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적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 하루하루 감사할 일이 늘어나는 것, 하루하루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의 더 크고 깊은 사랑을 깨닫는 것, 그리하여 나의 트라우마는 매일매일 더 말랑말랑해지고, 상대해볼 만한 적수가 되며,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내 안의 친구가 된다. 트라우마는 결코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우리는 트라우마보다 강인하다. 내 안의 다정함, 내 안의 따스함이 깃든 모든 장소에서, 나는 감사의 이유와 치유의 기적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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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슬픔이여
어서 오라 슬픔이여
너는천장의 선 속에 새겨져 있지
너는 내가 사랑하는 눈 속에 새겨져 있지
너는 비참한 것과는 좀 달라
아무리가련한 입술이라도 너를 드러내는 건
미소를 통해서니까
반갑다 슬픔이여
다정한 육체들의 사랑
사랑의 힘
거기에서 배려가 생기네
몸 없는 괴물 같은
무심한얼굴
슬픔의 아름다운 얼굴
- 폴 엘뤼아르, 《눈앞의 삶La vie immédi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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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활에는 생각할 자유, 잘못 생각할 자유, 생각을 거의 하지않을 자유, 스스로 내 삶을 선택하고 나를 나 자신으로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나는 점토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점토는 틀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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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왜 나 자신을 그렇게 비판해야 하지? 나는 그냥나야 그러니 사태를 내 마음대로 느낄 자유가 있는 게 아닐까? 평생 처음으로 ‘자아‘가 분열되는 듯했다. 나는 이런 이중적인 면을 발견하고 몹시 놀랐다. 나는 그럴싸한 변명거리를 찾아내 나 자신에게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그런 내가 진실한 나라고 설득했다. 다음 순간 갑자기 다른 ‘나’가 솟아올랐다. 그 다른 ‘나는 조금 전 나 자신의 논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겉으로는 모두 타당해 보이지만 사실은 착각이라고 외쳐댔다. 그런데 사실 나를 속인 것은 이이 다른 나가 아닐까? 그런 통찰이야말로 가장 지독한 잘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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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은 무엇보다 책 읽는 인간이었다. 침대에서,카페에서,해변에서 , 별장에서, 안락의자에서, 소파에서, 대기실에서 비행기 에서, 호텔 방에서, 요리나 정원 가꾸기나 바느질이나 산책을 하는 대신에, 책을 읽었다. 그녀의 책장에는 셰익스피어,벵자멩콩스탕, 니체, 포크너, 콜레트, 스탕달, 플로베르, 헤밍웨이가 꽂혀있었다. 자신이 주최한 파티가 무르익고 요란해질 무렵 그녀는 자리에서 빠져나와 후미진 한구석에 틀어박혀 아이리스 머독, 솔 벨로, 윌리엄 스타이런, 카슨 매컬러스, 캐서린 맨스필드를 읽었다. 에세이집 《내 최고의 추억과 더불어》에서 사강은 이렇게 쓴다. "나는지나치게 나 자신으로 살았다. 그러므로 진정한 내 존재를 이른바‘완벽하게 지각하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내 자리에 앉혀 나를대신해서 살도록 하고 나는 책을 읽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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