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이 방황하거나 시름에 겨워한다면, 마음을 가만히 당신의 자리로 다시 데려와 주님의 현존 안에놓아두십시오. 그렇게 했다면 비록 당신이 마음을 하느님의현존 안으로 다시 데려다 놓는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또 심지어 당신이 가져다 놓은 마음이 매번 다시 달아나 버린다 하더라도, 당신의 인생은 그것으로 이미충분히 완성되었습니다."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의 수사들은 베네딕토 성인이말했듯, "하느님보다 아무것도 중하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각자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기 위해서 매일 세 시간정도 성당에서 보냅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렇게 묻겠지요.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게 생산적인 일일까요? 그 많은 시간이면 못 해낼 게 없겠네요."
하느님과 내 안에 있는 신적인 생명으로 향하는 마음을세상이 칭찬해 주기를 바랄 수도 없고, 이성적 사고방식으로 따지고 드는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은매일의 급여나 시장 가치로 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전체가 도무지 시장 경제의 논리로는 이해 불가능하니까요.
비용과 효용의 논리는 하느님의 범주가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는 늘 똑같은 상황에 놓이거나 같은 유형의일들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럴 때 이렇게 자문하고는 합니다. "난 늘 왜 이러지? 왜 나에겐 항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하지만 난관에 부딪혀 돌아가는 길에서도 의미를찾을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경험에서 마침내 올바른 분기점을 발견하고 내 인생 길을 굳건히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또 다른 측면의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우회로에는 어떤 과제가 담겨 있을까요? 이 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까요? 그곳엔 어떤 깨달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갈망과 깊이 만나고자 하며, 갈망을 밝게 비추는 표징을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이런 표징을 감지하고그 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표징과 갈망이 현재의 내 삶을 흔들어 놓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혹은 ‘내가갈망의 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이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이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질문의 귀결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질문에 대한답에 따라 내 일상의 삶에 생겨나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별의 표징들은 안락하게 잘 조율되어 있는 삶에서 자주 우리를 불러내고 돌려세우기도 합니다.

... 시작점에 나타난 것이 길을 걸을 때 역시나타납니다. 과감하게 길을 떠나는 자세, 시급하고 긴요한 변화에 열려 있는 자세, 삶을 새롭게 이해하고 기획하기 위한내적 준비 등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는 무언가를 새로시작할 때 나에게 갈 길을 언제나 다시금 새로 시작하며, 나에게 갈 길을 가리키는 가장 깊은 내면의 갈망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시금 우리의 별을 향하는 것이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아직도 그 별이 내 위에 떠 있는가? 나의 일상 안에 여전히 떠 있는가? 나는 그 별을 여전히 바라보는가? 아니면 나는 별과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고 말았는가? 길을 교정하는 것이 필요할까?
1

몇 년 전 93세의 나이로 선종하신저의 대모님(서양은 대부, 대모 양쪽을 세우는 것이 관습이다. - 옮긴이)을 생각합니다. 그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인생의 기쁨을 아셨고 의욕에 차 있으셨습니다. 그분은 매일 매일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셨고,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삶을 향유하셨으며, 자신이 인생에서 얻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셔서 그것에 대해 즐거워할 줄 아셨습니다. 인생의 끝이 다가온것이 확실해지자, 그녀는 생명 연장 수단을 거절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충만한 삶을 살았구나. 이제 모든 게 좋다.
나는 사랑하는 하느님이 계신 하늘로 가고 싶단다."

변화를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 현자들이 배우고 익힌 것이었습니다. 길 위에서, 구유 앞에서,
귀환의 여정에서, 그리고 다시 시작된 그들의 일상에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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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른징어는 방문한 집의 문에 흰색 분필로 새해를 맞이하는 축복의 말을 적어 준다. 그해의 연도를 나타내는 숫자를 앞의 두 자리와 끝의 두 자리로 나눠 시작과 끝에 적고, 앞의 두 자리 숫자 바로 뒤에 별을 상징하는 기호 ‘*‘를 적는다.
이 기호는 지방에 따라 ‘‘ 혹은 ‘-‘로 대치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뒤에 C,M,B를적는다. 이는 세 동방 박사의 이름 첫 글자인 카스파르, 멜히오르, 발타사르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이 집을 축복합니다" 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인 "Christus mansionem benedicat의 약자이다. 완성된 문장을 예로 들면, 2019년의 경우는 ‘20*C+M+B+19‘가 된다. 이러한 가정축복은 가톨릭 신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원칙적으로 사제나 부제가 향 또는 성수를 가지고 수행한다.

