 온갖 즐거움과 쾌락을 누리고, 자유와 자아실현의길이 열려 있다고 하는 오늘의 세상에서 정작 수많은사람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거운 기분‘인 멜랑콜리인 이유를 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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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담긴 장소는 개개인에게 저마다의 역사를 간직한 유산이 된다. 그러한 장소에 함께 있음으로써 가족 구성원의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런던, 파리, 베네치아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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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를 꿈꾸어왔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위대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누구나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두 가지 주제, 바로 삶과 죽음을 ‘특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은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작가는 이 어려운 작업을 아주 능청맞고도 사랑스럽게 해낸다.
삶과 죽음 사이에 들어찬 모든 문장에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음으로써,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잠시 휴식하기 위한 쉼표만을 사용하면서 죽음과 삶의 과정이 결국 하나의 끝나지않는 문장 속으로 들어오도록. 이 이야기 속에서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은삶을 밀어내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무지갯빛 색실로 거대한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것처럼, 작가는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이라는 아름다운 벽화를 천의무봉의 손길로 직조해낸다. 이 이야기와 함께하는 순간, ‘이토록 가까운 삶‘과 ‘저토록 머나먼 죽음‘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왈츠를 추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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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위기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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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animal narrans 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식, 즉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제한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다른 삶의 형식을 그려낼 수 없다. 스토리텔링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지각과 현실에는 눈멀게한다.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 시대 서사의 위기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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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를 창간한 이폴리트드 빌메상Hippolyte de Villemessant은 정보의 본질을 다음의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우리 독자들은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혁명보다 파리 라틴 숙소에서 일어난 지붕 화재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이를 더욱 구체화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이상 멀리서 오는 지식이 아닌,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의 단서를 제공하는 정보만이 공감을얻는다." 신문 독자들의 관심은 코앞에 놓인 것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호기심거리로축소된다. 근대의 신문 독자들은 시선을 멀리 두고 머무르는 대신, 하나의 뉴스거리에서 다른 뉴스거리로관심을 이동시킬 뿐이다. 길고 느리게 머무르는 시선은

정보는 인식의 순간 이후 더는 살아 있지 못한다. "정보는 그것이 새로운 동안에만 가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만 살아 있다. 오로지 순간의 시점에사로잡히며 정보 그자체에 대해 설명할 시간은 없다.

정보와 달리 지식은 그 순간을 넘어서 앞으로 다가올 것과도 연결되는 시간적 폭이 있다. 그래서 지식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지식 안에는 서사적 진폭이 내재해 있다.
정보는 새로운 것을 찾아 세상을 샅샅이 뒤지는리포터의 매체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 반대의 일을 한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보를 전달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하기의 예술은 정보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설명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이미 이야기하기 예술의 절반을 완성한다." 내주지 않는 정보, 즉 빠져 있는 설명이 서사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이야기에는 경이롭고 의미심장한 무언가가 있다. 이들은 은밀한 것에 반대되는 정보와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설명과 이야기는 상호 배타적이다.
"매일 아침이 세상 만물의 새로움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기억할 만한 이야기가부족하다. 왜일까? 설명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일은 더이상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이 이야기가 아니라 정보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야기는 ‘모든 걸 내보이지않는다.‘ 이야기는 ‘그 힘을 내면에 모은 채 보전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펼쳐낼 수 있는것‘이다. 반면 정보는 완전히 다른 시간성을 보인다.
정보는 좁은 최신성의 폭 때문에 매우 빠르게 소진된다. 정보는 오로지 찰나의 순간에만 작동한다. 영구한 발아력을 지닌 씨앗이 아닌, 티끌이나 다름없다. 정보에는 발아력이 결여되어 있다. 한번 인식되고 나면, 이미 확인을 마친 부재중 메시지처럼 무의미성 속으로 침잠한다.

전체 삶의 기록화에서 아무것도 탈락되어서는 안 된다. 이때는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저 측정될 뿐이다.
센서와 앱은 언어적 표현과 서사적 성찰 없이 자동으로 데이터를 전송한다. 수집된 데이터는 그래픽과다이어그램으로 보기 좋게 요약된다. 그러나 이들은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자기는 양이아닌 질이기 때문이다. ‘숫자를 통한 자기 이해‘는 신화 속 키마이라와 같다. 이야기만이 자기 인식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나 자신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수치적서사‘라는 표현은 모순이다. 삶은 정량화가 가능한 사건들로는 이야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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