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 저는 작가가 되었고, 첫 작품집 『황토의 작가의 말에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내가 해득할 수 있는 역사, 내가 처한 사회와 상황, 그리고 그 속의 삶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34년이지나 태백산맥문학관 벽면에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새겼습니다. 이것이 저의 변함없는문학관입니다.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은 시대착오적인 유치함입니다. 이제그런 소모적인 논쟁 아닌 논쟁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오직 좋은소설, 감동적인 작품이 있을 뿐입니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탐구입니다. 그리고그 인간들의 삶의 엮음이 곧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소설이 인간사인 역사를 다루게 되는 것은 필연입니다.
또한 소설에 대한 일반화된 정의는, 소설에는 현실의 모순과 문제점들이 반영되어야 하고, 그 시대적 갈등과 고통들이 재구성되고 형상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작가가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작가의 기본 요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갖춤에 있어서 자칫 주제의식의 과잉에 치우쳐 문학성의 결여를 초래하거나, 감동의 빈약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작가들이 그 함정에 빠져 실패작을 만드는 헛수고를 하게 됩니다.
역사의식 사회의식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서 감동 또한 큰 문학성을 확보했을 때 비로소 소설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게 됩니다.
문학의 또 다른 이름은 ‘문예‘입니다. 즉 문자로 된 예술이라는뜻입니다. 모든 예술의 생명은 ‘감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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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를 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계와 방송매체를 통해 많은 철학자들을 가깝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순진하게도, 당당하게 주장된 원칙이나 가치와는 정반대로 펼쳐져 나간 삶을 마주할 때마다 놀라곤 했다. 담론이 요란할수록간극은 더 명확했다. 하긴 철학자들 가운데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들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적을 이유가 딱히 있겠는가?
철학자들은 정치인이나 모조품 만드는 사람을 부러워할 까닭이 전혀 없다. 그들도 철학을 넘어서서, 자기 자신에 관한 거짓말의 창의력과 역설적 구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으니까. 말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비일관성은 사상가의 경우, 독자의 즐거움의 원천이자 사유를유발하는 매력적인 이론으로 변형된다. 결핍은 과잉 속에 있고, 왜곡은 창조의 바탕이 된다.

미래는 포착되지 않는 것, 우리 위로 떨어져서 우리를 장악하는 것이다. 미래는 타자이다. 미래와의관계는 타자와의 관계 자체이다. * 타인은 절대적 타자이며,
모든 것을 여는 열쇠, 즉 인간이 타인을 이미 환대했기에 그관념을 갖게 된 무한의 열쇠, 초월성의 열쇠이자 하느님의 열쇠를 제공한다. 또한 타인은 구체적 관계 속에서 언어에 철학적 정의를 부여한다. "말하기, 그것은 타인을 앎으로써 동시에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타인은 단지 알게 된 자가 아니라인사를 받는 자이다. 단지 명명되는 자가 아니라 간청받는 자이다. 문법 용어로 말하면, 타인은 주격이 아니라 호격으로 등장한다."** 레비나스는 사회적인 것을 성찰하는 데 몰입하면서 타인의 절대적 정의를 통해 폭력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었다. "얼굴로서의 타자와 맺는 관계는 알레르기를 치유한다.

****타인은 모든 개념을 흡수하여 자신의 빛과 일렁임 속에서 반짝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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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0월 10일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나는 그대들에게, 슬프게도, 작별을 고하니, 아, 내가 이곳에 간직하고 온 사랑스런 희망은, 비록 어느 순간까지는 나를 치유해주었건만, 이제 완전히 나에게서 떠나간 게 분명하다네. 가을날 나뭇잎이 떨어져 버리듯말이지. 그래서 이제 그 희망은 다 사라졌다네. 마치 내가 이곳에처음에 왔을 때처럼 말이지. 나는 이제 가겠네. 나에게 종종 아름다운 여름날이면 간직되었던 용기조차도 이젠 사라져버렸거든.
오, 섭리여, 한때 나에게 순수한 하루의 기쁨을 내 앞에 선사해주던 것도 이제 오래된 날이 되었고, 내 안에 참된 기쁨이 울리던 것도 낯설게 되었으니. 오 신이시오, 언제, 도대체 언제 나는 자연의신전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영원히 불가능한가? 안되오, 그렇다면, 그건 너무 가혹하니.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에서