갈망은 어떤 길로 저를 이끌기 원하며 이끌 수 있는지를압니다. 갈망은 제가 추구했고 찾아낸 모든 외적인 요소들을 제가 분명하게 인식할 때까지, 그 여정 속에서 저에게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알려 줍니다.
새로 출발하거나 크게 변하는 일들은 언제나 더‘라는 것과 관련이 있거나, 더 정확하게는 삶 자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충만한 삶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자신의 본모습을 밖으로 피어나게 하고픈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비밀과 접촉하고 말을 거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때하느님은 다시금 한 인간 안으로 개입하시고 그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그분의다양함 안의 한 측면을 지니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신적인 가능성을 꽃피울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저는 제 배낭을 짊어지고 걸었던 첫 번째 구간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그날은 주일 오후였습니다. 저는 천천히 저의 첫 번째 순례길인 떼제 공동체에서 출발해 클뤼니 수도원에 이르는 12킬로미터의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초반부터제 배낭이 얼마나 무거운지, 더 많은 시간을 걷게 되면 얼마나 더 무겁게 느껴질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집에서 체음 들어 봤을 때는 거뜬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벼웠던 짐이었는데 말입니다!
그 길은 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배낭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음을 느끼

저는 무게가 12킬로그램이 될 때까지 짐을 덜어 내 여러 박스에 넣어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겨우 딱알맞은 무게가 되었습니다. 그 사실은 순례 여정에서 많은 것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제가 매일 입는 옷외에 여벌 바지 하나, 수건 하나, 샌들 한 켤레, 속옷 두 장,
성서, 2리터들이 물통, 침낭, 비옷, 그리고 일기장. 1 은꼭 필요한 것들은 사실 순례 여정 중에 선물처럼 주어졌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인도하고 이끌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인생의 배낭을 꾸릴 때, 길 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 게 무엇인지 떠올려 봅니다. 내가 마련할 수 있는 빈자리는 어디일지, 인생의 배낭에서 무엇을 덜어 냄으로써 자유롭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반대로 어떤 경우에도 빼놓을 수 없거나 빼놓고 싶지 않은 것도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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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폭력에 반대합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발표하며 12억 원을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에 기부했고 이 소식을 들은 BTS의 팬들은 순식간에 같은 액수(100만 달러)를 모금해 기부했다. 인종 차별주의자로 의심받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BTS, 블랙핑크의 팬클럽 등이 합세한 Z세대 케이팝 팬클럽 연합군에 의해엄청난 수모를 겪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상대로 압승을 거둔 상징적인 곳,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재선을 위한 유세를 재개했다. 그러나 케이팝팬들은 온라인으로 유세장 티켓을 선점한 뒤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노쇼no show’ 운동을 통해 유세장을 텅텅 비게 만들어버렸다. 미국 언론들은 이에 대해 케이팝 팬들의 전설적 조직력이 정치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면서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고평했다. 재빠른 온라인 티켓팅과 노쇼로 놀이와 시위를 동시에 진행하는 Z세대다운 정치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1~2년 전부터 글로벌 화장품 회사들은 백인의 우월성이 바탕에 깔린 용어, 즉 ‘화이트닝‘, ‘미백‘, ‘밝은 톤과 같은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46 이는 차별, 정치적 올바름, 공정성의 이슈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실제로 행동하는 MZ세대, 특히 Z세대가 등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세대의 환경에 대한 생각은 2019년 9월 청소년 환경 운동가그레타 툰베리 Greta Thunberg가 유엔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한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위에 올라와 있으면 안 돼요. 저는 대서양 건너편 나라에 있는 학교로 돌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희망을 바라며 우리 청년들에게 오셨다고요?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나요? 여러분은 헛된 말로 저의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운이 좋은1편에 속합니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죽어 가고 있어요.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멸종이시작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중략) 여러분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여러분이 배신하고있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미래 세대의 눈이 여러분을 향해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를 실망시키기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 세대에게는 환경 문제가 아름다운 지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 혹은 더 심각해 봐야 ‘우려스럽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문제‘ 정도였다면, 이제 10대에서 20대 초중반 사이인 Z세대에게는 ‘지금 당장 행동하고해결해야 할 생존의 문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대로 행동하지 않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 Z세대는 분노를 표출한다.
마음대로 자원을 쓰고, 탄소를 배출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재앙적인 기후 변화를 촉발한 뒤에 그 책임을 다음 세대에게 떠넘기기는 건 올바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미 새로운 ‘대멸종‘이 다가오고 있다는 과학계의 보고가 나오면서 Z세대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권리를중시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건강이 아닌 ‘동물권‘이라는신념을 위해서 채식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Z세대는 코에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괴로워하는 바다거북 동영상을 보며함께 울었던 세대이고48, 스타벅스의 플라스틱 빨대 퇴출을촉발한 세대다. 태평양 플라스틱 쓰레기 섬의 충격적 영상을 함께 보고 위기의식을 느낀 세대 이다

