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를 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계와 방송매체를 통해 많은 철학자들을 가깝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순진하게도, 당당하게 주장된 원칙이나 가치와는 정반대로 펼쳐져 나간 삶을 마주할 때마다 놀라곤 했다. 담론이 요란할수록간극은 더 명확했다. 하긴 철학자들 가운데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들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적을 이유가 딱히 있겠는가?
철학자들은 정치인이나 모조품 만드는 사람을 부러워할 까닭이 전혀 없다. 그들도 철학을 넘어서서, 자기 자신에 관한 거짓말의 창의력과 역설적 구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례‘를 얼마든지 제공할 수 있으니까. 말하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비일관성은 사상가의 경우, 독자의 즐거움의 원천이자 사유를유발하는 매력적인 이론으로 변형된다. 결핍은 과잉 속에 있고, 왜곡은 창조의 바탕이 된다.

미래는 포착되지 않는 것, 우리 위로 떨어져서 우리를 장악하는 것이다. 미래는 타자이다. 미래와의관계는 타자와의 관계 자체이다. * 타인은 절대적 타자이며,
모든 것을 여는 열쇠, 즉 인간이 타인을 이미 환대했기에 그관념을 갖게 된 무한의 열쇠, 초월성의 열쇠이자 하느님의 열쇠를 제공한다. 또한 타인은 구체적 관계 속에서 언어에 철학적 정의를 부여한다. "말하기, 그것은 타인을 앎으로써 동시에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타인은 단지 알게 된 자가 아니라인사를 받는 자이다. 단지 명명되는 자가 아니라 간청받는 자이다. 문법 용어로 말하면, 타인은 주격이 아니라 호격으로 등장한다."** 레비나스는 사회적인 것을 성찰하는 데 몰입하면서 타인의 절대적 정의를 통해 폭력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었다. "얼굴로서의 타자와 맺는 관계는 알레르기를 치유한다.

****타인은 모든 개념을 흡수하여 자신의 빛과 일렁임 속에서 반짝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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