유서에서 우리는 베토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픈 지경에다다를 정도로 그 고통이 절절했다는 것을 보는 동시에 마치 구름속에서 간간히 햇빛을 만나 삶의 기쁨에 대한 갈망과 생의 의지도 발견합니다. 이 유서는 절망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한숨만이아니라, 절망의 바닥이 순간적으로 우리에게 열어 보이는 희망의 빛역시 포착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생애가 주는 위로와 용기는 이두 가지 체험이 함께하는 데서 흘러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상실감과 이것이 변화되어 새로운 목적으로 나아가는 도약의 순간이 베토벤에게서는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베토벤의 천재성은 유일무이한 것이겠지만 절망의 순간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계기라는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감사할 수 있는 힘은 모든 이의 삶에서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변화의 요구에 당황하거나 도피하거나 분노하기보다는 살피고숙고하고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의 준비는 나를 소리 없이 사로잡고 있었던 선입관과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에서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끌고 기초가 되는 것은 환상이나 절제 없는 욕망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와 건강한 자기애, 현실에대한 인식이어야 할 것입니다. 소문이나 고정관념, 관습, 타인의 기대 등에 휘둘리는 대신 분명한 자기 판단과 가치관을 가질 때, 비로소 행복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시대에는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현명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현명함이라는 삶의 지혜를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명함은 시대나 지역에 상관없이 인간 문명 안에서 공통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덕목이자 으뜸가는 삶의 지혜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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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들 사이에 작은 샘이 있고, 그 샘은 마르지 않죠. 이 철없지만집요한 낙관주의는 제 행복의 원천이기도 해요.
행복의 원천이 되는 마르지 않는 작은 샘은 무엇보다 ‘추억‘이라고생각합니다. 추억이 서로의 행복을 축복하게 해주는 힘이 되고 있는 〈쉘부르의 우산>의 마지막 장면 역시 바르다의 말에 공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고 도는 문화적 복고 취향을 소비하는 것만이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추억에서 오늘, 여기의 행복을 위한 샘물을 길어오는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궁정에 둥지를 짓고 살 수 없어요. 하지만 제가 오고 싶을 때와도 좋다고 허락해 주세요. 그러면 저녁에 저기 창 밖에 있는 가지 위로 날아와 폐하를 위해 노래하겠어요. 폐하께서 행복하고 즐거워 하시도록 말예요. 저는 행복한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람들에대해 노래할 거예요. 폐하 주변에 감춰져 있는 좋고 나쁜 일들에대해서도 노래하겠어요. 저는 여기서 아주 먼 가난한 어부와 농부의 집으로도 날아간답니다. 그 사람들 이야기를 노래로 불러 드릴게요. 저는 폐하의 왕관보다 폐하의 가슴을 더 사랑한답니다.
__ P.240-241 《안데르센 동화전집》(윤후남 옮김, 현대지성, 2016)

가장 날렵한 것들은 가장 부드럽다. 새는 생기 있다.
새는 부드럽기 때문이다.
돌은 무겁기에 무력하다. 돌은 그 본성에 의해 추락하기 마련이다. 그 무거움이 약점이기 때문이다. 새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상승한다. 새의 연약함이 곧 힘이기 때문이다.
완벽한힘에는 공중에 떠있도록 하는 일종의, 경쾌함과 가벼움이 있다.
- G.K. Chesterton, Orthodoxy, in: The Collected Works vol.1,

무거움은 세속적 힘이자 종교적 완고함과 지위에 따른 진지함을상징하며, 가벼움은 약함과 부드러움과 겸손함을 담고 있는 상태입니다. 무거움은 강하고 위대해 보이나 오만하고 허무하여 생명을 잃고 추락하기 쉽습니다. 가벼움은 자신의 부족함을 통해 상승하게 하며 이는 진정한 생명력의 표시입니다. 성인들이란 거창한 인물이기이전에 이러한 ‘역설‘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종교 차원을 떠나서도 우리 인생에서 자신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대신 ‘가볍게 할 수 있는 삶의 지혜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새를 관찰하며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최근에 번역 출간된 조류학자이자 기자이며 환경 운동가들인 필리프 J. 뒤부아와 엘리즈 루소의 에세이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맹슬기 옮김, 다른, 2019)을 읽으며 생각하게 됩니다.