구찌 컬렉션에서 영감과 모티브를 얻은 전 세계 장소를소개하고 직접 방문할 수 있도록 한 소비자 참여형 애플리케이션인 ‘구찌 플레이스‘도 그렇게 탄생했다. 2019년 2월에는서울의 대림미술관이 구찌 플레이스 중 한 곳으로 선정됐는데, 앱을 설치하면 사용자가 구찌 플레이스로 선정된 곳을 지날 때 초대 알림이 뜬다. 게임은 이용자가 실제 플레이스를 방문하면 앱을 통해 체크인하고 관련 배지를 받을 수 있는, ‘포켓몬 고‘ 게임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배지를 획득하면 그 장소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컬렉션을 구입할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특히 사랑하는 소셜 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 예쁘게 포스팅할 수 있도록 매장을 밝게 꾸미고, 새로운 컬래버레이션 컬렉션 자체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으며,
온라인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을 발매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공정 무역, 사회적으로 올바른 소비 등에 관심이 많은MZ세대의 가치를 반영해 모피 제품 생산 중단을 선언하기도했는데 이는 구찌를 다시 힙한 브랜드로 변모시키는 데 크게기여했다. 이런 아이디어들 중 대다수는 물론 그림자 위원회에서 나왔다.

2019년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많이 팔로우된 해시태그는 #공스타그램이었다. 주로 10대들이 ‘공부 인증샷‘을 올리는 해시태그다. 태그된 게시물은 그날 한 공부 내용과 시간 등을 적고취향대로 꾸민 다이어리 페이지나, 공부하는 모습을 타임랩스 영상으로 찍은 인증샷 등이다. 오늘 몇 시간을 공부했는지측정하고 전국 순위를 매길 수 있는 앱 ‘열품타(열정 품은 타이머)‘를 캡처한 사진도 종종 보인다. 유튜브에서는 ‘공부 브이로그‘도 흔하다. 10대 수험생이나 20대 초반 대학생, 공시생 등이 유튜브에서 공부하는 모습, 그날 공부한 시간을 구독자들과 공유한다. 라이브 방송을 켜고 채팅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기도 한다.

