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가 지금 바닥에 굴러떨어졌는데 만일 바닥이 없다.
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없이 깊은 어둠의 나락과 심연 속으로 끝없이 빠져들고 있을 게 아닌가. 그 끝없는 끝이 어디이겠는가. 바로 죽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잘 생각해보게. 자네가 지금 주저앉아 울고 있는 바닥이 자네를 죽음의 나락으로 빠져들지 않게 힘껏 받쳐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얼마나 감사한가. 바닥은 원망과 부정의 존재가아니라 바로 감사의 존재야. 자네는 바닥을 그냥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되는 거야."

"바닥을 그냥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
"어렵게 생각하지 말게.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일세. 희망은 생명이야. 사람은 언제 자살하는가? 돈이 없어서? 사업에 실패해서? 연인에게 배반당해서? 명예를 잃어서? 아닐세. 그걸 통해 결국 희망을 잃었을 때 자살한다네. 이제다 끝났다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될 때. 그러니 아무리 바닥에 굴러떨어졌다고 해도 희망을 잃지 마시게."
나는 그제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하더라도 그 바닥을 딛고 일어서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아, 바닥이 있기 때문에 바닥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거구나. 만일 바닥이 없다면 딛고 일어설 존재조차 없는거구나!"

정상이 존재하는 까닭은 바로 바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등산을 갔을 때 당신은 정상에서부터 등산하는가. 아니다. 누구나 산의 밑바닥에서부터 걸어 올라가 정상에 도달한다. 바닥이 없으면 정상은 존재할 수 없다. 바닥이 있기 때문에 정상이 존재한다. 바닥의 가치가 정상의 가치보다 더 크다. 그런데 왜 당신은 바닥의 가치를 폄하하고 무시하며 정상 지향적인 삶만을 추구하는가. 정상은 바닥이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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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땐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을 돌아봐"라고 쓰인 한글 배너가 여기저기 보인다. 이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위해 여기 모여서,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동아시아 출신 20대 청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며 눈물 흘린다. 이 아름다운 청년들은때로는 황홀한 유혹으로, 때로는 뜨거운 연대로, 때로는 종교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의 발견을 노래하고 찬양한다.

BTS 현상은 전 세계에 미국과 유럽이 유행시킨 톱다운식의 대중문화와 다른, 세계화가 만들어낸 혼종적 문화이자 지배적 음악유통 환경에 역행하는 흐름이다. 따라서 BTS 현상을 연구한다는것은 먼저 SNS와 유튜브를 활용한 대중문화의 형성과 전파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문화 매개자들의 권력이 어떻게 재배치되고, 새로운 문화 생산과 향유의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며, 세대 · 문화 · 인종·젠더의 새로운 규범과 경험이 어떻게 공유되는지에 대한 지식을 생산하는 일이다. BTS의 세계적인 인기는 이러한 세계화 속에서 새로운 문화 생산과 유통의 현실을 관찰할 수 있는 특별하고도 정당한 사례다. 마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오른 바윗덩어리에 가해지는 힘을통해 유속과 수질과 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LA 거리에서 콘서트 홍보지를 돌리고 아메리칸 허슬 라이프"를 배웠으며, 점점 더 많은 관객을 만나러 지구를 여러 번 도는 투어를 해냈다. 무엇보다 그들은 아무도 다른 방향을 택하지않고 함께 길을 걸으며 조화로운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관계는 갈수록 돈독해지고 서로가 좋은 영향을 미치며 배워가는 방향으로 발전해갔다. 여전히 그들은 이 여정의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듯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길 위에서 성장했고 어디로 나아가는지는 확신하게 된 듯하다. 《WINGS》 앨범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날개를 달게 된 BTS는 이제 그들이 걷고 있는 길의 신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태양으로도 바다로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되는 비행을해야 하는 BTS, 또는 자기 안에 있는 원형적인 인격(per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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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랑해도 외롭고 사랑하지 않아도 외롭습니다.
사랑을 받아도 외롭고 사랑을 받지 못해도 외롭습니다. 그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입니다. 저는 이 책이 그 본질을 이해하고 긍정하는 데에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로워도 외롭지 않을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사랑하기 위하여.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따라서 ‘혼자‘와 ‘홀로‘도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혼자‘는 상대적 영역이고 ‘홀로‘는 절대적 영역이다. 법정스님께서 ‘사람은 때때로 홀로 있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 홀로‘는 절대적 영역이다. 내 존재의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는 절대적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만일 ‘홀로‘를
‘혼자‘로 바꿔서 사람은 때때로 혼자 있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법정스님께서 하시고자 한 말씀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연인 관계에서도 "요즘 당신이 나를사랑해주지 않으니까 내가 너무 고독해"라고 했다면, 그것은 "내가 너무 외로워"라고 해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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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하느님의 시점은 나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분은 모든 등장인물을 다 보시지만 나는 나만 빼놓고 본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옥에 "보내시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각자 안에 뭔가 자라고 있어서 미리 싹을 잘라 내지 않으면 그 자체가 지옥이 된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다.
그러니 당장 그분의 손길에 우리를 맡겨 드리자. 오늘 이시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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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자리로 - 그 나라를 향한 순전한 여정
C. S. 루이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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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관심은 딱히 우리의 행위에 있지 않고 우리가인간다운 인간, 즉 그분이 뜻하신 본연의 피조물이 되는 데있다. 그러려면 그분과의 관계가 바로 서야 한다. "바른 대인 관계"는 거기에 내포되어 있으므로 굳이 덧붙이지 않겠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면 다른 피조물들과의 관계도바를 수밖에 없다. 모든 바킷살이 중심축과 테두리에 제대로 끼워져 있으면 자연히 바킷살끼리도 최적의 거리를 유지하기 마련이다.