삶의 크고 작은 순간순간 속에서 재생의 시간을 (일시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무력함을 견뎌야 하는), 일식의 시간을 받아들이자. 그러면 우리에게 있던 근원의 힘과 아름다움을 되찾을 것이다. 새처럼 한없이 가벼워질 것이다.
P.21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이러한 시대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커다란 과제이고 도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도전에 응답하는 첫 발은 거창한 일을 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을 두드리는 작고 여린 ‘인간다움‘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민의 마음을 가질 줄 알고, 타인에게 따뜻하고 호의를 가지고 대하며, 이웃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할 수 있고,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작은 기쁨에도감사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회복할 때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작은 새가 지저귀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큰 변화가필요한 시기에 우리들은 어느 때보다 섬세하게 작고 여린 사람들의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을가만히 돌아보고 돌보며 거친 분노와 정체 모를 불안과, 성찰이 결여된 인정 욕구가 내는 소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묻혀있던 내면의갈망이 속삭이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벌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다. 이 작은 새는 꿀을 찾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는데 그 모습이 은희의 여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은희는 아주 작은 여자아이 이지만, 사랑받기 위해서 또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서 많은 곳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동물들이가진 상징에 대한 책을 찾아보았을 때 벌새에는 희망, 회복, 사랑같은 좋은 상징들만 있었다. 그래서 영화에 붙이기에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P.253 《벌새》(김보라 쓰고 엮음, 아르테, 2019)

벌새가 노래하는 것을 들으시오
새의 날개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벌새의 노래를 들으시오
나를 들으려 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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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음악서재, C# - 혼돈의 시대, 사색이 음악을 만나 삶을 어루만지다
최대환 지음 / 책밥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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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과 책과 음악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인생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음악과 책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자랑하는 교양에 인격과 영혼이 담겨있기는 할까요? 하지만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고자 애쓰며,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위해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책과 음악은 좋은 친구이고 교양은 든든한 밑천입니다.

철학자가 별다른 사람은 아닙니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그리로 가는 길을 찾고 걷고자 애쓰며,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기를 소망하며, 배우고 깨닫는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철학자는 책을 통해 세상이라는 더큰 책을 읽게 됩니다. 철학자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영혼이 선율과 공명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교양은 그에게 내면의 아름다움과 덕을 가꾸도록 안내합니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인도하듯 책과 음악과 교양은철학자에게 좋은 삶을 보여주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인생의 숲길을 걷는 철학자가 되고자 합니다. C# minor(올림 다단조) 음악 속에서 그 발자국을 디딜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개의 반음 올림표를 가진 C# minor의 화음은 조용하면서도 신비스럽고, 마음을 울리면서도 어루만져 줍니다. 인생을 동반하는 음악 중에서 C# minor로 시작되는 곡들은 유난히 마음에 젖어듭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어느 소녀가 치는 쇼팽의 왈츠 2번, C# minor를 들었을 때, 그 순간 이 곡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만, 달콤한 슬픔과 수줍은 위로가 절묘하게 섞인이 소품은 여전히 지친 마음을 치료해줍니다. 쇼팽의 녹턴(야상곡) 중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곡인 ‘녹턴 20번’, C# minor를 들을 때도 언제나 거짓말처럼 시간이 멈추는 것 같습니다.

인생을 C# minorr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다감하게, 우아하면서도 깊이 있게, 친절하면서도 여백을 가지고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있습니다. 그럴 때에 어울리는 벗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위대한 평균율클라비어곡집‘에 나오는 두 곡, C# minor의 프렐류드와 푸가입니다, I권의 네 번째 ‘프렐류드와 푸가 BWV 849 와 II권의 네 번째 ‘프렐류드와 푸가 BWV 873‘을 들을 때마다 감각의 황홀함과 정신적 관조에서 오는 평정이 차례로 마음과 생각을 감싸고 돕니다.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슈 쉬프가 젊은 시절에 연주한 평균율‘ 음반은 이 곡이 주는 위안과 기쁨을 알게 했습니다. 돌고 돌아서 여전히 이 음반을 좋아합니다.

릴케의 시는 시대를 넘어서 오늘의 예술가들에게도 창작의 보고입니다. 이를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작가 페터 한트케와 함께 작업한 철학적인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기본 착상과 대사들 곳곳에서, 무엇보다 천사들의 독백에서 《두이노 비가》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말테의 수기》나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같은 릴케의 산문들 역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세대를 거쳐 꾸준히 읽히고 있습니다. 릴케의 문학은 현대의정신적 위기 징후를 미리 예감한 작품들이기도 하고, 신관에 대한심오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릴케는 시인, 작가, 예술가, 철학자들에게 평생 파고들며 대결해야 하는 귀중한 존재이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위로를 주는 시인이고작가이며 사랑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그의 시는 수수께끼 같으나난해하다기보다는 신비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먼 곳을 향하도록자극도 주지만 그 길을 떠날 수 있는 힘을 얻도록 위로 역시 줍니다.
릴케의 편지는 우리 시대에 절실한 사유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삶이란 변화‘라고 깨우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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