지금 주로 10대 후반, 20대 초반인 Z세대 일상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공부 방식은 저자가 말하는 Z세대의 특성을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다. 스마트폰과 온라인을 통한 연결은 일상적인 삶의 조건이고, 그래서 공부나 일 등에 방해가 된다, 아니다를 논할 만한 일이 아니다.
또 이들은 X세대 부모와 함께 성장기에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현실적인 성향과 경제관념을 장착했다. 교육의 중요성도잘 알고 있다. 다른 세대만큼 대학 진학을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진학을 선택했다면 온라인과 SNS를 보조 수단 삼아 열심히 노력한다. 다른 분야를 선택한 세대도 마찬가지로 오프라인에서 하는 일이나 학습을 온라인 세계와의 구분없이 공유하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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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세대에게는 메이저와 마이너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 Z세대가 10대의 주류가 되고 20대 중반까지 장악한 지금은 소수의 취향도 존중받게 되었다. 대다수는 윤리적 ·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면 세상에 무시당해도 될 취향은 없다고 믿는다. 동창회, 향우회 등 기존의 연결을 기반으로 한
‘끈끈한‘ 모임이 아니라 취향을 중심으로 뭉치는 느슨한 연결’을 즐기며, 여기에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전화받는 포즈를 취했을 때, 주먹을 쥔 상태에서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펴 옛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귀에 갖다 댄다면 최소 1990년대 초반 이전에 출생한 사람이라고 추정할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인 Z세대는 전화받는 시늉을 할 때 손바닥을 다 펴거나 스마트폰을 살짝 쥔 듯한 모양을 만들어 귀에 갖다 댄다. 수화기가 있는 형태의 전화기를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전화기란 항상 선이없고 터치가 되는 직사각형 모양의 기기였다. 그래서 상당수의 Z세대는 스마트폰의 전화 통화 아이콘이 왜 그런 모양새(수화기의 단순화된 모양)를 갖게 됐는지도 잘 모른다. 플로피디스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피스 프로그램의 ‘저장‘ 아이콘이 왜 그런 모양인지도 물론 모른다. 아날로그 시대의 기기들을 학습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세대가 Z세대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하는 인류)‘로도 불리는
이 모바일 네이티브들은 실제로 3~4개의 다른 디바이스를 동시에다루며 화면을 오가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반면 집중하는 시간은 다소 짧은 편이다. 세대 전문가이자 컨설턴트인 제프 프롬은 저서에서 "밀레니얼은 2개의 화면을 동시에 다루고 12초의 집중력을 가진다. 하지만 2세대는 5개의 화면을동시에 다룰 수 있으며 집중력 지속 시간은 8초 정도 된다"고설명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 전기 밀레니얼(1980년대 초중반생)까지는 페이스북을 주로 썼고, 일부는 트위터를 더 많이 사용했다. 후기 밀레니얼(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생)까지는 주로 인스타그램을 많이 썼다(물론 Z세대도 인스타그램을 많이 한다). Z세대의 경우, 스냅챗과 같은 폐쇄적이고 휘발성이강한 미디어를 많이 활용한다(그리고 자주 취향이 바뀐다). 페이스북 자체는 Z세대 사이에서 대세가 아니지만, 페이스북메신저는 많이 사용한다. 페이스북부터 인스타그램, 그리고스냅챗까지 이어지는 ‘대세‘ 소셜 미디어를 보면, 갈수록 폐쇄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초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가 ‘페이스북을 폐쇄적인 커뮤니티형서비스로 전환할 생각이 있다"고 언급한 건 다른 여러 이유도 있지만, Z세대부터 페이스북 자체를 소셜 미디어로 적극사용하는 비율이 떨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정치 경제적으로 동조화된 세계에 살며, 소셜 미디어와유튜브 등의 인터넷·모바일 플랫폼 위에서 함께 놀던 전 세계Z세대에게는 특정 국가의 총리나 대통령도, 글로벌 기업의CEO나 헐리우드 배우, 케이팝 스타도 이방인이나 외국인이아닌 ‘동시대인‘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Z세대가 최초로 ‘지구인 정체성‘을 갖게 된 배경이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가져 왔던 정체성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상태에서 기존의 진보·보수가 각각 추구해 왔던 평등과 자유,
분배와 성장의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고 ‘기회의 공정성‘과 가치 추구의 ‘진정성‘을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BTS 팬 사이에서 특히 활성화돼 있는리액션 비디오는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이업로드되면 팬들이 그 영상을 보면서 놀라고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자신의 반응을 담아 올리는 영상이다. BTS의 경우 각국의 팬들은 그런 영상을 보고 각자 자신의 나라 언어로 자막을 달아 유튜브에 공유하기도 하고, 리액션 비디오만 모아서다시 편집해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이건 그들에게 귀찮거나억지로 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다. 이런 점에서 BTS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미디어이자 놀이 공간, 즉 플랫폼이 된다. 이것이 바로 완전히 연결된 세상에서 지구인으로서 살아가는 Z세대의 놀이 방식이다.
이들은 BTS의 뮤직비디오 장면에 숨은 의미를 공부하기 위해 BTS가 영향을 받은 철학 책을 읽기도 하고, 원어의 느낌을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기도 한다. ‘문화와 언어의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세대가 아니라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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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에 의하면 정신은 낙타에서 사자로, 그리고 사자에서 아이로 되어가는 발전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걷는 존재입니다. 이는 의무에 짓눌리면서도 그 의무에서 자긍심을 느끼는 실존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어 니체는 이러한 의무에종속된 삶에서부터 그 의무를 거부하며 자유를 쟁취해 스스로 사막의 주인이 되는 사자의 단계를 말합니다. 사자는 ‘해야 한다‘에 대한거부이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다‘ 라는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의무를 거부하고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투쟁이며, 그래서 사자는 폭력과 강탈로 특징 지울 수 있는 부정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진정한 생명력의 회복은 부정의 정신이 아니라무한한 긍정 안에서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긍정의 존재를니체는 아이라고 말합니다. 사자가 다다를 수 없는 자유와 생명의경지는 오직 아이의 놀이에서 발견됩니다. 니체는 이렇게 장엄하게선언합니다.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P.40-4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에게 어린 아이란 일체의 규율과 한계에 사로잡히지 않는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낙타로 상징되는 책임과 의미안에서 어느덧 삶의 기쁨을 잃고 주체적으로 사는 법을 잊은 사람들과 대조됩니다. 나아가 이러한 낙타로서의 삶의 모습과 기존의 가치에 종속되는 것을 파괴와 부정을 통해 초극하는 사자의 단계도 넘어섭니다. 왜냐하면 사자는 포효하고 적과 싸워 이길 수는 있으되 어린아이의 거리낌 없는 기쁨과 자연스러운 생의 긍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어린아이라는 비유 안에 ‘회복의 철학‘이라는 이상을담고 있습니다.

신앙적, 종교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이 되어 건강한 존재로서 회복되는 것에는 자율적 주체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신뢰가바탕이 되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회복시켜주고 건강하게 하며 생명력을 주는 인간관계는 종속과 폭력의 상호의존이 아니라 자유로운 헌신과 우애와 사랑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는 늘 새롭게 시작하는 인간의 모범이며 더 큰 삶의 초대를 향해 아무런 내적 방해를 받음이 없이, 믿는 가운데 자신을 여는 존재이다.
- P.18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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