하나님을 숙제 검사관이나 거래 상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그분과의 관계가 바르지 못한 것이다. 그분과의사이에 흥정이 오간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누구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한참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먼저 자신이 파산 상태라는 사실부터알아야 한다.
단, 앵무새처럼 말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정말 깨달아야 한다. 어린아이라도 웬만큼 종교 교육을 받으면 말이야금방 따라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고는 전부 이미 그분의 것뿐이며, 우리는 그마저도 다 드리지 못하고 일부를 움켜쥐기 일쑤라고 말은 비슷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 맡긴다"라는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알지만 일단 그대로 쓰겠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온전한 인간으로서 순종하신 그리스도께서 놀랍게도 그 순종을 우리의 순종으로 여겨 주시사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가 그리스도를더 닮게 하시며,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약점을 보완해 주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이다.

아무리 초라한 자연적 활동도 하느님께 드리면
그분이 다 받아 주시지만,
아무리 고상한 일도그분께 드리지 않으면 다 악해진다.
기독교는 그저 자연적 삶을
새로운 삶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소재를 초자연적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새로운 질서다.

요컨대 종교와 전쟁은 이런 점에서 유사하다. 둘 중 어느 쪽도 대다수의 경우 우리의 기존 인생살이를 중단시키거나 아예 없애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서로다르다. 전쟁이 우리의 관심을 독점하지 못하는 까닭은 전쟁은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은 그 본질상인간의 영혼을 송두리째 사로잡기에는 모자라다.

모든 사람이 수영을 배울 때까지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모든 활동을 중단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 몇 가지 구분해 둘 것이있다. 나는 이번 전쟁의 아군 측 명분이 인간적 기준에서아주 의롭다고 믿으며, 따라서 의무적으로 참전해야 한다.
고 여긴다. 모든 의무는 신성하기에 모든 의무를 수행할 우리의 책임도 절대적이다.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할의무가 있으며, 거주지가 위험한 해안가라면 행여 누가 물에 빠질 경우에 대비해 어쩌면 인명 구조법을 배워야 할 의무도 있다.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상대를 살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일 수 있다. 그러나 인명 구조에 헌신하여 완전히거기에만 매달린다면(다른 것은 일절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고, 세상해야 한다고 우긴다면) 이는 편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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