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과 책과 음악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인생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와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음악과 책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자랑하는 교양에 인격과 영혼이 담겨있기는 할까요? 하지만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고자 애쓰며,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위해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책과 음악은 좋은 친구이고 교양은 든든한 밑천입니다.
철학자가 별다른 사람은 아닙니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그리로 가는 길을 찾고 걷고자 애쓰며,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인생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알기를 소망하며, 배우고 깨닫는 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철학자는 책을 통해 세상이라는 더큰 책을 읽게 됩니다. 철학자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영혼이 선율과 공명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교양은 그에게 내면의 아름다움과 덕을 가꾸도록 안내합니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를 인도하듯 책과 음악과 교양은철학자에게 좋은 삶을 보여주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인생의 숲길을 걷는 철학자가 되고자 합니다. C# minor(올림 다단조) 음악 속에서 그 발자국을 디딜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네 개의 반음 올림표를 가진 C# minor의 화음은 조용하면서도 신비스럽고, 마음을 울리면서도 어루만져 줍니다. 인생을 동반하는 음악 중에서 C# minor로 시작되는 곡들은 유난히 마음에 젖어듭니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어느 소녀가 치는 쇼팽의 왈츠 2번, C# minor를 들었을 때, 그 순간 이 곡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만, 달콤한 슬픔과 수줍은 위로가 절묘하게 섞인이 소품은 여전히 지친 마음을 치료해줍니다. 쇼팽의 녹턴(야상곡) 중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곡인 ‘녹턴 20번’, C# minor를 들을 때도 언제나 거짓말처럼 시간이 멈추는 것 같습니다.
인생을 C# minorr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다감하게, 우아하면서도 깊이 있게, 친절하면서도 여백을 가지고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있습니다. 그럴 때에 어울리는 벗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위대한 평균율클라비어곡집‘에 나오는 두 곡, C# minor의 프렐류드와 푸가입니다, I권의 네 번째 ‘프렐류드와 푸가 BWV 849 와 II권의 네 번째 ‘프렐류드와 푸가 BWV 873‘을 들을 때마다 감각의 황홀함과 정신적 관조에서 오는 평정이 차례로 마음과 생각을 감싸고 돕니다.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안드라슈 쉬프가 젊은 시절에 연주한 평균율‘ 음반은 이 곡이 주는 위안과 기쁨을 알게 했습니다. 돌고 돌아서 여전히 이 음반을 좋아합니다.
릴케의 시는 시대를 넘어서 오늘의 예술가들에게도 창작의 보고입니다. 이를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작가 페터 한트케와 함께 작업한 철학적인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영화의 기본 착상과 대사들 곳곳에서, 무엇보다 천사들의 독백에서 《두이노 비가》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말테의 수기》나 《사랑하는 하느님 이야기》 같은 릴케의 산문들 역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세대를 거쳐 꾸준히 읽히고 있습니다. 릴케의 문학은 현대의정신적 위기 징후를 미리 예감한 작품들이기도 하고, 신관에 대한심오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릴케는 시인, 작가, 예술가, 철학자들에게 평생 파고들며 대결해야 하는 귀중한 존재이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위로를 주는 시인이고작가이며 사랑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그의 시는 수수께끼 같으나난해하다기보다는 신비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먼 곳을 향하도록자극도 주지만 그 길을 떠날 수 있는 힘을 얻도록 위로 역시 줍니다. 릴케의 편지는 우리 시대에 절실한 사유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삶이란 변화‘라고 깨우쳐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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